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5화 (585/649)

585화. 후속

지프가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남회색 제복을 입은 치안요원 몇 명이 진료소에서 나와 백새벽을 향해 차를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용여홍은 황급히 막 제대로 앉은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사고 유도를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똑똑똑-

가까이 다가온 치안요원이 허리를 굽혀 보조석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위장한 장목화는 버튼을 눌러 차창을 내리며 약간 불안한 척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치안요원이 엄숙하게 물었다.

“혹시 어젯밤 악몽을 꾸시지 않았습니까? 꿨다면 어떤 악몽이었습니까?”

장목화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신의 사냥꾼 배지를 꺼내 흔들었다.

“요원님, 저희는 어제 길드에서 집단 꿈에 관한 임무를 확인했습니다.”

해당 임무를 보기만 했을 뿐 접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악몽을 꾸고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은 상대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치안요원은 구조팀이 임무를 맡고 오늘 조사하러 온 유적 사냥꾼 팀이며, 어젯밤은 여기 머물지 않아 악몽은 꾸지 않았으리라 여겼다.

곧이어 치안요원이 실망감을 그대로 표하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쓸데없는 말썽은 피우지 마시고 조심히 다니세요!”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무덤덤하게 손을 들어 예를 취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오랫동안 퍼스트 시티와 주위 구역을 휘젓고 돌아다닌 닳고 닳은 사냥꾼이었다.

곧 그녀가 차창을 다시 올리자, 백새벽은 핸들을 돌리며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 * *

이동 중 구조팀은 연기에 사실감을 더하고자 수시로 차를 멈추고 행인에게 길을 묻거나 악몽을 꾸지는 않았는지, 어떤 악몽이었는지를 물었다.

겨우 다섯 명에게 물었을 뿐이었지만 악몽을 꾸었다는 이는 무려 셋이나 됐고 그 내용도 거의 일치했다.

황야나 버려진 건물 안, 어둠에 숨어 피 칠갑 된 창백한 양손을 번갈아 뻗으며 기어 오는 괴물에 쫓기다 끝내 지쳐 쓰러지거나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끔찍한 추위에 뒤덮인 후에 깨어났다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는 각기 정도는 달라도 두통과 현기증을 앓게 되었다고도 했다.

“팀장님 추측이 맞는 것 같네요.”

용여홍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장목화는 창밖을 내다보다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악몽의 영향이 이쯤에서 멈추면 좋겠는데⋯⋯.”

그녀는 그 영향이 점점 심해지다가 끝내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까 봐 염려스러웠다.

지프도 이젠 휴고 여관이 자리한 황토색 3층 건물 밖에 도착했다.

이 구역의 악몽을 조사하러 온 유적 사냥꾼 팀에게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탐문을 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행위였다.

성건우는 홀에 막 들어서자마자 아쉬운 듯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도 없네요.”

여관의 사장인 휴고가 없다는 뜻이었다.

1층에는 여러 방이 분산돼 있고, 그 안에는 몇몇 손님이 묵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인간 의식을 감지할 수 있는 성건우라도 홀에 들어와 상황을 제대로 확인한 뒤에나 휴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장목화는 잔뜩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아교에 갔나?”

이제 그녀는 자유롭게 목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더는 작게 말한다고 해놓고도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 리셉션은 텅 비었고, 그 뒤에 연결된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백새벽이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여관에 묵는 두 손님이 입구로 들어왔다. 그들은 홀을 가로지르는 한편 이마를 긁적이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황야를 떠나면 편하게 잠 좀 잘 수 있을까 했더니 악몽을 꿨지 뭐야. 깜짝 놀라 깨어난 후에는 제대로 자지도 못했어.”

“나도 그래. 최근 스트레스가 좀 컸던 모양이야. 앞으로도 계속 악몽을 꾸면 진료소에 가서 의사에게 약을 좀 받아오려고. 비싸겠지만 유적 사냥꾼에게는 뭣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까.”

“이 구역에 뭔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네. 사장도 아침까지 일어나지를 못하더라니까. 문도 내가 열었다고.”

“그래? 네가 열었다고?”

“그렇다니까. 네가 좀 늦었잖아. 내가 문을 연 뒤에나 나왔지.”

대화를 들던 백새벽의 눈이 살짝 번득였다. 불길한 예감이 든 탓이었다.

얼른 장목화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팀장의 미간도 살짝 구겨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이어 두 투숙객이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휴고 사장이 정말로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면 여관 문을 여는 걸 잊었을 리 없어요.”

성건우는 곧장 리셉션 뒤쪽의 방을 돌아보았다.

굳게 닫힌 나무 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가서 한번 봐봐.”

장목화는 그에게 지시하면서도 먼저 직접 리셉션으로 다가갔다.

게네바와 용여홍, 백새벽 역시 자연스럽게 흩어지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언제든 동료를 엄호하기 위한 준비였다.

성건우는 장목화의 뒤를 바짝 따르며 그녀의 향방을 진지하게 관찰했다.

“오, 잘 찾아가시네.”

그 대견하다는 목소리에, 장목화는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겨우 몇 미터 떨어져 있고 뻔히 보일 정도로 큰 목표물을 눈앞에 두고도 길을 잃을까 봐?’

리셉션을 돌아 휴고의 방 앞에 이른 장목화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느릿하게 문을 여는 동안, 갑자기 장목화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코끝에 닿은 냄새와 열린 문 너머로 방 안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 벽에는 침대가 하나 붙어있고 그 옆에는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 위에는 바늘, 오래된 단도, 새카만 채찍, 밧줄 여러 개, 반 토막만 남은 양초 등의 물건이 널려 있었다.

피부가 약간 탄 여관 사장 휴고는 상의를 벗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 얼굴은 반투명한 파란색 비닐봉지에 단단히 싸여 있었다.

반투명한 비닐봉지 사이로 비치는 얼굴을 보니 눈을 뜨고 있었으며, 하반신에는 실금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옅은 악취가 방 안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에게 느껴지는 인간의 의식도 없었다.

이미 명을 달리 한 것이었다.

눈가에 살짝 슬픔이 어린 장목화는 반쯤 돌아서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휴고 사장이 죽었어.”

‘뭐? 죽었다고? 휴고 사장이?’

용여홍은 제대로 듣고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휴고가, 포카스에게 연락을 취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휴고가 오늘 갑자기 죽었다니!

성건우는 가슴팍 앞에 왼손을 세워 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극락에 오르시기를.”

장목화는 현장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성건우가 입구로 왔을 때 그녀는 쪼그려 앉아 대략적인 검사를 했다.

몇 분 후, 허리와 등을 세운 그녀가 짙은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질식사한 것 같아. 현장을 보면 휴고 사장은 저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입구를 단단히 묶었어. 자기 스스로 숨통을 막은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진범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한 현장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진아교의 신실한 신도인 휴고에게 일어난 일이니만큼 스스로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그런 행위를 통해 진아를 느끼길 원했다.

한마디로 절벽 끝에서 춤을 추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추락해 온몸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는, 극도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동료들이 무슨 대꾸를 하기 전, 장목화가 다시 또 덧붙였다.

“사망 시간은 아마 어젯밤 11시에서 새벽 4시 사이일 거야.”

‘어젯밤⋯⋯.’

용여홍은 돌연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겁에 질린 눈을 보였다.

“그 악몽 때문은 아니겠죠?”

장목화는 용여홍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이어 게네바가 실제적인 꿈에 관련한 정보를 분석해 생각을 밝혔다.

“만약 악몽의 결과면 전의 사례에 근거할 때 꿈에서 겪은 일이 현실에 반영된 걸 거야. 근데 휴고 사장이 꿈에서 질식사했다 해도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얼굴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썼을 리는 없어. 질식사의 각종 특징만 직접적으로 드러났겠지.”

“맞아, 맞아.”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성건우가 맞장구를 쳤다.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 사장이 자신을 지나치게 학대한 끝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 것이거나, 누군가 질식사시킨 뒤 자살한 것처럼 보이게 한 거야.”

구조팀 중 휴고와 가장 오래 알고 친분이 있던 건 백새벽이었으나, 이들 중 제일 빠르게 정신을 차린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는 그녀는 지인의 죽음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목화는 보다 전문적인 게네바에게 임무를 맡겼다.

“겐, 현장을 검사해줘.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게, 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이미 장갑을 착용한 그녀 역시 방을 전체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늘과 오래된 단도 등의 물건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가 원래 위치에 돌려놓고 책상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랍엔 약간의 동전과 지폐, 엄지 절반만 한 두께의 서류 뭉치가 있었다.

한번 슥 훑어보니 불모지 13호 유적을 에워싼 퍼스트 시티 군대의 분포 현황에 관련된 자료였다.

‘휴고는 이미 포카스 장군하고 연락해서 우리가 얘기한 자료를 받은 건가? 이 자료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그거랑 휴고 죽음은 무관하다는 건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서류를 꺼내 간단히 넘겨보았다.

그 후로는 침대와 화장실까지도 살펴보았지만 그렇다 할 흔적은 없었다.

때맞춰 게네바도 그의 일을 마쳤다.

“시체를 해부할 수 없는 까닭에 정확한 사망 시간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젯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로 추정된다. 현장에 타인이 남긴 흔적은 없고. 당시 이 방에는 휴고 사장 혼자만 있었을 거다.”

‘깊은 밤 갑자기 일어난 휴고가 제 숨통을 조이며 스스로를 학대했다고?’

용여홍은 이해할 수 없었다. 퍼스트 시티 주민들 생활 방식에 따르면 그때는 깊이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조금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물었다.

“이제 어쩌죠? 질서의 손에 넘겨 처리하게 해야 할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신고하면 질서의 손의 관심을 받잖아. 퍼스트 시티에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한테는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지.”

용여홍이 걱정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팀장의 말에 깊이 동조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척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요. 투숙객이 언젠가 휴고 사장에게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장목화가 문을 가리켰다.

“저기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거 잊었어? 게다가 아까 전 여관에 들어온 손님들도 우리를 봤어. 누군가 신고하기만 하면 질서의 손은 조사하자마자 우리 존재를 알아차릴 거야.”

용여홍은 마음 같아선 감시 카메라와 녹화된 영상 모두를 파괴하고 성건우에게 조금 전 자신들과 마주친 두 투숙객을 설득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별 소용없는 짓이었다. 공교로운 우연이 많아질수록 질서의 손은 이 사건에 더욱 집중할 테고, 어쩌면 말인 영역의 각성자를 초빙해 도움을 청할지도 몰랐다.

“그럼 어떡하죠?”

그래도 용여홍은 팀장이라면 이미 무슨 수를 세웠으리라 믿었다.

장목화가 휴고의 방에서 조심스레 걸어 나오며 문을 닫았다.

“진아교 사람을 찾아 처리해달라고 하자. 그들과 퍼스트 시티 고위층은 밀접하게 관련돼있으니, 아무 문제 없이 우리를 덮어줄 수 있을 거야.

휴, 최근 여관 장사가 잘 안돼서 다행이네. 우리가 현장 검사를 하는 동안 들고나는 사람들은 없었으니까.”

용여홍은 곧장 이 부근에 있는 진아교의 거점을 떠올렸다. 전에 구조팀은 그곳에서 윗옷을 벗고 스스로를 마구 때리는 포카스를 본 적이 있었다.

팀장 장목화는 장갑을 벗으며 앞장서서 여관 대문으로 향했다.

“옆문인데⋯⋯.”

뒤쪽의 성건우가 희미한 목소리로 일렀다.

장목화는 배와 허리에 힘을 주며 억지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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