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1화 (581/649)

581화. 나약한 평안

우회해야 하는 곳도 많고, 길이 험한 곳도 많아서 구조팀이 탄 지프는 일주일 이상을 들인 끝에야 퍼스트 시티 남쪽 입구에 도착했다.

길가에 세워진 황토색 탱크, 장갑차, 돌격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쥔 도시 방위군 병사, 그리고 순서대로 검문을 받는 차량과 행인을 본 용여홍은 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보조석의 장목화가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에는 지아디 같은 사람이 없네.”

지아디는 구조팀이 처음으로 퍼스트 시티에 입성했을 당시 레드리버 다리 끝에서 알게 된 레드코스트인이었다. 그는 금지 물품을 싣고 있는 차량이나 사냥꾼에게 돈을 받고 도시 안으로 안전하게 들여보내 주는 매개가 됐다.

하지만 이 남쪽 입구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용여홍, 성건우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게네바도 그 시선을 느낀 건지 아무 말도 없이 콧대 위로 선글라스를 얹어 붉은빛이 번득이는 눈을 가렸다.

“내가 떠났을 당시 집정관 가이우스는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어. 규율을 강조하면서 개척을 약속했지.”

“그래서 도시 방위군 병사들이 감히 뇌물을 받을 수 없게 된 건가?”

장목화도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한마디로 지아디 같은 사람들이 돈을 벌 구석이 사라진 거였다.

예전의 구조팀이면 분명 이러한 상황에 골치깨나 아팠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들은 검문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잠시 정차하여 백새벽과 성건우의 자리만 바꾼 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 검문 차례가 왔다.

살짝 위장을 한 성건우는 차를 세운 뒤 포카스가 만들어준 신분증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정말 부럽네. 매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대신 고정된 자리에서 정해진 일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굴러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사고 유도는 추리 광대에 비해 훨씬 더 완곡하고 은밀했다.

지프 옆으로 다가온 도시 방위군 병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무사통과였다.

“그래, 나중에 보자고.”

병사는 별 의심도 없이 지프의 구조팀을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동료로 여기는 듯했다.

그렇게 구조팀은 아주 여유롭게 퍼스트 시티로 돌아왔다.

구조팀은 곧장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가 호움 난임 센터를 조사하지는 않았다. 그 전에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구조팀은 북안 뭇 산의 흰 늑대가 출몰했던 그 동굴로 진입할 작정이었다. 목적지는 퍼스트 시티 군대에 엄격히 관리되는 곳이라, 감시 공백 지대는 그곳이 유일했다.

하지만 구조팀의 유적 사냥꾼 신분은 이미 폭로된 바 있고, 퍼스트 시티는 일찍이 구조팀이 참여한 임무도 조사했었다.

장목화는 수많은 강자를 거느린 이 대형 세력이 벌써 그 비밀 통로를 찾아냈을지, 그곳 역시 감시 대상에 포함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구조팀과 함께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했던 독행 사냥꾼은 이미 죽거나 이곳을 떠나있었다. 그러니 퍼스트 시티가 그들을 통해 관련 정보를 파악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구조팀이 길잡이를 고용한 적도 있었기에, 그를 통해 비밀이 새어 나갔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구조팀은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들어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장목화는 우선 여러 정보원을 통해 그 문제를 확인하려 했다. 멋대로 달려들었다가 괜히 감시망에 걸리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이미 회사를 통해 입이 건 앵무새 주인 칸나로부터 해당 정보를 파악한 상태였다.

칸나는 퍼스트 시티의 질서의 손은 원래 구조팀이 맡은 임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려다가 이곳에서 발생한, 엄청난 여파를 미친 동란을 포함한 일련의 사건 때문에 해당 조사를 보류했다고 했다.

어쨌든 불모지 13호 유적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다. 게네바에게는 소스 브레인의 후속 조치도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구조팀은 반드시 만반에 대비해 잠재된 위험 요소를 모두 처리한 후 행동에 나서야 했다.

* * *

10여 분을 달린 끝에, 지프는 3층 높이의 황토색 건물 앞에 이르렀다.

구조팀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한, 휴고 여관이었다.

여관은 매우 장사가 안되는 듯했다. 구조팀이 홀에 들어섰을 때 까칠한 얼굴에 피부가 약간 검게 탄, 금발의 사장 휴고만 덩그러니 있었다.

고개를 처박은 채 물건을 정리하는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머리카락은 축축했다. 방금 막 고문을 받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흥미가 동했는지 성건우가 바로 다가가 소리를 낮춰 물었다.

“또 스스로를 학대했습니까? 이번에는 진아를 느꼈습니까?”

고개를 든 휴고가 그를 발견하고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한테 내가 받은 느낌을 공유할 순 없지.”

“오오⋯⋯.”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듯 의욕을 드러냈다.

휴고가 바로 장목화, 백새벽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은 몇 개나 빌리려고?”

장목화가 웃었다.

“이번에는 여관에 묵지 않을 겁니다.”

휴고는 낡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그럼 뭐 하러 왔지?”

백새벽이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장목화가 미소로 답했다.

“장군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퍼스트 시티에서 가장 경험 많고 명망이 있지만 반쯤은 퇴역한 상태로 일부 도시 방위군만 관장 중인 장군 포카스는 2월의 달지기 여명에 귀의한, 진아교의 고위층 인물이었다. 여관 사장 휴고도 그 교파에 속해 있었다.

구조팀을 슥, 훑던 휴고가 아무 기복도 없이 답했다.

“장군은 더 이상 도시 방위군을 다스리지 않아.”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완전히 퇴역하신 건가요?”

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임 집정관 가이우스 원사는 장군을 매우 중시해. 장군에게 현역으로 복귀해 자기 대신 동쪽 군단 군단장을 맡아달라고 청했어. 장군은 이미 일주일 전 도시를 떠나 출발했고.”

‘가이우스, 수완이 꽤 좋네.’

장목화는 속으로 감탄부터 나왔다.

동란에 의지해 새로운 집정관 겸 총사령관이 된 가이우스는 도시 방위군을 완벽히 장악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도시 방위군을 관리하는 포카스는 경험도 많고 명망도 있는 데다 배경도 좋은 사람이라 멋대로 처리하긴 어려웠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또 한 번 동란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 앞에 가이우스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택했다.

포카스를 승급시켜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본인 직계 부대인 동쪽 군단을 맡긴 것이다.

그러면 포카스는 자연히 도시 방위군 주관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동쪽 군단은 가이우스가 몇 년간 공들여 배양한 군대이니만큼 군단장이 바뀌었어도 계속해서 그의 명령에 따를 터였다.

동시에 가이우스는 간접적으로나마 포카스 배후의 진아교와 진아교가 믿는 2월의 달지기 여명에 호의를 보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기술적인 거래야⋯⋯.’

장목화가 감탄하던 사이, 성건우가 돌연 소리를 높였다.

“아직 축하연도 못 열었는데!”

휴고의 표정이 약간 변한 것을 보고, 장목화가 얼른 헛기침을 했다.

“장군이 꼭 도시에 없어도, 도시 방위군을 장악하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인맥만 살짝 이용해도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을 겁니다.”

휴고는 금세 눈앞에서 누군가 목을 매도 꿈쩍하지 않을 듯한 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부탁은 뭐로 하려고?”

‘뭐? 무엇으로 그런 부탁을 할 거냐고? 지난번에 그 장군 때문에 아수스, 크리스티나랑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하마터면 작은 빨강이를 잃을 뻔했다는 말씀은 아직 못 드렸는데요!’

장목화는 간신히 격앙된 감정을 억누른 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희는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곳에 들어갈 안전한 노선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오레이가 그 비밀 실험실에 숨겨놓았다던 자료를 넣으려 하지 않았던가요? 만약 저희가 수확을 얻는다면 공유하겠습니다.”

‘하하! 우리는 호움 난임 센터에만 갈 예정이니 그런 방면의 수확을 얻을 리는 없어. 공유할 정보 역시 당연히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지⋯⋯.’

순간 장목화는 성건우가 트라우마 속 여객선 이야기를 들려주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실감 나는 재연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메롱메롱 소리를 내기까지 했었다.

장목화의 말을 곰곰이 곱씹던 휴고가 말했다.

“말은 전달해주지. 하지만 어떤 보장도 할 수 없다.”

장목화가 대꾸했다.

“음, 안전한 노선이 없다면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통하는 각 통로의 감시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해야겠네요. 저희끼리 알아서라도 방법을 찾게요.”

북안 뭇 산에 있는 그 통로의 상황을 콕 집어 언급하는 대신 완곡한 방식으로 확인을 부탁한 건, 원래는 그곳 상황을 모르던 포카스나 퍼스트 시티 군이 알게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만약 포카스가 제공한 감시 상황에 북안 뭇 산의 통로가 포함돼 있지 않다면, 칸나가 전해준 정보와의 결합을 바탕으로 그 통로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휴고가 응했다.

“그래. 너희랑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기적으로 찾아올게요.”

장목화는 가장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전보 주파수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올지 역시 구조팀이 결정할 몫이었다. 어쨌든 휴고는 대개 그의 여관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휴고가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않자 성건우가 화제를 전환했다.

“전보다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휴고가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수많은 하층민이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퍼스트 시티와 주위 유적 사냥꾼 수가 대폭 줄었어.”

이 대목에서 그는 뭔가가 떠오른 듯 물었다.

“작년에 너희가 퍼스트 시티에 있었을 때 어느 각성자가 헬리콥터에서 그대로 떨어져 죽었는데, 그거 너희가 한 짓이냐?”

그 가상 세계의 주인?

장목화가 그 질문에 답할지 말지 고민하기도 전, 성건우가 먼저 제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며 뿌듯하게 말했다.

“예, 제가 했습니다!”

휴고는 저도 모르게 의혹 가득한 눈으로 성건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포카스가 그 사건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 후로 휴고와 도시의 정세 변화에 관한 얘기를 나눈 구조팀은 여관을 나와 거리로 돌아갔다.

* * *

지프에 오른 성건우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퍼스트 시티 사업이 많이 어려워졌나 본데. 소나영 그쪽의 패스트푸드점은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

소나영⋯⋯. 용여홍은 잠시 기억을 더듬은 끝에 그때 그 늑대 소굴에서 구조한 애쉬랜드 여자를 떠올렸다.

곧이어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쪽으로 한번 가보자. 그리고 위장한 뒤 사냥꾼 길드로 가서 임무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퍼스트 시티 현 상황을 더 심층적으로 파악해보고.”

백새벽은 아무 이의도 표하지 않고 항구 쪽으로 지프를 몰았다.

대낮이라 그린올리브 구역의 행인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구조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구에 도착했다.

들고 나는 배와 수많은 선원, 창고 안으로 옮겨지는 수많은 물자를 본 장목화는 소나영의 패스트푸드점의 운영 상황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개척을 앞둔 퍼스트 시티는 미친 듯이 물자를 사들이고 있었다. 항구는 자연히 복작거릴 수밖에 없었고, 선원들은 패스트푸드점의 운영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을 터였다.

장목화의 예상대로 원래 늑대 소굴이 있던 그 건물 1층에 소나영을 비롯한 여자들이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시선을 거둔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퍼스트 시티가 정식으로 개척을 시작하면 이곳 상황도 적잖게 변할 거야. 저 사람들도 더 이상은 저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없겠지. 기회를 봐서 일러둬야겠어. 그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네.”

백새벽이 가장 먼저 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여홍은 무심자에 의해 짓밟힌 그 황야유랑자 거점을 떠올렸다.

애쉬랜드의 평안은 언제나 그렇게 나약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둔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끝내 어느 달지기라도 믿고 그에 의탁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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