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8화 (588/649)

588화. 치료

장목화는 곁눈으로 층계참 그늘에 앉아있는 우딕의 아내 로리스를 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양팔 가운데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로리스 역시 인기척을 느끼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빠르게 움직인 탓에 살짝 휘청이기도 했다. 하마터면 중심을 잃을 뻔한 상황이었다.

“다 끝났나요?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나요?”

눈이 빨개진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 말이 단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심층적인 조사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이때 성건우가 돌연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제가 우딕의 병증을 완화 시킬 수 있는데, 한번 시도해보시겠습니까?”

장목화는 의아한 눈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표정도, 눈빛도 매우 엄숙했다.

“정말인가요?”

로리스는 살짝 감격했는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성건우는 바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정신병을 치료한 경험도 많고 독특한 방법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딕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 방법을 쓴다 해도 여전히 때때로 이상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죠.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부인께서 기억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돌아올 겁니다.”

만약 성건우가 우딕을 완전히 치료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면 로리스도 그건 거짓말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병증을 살짝 완화해줄 수 있다는 그 말에 로리스는 저도 모르게 희망에 부풀었다.

“그거야 상관없어요. 한번 해볼게요.”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성건우는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며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치료 방법은 약간 특이합니다. 일단 우딕이 어떤 사람인지 상세히 말씀해주셔야 해요. 설명이 자세할수록 병증이 완화될 가능성은 커집니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조금이나마 갈피를 잡은 장목화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드러났다.

로리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성건우를 바라보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우딕의 평소 습관으로 깨우려는 건가요? 좋아요, 알려드릴게요!”

그러다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에 가는 게 어떨까요?”

* * *

정신병원, 한 회의실 안.

긴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로리스는 한 손으론 반대편 팔꿈치를 받치고 한 손으론 주먹을 쥔 채 입가에 댔다. 그렇게 그녀는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제가 우딕을 알게 된 지는 아직 2년이 안 됐어요.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됐죠. 우딕은 고급 사냥꾼이고, 저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정식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우딕이 굉장히 거만하거나 거칠고 경솔할 줄 알았어요. 근데 실제로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구조팀은 조용히 경청하며 입가에 댔던 손을 귀로 옮겨 머리를 정리하는 로리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말투도 몰라보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우딕은 아주 예의 있는 사람이었어요. 억지로 꾸며 갖추려는 예의가 아니라 사람을 진정으로 존중해서 나오는 예의였죠.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풍부하고, 강한 사람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고, 침착하고, 여유롭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던 모든 일을 해결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우딕을 믿고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되게 자상하기도 하거든요. 말이 사근사근하진 않는데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전부 다 기억하고 언제나 모든 걸 제 마음에 쏙 들게 준비해줬어요.

만약 우딕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전 우딕이 10년 이상 유적 사냥꾼 일을 했다는 것도, 황야에서 오랫동안 유랑하며 강도도 적잖게 죽였었다는 것도 못 믿었을 거예요.

우딕은 자기가 꿈 수호자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자기가 온 인류의 존속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고 믿었거든요.

아이는 또 얼마나 좋아했는지, 내년쯤에는 아이를 갖기로 계획하고 있었어요. 퍼스트 시티 주민이니 출산 보조금도 받을 수 있었겠죠.

우딕은 자극적인 냄새를 아주 싫어했어요. 특히 신 냄새가 나는 건 더더욱요. 또 우딕은 책임감이 아주 강해서 단 한 번도 핑계를 댄 적이 없었어요.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더는 위험한 임무는 맡지 않겠다고, 위험한 장소에 가지 않겠다고 저한테 분명히 약속한 뒤부터는 정말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로리스의 눈빛은 약간 공허해졌고 얼굴엔 보일 듯 말듯한 웃음이 어렸다.

성건우는 앞에 검은색 부드러운 가죽 커버 노트를 펼쳐놓고 만년필로 로리스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가, 그녀가 말을 마치자 질문을 던졌다.

“우딕과 교제했을 당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로리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회상에 잠겼다.

“우딕은 고급 사냥꾼이기는 했지만 그간 모아둔 돈과 물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 사람 교파엔 어려운 신도들이 많았고, 우딕은 그 사람들을 돕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결혼 전, 우딕은 제가 그 부분에 신경을 쓸까 걱정스러워했어요. 심지어는 저를 그 사람들한테 데려가 그 사람들 삶이 어떤지 직접 보여도 줬고요.

저희 부모님은 퍼스트 시티에서 비교적 괜찮은 직업을 갖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주위 이웃 중에 무심병과 전란, 강도,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시로 나타났고, 그것 때문에 빈곤해지는 가정도 많았으니까요.

어렸을 적 함께 놀던 또래 친구 중에도 그런 이유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도 몇몇 있고요.

그날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우딕에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지지해주고 싶다고,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 가정과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지만 않으면 난 당신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울 수도 있다고 말했었죠.

그 말을 들은 우딕은 너무 감격해서 저를 꼭 끌어안았어요. 온몸이 바스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로리스가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동안 구조팀의 머릿속에서도 우딕의 이미지가 점점 또렷하고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기록을 마친 성건우가 로리스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 진술해주신 이 내용은 앞으로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 당장 시도해보죠. 물론 부인께서는 피해계셔야 합니다. 우딕을 자극해서는 안 되니까요.”

“알겠어요.”

로리스는 기대감이 어린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구조팀은 3층에 자리한 우딕의 병실 앞으로 돌아갔다.

이 미친 고급 사냥꾼은 바깥의 동정을 느끼고 재차 철문 앞으로 달려오더니 크지 않은 구멍 너머로 고함을 질러댔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탕탕탕!

그가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우딕이 조금 진정하기를 기다리던 성건우는 짙어진 눈동자로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우딕, 고급 사냥꾼이야. 넌 아주 예의 있어. 꾸며낸 표면적인 예의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진정한 존중으로부터 비롯되는 그런 예의⋯⋯.

넌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풍부하고, 강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고,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던 일도 모두 다 해결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느새 널 믿고 의지하게 돼.”

그는 조금 전 로리스가 한 말을 거의 그대로 들려주었다. 별도의 설명을 약간 더 덧붙이고 인칭 대명사를 살짝 바꿨을 뿐이었다.

성건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완전한 안정을 찾은 우딕은 약간 멍한 표정으로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용여홍, 백새벽은 그제야 성건우가 말한 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유 이식!

장목화는 어떠한 저지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너는 여명샛별의 꿈 수호자야. 넌 꿈속에서 위험에 대항하며 인류를 수호하지⋯⋯. 넌 아내를 꼭 끌어안는 방식으로 아내에 대한 감격을 표현해⋯⋯. 너와 부인은 내년에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어⋯⋯. 넌 가족과 친구, 무고한 사람이 네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이상 절대 그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능력을 쓰려고 하지도 않아⋯⋯.”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가 결국 그 많은 내용을 끝까지 읊었다.

그 사이, 철문 안에 자리한 우딕의 눈동자는 점차 맑아졌고, 종국엔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골칫거리가 돼서 미안하다. 이런 상태로 너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위드 시티를 떠난 이래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거든.”

이를 보고 용여홍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수가, 우딕이 우리를 기억했어? 미치기는 했지만, 기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거야?’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가득하잖아. 미안할 거 없어.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네 아내를 위로하는 거야. 너 때문에 온종일 마음고생 하며 계속해서 널 치료할 방법만 찾고 있었으니까.”

우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 대해선 너무 미안할 따름이야.”

“알면 됐어.”

성건우는 몸을 틀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로리스 부인, 와보셔도 됩니다!”

계단에서는 단 몇 초 만에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짙은 색 치마바지를 입은 로리스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녀도 이젠 철문 뒤, 훨씬 온화한 상태의 우딕을 발견했다.

“아아, 여보, 정말 괜찮은 거야?”

로리스는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그녀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우딕이 부드럽게 답했다.

“미안, 걱정하게 해서.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악몽 앞에서도 고집 피우지 않겠어. 이제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로리스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괜찮아, 괜찮아. 당신만 무사하다면! 나, 난 얼른 가서 의사 선생님을 데려올게. 당신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지!”

이 모든 게 꿈일까, 돌아서면 깨어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로리스는 황급히 의사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녀의 뒷모습과 우딕을 돌아보던 용여홍은 철문 뒤의 고급 사냥꾼이 정말로 정신을 차린 것인지 의심스러웠던 나머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꿈에서 대체 뭘 본 거야?”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고 눈빛은 공허해진 우딕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그는 이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한 후 병실 문 밖에 자리한 구조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이상한 표정을 거둔 우딕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어.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아주 예의 바르고 침착한 태도였다.

그런 그를 멍하니 보고 있던 용여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복도의 바람이 한층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때, 성건우가 우딕에게 호응했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양팔을 벌리고 몸을 살짝 젖혀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그 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중간에 의사를 불러온 로리스와 마주쳤지만 성건우는 멈추지 않았다.

* * *

지프 안.

뒷좌석 왼쪽 자리에 앉은 성건우는 아주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후로 용여홍이 하늘의 색을 살피며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죠?”

장목화는 일찍이 계획을 세워뒀던 듯 덤덤하게 답했다.

“골든애플 구역과 레드울프 구역을 몇 바퀴 돌아본 다음 수종이가 묵었던 그곳에 가서 새로운 안전 가옥을 빌리자. 오늘 밤에는 그린올리브 구역에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이걸로 악몽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네.”

“좋아요.”

백새벽도 장목화의 계획이 안전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지프가 어느 정도 달려가던 그때, 게네바가 성건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실 그렇게 급하게 굴 필요는 없어. 정보를 조금 더 모은 뒤 나를 통해 우딕의 행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돼. 그 후 다시 입력하면 대부분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 거야.”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는 불쑥 웃음을 터뜨리더니 재차 두 팔을 벌리고 몸을 젖혔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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