594화. 늘어난 이상 현상
소형 승용차에 오른 장목화, 성건우는 한동안 인적이 없는 주위 골목길을 타고 이리저리 우회했다. 우딕 일가까지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소요한 끝에 그린올리브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많은 이들이 군대에 가입한 이후, 한낮의 퍼스트 시티는 더욱 조용해져 있었다. 구석지고 가게도 없는 곳에서는 20분이 지나도록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보조석에서 장목화는 이번 방문으로 얻은 수확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현 상황으로 볼 때 우딕한테 네 가지 이상 현상이 생긴 것 같아. 조광증, 대칭 강박증, 소심증, 정신착란.”
“안타깝네요⋯⋯.”
자비로운 제도 선사가 진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같이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우딕은 그런 증상을 동시에 무려 네 개나 앓고 있었다.
제도 선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 악을 증오하는 성건우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죠!”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도 바로 따라붙었다.
“악몽의 수족을 처리하고 그 악몽에 맞설 단서를 찾아내면 우딕의 건강을 제대로 회복시켜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워낙 성건우들이 치고 들어오는 통에 장목화는 끼어들 틈도 없었다.
이후 차를 메우던 소리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악몽의 영향으로 인해 미쳤다고 해도 그렇지 한 번에 그렇게나 많은 부위에 고장이 생기나?”
정신착란과 조광증 중 하나만 해도 충분했다. 대칭 강박증은 일정 정도까지 심화되면 정신병으로 간주되지만 광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고, 소심증은 정신병이라고 하기에는 더더욱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4가지 이상 현상은 별 연관이 없었다. 정신질환 중 비교적 흔하게 함께 나타나는 것은 조광증과 착란뿐이었다.
장목화는 성건우의 말대로 소심증은 악몽을 겪은 뒤 우딕에게 생긴 트라우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어느새 냉정해진 성건우가 말했다.
“그렇게 보면 작은 흰둥이 추측이 맞았네요. 한 눈은 크고 한 눈은 작다는 건 우딕이 악몽에서 목격한 거고, 좋은 사람이 아니니 다 파내버릴 거란 건 대칭 강박증이 나타난 후로 덧붙인 말인 거예요.”
장목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타났다라⋯⋯.”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돌연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감염일 수도 있지 않아? 우리 그때, 우딕이랑 로리스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딕한테 생긴 이상 현상이 당시 느꼈던 뭔가를 모방한 결과거나 광증에 감염된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잖아.”
성건우는 차 속도를 낮추며 핸들에서 오른손을 떼고 턱을 긁적였다.
“만약 감염이거나 모방이라면 그 근원, 혹은 참고 대상이 있겠죠.”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이것 자체도 굉장히 대칭적이야. 내가 그때 그랬었지.”
장목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동안 그녀의 표정도 묵직해졌다.
그때, 같이 생각에 빠져있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팀장님은 액자, 혹은 또 다른 사람에게 대칭 강박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이 악몽을 통해 그 문제를 우딕한테 전염시킨 거라고요?”
“그럴지도⋯⋯.”
별 확신 없이 답하던 장목화가 갑자기 몸을 벌떡 세웠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를 쫓던 그 남자가 시종일관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건 빛이 두려워서나 외형적 특징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동료한테 대칭 강박증이 있기 때문인 거야! 비대칭인 눈으로 인한 내분이 발생하지 않게 조치한 거지! 그 사람이 저녁에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 뒤를 캐고 다녔을 때도, 그 주위에는 그 사람 동료가 숨어있었어!”
* * *
그린올리브 구역.
방 안에 앉은 게네바는 충전이 필요한 고성능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모든 카메라를 눈으로 삼아 실시간 영상을 여유롭게 감시하고 있었다.
이 방과 복도를 사이에 둔 채 비스듬히 떨어진, 계단 근처의 방 안에는 백새벽과 용여홍이 조용히 숨어있었다.
거주자가 없는 이 방의 책상과 의자에는 먼지가 부옇게 쌓여있었다. 그렇게 백새벽과 용여홍은 복도가 조용한 틈을 타 손수 자물쇠를 열고 이곳에 잠입한 상태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열쇠 구멍과 외시경을 통해 계단 쪽 상황을 살피면서 그곳에 몰래 설치된 카메라로 게네바가 있는 방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살피는 중이었다.
용여홍은 전에 분석했던 갖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속 반복해 떠올렸다.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백새벽이 외시경으로 밖을 내다보며 용여홍을 위로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긴장할수록 잊어서는 안 될 디테일을 잊고, 저질러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니까.”
‘그래, 긴장하지 말자. 작은 흰둥이가 날 믿음직스럽게 여기도록⋯⋯.’
용여홍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느릿하게 토해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백새벽이 돌연 목소리를 낮췄다.
“누가 올라온다.”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문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를 돌아본 백새벽은 전보다 목소리를 더 낮췄다.
“넌 컴퓨터로 봐. 같이 문에 붙어있으면 저쪽 각성자한테는 의심스럽게 여겨질 거야.”
“알겠어.”
용여홍은 정리해둔 탁자 옆으로 살금살금 물러났다.
줄곧 켜져 있던 백새벽의 휴대용 컴퓨터는 임시 기지국 역할을 하는 게네바와 연결되어 문가에 설치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화면엔 이 건물에 들어온 평범한 옷차림의 평범한 남자가 떠올라 있었다. 남자는 곧장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정오를 맞은 이때, 직장이 멀지 않은 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게네바가 있는 그 방문 앞에 멈춰 섰다.
그 후로 남자는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드리며 백새벽과 용여홍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문 열어! 나 왔어!”
한동안 문을 두드리던 남자는 그제야 허리춤에 달린 열쇠를 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문 안쪽의 게네바가 의도적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는 그쪽은 누구세요?”
문밖에 선 남자는 흠칫 놀란 듯 되묻더니,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이마를 치며 중얼거렸다.
“젠장! 다른 층이잖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돌아선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돌아갔다. 이 난감하고 부끄러운 상황으로부터 얼른 달아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새벽은 방심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기억을 조작당했나?”
“정말 그렇다면⋯⋯”
습관적으로 동조하던 용여홍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목표랑 같은 층에 사는 우리 기억도 모르는 사이에 노출된 거 아냐?”
* * *
소형 승용차 안.
장목화의 추리를 들은 성건우 역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대칭 강박증은 어느 영역의 대가일까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이름을 놓고 보자면 6월의 황금 저울이겠지. 그 달지기는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고, 균형은 종종 대칭으로 표현되곤 하니까. 그 영역 대가 중에 대칭 강박증이 있는 건 빈틈이 없잖아, 매우 합리적이야.”
성건우는 회사에서 제공한 정보와 팀이 수집한 정보를 떠올렸다.
“6월의 황금 저울은 주로 신체에 영향을 미쳐요. 마비가 그 예죠. 아 참, 이 영역의 어느 각성자는 예지를 차단하고 모습을 숨긴 채 누군가를 몰래 해치울 수도 있다고 했어요.”
장목화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 선글라스 남자의 동료, 그러니까 액자 맞은편에 있던 사람은 모습을 숨기고 예감을 차단하는 능력이 있을 가능성이 커. 즉 선글라스 남자는 혼자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실제로는 동료와 함께하고 있는 거야! 이건 그가 해가 진 이후에도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던 이유기도 하겠지.”
만약 대칭 강박증이 있는 동료에게 비대칭인 눈을 보인다면 상대는 당장 그를 제거하려 할 것이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성실하게 입을 비죽였다.
“글쎄요. 심령의 복도 급 대칭 강박증이 있는 각성자라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텐데요. 애쉬랜드에서는 거의 모든 게 비대칭적이에요. 그린올리브 구역은 더더욱요. 만약 저라면 이쪽을 보고 화가 나고, 또 저쪽을 보고 파괴 욕구를 느낄 것 같은데요. 그러다 결국 모든 걸 날려버리거나 울화가 치밀어 제 명에 못 살겠죠.”
그린올리브 구역 건물들은 건축 당시에는 전부 대칭이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적잖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일부는 도로를 침범하기도 했고, 전선은 파괴된 거미줄처럼 뻗어있었다. 심한 대칭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본다면 그 자리에서 뒷덜미를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팀장 장목화는 이러한 토론을 할 때 한 번도 아집이나 자존심 같은 걸 내세운 적이 없었다. 오직 이치만 따질 뿐이었다.
“하긴. 그럼 모종의 방법으로 대칭 강박증의 정도를 낮추거나 파괴 욕구를 통제한 건 아닐까?”
성건우가 조근조근 일렀다.
“가능성은 있죠. 근데 그래선 기껏해야 임시방편밖에 안 돼요. 오랫동안 효과를 이어갈 순 없어요. 팀장님도 잘 알잖아요, 외부 힘에 의지해 대가의 영향을 낮추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정반대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도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적응 기간이 필요해요.”
‘모르는데⋯⋯.’
장목화는 길을 잃었던 이전의 일들을 잊으려 애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차창을 돌아보다가 그녀가 다시 입을 뗐다.
“네 말은 대칭 강박증이 있는 그 사람은 평소에는 모든 게 대칭인 작은 세계 안에서만 머물며 잘 나오지 않을 거란 말이야? 중요한 순간이나 이동해야 할 때만 대가를 억누르고 행동에 나서는 거라고?”
이번엔 제도 선사가 아주 침착하게 답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목화는 계속해서 추리를 이어나갔다.
“그 사람이 우리 목표 곁에 숨어있던 게 아니라면 그 남자는 왜 해가 진 이후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걸까? 내가 전에 했던 추측이 틀렸던 건가? 그는 정말로 빛을 두려워하나?”
잠깐의 침묵이 흐르던 그때, 성건우가 무슨 답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장목화가 눈을 반짝 빛냈다.
“소심증. 그래, 소심증! 선글라스 남자의 대가는 소심증일 가능성이 커!”
그리고 그것이 우딕에게 생긴 이상 현상 중 하나로 반영된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성건우는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건 동료, 혹은 액자로 대표되는 악몽이 일찍이 그에게 경고했었기 때문일까요? 소심한 그 사람은 동료나 악몽의 시선에서 벗어난 상황에서도 감히 그 규칙을 어길 수 없었던 걸까요?”
심령의 복도 급 소심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장목화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말 기억하지? 한 눈은 크고 한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다 파내주겠다고. 이건 아마 선글라스 남자의 동료, 혹은 액자로 대표되는 악몽이 한 경고일 거야. 우딕 스스로 붙인 게 아니라 꿈속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구현된 말인 거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부합하는 가설이었다.
성건우 역시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심증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대칭 강박증은 그의 동료나 악몽에서 기인한 거고, 조광증과 정신착란도 하나는 동료나 악몽에서, 나머지는 우딕의 진짜 충격이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정신병일까요?”
‘잠깐, 내가 왜 얘랑 똑같이 흥분한 거지?’
장목화는 감정을 다스리려 애쓰며 말했다.
“겁이 많고 유약한 사람은 신중한 편이지. 늘 각종 위험을 걱정하고 염려해. 그래서 선글라스 남자는 아직 우리를 못 찾은 거야.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걱정거리가, 배제해야 할 뜻밖의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서인 거지.
수종이와 이두형 선생이 출몰한 구역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그보다 우회적이고 시간이 더 많이 드는 방법을 선택한 거 아닐까?”
현재 상황에 부합하는 대담한 가설이었다. 이제는 신중하게 검증을 해봐야 할 때였다.
성건우는 주머니 속 새로 구입한, 퍼스트 시티 통신망에 연결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럼 소심증은 어느 영역의 대가죠?”
장목화가 미간을 구겼다.
“그건 대칭 강박증처럼 또렷하지는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