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91화 (591/649)

591화. 격려

장목화는 몸을 틀어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면서도 신경 쓸 수 있겠냐고, 무슨 수로 신경 쓸 거냐고 질책하지도, 어쩔 작정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돌아가서 얘기해보자.”

성건우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용여홍도 다시 정신이 들었다.

‘쟤 또 병 도졌네. 근데 이상하다? 병이 도졌을 때는 우리라고 얘기하는데, 왜 이번엔 나라고 얘기하는 거지?’

순간 의혹에 휩싸였던 용여홍은 이내 성건우가 ‘나’를 강조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했다.

‘이 일을 개인적인 행동으로 여기려는 건가? 우리를 끌고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소리 없이 한숨을 토해낸 용여홍은 백새벽처럼 침묵을 유지했다.

좌우를 둘러보던 게네바 역시 그들처럼 입을 다물었다.

* * *

레드울프 구역, 빌려둔 집으로 돌아온 장목화는 일단 천천히 물 부대를 꺼내 목부터 축였다. 그리고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럴 때는 우리한테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일은 오늘 있었던 일을 회사에 보고하는 거야. 그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처리하고자 한다는 우리 생각을 알리고 회사에서 어떤 답변을 할지, 어떤 도움을 줄지 확인하는 거지.

내 생각에 이사회 이사들이랑 신세계에 들어간 거물들은 그 악몽이 얼마나 위험한지, 억지로 그것에 관여하려 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들이 우리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 일에 어느 정도의 희망이 있다는 거겠지.”

“좋아요.”

용여홍이 성건우보다 앞서 동의를 표했다.

성건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무선 통신기를 켰지만 도착한 전보는 없었다. 이에 그녀는 전에 초고를 작성한 전보를 보낸 뒤 돌아섰다.

“이사들이 초과 근무를 할 리는 없지. 회신이 올지 말지는 내일 다시 확인하자. 음, 마음이 급한 건 알겠어. 어쨌든 연락 시간은 아직 45분 정도 남아있으니까 기다려보자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없다고 중얼대며 초조한 듯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성건우를 위한 것이었다.

무선 통신기를 켠 상태로 진아교에서 제공한 자료를 꺼낸 장목화는 불모지 13호 유적 주위의 도시 방위군 주둔 현황을 진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도 각자 할 일을 찾아 처리하는 사이 성건우는 스피커를 켜려다가 장목화의 눈총에 결국 포기했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던 그때, 전보가 도착했다.

“회사 회신인가? 이렇게 빨리?”

장목화는 상당히 의아해했다. 어쩌면 악몽을 꾸었던 당시에 보낸 전보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던 또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정말로 그 대답이라면 무선 통신기를 켰을 때 바로 도착했을 것이었다. 이사회가 낮을 두고 일부러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답을 작성했을 리는 없었다.

이내 성건우가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사들도 초과 근무를 했나 보네요!”

“꼭 초과 근무를 했다고 볼 순 없어. 그들한테도 교대 제도는 있으니까.”

장목화는 그러한 제도를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순번을 맡은 이사가 일반 직원처럼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근무 시간 외의 시간에 급한 일이 생겼을 경우 가장 먼저 연락을 받는 일을 맡을 뿐이었다.

이야기와 동시에 도착한 전보 코드를 베껴 쓴 장목화는 해독에 들어갔다.

「시도해봐도 됨⋯⋯」

여기까지 해독을 마치고 장목화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사들이 그 선글라스 남자를 겨냥한 작전에 동의했어!”

이는 오늘 순번인 이사가 다른 이사들과 회의한 끝에 구조팀이 악몽의 위협 아래에서도 이 임무를 완수하고 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장목화는 현재 성건우의 수준과 구조팀의 실력을 감안할 때 이사회에서 자신들을 버리는 카드로 쓰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동시에 그녀는 줄곧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해오던 생각도 있었다.

에이돌른의 두 번째 주시와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안에서의 환각을 경험한 이후, 그녀는 구조팀이 한 명, 혹은 여러 달지기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기대에 부응해 어떤 가치를 도출하기 전까지 구조팀은 그렇게 쉽게 버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용여홍은 성건우가 화색이 된 것을 보고 못 참겠다는 듯 딴지를 걸었다.

“어느 이사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건 아닐까요?”

“누가 알겠어?”

장목화가 대충 대꾸했다. 사실 그녀가 아는 이사회와 고위층 제도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야간 당직을 맡은 전신 기사는 긴급 사항이라는 이유로 해당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기 전 예비 문서를 작성해 모든 이사에게 이메일로 보내놓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당직인 이사가 모든 책임을 질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면 이 답신은 분명 여러 이사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일 터였다.

물론 시간을 잠시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급한 용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 정도로 급한 건은 아니었다.

장목화는 전보의 나머지 내용을 마저 해독했다.

「이번 사건에 잠재된 위험은 매우 큼. 수시로 상태를 평가하고 언제든 작전을 중단할 준비를 해야 함. 위기에 빠진다면, 생명 천사 목걸이.」

두서없는 마지막 문장에 용여홍은 미간을 찌푸렸다.

“엥?”

장목화는 피식 웃었다.

“별도의 자원을 제공해주지는 않을 생각인가 보네. 생명 천사 목걸이만 딸랑 언급하다니.”

곁에서 내내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백새벽이 기억을 더듬었다.

“야가 가진 생명 천사 목걸이, 회사에서 손을 본 걸로 기억하는데요.”

성급한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 기원의 바다에 있는 외부 기운의 상태가 악화되다가 뜻밖의 사건을 초래하면, 목걸이 안의 기운을 기원의 바다에 들여서 그걸로 외부자들을 처치하래.”

“참 나, 그건 네 추측일 뿐이잖아!”

그의 말에 반박한 것은 성실한 성건우였다.

회사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한 적이 없었다.

장목화가 웃었다.

“보아하니 적어도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수준의 기운인가 보네. 심지어는 신세계 강자의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러지 않고서야 회사에서 위기에 빠졌을 때 생명 천사 목걸이에 의지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구나.’

용여홍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시작하지?”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작전에 나서고 싶다는 듯 물었다.

솔직한 게네바가 답했다.

“최소한 날이 밝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해.”

“밤에는 왜 안 되는데?”

성실한 성건우가 반문했다.

이번엔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음, 날이 밝으면 차를 하나 빌리고 두 조로 나눠서 움직이자. 위장하고 목표가 갔다던 골목길로 가서 행적을 조사하고 거처를 찾아보는 거야. 그 사이에 각종 정보도 더 파악해서 그 선글라스 남자의 특징도 미리 알아보고.”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진아교와 여명샛별도 그 악몽에 관한 사건을 더 조사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닐 거야. 충분한 확신이 있기를 바라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상태를 갖추기만 하면 그들도 얼마든 동참하려 할 게 분명해.

그들을 배척하지는 말자. 친구가 많아질수록 적은 약해지는 법이잖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고집부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포기해. 너만 다치고 끝날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물론이고 그린올리브에 사는 무고한 수만 명이 피해를 입게 돼.”

이 마지막 말은 성건우를 겨냥한 것이었다.

성건우는 잠깐의 침묵 끝에 답했다.

“알겠어요.”

뒤이어 어느 성건우일지 모를 성건우가 덧붙였다.

“이번에 못 끝내더라도 더 성장한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요!”

* * *

다음 날 오전, 그린올리브 구역.

위장한 장목화, 성건우는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승용차를 몰고 선글라스 남자가 사라졌던 골목길에 들어섰다.

골목길 양쪽으로는 각종 건물이 즐비해 있었다. 도로 폭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구조팀의 지프를 끌고 이 구역을 우회하며 장목화와 성건우의 추적으로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나아가다 차를 세운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길가에 붙은 한 잡화점 사장의 탐문을 지시했다.

성건우는 선글라스를 끼고 잡화점 사장에게로 다가갔다.

“소금 한 봉지 주세요.”

물자가 귀한 그린올리브에서는 잡화점이라도 갖춰놓은 물건이 많지 않았다. 소금은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물건을 받아들고 돈을 건넨 성건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세요. 저는 그저 당신 물건을 팔아줬을 뿐입니다. 가격을 흥정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레드코스트인 사장은 수상쩍게도 곧장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뭘 원하는 겁니까?”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나요?”

성건우는 게네바가 그려낸 목표의 초상을 꺼냈다.

초상화를 보자마자 잡화점 사장이 바로 답했다.

“봤죠. 해가 졌는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늘 이 골목길 끝까지 걸어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더라고요.”

수확을 얻은 성건우는 차로 돌아와 사장의 답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장목화의 관심은 목표의 행적이 아닌 다른 데에 쏠려 있었다.

그녀는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해가 졌는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고? 그럼 굳이 비대칭인 눈 크기를 가리겠다고 선글라스를 낄 이유가 있나?”

비대칭 눈과 저녁에도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행위는 모두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더 두드러지는 것은 후자였다.

그 말을 들은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약 저라면 다갈색의 도수 없는 안경을 썼을 거예요. 그럼 절 보는 사람도 비대칭인 눈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저녁에 안경을 쓰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실한 성건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사람이 바보냐?”

장목화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전방을 가리켰다.

“계속 가자.”

그녀는 빌린 승용차를 골목 끝까지 몰고 간 뒤 그곳에서 성건우에게 또 한 차례의 탐문을 지시했다.

확인 결과,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최근 며칠간 내내 이 골목길에 출몰했고, 그때마다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차로 돌아오자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렇게 새로운 거리에 접어든 후엔 속도를 늦추고 차를 한쪽에 세웠다.

곧이어 그녀가 무전기를 꺼냈다.

“야가 탐문한 두 사람이 뭐 이상 행동 같은 거 보인 건 없어?”

무전기에선 용여홍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없어요, 둘 다 아주 정상적이에요. 각자 일을 할 뿐, 외부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지는 않아요.”

장목화가 칭찬했다.

“좋아. 우리 아직 카메라 몇 대 가지고 있지? 적당한 곳에 설치해 둬. 두 목표 감시를 위해서.”

무전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동 중 성건우는 몇 차례나 차에서 내려 탐문을 했다. 대부분은 아무 소득도 없었지만 몇몇 목격자 덕에 선글라스 남자의 행적 특정에 성공했다.

또 한편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 조는 이 구역의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고 있었다. 감시 대상에는 성건우가 탐문한 상대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거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들까지 다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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