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80화 (580/649)

580화. 만족스러운 거래

어느 폐허 도시에 자리한 황야유랑자 거점으로 온 구조팀은 이곳에서 장로라 불리는 이 거점의 수장을 만났다.

원래 도시의 하수도 시스템에 의지해 지어진 이 거점은 거의 300명 규모로 발전한 상태였다.

이들의 주요 식량은 식용 버섯과 이끼였다. 사실 하수도와 폐허 도시의 으슥한 곳에서 키우기 적합한 식물이랄 게 그것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성건우의 반응은 언제나 남달랐다.

그는 거점의 장로를 보자마자 물었다.

“맛있나요? 버섯과 이끼, 먹을만합니까?”

40대로 보이는 장로는 지저분한 갈색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근시가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곧 약간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몇 세대의 선별을 거친 것들이니, 맛에는 아무 문제도 없지요.”

그런데 말을 마친 그는 구조팀이 그것을 눈독 들일까 걱정이 됐는지, 파란색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살짝 잡아당기며 덧붙였다.

“문제는 생산량이에요. 저희는 지금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그것들을 재배하고 있는데도 충분히 배를 불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외부자들이 입구까지 직접 찾아와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들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도슨 씨, 일반적인 버섯과 이끼는 이런 식으론 재배할 수 없지 않나요?”

도슨은 저도 모르게 양손을 비볐다.

“이곳에 원래 연구소가 있었답니다. 버섯과 이끼의 개량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곳이었죠. 저희는 그들이 남겨둔 자료를 찾아 아주 오랫동안 실험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요.”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따가 저희가 가진 고기 통조림으로 그 버섯과 이끼를 교환할 수 있을까요?”

도슨은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희색을 드러냈다.

“좋습니다.”

순간 용여홍은 약간 좀 겁이 났다.

“버섯과 이끼 말고 평소에는 뭘 드시나요?”

원래 그는 버섯과 이끼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지 않냐고 붇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솔직하게 답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질문은 포기해 버렸다. 이는 나중에 게네바에게 독성 검사를 부탁하는 편이 더 나았다.

도슨은 조금도 개의치 않다는 듯 답했다.

“팀을 짜 외부에 사냥을 나가기도 합니다. 버섯과 이끼는 쥐를 유인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그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장목화는 외부의 녹슨 파이프를 보고 떠보듯 물었다.

“도슨 씨, 혹시 이 주위에 오염이 심각하면서도 자기장에 이상을 보이는 곳이 있습니까?”

도슨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자기장이 뭡니까?”

“⋯⋯.”

장목화는 얼른 질문을 바꿨다.

“금속 제품이 갑자기 무거워진다든가 하는 현상을 보이는 곳이요.”

도슨은 기억을 한번 되새겨보았다.

“이 근처에 그런 곳은 없습니다.”

구조팀이 실망감에 휩싸인 그때, 도슨이 다시 덧붙였다.

“근데 일찍이 사냥을 나갔던 팀이 서쪽으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러분이 설명하신 그런 현상이 있다더라고 하긴 했었습니다.”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공연히 뜸 들이지 말란 말입니다.’

도슨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그곳에는 가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아주 불편해져요. 부근에 엄청 강력한 강도단도 있고요. 조로라고 불리는 이들인데, 무려 수십 개의 대포를 가지고 있답니다!”

“대포 수십 개요?”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그건 전에 구조팀이 만난 하이에나 강도단을 압도하는 화력이었다. 그 정도라면 척박한 땅에서 광산 자원을 점거할 수도 있었다.

도슨이 그의 지저분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사냥팀은 길을 지나던 유적 사냥꾼한테 그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실제 거기까지 가본 적은 없습니다. 정말로 그들을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살아 돌아왔겠습니까?

어쨌든 저는 여러분께 경고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고 싶다면 믿으시고, 믿기 싫으면 마세요. 제가 여러분을 설득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럼 통조림 몇 개로 버섯과 이끼를 교환하시겠습니까?”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외부인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 귀한 물자 교환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사실 도슨이 한 말 가운데는 거짓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버섯과 이끼의 생산량이었다.

이곳의 버섯, 이끼 생산량이 정말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세계 대형 도시의 하수도 시스템은 굉장히 넓게 퍼져 있었으며, 폐허에는 버섯을 재배하기 적합한 곳도 널려 있었다. 거기다 이미 주식이 된 그 버섯들을 대대로 품종 개량까지 해왔기에, 좀 힘겹긴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슨은 주머니에 든 재물을 남에게 멋대로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해봤자 외부인의 못된 욕망만 자극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식용 버섯과 이끼의 생산량에 문제가 있어, 이 거점의 주민들이 먹기도 충분치 않다고 엄살을 떨어댔다.

물론 이런 식량은 영양분이 그리 풍부하지도 않은 데다 포만감도 없었다. 이에 정기적으로 팀을 조직해 사냥을 나가고, 열매를 채집해야 했고, 또 군용 통조림이나 압축 비스킷 등을 교환할 기회 역시 놓칠 순 없었다. 그건 맛도 좋고 포만감까지 채워주는 귀한 식량이었다.

성건우가 패기만만하게 활개치기 전, 장목화가 얼른 나섰다.

“최대 네 개요. 저희한테도 남은 게 많지 않아서. 음, 혹시 무기가 필요하지는 않으세요? 종류도 잡다하고 맞는 총알도 많지 않지만 말린 버섯 몇 자루와는 충분히 교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금속 자원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그걸로도 교환 가능하고요.”

장목화가 나열한 건 무심자 동굴 안에서 쓸어온 것들이었다. 그 물건들 때문에 지프의 빈 곳이 거의 꽉 차 있었기에, 최대한 그것들을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았다. 그걸 식량으로 교환할 수 있다면 퍼스트 시티까지 가는 동안 사냥꾼, 그러니까 진짜 의미의 사냥꾼을 겸직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도슨이 약간 축축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많은 물건과 교환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게 너무 적을 것 같은데요. 이 근방에는 다른 거점이 몇 개 더 있는데, 그들과 함께 연합해서 거래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용여홍은 이런 거점의 물자가 얼마나 부족한지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빈곤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간만 지체되니까⋯⋯.”

장목화는 수집한 자원을 듬뿍 퍼주며 말린 버섯 세 자루와 식용 이끼 한 자루, 더불어 주위의 비교적 덜 오염된 수자원 분포도를 받았다.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 * *

도슨의 안내 아래, 그가 하수도 안에 지은 헛간에서 나온 용여홍은 손전등을 이리저리 흔들며 양쪽 벽에 자라난 푸르고 촉촉한 이끼를 비췄다.

이 거점에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연료 발전기 한 대와 구세계산 태양열 충전기 여러 개가 전부였다.

그래서 이들은 에너지 소모에 상당히 민감했다. 조금 전 장로 도슨과 대화할 때도 구조팀은 다들 손에 든 손전등 빛에만 의지했었다.

오랫동안 어둡고 축축한 환경에서 지낸 탓인지 이곳 주민들 감각기관에는 일정한 변이가 일어나 있었다. 이들은 마치 쥐처럼 하수도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민첩하게 움직였다.

먼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자기장의 이상 현상이 있다는 그 서쪽에 가보실 거예요?”

그는 조로라는 강도단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 중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있는 게 아니라면 현재 구조팀의 실력으로는 패배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대포가 많아도 그걸 조작할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에 문제가 생기면 대포가 아무리 많아봤자 소용도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용여홍은 약간 뜨끔한 마음으로 게네바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 지능인도 사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곳 자기장에 문제가 있다면 겐은 물론, 우리 군용 외골격 장치랑 무기들도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거기 어떤 위험한 생물이 숨어있을지 누가 알겠어? 그보다는 이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각성자로 이뤄진 전문팀을 보내 조사하게 하는 게 낫지.”

잠시 뜸을 들이던 장목화가 팀장답게 말을 이었다.

“잊지 마, 우리 배후에는 대형 세력이 있어. 모든 일을 다 스스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위험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쳐 쓰러질 수 있잖아.

각성의 비밀과 연루된 문제니, 회사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거야. 성과가 생기면 우리도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고. 때가 되면 관련 정보 열람을 신청해서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 기원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면 돼.”

백새벽도 동조했다.

“조금 전 만난 장로가 그쪽으로 2, 3일은 가야 한다고 했어. 그럼 우리가 원래 가려던 길과는 완전히 벗어나게 돼.”

“알겠어.”

끝으로 용여홍이 교육생처럼 답했다.

머뭇거리는가 싶던 성건우는 결국 장목화의 눈총을 받고 조용히 있었다.

* * *

그 후로 구조팀 다섯은 한동안 식용 이끼가 잔뜩 자란 하수도를 한참 지나 지면으로 이어지는 금속 계단 앞에 이르렀다.

이미 상당수 주민이 줄지어 순서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후를 맞은 바깥의 햇빛은 찬란했다.

하수도 밖으로 나온 구조팀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들보다 앞서 밖으로 나간 주민들은 그늘지고 축축한 곳으로 가 각자 심은 버섯을 살핀 뒤, 볕이 좋고 선선하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벌렁 드러눕고 있었다. 자리에 누운 그들은 편안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수도 내부의 환경 때문에 그들은 햇볕을 쬐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저들은 7월의 달지기 쌍태양을 믿었다.

장목화는 흥미로운 듯 이러한 모습을 기억에 새겼다.

뒤이어 용여홍이 지프 뒷좌석 문을 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러 황야유랑자 거점에 비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천당이네요.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하수도를 중심으로 삼아서, 상대적으로 비밀스러운데다 노예 포획대나 강도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게다가 구세계의 버섯 재배 기술과 식용 이끼 배양 방법을 찾기도 했고요. 식량 공급이 안정적이니, 조금만 아끼면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어요.”

그러자 솔직한 게네바가 대꾸했다.

“하지만 저들은 각성자의 감지까지 피할 순 없지. 외적에 대항할 실력도 없고. 만약 우리가 우연히 그 무심자 집단을 맞닥뜨리고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식량을 다 소진하는 대로 다시 사냥에 나섰을 거다. 이 거점의 인간들도 화를 피하기는 어려웠겠지.”

용여홍은 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몇 초 후, 성실한 성건우가 그를 대신하듯 욕을 내뱉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

이곳이 바로 애쉬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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