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화. 재방문
게네바는 장목화의 생각에 동조했다.
“목표가 우리를 찾기 시작한 건 어제 오전이다. 만약 그에게 숙명통이나 다른 사람의 기억을 열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여태까지 추적을 진행하는 동안 별일이 없었다면 어제저녁이 되기 전에 우리를 특정하고 밤을 타 기습에 나섰을 거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이건 그가 그런 능력이 없거나, 그 배후에 있는 악몽이 수종이와 이두형이 여전히 그 구역에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짝짝짝!
성건우가 게네바를 위한 박수를 보냈다.
이내 용여홍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왜 게네바의 청력은, 아니 전자 신호 수신기는 방해하지 않는 건데?”
성건우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겐은 그런다고 해서 긴장하거나 겁을 먹지 않으니까.”
‘역시 작은 빨강이를 놀리려고 그랬던 거였구나.’
장목화가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뒤이어 게네바가 강조했다.
“나도 그런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다.”
장목화는 성건우들이 또 지능 로봇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 나눌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얼른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용여홍도 할 말을 정리한 후 계속 분석을 이어갔다.
“만약 목표가 숙명통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예지 능력도 있다면 우리가 그 사람 거처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에 앞서 함정을 설치하고 자기 행적을 일부러 드러냈겠죠.
또 타인의 기억을 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그걸 수정할 수도 있다면 건우가 탐문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목표의 동료라 굳게 믿고 후에 기회를 봐서 누군가 자신을 탐문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렸을 거예요.
아니면 저도 모르게 수정된 기억에 기대, 건우한테 아예 실제와는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았을 거고요. 그렇게 하나하나의 답변을 따라 찾아낸 그 건물은 상대가 함정을 설치해 둔 곳일 가능성이 커요.
현재까지 관찰된 결과에 따르면 건우가 탐문한 사람 중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린 사람은 없었어요.
음, 만약 목표에게 방금 제가 말한 그런 능력이 없다면 그건 그가 자기가 폭로될 수 있다는 건 전혀 걱정하지 않고, 또 자기 행적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네요.”
짝짝짝!
이번에 손뼉을 친 건 장목화였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했다.
“훌륭해. 또렷한 사고로 행한 빈틈 없는 분석이었어.”
팀원을 칭찬한 장목화는 다시 정색하고 진지하게 정리했다.
“그 두 상황에 중점적으로 대비해야겠네. 좋아, 이제는 2월 여명 영역의 각성자라는 가설을 분석해보자.”
백새벽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여명 영역 각성자는 꿈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타인의 꿈에서 그가 일찍이 본 광경을 떠올리게 할 수 있어요. 우딕이 그랬죠. 숙명통, 기억 열람과 비슷하지만 환경과 장소의 제약을 받으니 그 두 능력의 하위 호환 버전으로 여기면 될 거예요.”
거기에 장목화가 더 보충했다.
“휴고 사장의 능력을 보면 그들은 후각을 강화할 수도 있어. 뛰어난 후각도 추적에 큰 도움이 돼. 하지만 우리는 위장을 바꿀 때 체취를 바꾸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였었어.”
구조팀은 실제로 체취를 바꾸고자 유통 기한이 지난 향수와 모기 기피제, 냄새가 강한 약초, 벌레, 동물 등을 이용했었다.
이런 식으로 구조팀은 1월 보리부터 7월 쌍태양까지의 분석을 마쳤다.
그때, 성건우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목표의 눈에 있는 결함에 주목한다면 쌍태양이나 사명 영역에 속해 있을 가능성도 작지 않아요. 좀 전에 말한 여명 영역일 수도 있고요.”
쌍태양 영역에는 눈과 시각이 포함되었고, 여명은 시각 이상 방면의 영향과 관련돼 있었다. 또한 전에 성건우가 만난 한 사명 영역 각성자는 대가로 인해 눈동자를 움직일 수 없었다.
용여홍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닐 것 같은데. 만약 눈 크기의 비대칭이 대가면 심령의 복도까지 이른 사람 대가가 겨우 그 정도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리는 없잖아.”
그가 보기에는 최소한 한쪽 눈은 뜰 수 없을 정도고, 한쪽 눈은 감을 수 없을 정도여야만 심령의 복도 급 대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건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내가 말하는 건 시종일관 선글라스를 쓰도록 하는 결함이야.”
“비대칭인 눈을 가리기 위해 쓴 게 아니라는 거야?”
백새벽이 용여홍 대신 반문했다.
그러자 용여홍의 기분은 퍽 좋아졌다.
“단순히 눈 크기를 가리기 위해서라면 도수 없는 다갈색 안경이 더 낫지 않을까? 그거면 저녁에 쓰고 다녀도 눈에 띌 염려가 없잖아.”
성건우는 육식주를 안경 삼아 직접 눈앞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목표가 저녁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이유가 설명되네. 대가는 어쩌면 햇빛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몰라. 심령의 복도에 이른 뒤 대가에 생긴 질적인 변화 때문에 이제는 평범한 등불 빛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러니 가로등이 없는 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밤이든 낮이든 선글라스를 껴야만 하는 것일 터였다.
장목화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문제는 쌍태양 영역 각성자한텐 추적에 도움 되는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거야. 음, 어쩌면 우리가 여태 만난 쌍태양 영역 각성자가 너무 적어서 그럴 수도 있어. 그중에 정상적인 상황에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그 실마리를 바탕으로 추적 대상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중점적으로 대비해야 할 상황이군.”
일찍이 타르난의 시장이었던 게네바가 정리했다.
뒤이어 용여홍이 의견을 제시했다.
“사명 영역은 아닐 거야. 그들이 선보인 능력은 호흡이나 심장 박동 등 생명 유지의 본능에만 관련된 것 같았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11월 깨진 거울까지 토론한 후에야 구조팀은 이 마라톤 같은 브레인스토밍을 마쳤다.
그들은 여태 토론한 것 중 가장 그럴듯하고 또 가장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몇 가지 상황을 골라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긴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가 창밖을 한번 바라보았다.
“우리가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게 하나 더 있어. 우딕이 본 사람은 두 명이야.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우리가 대적해야 할 악몽의 수족은 한 명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이 역시 중앙의 액자를 악몽이라고 쳤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없다.”
게네바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건 그의 분석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밥을 지으려거든 쌀은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딕을 다시 찾아가 보려고.”
“전에 한 그 말만 반복할 텐데요⋯⋯.”
용여홍은 그래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장목화가 웃었다.
“물어봤자 수확은 없겠지. 근데 관찰로는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야가 이식한 몇 가지 사유 말고 전이랑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악몽 속에서 미친 사람이라면 저도 모르게 당시 느꼈던 뭔가를 모방하거나 광증에 감염된 모종의 흔적을 드러낼지도 몰라.”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네요.”
결국 그녀의 말에 설득된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곧장 계획을 세웠다.
“이건 나랑 야가 갈 거야. 작은 빨강이랑 작은 흰둥이는 주위에 빈방을 찾아 숨어서 여기 동정을 몰래 감시해. 이동 중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해. 겐은 여기서 카메라를 통제하며 습격에 대비하고.”
구조팀원들은 빠르게 응했다.
“예, 팀장님!”
* * *
레드울프 구역, 우딕의 집 안.
장목화와 성건우는 재차 로리스를 만났다.
제일 먼저 성건우가 걱정스레 물었다.
“우딕은요?”
뒤이어 장목화가 웃으며 덧붙였다.
“한번 확인하려고 다시 들렀어요. 치료 효과가 약화되지는 않았는지, 더 강화된 치료를 해야 할지 확인하려고요.”
로리스도 매우 고마워했다.
“그렇군요. 우딕은 사냥꾼 길드에 갔어요. 위험도가 낮은, 맡을 수 있을 만한 임무가 있는지 보겠다고요. 곧 돌아올 거예요.”
“그럼 부인은 왜 집에 계시는 거죠?”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우딕은 고급 사냥꾼이기는 하지만 수입 중 대부분을 도움이 필요한 빈곤한 교우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그러니 로리스도 귀족 부인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로리스가 성건우를 보며 웃었다.
“오늘은 일요일이잖아요. 전 공립 학교 교사거든요.”
“아아⋯⋯.”
깨달음을 얻은 성건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는 다시 대화를 본론으로 되돌려놓았다.
“로리스 부인, 저희는 우딕이 지난 며칠간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 꼭 비정상적인 모습이 아닐 수도 있어요. 특정한 행동이나 습관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가끔 그 말을 반복하고, 성격이 거칠어지고, 쉽게 흥분하는 것 말곤⋯⋯.”
기억을 더듬던 로리스는 몇 초 후 거실의 티테이블과 장식장 등 각종 집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보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무엇이든 가지런하게, 좌우대칭으로 놓더라고요.”
“무엇이든 가지런하게, 좌우대칭으로요?”
장목화가 확인하려는 듯 되물었다.
로리스는 다시 티테이블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보세요⋯⋯.”
순간 장목화는 용여홍이 떠올랐다.
‘하, 작은 빨강이가 여기 있었다면 이 말을 듣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도 로리스는 계속해서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었다.
“여기 원래 꽃병 하나랑 휴지를 담은 나무 상자 하나, 물컵 2개가 있었는데, 우딕이 꽃병이랑 나무 상자가 비대칭이라 없애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내 장목화, 성건우는 시선을 돌려 티테이블에 놓인 도자기 물컵 4개를 확인했다. 그중 두 개는 방문객들 때문에 더 가져온 것이었다.
‘대칭 강박증?’
장목화는 슥,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성건우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장목화는 그게 로리스의 말을 긍정하는 건지, 자신의 마음을 읽은 건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로리스는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눈짓을 눈치채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쁘진 않아요. 수시로 물건 배치와 제 옷차림, 머리 스타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좀 피곤하긴 하지만요. 음, 우딕이 뭔가 틀어져 있다고 화를 내진 않거든요. 그냥 조용히 자기가 원하는 대형으로 맞춰놔요. 꿋꿋이요.”
순간 장목화는 한 눈은 크고 한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니 다 파내버리겠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말 역시 대칭 강박증의 표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성건우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거 말고 다른 건요?”
로리스는 지난 이틀간 우딕과 함께 지내면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러던 그때, 잠시 침묵하는가 싶던 그녀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 하나 더 있긴 하네요. 이것도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말해주세요. 정상, 비정상 기준은 치료자가 결정하는 거니까요.”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며 연기를 사랑하는 성건우는 베테랑 정신과 의사 연기도 발군이었다.
로리스 역시 우딕을 치유해준 성건우에게 무척 감사해하는 데다 그의 의술 실력도 상당히 신뢰하는 까닭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전에 비해 겁이 많고 유약해졌어요. 오늘도 사냥꾼 길드에 가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로 한참이나 용기를 불어넣은 후에 나가더라고요.”
의사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종입니다. 간단히 말해 전에 악몽에 대항하다가 얻은 끔찍한 결과가 트라우마를 남긴 거죠. 그래서 더는 전과 같은 자신감이 없는 겁니다. 작은 위험 앞에서도 쉽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강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거예요.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로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어쩐지 지난 이틀간 교우들은 만나러 갈 생각도 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니까 그냥 얌전히 잘 따르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거든요. 음, 우딕은 정리와 배치에 있어서는 고집을 부리지만 그 외의 나머지 부분에는 제 말을 순순히 따르고 있어요.”
그 후로도 번갈아 가며 여러 질문을 한 장목화, 성건우는 우딕에게 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곧장 로리스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혹시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 쪽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