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6화 (586/649)

586화. 도움 찾기

성건우의 안내를 따라 옆문으로 여관을 빠져나온 구조팀은 골목길 하나를 가로질러 한 아파트 앞에 이르렀다.

겨우 5층에 불과한 이 아파트는 겉보기에는 매우 평범했다.

아파트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건우는 흰색, 파란색이 어우러진 확성기를 꺼내 들더니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에 대고 묵직하게 외쳤다.

“너희는 이미 포위됐다!”

“…….”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목소리를 죽였다.

“아니, 저희는 휴고 사장 친구입니다. 휴고한테 문제가 생겼어요.”

곧 계단 아래 어둠 속에서 평범한 옷차림의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주먹 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진아는 영구히 존재하리!”

지금의 성건우는 그를 흉내 내지 않았다. 휴고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여태 그 슬픔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한 듯했다.

이내 계단으로 1층까지 올라온 진아교 교도가 구조팀에게 말했다.

“따라오시죠.”

목구멍에 사포를 채운 듯 거친 목소리였다.

가장 먼저 성건우가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

구조팀은 아파트 왼쪽 끝 방에서 비쩍 마른 반백의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대량의 흰머리가 섞인 짙은 갈색 머리칼의 소유자로, 입고 있는 검은 가운 곳곳에 기운 흔적이 가득했다. 눈에 띄는 특징은 그 정도뿐이었다. 전체적으로 외형도, 분위기도 큰 특징 없이 평범한 사람이었다.

“휴고에게 일이 생겼다고? 아, 클리프라고 부르게. 꿈 파괴자라네.”

클리프는 일단 질문부터 한 후에야 자기소개를 했다.

진아교의 위계를 잘 모르는 장목화는 고개만 살짝 끄덕여 인사했다.

이후 방문이 닫히자 그제야 그녀가 조금 전 클리프의 질문에 답했다.

“휴고 사장이 죽었습니다.”

클리프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가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사인은?”

“질식사입니다. 얼굴에 반투명한 파란색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습니다. 사망 시각은 어젯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로 추정되며 현장에 타인이 남긴 흔적은 없었습니다.”

장목화는 아무런 군더더기도 없이 설명을 마쳤다.

클리프도 장목화의 진술을 끊지 않고 충분히 다 들은 후에 대답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우리가 조사해보도록 하지. 알려줘서 고맙군.”

“조사하실 때 혹시 저희 존재를 숨겨주실 수 있을까요? 아시겠지만, 저희는 지금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서요.”

클리프는 흔쾌히 약속했다.

“그러지. 휴고에게 부탁한 자료를 받으러 갔다가 발견한 건가?”

이번엔 성급한 성건우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맞습니다. 휴고의 방 서랍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그대로 있더라고요.”

장목화는 전술 배낭을 풀어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확인해보시죠. 혹시 빠진 부분이나 늘어난 부분이 있는지요.”

클리프는 잠시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칭찬했다.

“아주 신중하군.”

뒤이어 서류를 받아 든 그가 한번 자세히 살핀 뒤에 말했다.

“아무 이상도 없어.”

장목화는 자료를 돌려받으며 감정이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늘 저희가 휴고 사장을 찾아간 건 그린올리브에서 발생한 집단 꿈 사건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근데 이미 저희가 부탁한 자료를 마련했을지는 몰랐습니다. 생각보다 효율이 굉장히 높네요. 24시간도 채 안 됐는데.”

잠시 침묵하던 클리프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는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가서 그 비밀 실험실을 탐색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네.”

장목화가 겸손하게 말했다.

“때가 되면 합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클리프는 곧 최근의 이상 현상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 집단 꿈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었어. 문제의 근원을 찾는 중이지. 만만치 않은 사건이네. 어쩌면 조사자들에게 아주 큰 위험이 생길지 몰라.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장목화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

* * *

아파트를 나와 지프에 오른 후,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진아교가 이미 집단 꿈의 근원을 조사하고 있었다면, 휴고 사장의 죽음은 그와 관련돼있을지도⋯⋯.”

휴고의 사망 시각과 어젯밤 악몽을 꾼 시간은 매우 비슷했다. 이런 의심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클리프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래.”

동료들의 대화를 듣던 용여홍은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악몽을 꾼 다른 사람들이 두통, 구역감, 피로감, 불면증 등의 후유증만 겪는 데 반해, 기이하게도 휴고만 유일하게 질식사한 건 휴고가 꿈 방면의 능력을 각성했기 때문 아닐까요?”

대부분은 그런 악몽을 효율적으로 조사할 방법이 없지만 휴고는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은 자세히 고민해보다가 용여홍의 추측에 동의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와 장목화가 동시에 외쳤다.

“젠장!”

“안돼!”

놀란 용여홍이 떨리는 마음을 안고 물었다.

“……왜?”

몸을 반쯤 튼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딕한테도 꿈 방면의 각성자 능력이 있잖아.”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성건우는 옆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구조팀에서 우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건 성건우, 장목화뿐이었다. 둘에 비해 우딕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는 백새벽은 조용히 앞유리창 너머 길을 내다보며 말했다.

“가서 확인해보고 기회 봐서 경고할까?”

“좋아!”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떻게 확인하려고?”

용여홍은 지금 수배범 신분을 어떻게 벗어날 것이냐 묻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전형적인 수법을 쓰는 거야. 야의 사고 유도로 한 유적 사냥꾼한테 길드에 친구가 우딕을 찾는다는 의뢰를 하게 하는 거지. 그럼 다른 유적 사냥꾼들이 우리 대신 우딕의 현재 상황이랑 위치를 알아봐 줄 거야.”

구조팀은 전에 질서의 손에 수배령이 내려졌을 당시 이런 방법으로 퍼스트 시티에서의 각종 일을 처리했었다.

“문제없죠.”

성급한 성건우가 양손을 비볐다.

* * *

준비를 마친 구조팀은 사냥꾼 길드 근처 어느 거리로 향한 뒤 사람들의 이목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지프를 세웠다.

그리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성건우의 새 친구가 나타났다.

나이가 들어 군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유적 사냥꾼 노릇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퍼스트 시티의 한 주민이었다.

이름은 어튼으로,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머리색은 검었으며 머리칼 길이는 짧았다. 또 파란색 눈 주위엔 미세하게 잡힌 주름도 보였다.

어튼은 직업 정신을 발휘해 일단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이쪽에 신경 쓰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부터 확인한 뒤, 그제야 구조팀의 지프로 다가왔다.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밖으로 내민 성건우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프 근처에 이른 어튼은 허리를 굽히고 잔뜩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찾는다던 그 고급 사냥꾼에 대한 소식이 들어왔어.”

그런데 갑자기 말을 멈춘 그가 미소를 지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성건우는 조용히 5오레이짜리 지폐 세 장을 꺼냈다.

“우리 친구 아니야?”

구조팀의 이번 임무는 불모지 13호 유적에 있는 호움 난임 센터 탐색이었다.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반고 바이오를 떠날 당시 장목화는 1천 오레이 현금도 물자로 신청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건 애쉬랜드에서 가장 휴대하기 쉬운 물자 중 하나였다.

지폐를 받아 든 어튼은 햇빛에 지폐를 비춰 진위까지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우리 애쉬랜드인 사이에는 친형제 간에도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잖아. 위험을 무릅쓴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너희들 대신 임무를 의뢰하고 정보를 확인했으니 수고비 정도는 받아야지!”

성건우가 준 15오레이 중 10오레이는 어튼이 임무 보수로 낸 돈이었다. 즉, 그가 구조팀 대신 일해주고 번 돈은 고작 5오레이뿐이란 것이었다.

물론 구조팀이 비양심적이었다면 어튼은 사고 유도 아래 돈을 벌기는커녕 그가 낸 10오레이도 보전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성건우도 더는 입씨름하지 않고 진지하게 물었다.

“우딕은 어때? 지금 어딨대?”

어튼은 무의식적으로 좌우를 몇 번 살피면서 다시금 이곳에 신경 쓰는 이가 아무도 없음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곤 더욱더 목소리를 낮췄다.

“우딕이라는 고급 사냥꾼, 그 사람 지금 미쳤어.”

“미쳤다고?”

장목화의 눈이 가늘어짐과 동시에 성건우의 얼굴에는 억누르지 못한 노기가 차올랐다.

어튼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어제 새벽에 있던 일인가 봐. 그 사람을 발견한 가족이 레드리버 정신병원에 데려갔대.”

레드리버 정신병원은 레드울프 구역에 있는, 퍼스트 시티의 유일한 전문 정신병원이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몇몇 종합 병원에 딸린 정신과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 정말로 문제가 생긴 모양이네. 피해자가 또 한 명 나타났다니.’

용여홍은 동정심과 측은함을 느꼈다. 우딕은 용여홍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접촉한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성건우를 힐긋 보며 마음을 다잡은 장목화가 다시 어튼에게 물었다.

“구체적인 증상은?”

어튼이 솔직하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 마구 소리치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한대. 그 사람 친구라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오전에 병문안을 갔었대. 구체적인 걸 알고 싶으면 꼭 시간 맞춰 가야 해. 정신병원 면회 시간은 오후 6시까지거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고생했어.”

“고마워.”

성건우는 무기력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튼이 멀어진 후, 장목화는 몸을 반쯤 틀어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휴고 사장은 정말로 악몽 때문에 죽은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없어.”

결국 그와 같은 꿈 영역의 각성자 우딕도 같은 날 미쳐버렸다.

그때, 동료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 성급한 성건우가 묵직하게 말했다.

“오후에 우딕을 만나러 가봐야겠어요. 그 악몽의 진상을 밝혀내야죠!”

장목화는 지인의 비극을 경험하는 건 애쉬랜드의 일상이라고 말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 * *

오후 2시, 레드리버 정신병원 홀.

구조팀은 이곳에서 우딕의 아내 로리스를 만났다. 그녀와 우딕이 결혼한 지는 1년이 채 안 되었다고 했다.

“저희는 우딕의 친구입니다.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왔어요.”

장목화는 미쳤다는 말을 아프다는 말로 완곡하게 표현해 예의를 지켰다.

23, 4살 정도로 보이는 로리스의 머리는 갈색이었으며, 초록색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거렸다. 키는 중간 정도이며, 현재 움직이기 편한 짙은 색 치마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장목화는 그녀의 가정 형편이 나쁘지 않았으리라 추측했다. 적어도 15, 6살에 시집을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었다.

로리스의 말투와 행동 역시 장목화의 그런 추측을 뒷받침했다.

“우딕은 지금 누굴 만나기 좋은 상태가 아니에요. 병세가 좀 안정되면 그때 다시 오시죠.”

성건우가 입을 열기 전 장목화가 다시금 나섰다.

“저희도 유적 사냥꾼입니다. 우딕의 너무 갑작스러운 병에는 뭔가 비밀스러운 원인이 있을 거예요. 만약 우딕에게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면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강타하는 그 말에 로리스의 녹색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약간 흐느끼기 시작했다.

“절대, 절대 못 믿으실 거예요.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그렇게나 믿음직했던 남편이 소통 불가능할 정도의 광기와 조급증에 휩싸여 있었어요. 그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평소와 다른 건 하나도 없었어⋯⋯. 지나치게 위험한 곳에 가는 임무도 안 맡은 지 한참 됐고요.”

장목화는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한테 짚이는 바가 있어요. 어제 사냥꾼 길드 홀에서 우딕을 봤습니다. 우딕은 집단 꿈에 관련한 임무를 맡을 계획이었죠.”

우딕이 끝내 그 임무를 맡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장목화는 그냥 ‘계획’이었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