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화. 소통
뒤이어 악몽과 관련한 상황 설명까지 마친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우딕의 갑작스러운 발병이 그 악몽과 관련돼있지는 않을까요?”
몇 차례의 표정 변화를 보이던 로리스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저희 남편의 교우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교우라고요?”
성건우가 예리하게 그 단어를 짚었다.
이내 로리스는 느릿하게 숨을 토해냈다.
“남편은 2월의 달지기 여명을 믿었어요. 그 달지기를 믿는 교파에도 가입했고요. 그들은 꿈이 위험하다고 주장했어요. 악몽은 사람의 영혼을 삼켜 무심병과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꿈을 순찰하며 인류를 위해 싸울 수호자가 필요하다고도 했고요. 남편은, 남편은 어젯밤 악몽과 싸우다가 다친 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진 악몽과 남편의 광기를 연관 짓지 못하던 로리스는 생각하면 할수록 그 둘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명 샛별의 이념⋯⋯.’
양범석에게 처음으로 해당 내용을 들었던 장목화는 그 후 반고 바이오로부터 관련 정보를 받아본 적도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여명 샛별의 꿈 수호자들이 자신의 신분에 강한 자부심을 느낄 거라고, 그러니 외부인이 아닌 부모님과 배우자, 자식에게는 기꺼이 그 사실을 알렸으리라 추측하기도 했다.
로리스가 감정을 추스르기 전, 장목화가 재차 부탁했다.
“부인, 우딕을 만나게 해주세요. 우딕의 말과 행동에 다시금 회복될 단서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몇 초간 망설이던 로리스는 이를 악문 채 답했다.
“알았어요. 의사와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 * *
7, 8분 후, 로리스가 구조팀을 이끌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복도 끝에는 흰 가운에 파란 마스크를 쓴 의사가 한 명 서 있었다.
의사는 레드리버어로 이야기했다.
“공격성이 매우 강한 환자입니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격성? 우딕이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서야 당신들이 그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리 없잖아.’
장목화가 막 이런 생각을 떠올린 그때였다.
쾅! 쾅! 쾅!
철문 안쪽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로 잔뜩 흥분한 우딕의 목소리도 뒤따랐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내보내 줘! 내보내 줘!”
우딕이 철문을 마구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쓰는 언어는 그에게 더 익숙하고 본능적인 레드리버어였다.
흰 가운에 파란 마스크를 쓴 의사가 손을 펼쳐 보였다.
“보세요. 제 말대로죠? 말씀 나누세요. 문제가 있거든 사무실로 와서 절 찾으시고요.”
그는 더 이상의 당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방문객들에게 열쇠를 주지 않으면 철문을 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로리스는 눈가를 훔쳐내며 구조팀을 쳐다보았다.
“우딕한테 묻고 싶은 걸 물어보세요. 필요하다면 저한테 자리를 피해달라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음, 그럼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곧이어 짙은 색 치마바지를 입은 로리스가 층계참으로 꺾어 들어가자, 장목화는 그제야 성건우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가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 확인해봐.”
엄숙한 표정의 성건우는 우딕이 갇힌 방으로 다가갔다.
사람 키만 한 남청색 철문엔 크지 않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고 구멍 앞뒤에는 격리를 위한 금속 바가 용접돼 있었다.
그 구멍으로 다가오는 성건우를 목격한 우딕은 더욱 흥분한 듯 양손을 뻗어 금속 바를 움켜쥐고 격하게 흔들었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잘 생겼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어도 단정한 편인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눈앞의 상대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키려는 듯 험악한 인상이었다.
성건우는 극도로 약하지만 겉으로 티는 안 나는 상대의 코를 힐긋 바라본 뒤 정색을 하고 물었다.
“우리를 기억해?”
“내보내 줘! 내보내 줘!”
탕탕탕!
우딕은 미친 듯 철문을 때렸다. 이곳엔 그저 소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때, 성건우는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예의 바르게 사과부터 했다.
“아, 미안. 위장을 하고 있었지, 참. 우리를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해. 서시월과 장우병을 기억해?”
험악한 눈으로 그를 훑어보던 우딕의 표정이 약간 멍해졌다. 그러다 그가 다시 흥분한 듯 외쳤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장목화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 우딕은 정말로 미쳐버린 상태였다. 만약 이게 그의 연기라면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한숨을 내뱉던 성건우가 말했다.
“봐봐. 우리는 함께 가짜 신부에 대항했어. 힘을 합쳐 위드 시티의 귀족들도 제압했지. 그러니까⋯⋯.”
심령의 복도 급에 이른 성건우는 더 이상 이렇게 엄격한 양식에 맞춰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기억하는 한, 매우 의식 있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안정을 찾은 우딕은 문에 난 구멍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었다. 금속 바에 얼굴이 눌릴 정도였다.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는 잔뜩 낮춘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친구라면 날 여기서 내보내 줘!”
탕탕탕!
말을 잇는 도중 우딕은 재차 흥분했고, 철문도 미친 듯이 두드렸다.
얌전히 그를 지켜보던 성건우는 상대가 조용해진 후에야 물었다.
“악몽에서 뭘 발견한 거야?”
우딕의 일그러진 표정이 풀어지며 약간 멍한 빛과 혼란이 드러났다.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다 파내주마.”
그 파란 눈동자는 공허하기만 했고, 입에선 계속 같은 말만 반복되었다.
성건우는 얌전히 그를 지켜보다가 돌연 양팔을 펼쳐 고개를 살짝 젖혔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뒤이어 돌아선 그가 장목화에게 말했다.
“제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있어요. 추리 광대 비슷한 능력도 영향을 받고요. 근데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순 없어요.”
성건우는 조금 전 추리 광대에 효과가 있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복도에 다른 존재가 없음을 확인했다. 부근 병실도 비어있었다.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혼잣말하는 소리, 간헐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 크게 울고 웃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철문 뒤의 우딕을 응시하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계속 끊임없이 반복하는 저 문장이 악몽에서 본인 능력으로 파악한 정보가 아닐까?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작은 액자⋯⋯. 한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 넌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걸 다 파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앞 문장은 대칭적인 구조지만, 뒤 문장은 비대칭적이야. 강박증의 일종인가? 근데 우딕의 대가는 그게 아니었는데. 게다가 이렇게 흥분해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 난리를 피우면서도 능력을 쓰진 않아. 그 이유는 뭐지?”
팀장의 말에 약간 혼란스러워진 용여홍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팀장님, 처음 말씀하신 거랑 그 뒷말은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데요.”
‘설마 우딕이 파악해낸 정보가 강박증이라는 건가?’
장목화가 쓰게 웃었다.
“첫 번째 문장은 우딕이 한 말의 의미를 추측한 거고, 그 뒤의 문장들은 그 안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정보를 분석한 거야.”
생각에 잠겨있던 백새벽이 말했다.
“어쩌면 우딕은 자기가 미치기 전에 봤던 악몽 속 광경을 단순 묘사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왼쪽에 한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 중앙에는 액자가 있었고 그중 한 사람 눈 크기가 비대칭적이었던 거죠.
좋은 사람이 아니고, 다 파내고 싶다는 건 우딕이 미친 후에 붙인 말 같아요. 배제해야 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정보인 거죠.”
“일리 있어. 우딕이 미친 후 강박증까지 얻게 된 건가? 전에 접촉했을 때 그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실소와 함께 고개를 젓는 장목화의 얼굴엔 씁쓸한 감정이 묻어났다.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장님이 방금 말씀하신 그 문제예요. 미친 각성자를 이렇게 쉽게 가둘 순 없어요. 혹시 우딕은 무의식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는 거 아닐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리던 우딕이 다시 또 격노한 듯 금속 바를 마구 흔들며 고함을 질러댔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장목화는 잠시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숙명주를 다 써버렸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네. 내가 말인 영역 능력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안타깝고.”
안 그럼 당장 우딕의 기억을 뒤져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짧은 침묵 이후, 용여홍이 물었다.
“이제 어쩌죠?”
다시 침착함을 되찾은 장목화가 답했다.
“우딕의 배후에는 여명 샛별이 있어. 그쪽은 분명 조사를 할 거야. 우리가 여기 끼어서 우딕을 위한 복수를 하려 한다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미치는 것을 막으려 한다면 진아교와 합작하는 게 제일 좋아.”
그들과 진아교 사이엔 합작의 기반이 있었지만 여명 샛별과는 아무 접점도 없었다. 그들과 우딕의 합작은 사냥꾼 길드에 바탕을 둔 것일 뿐이었다.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팀장의 제안에 응했다.
그리고 성건우는 계단 근처의 의사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우딕의 치료가 가능한 건지 묻고 싶어요.”
“좋아.”
장목화도 저지하지 않았다.
* * *
언제나 행동력 강한 성건우는 곧장 의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 조금 전 봤던 의사를 찾았다.
상대는 이미 마스크를 벗고 약간 홀쭉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건우의 질문을 들은 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환자 상황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그저 감정이 격하고 거칠면서 폭력적인 경향이 있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뿐이었다면 간단했을 문제입니다. 약을 통해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환자는 이미 환상을 현실로 여기며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끊임없이 늘어놓아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도 없죠.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치료될지는 조금 더 장기적으로 관찰하며 계속해서 방안을 조정해야 알 수 있을 겁니다.”
‘치료하기 어렵다는 뜻 아냐?’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쉬랜드에서 짧은 시간 안에 치료될 수 없는 사람은 가정 형편이 끝내주게 좋은 게 아닌 이상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버려지기 마련이었다.
성건우는 더 이상의 말을 늘어놓지 않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구조팀은 의사 사무실을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