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2화 (582/649)

582화. 집단 꿈

우회해 퍼스트 시티 사냥꾼 길드에 도착한 구조팀은 위장한 뒤 두 조로 나뉘어 홀로 들어갔다.

주위를 슥 한번 훑던 장목화의 시야에 눈에 익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전에 구조팀과 합작한 적이 있는 유적 사냥꾼 우딕이었다.

우딕은 여전히 짙은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다른 옷이 없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막 봄이 된 이때, 바람이 찬 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딱히 문제가 되는 옷차림은 아니었다.

180이 넘는 키에 애쉬랜드인, 레드리버인의 특징을 겸비한, 또렷한 이목구비의 소유자 우딕은 고개를 살짝 젖히고 그 파란 눈동자로 대형 패널이 뜬 임무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미간을 살짝 구기는가 싶던 그의 코끝이 약간 붉어졌다.

동시에 장목화는 황급히 성건우를 붙잡았다. 성건우는 어느새 또 오랜만에 만난 우딕과 해후하려고 반갑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야! 우리 아직 수배범이야. 이렇게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우리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된다고!’

장목화가 입 모양으로만 열심히 설명했다. 이 말을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성건우는 순순히 자리에 멈춰 섰다.

그를 진정시킨 후에야 장목화도 길드 홀에 걸린 대형 패널로 시선을 돌렸다. 우딕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 임무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임무 : 집단 꿈 배후의 원인 조사하기.

설명 : 최근 진료소 의사에게 악몽에 놀라 깨어난 후 며칠간 연달아 불면증, 두통, 구역감, 피로감, 식욕 부진 등을 겪는다고 진술하는 그린올리브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음.

일차적 조사론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인원은 161명에 달하며 진술한 악몽 내용은 어둠에서 기어 올라온,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괴물 하나가 그들을 뜯어먹거나,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뒤쫓아 끔찍한 추위에 잠식되게 한다는 식으로 매우 흡사함.

보수 : 심사를 거쳐 유효하다는 확인만 받는다면 단서 하나당 최저 20오레이, 최대 800오레이. 진상까지 밝혀낸다면 5천 오레이,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면 2만 오레이 제공.

임무 등급 : 단서 찾기는 C, 신용 점수 100점. 진상 조사는 B, 신용 점수 1,000점. 문제 해결은 A, 신용 점수 10,000점.

임무 접수 조건 : 없음.

의뢰인 : 질서의 손과 사냥꾼 길드 퍼스트 시티 지부.」

“와. 이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곧장 베테랑 사냥꾼이 될 수 있겠네. 아니다. 조금 부족하구나.”

진심으로 감탄한 성건우의 목소리에, 주위의 몇몇 사냥꾼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정식 사냥꾼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A급 임무를 노리다니.

정식 사냥꾼에서 중급 사냥꾼으로 승급하려면 신용 점수 1,000점이, 중급에서 베테랑 사냥꾼으로 승급하려면 10,000점이 필요했다.

그러니 A급 임무로 베테랑 사냥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급 사냥꾼에 이른 상태여야만 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사냥꾼 길드에서 A급으로 평가된 임무는 대개 고급 사냥꾼 정도는 되어야 덤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냥꾼 등급과 자체적인 실력이 꼭 대등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정식 사냥꾼이 된 지 얼마 안 되고도 위험 정도가 A급, S급을 넘는 녀석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다.

용여홍은 성건우의 말에 마음이 조금 동했다.

‘작은 흰둥이는 단서 하나만 찾아도 베테랑 사냥꾼이 될 수 있겠네.’

하지만 구조팀은 모두 수배령이 내려져 있으니만큼, 퍼스트 시티의 세력 범위 안에서는 원래의 사냥꾼 신분으로 임무를 받을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세력 범위에서는 그 신분으로도 임무를 받아 사냥꾼 등급을 높일 수 있었다. 퍼스트 시티에서 내린 수배령과 구세군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냥꾼 길드의 규정을 엄격하게 어기고 모든 신용이 바닥난 자만이 각지 길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블랙 사냥꾼이 되었다.

한편, 장목화는 성건우, 용여홍에게는 반응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 임무 설명, 상당히 기이하고 무시무시해. 그래서 A급으로 평가했나? 여명 영역의 강력한 각성자와 무슨 관계가 있지? 휴고 사장이 속한 진아교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을까?

맞아, 우딕은 여명 영역 각성자인 데다 꿈과 관련된 능력도 있어. 어쩐지 저 임무 설명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갖가지 생각을 떠올리던 장목화는 다른 임무도 마저 살폈다.

이것이 바로 원래 사냥꾼 길드에 온 목적이었다.

일부 임무를 통해 구조팀은 한 가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잠들어 있던 퍼스트 시티의 전쟁 괴수가 천천히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그 괴수는 쌓인 먼지를 털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목표는 구세군인가? 두 대형 세력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안정된 삶이 무너져 내릴까.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팀원들을 데리고 아니, 팀원들을 뒤따라 사냥꾼 길드 밖으로 나갔다.

이때 우딕은 이미 알 수 없는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잠시 후 지프에 앉자마자 성건우가 물었다.

“이제 우딕을 찾아 인사해도 되겠죠?”

그가 생각하는 우딕은 친구일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었다. 일찍이 그들에게 차를 빌려주기도 했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가짜 신부와 위드 시티의 귀족들에 대항한 바도 있었다.

장목화는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네 신분을 잊지 마. 넌 지금 엄청난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이야. 네가 질서의 손이라는 집행 기관을 무시하는 건 상관없는데, 우딕까지 공연한 일에 끌어들이면 안 된다고.”

“알겠어요.”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는 장목화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했다.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이 물었다.

“오늘 밤은 어디서 묵죠?”

장목화가 웃었다.

“휴고 여관 근처에 방을 빌리자.”

* * *

다시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돌아온 구조팀은 휴고 여관을 볼 수 있는 방을 빌렸다. 위치는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현재 퍼스트 시티에 주민 시위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소시지, 사탕무 잡탕, 귀리 빵, 감자껍질 구이와 함께 물을 끓여 말린 버섯을 불린 것으로 메뉴도 살짝 다양화했다.

배불리 먹고 마신 후 방으로 돌아온 장목화는 팀원들에게 넉넉히 2시간 동안 휴대용 컴퓨터 사용을 허락해줬다.

오락 시간이 끝난 뒤엔 불침번을 맡은 게네바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장목화, 성건우는 잠들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 * *

기원의 바다 안, 장목화는 재차 그 섬에 올랐다.

몇 차례 탐색을 거친 그녀는 황량하고 아무도 없는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이 가족과 친구, 동료, 그리고 익숙한 생활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곳에는 장목화가 대적해야 할 적도 없고, 타파해야 할 특수한 상황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 텅 빈 회사를 돌아다닐 때마다 성불하기 싫어하는 귀신처럼 길을 잃거나, 멍하니 앉아있거나,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력이 소모되면 장목화는 다시 또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태까지 그녀는 세 가지 방법을 써봤으나 어느 것도 효과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장목화는 성건우가 참 부러워졌다. 그가 만약 이런 상황을 마주했다면 금세 여러 명으로 분리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이 지하 빌딩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을 테고, 어떤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런 행동이 더 심층적인 외로움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장목화는 가만히 지하 빌딩 입구를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휴, 오늘은 지하 빌딩을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면서 혹시 뭔가 빠뜨린 게 있나, 영감을 얻을 만한 공간이 있나 한번 보자. 그 후에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건우랑 애들이랑 다 같이 토론해보는 거야. 애들은 또 나랑 다른 각도에서 뭔가 제안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뒤이어 신중하게 방향을 판별한 그녀는 한 걸음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 *

심령의 복도, 912호.

이곳은 여전히 그 여객선 위였지만, 성건우는 현재 자신이 갑판에 막 올라왔던 그때로 되돌아왔음을 깨달았다.

밝은 하늘,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이곳 갑판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선실 입구 근처에는 눈썹 끝에 점이 난 남자와 쪼글쪼글한 담배를 문 남자가 서 있었다. 성건우가 당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성건우는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시간은 훌쩍훌쩍 건너뛰고 마지막에 이른 뒤에는 처음으로 돌아오는구나.’

여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성건우들은 이 트라우마의 규칙을 파악했다.

첫째,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 트라우마에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장소는 지난번에 떠난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방 안이다.

둘째, 만약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떠난 뒤 다시 들어오면 갑판에 처음 오른 그날, 그 자리에 나타난다.

셋째, 트라우마에 진입할 때마다 지나간 시간의 양은 고정적이지 않고, 밤낮이 교차되는 패턴은 있다.

즉, 이번에 들어왔을 때 낮이었다면 다음번에 들어왔을 때는 밤이라는 것. 그 반대 경우도 패턴은 똑같이 적용된다.

넷째, 여객선 승객들은 낮 동안에는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밤이 되면 대부분 혼란과 광기에 휩싸인다. 각성자 능력을 쓰면 곧바로 그들에게 동화되며, 광기에 찬 승객에게 공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이 트라우마의 기간은 총 3박 4일이다.

여섯째, 여객선에 오르기 전의 기간은 굉장히 특수한 것이었던 듯 그 이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여섯째 규칙은 조금 더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

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유약하고 겁 많은 성건우 뿐이었다.

그러자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건우가 실망감을 표했다.

“근데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유약하고 겁 많은 성건우는 냉소를 보였다.

“우리는 못 돌아가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지. 만약 심령의 복도에 이른 각성자를 잡아들이고 그에게 이 방에 들어가라고 겁박한다면 그대로 그 부두 위에 나타나게 될 거야. 그럼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짝짝짝!

성실한 성건우도 손뼉을 쳐야 할 때는 그렇게 했다.

* * *

어느 복도의 끝까지 나아간 장목화는 반쯤 열린 문 뒤에서 빛 한 점 없는 어둠을 보았다.

순간 에이돌른을 떠올린 그녀의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다.

바로 그때였다. 바닥과 벽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변화가 생긴 건가?’

막 이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장목화는 지면에 달라붙은 어둠 속에서 피 칠갑이 된 창백한 손 하나가 쑥 빠져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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