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화. 그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고?’
게네바의 말을 듣자마자 용여홍은 미쳐버린 우딕의 혼잣말을 떠올렸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방금 그 선글라스를 낀 검은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가 우딕이 미치기 전 악몽 속에서 본 사람인 건가? 그가 우리가 전에 방을 빌렸던 그 건물을 방문한 건 악몽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나?
하나하나의 생각은 마치 천둥처럼 용여홍의 마음을 때리고, 그의 머리를 뒤흔들며,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단순히 눈 크기가 비대칭인 사람이라면 그저 우연일 수도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생김새가 자로 잰 듯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다른 비대칭을 가진 사람이라도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상대가 하필 구조팀이 방을 빌려둔 곳에서 나오던 참이었다는 것은 너무 공교로운 일이었다.
종종 지나치게 공교로운 상황은 그 안에 숨겨진 문제를 품고 있었다.
‘진아교는 방금 악몽이 다 사라졌다고 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어. 근데 거기서 나오자마자 우딕이 꿈에서 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마주쳤다고?’
용여홍은 입을 벌린 채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침묵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듯 몸을 튼 보조석의 장목화는 용여홍을 바라보다가 성건우에게로 눈을 돌렸다.
“침착해.”
낮고 부드러운 그녀의 음성이 용여홍 안에서 출렁이던 파도를 잠재웠다.
지프는 전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레드울프 구역으로 향했고 장목화는 여유로운 자세로 후시경을 훑어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금갈색 머리의 남자는 이 거리에서 일찍이 사라진 상태였다.
레드울프 구역에 진입한 지프가 원로원 부근을 우회하자 장목화는 그제야 게네바에게 물었다.
“겐, 목표는 어디로 갔어?”
“우리가 전에 빌렸던 방이 있는 건물에서 나온 뒤에 비스듬히 떨어진 맞은편 골목으로 갔다.”
게네바도 더 이상의 행적은 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해도 도움받을 위성도, 상응하는 보조 장치도, 천안통이나 천이통 등의 능력도 없는 그냥 지능 로봇일 뿐이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용여홍은 끝내 참지 못하고 확인을 구하듯 물었다.
“팀장님, 그가 우딕이 말한 한 눈은 크고 한 눈은 작은 그 사람일까요?”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축하해, 정답이야!”
잔뜩 흥분한 그는 매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커. 일단 그 사람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전에 방을 빌린 그 건물 입구에 있었어. 둘째, 선글라스를 낀 건 두 눈이 대칭이 아니란 특징을 가리기 위한 걸 거야. 우연에 우연이 더해진 상황은 마냥 우연이 아닐 확률이 높지. 난 사람이 우딕을 미치게 한 그 악몽의 수족이 아닐까 싶어.”
그 말을 들은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방금 그 남자가 왼쪽 사람인지 오른쪽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중앙은 아니겠지.”
백새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후로 용여홍이 기세를 몰아 추리에 나섰다.
“그 액자가 악몽을 상징하는 걸까?”
장목화가 대꾸했다.
“음, 그럴지도. 내가 조금 전 너희들에게 침착하라고 한 건 그 구역이 악몽의 주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과격한 반응을 보이면 바로 폭로됐겠지.”
용여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표했다. 심지어는 팀장의 조치가 아주 정확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 이제 어쩌죠?”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아교를 찾아가 그들한테 의지해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악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퍼스트 시티 안에서는 많은 제한을 받고 있잖아. 위험도가 너무 높아. 또 로리스 부인을 통해 우딕의 교우, 그러니까 여명샛별의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볼 수도 있고. 양수걸이를 하는 거야.”
장목화도 진아교가 계속 조사를 이어나갈지 확신할 수 없었다.
“좋아요, 좋아요.”
뒷좌석 왼쪽 자리에서 성건우가 두 손, 두 발을 들고 환영했다.
* * *
도중에 사람을 시켜 로리스 부인에게 말을 전하고 답변을 받으며 약속 장소를 정한 구조팀은 그 외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보다 신중을 기하려는 노력이었다.
오후가 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구조팀은 차를 타고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천천히 향했다.
그러는 동안 또 한 번 휴고 여관을 지나치게 되었다.
용여홍은 고개를 틀어 홀 깊은 곳에 자리한 리셉션을 쳐다봤다. 그곳에 냉담한 표정을 한 백발노인이 서 있었다. 여관의 새 주인인 듯했다.
용여홍은 묵묵히 시선을 거뒀다.
* * *
지프는 여관을 우회해 거리를 가로지른 뒤 진아교 거점에 도착했다.
아주 순조롭게 아파트 1층 왼쪽 끝 방에 이른 구조팀은 다시 또 꿈 파괴자 클리프를 만났다.
낡은 가운을 걸친 클리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또 무슨 일인가?”
한 발 앞으로 나선 장목화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몽의 새로운 단서를 찾았습니다. 그것의 수족 하나를 발견했어요. 혹시 귀 교파에 합작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해서요.”
클리프는 침묵했다.
장목화는 일부러 약간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휴고 사장은 각성자였어요. 진아교에서도 그런 사람은 주교급이었겠죠. 그리고 주교가 사망했다는데 무관심할 교파는 없고요.”
또 한참 침묵하던 클리프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악몽은 이미 사라졌네. 더 건드려봤자 격렬한 반격이 돌아올 거야. 무시무시한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커. 이 구역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어. 그 악몽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충분한 확신이 있는 게 아니면 나서서 분쟁을 일으킬 생각 같은 건 없네. 난 달지기의 품으로 돌아간 휴고 역시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해.”
그의 표현은 매우 완곡했지만 태도는 매우 명확했다.
이내 장목화는 실망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자조하듯 웃었다.
“저희 의욕이 너무 과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 * *
레드울프 구역, 어느 아파트 안.
약속 시간에 맞춰 이곳을 찾은 구조팀은 7층의 왼쪽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것은 로리스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비해 그녀는 얼굴빛도 괜찮고 기분도 훨씬 좋아 보였다.
“어서 오세요.”
갈색 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예쁘장한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흠칫 놀란 장목화는 내뱉듯 물었다.
“여기, 부인과 우딕의 집이었나요?”
“맞아요.”
로리스가 멍하게 답했다. 다소 이상한 질문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캐물었다.
“전에 우딕이 발병한 곳도 여기였고요?”
“그렇죠.”
로리스는 상대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초간 침묵하던 장목화는 뒤돌아 구조팀을 질책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다른 사람 집 문 앞을 막고 있으면 어떡해? 이건 무례한 짓이라고!”
로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뒤쪽, 멀지 않은 곳에 우딕이 서 있었다. 그는 구조팀원들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재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그가 옆쪽 방을 가리켰다.
이곳은 그의 집인 만큼 우딕은 짙은 색 트위드 코트가 아닌 플란넬 셔츠에 검은색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장목화는 우딕이 서재로 향하는 틈을 타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로리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때 이후로 상태가 좀 어떻던가요?”
로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아요. 가끔 거칠어지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부러 절 피해 몰래 책상을 때리거나 최대한 작은 소리로 고함을 질러요. 그래서 주마다 한 번씩은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약도 타와야 해요.”
로리스는 걱정은 돼도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음을 놓은 용여홍은 우딕과 로리스의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 세 개, 거실 하나로 평범하지만, 면적은 꽤 넓은 편이었다.
서재로 쓰는 방은 크지 않았다. 책장 하나와 책꽂이 하나를 제외한다면 책상 하나와 짧은 소파, 의자 몇 개만 겨우 놓을 수 있었다.
우딕이 짧은 소파와 그 옆에 놓인 의자 세 개를 가리켰다.
“앉아. 미안하네, 방이 좁아서.”
“좁기는.”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대꾸했다.
그 사이 자리에 앉은 장목화가 물었다.
“네 교우는 아직 오려면 멀었어?”
“10분 안에 도착할 거야.”
우딕이 침착하게 답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이때,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골든코스트 해역까지는 먼가?”
우딕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주 멀지. 퍼스트 시티 절반과 연합 공업, 골든코스트를 관통해야 하니까. 그 사이사이에 드넓은 무인 구역도 있고.”
우딕과 성건우의 문답은 아주 합리적이고 또 자연스러웠다. 용여홍은 눈앞의 상대가 얼마 전까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로리스가 한 여자를 서재 안으로 안내했다.
짙은 색 사냥복을 입은 그녀는 우딕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 거친 피부를 보면 전형적인 레드리버인이었다.
“줄리아야.”
그녀가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구조팀도 자기소개를 마치자 그녀는 매우 겸손하게 웃었다.
“우딕을 치료해줘서 고마워. 그러지 않았다면 난 로리스를 볼 면목이 없었을 거야.”
그녀가 ‘치료’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성건우는 말할 것도 없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때, 줄리아가 진지한 표정을 드러냈다.
“얼마나 지속되지?”
성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이고, 누군가 그 사실을 뒤집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몇 마디 한담을 이어나가던 그때, 장목화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악몽에 관한 단서를 찾았는데, 혹시 합작할 생각 있어?”
줄리아는 우딕을 힐긋 바라보았다.
“상황은 이미 끝났고, 꿈은 어젯밤에 원상태를 회복했어. 완전한 확신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아. 너희도 굳이 조사를 이어 나갈 필요는 없어. 이런 악몽에 대항하는 건 장기적인 작업이야. 우연이 찾은 단서는 별 의미가 없지.”
장목화는 입을 다물었다.
구조팀은 그 후로 또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을 고했다.
우딕은 그들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인사를 마치고 문이 닫히는 와중, 용여홍은 곁눈으로 우딕의 얼굴에 걸린 일그러진 웃음을 보았다.
뒤이어 그는 멍한 표정으로 낮게 외쳤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용여홍은 느릿하게 시선을 거뒀다.
* * *
지프로 돌아온 구조팀원들은 동시에 침묵에 빠졌다.
한참 후에야 용여홍은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같은 조직의 사람이 죽고 피해를 당했는데 신경도 안 쓰다니!”
장목화, 백새벽, 게네바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돌연 몸을 꼿꼿이 세운 성건우가 느리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난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