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77화 (577/649)

577화. 빌런의 길로

제2 식품회사로 들어간 성건우는 유탄 발사기를 들고 한 하중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릉!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무기를 쥐지 않은 서동수는 팔을 들어 올린 후 전방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몇 m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타격을 받은 하중벽은 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균열을 드러냈다.

물질 간섭 능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이 광경을 보고 흥분한 성건우는 계속 유탄을 신나게 쏴댔다.

물론 두 사람은 건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와중에도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종일관 경계심을 유지한 채 뜻밖의 상황에 주의했다.

건물에 명확한 떨림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서동수는 그제야 오른손을 거두며 성건우에게 말했다.

“이만 나가자.”

두말하지 않고 돌아선 성건우는 성큼성큼 달려갔다.

순간 서동수는 흠칫 놀란 듯했다. 성건우가 이렇게나 과감하고 단호하게 철수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뒤이어 얼른 정신을 차린 그는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성건우의 뒤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 * *

건물을 나와 한참을 더 달린 후에야 멈춰선 서동수는 뒤돌아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를 마주 보았다.

현재 모두의 경계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불가의 성지에 일어날지 모르는 이변에도 대비해야 하며, 그 특수한 고등 무심자도 기다려야 했다.

그때였다. 오른손을 뻗은 서동수가 전방의 허공을 움켜쥐더니 그 손을 아래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콰르릉!

위태롭게 흔들거리던 식품회사 건물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그러나 대량의 분진과 파편을 피어오를 뿐, 아무런 일도 없었다.

구조팀 다섯과 서동수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기다렸으나 특수한 고등 무심자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목화는 한숨을 토하며 서동수를 쳐다보았다.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건가 봐.”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의 붕괴로도 그를 유인할 순 없었다.

그 말에 서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다들 흩어져 행동하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의도적으로 홀로 떨어진 듯하게 꾸며서 습격을 유도하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대꾸했다.

“그건 너무 위험해. 녀석은 그 말도 이미 들었을 거야.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여길 떠나 다른 불가 성지로 가서 새로운 단서를 찾을 거야.”

서동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구세군 소속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결국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우리도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아가려고. 군용 외골격 장치 거래를 마친 후에는 장하시 연합 철강 공장에 가서 우리 방법으로 한번 탐색도 하고.”

“어⋯⋯.”

어떻게 호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장목화가 조금 머뭇거렸다.

이에 성실한 성건우가 대신 대답했다.

“갈 필요 없어. 거기 불가 성지도 붕괴됐거든. 여기처럼.”

침묵으로 구조팀을 바라보던 서동수는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만약 나중에 빙원의 타이 시티로 향할 일이 생기면, 도중에 우리 구세군 세력 범위를 지나치게 될 거야. 혹시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이름을 대. 난 치안 관리 위원회 일원이야. 근데 내 이름을 댄다고 꼭 만사가 해결되리란 법은 없어. 호의는 제도가 될 수 없으니까. 한번 시도나 해보라고.”

“그래!”

흥분한 성건우가 냅다 답했다. 구조팀이 구세군의 세력 범위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걸 벌써 확신이라도 하는 듯했다.

* * *

작별 인사 후 돌아선 서동수는 200미터 밖에서 대기 중이던 여상희를 비롯한 동료들과 합류했다.

잠시 짙은 색 차량에 올라 멀어지는 구조팀을 눈으로 배웅하던 그는 조금 전 대화 내용을 부하들에게 알렸다.

여상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하시 연합 철강 공장의 불가 성지가 파괴됐다면, 아무래도 저들일 가능성이 크겠죠?”

서동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여상희가 말을 이었다.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란 불가 성지가 파괴된 것도 절반은 저들 책임이 있어요. 설마 저들이 제8 연구원의 고급 특파원인 건 아니겠죠?”

안 그럼 제8 연구원에서 내내 목표로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일을 저들이 어떻게 해냈겠는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서동수는 구조팀을 위해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오후, 저녁 무렵.

차량 행렬이 서북쪽에서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로 들어섰다.

적어도 대포 서른 대는 갖춘 이들은 수 킬로미터 밖에 진지를 짓고 제2 식품회사가 자리한 그곳을 겨냥했다.

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남녀 한 쌍이었다.

흰색 셔츠에 청재킷, 그리고 같은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은 여자는 머리에 챙도 넓고 높기도 한 펠트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남자는 검은 트렌치코트 차림에 짙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여자는 곧 망원경을 들고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쪽을 내다보았다. 포수들에게 정교한 포격 계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애쉬랜드인인 그녀의 얼굴은 달걀형이고 눈썹은 버들잎 같았다. 겉보기에는 25, 6살 정도밖에 안 돼 보였지만 꽤 성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망원경 방향을 조절하던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음?”

“왜 그래?”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물었다.

하늘이 아직 어둑하지 않아선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는 뒤로 말끔히 빗어넘긴 그 금갈색 머리로 보아 레드리버인인 듯했다.

청바지를 입은 여자는 한 번 더 관찰 후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 불가 성지는 이미 파괴됐어. 내가 장소를 제대로 찾은 건지 모르겠네.”

“뭐? 누가 한 짓이지?”

남자는 손을 뻗어 망원경을 받았다.

이후 반복해서 확인을 마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확실한데⋯⋯. 누구지? 덕분에 우리의 일이 확 줄었네.”

그들의 대화는 북방 악센트가 어린 레드리버어로 이루어졌지만, 일부 단어와 문장에서는 애쉬랜드의 특색이 묻어났다.

“누가 한 짓이든 상부에 보고할 필요는 있겠어.”

여자가 손을 뒤로 돌려 등에 메고 있던 캔버스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세계의 태블릿 PC 같은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화면을 두드려 밝히고 잠금을 푼 그녀는 전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열어 일련의 숫자를 입력했다.

연결을 마치자, 액정 화면은 순간 모종의 터널을 관통하듯 어두워졌다.

그러다 다시 밝혀진 화면에 책상 앞에 앉은 한 인영이 떠올랐다.

인영 주위 공간은 왜곡돼있는 데다가 노이즈로 흐려져 있었다.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치직- 치직-

그 매우 흐릿한 인영이 입을 열었다.

- 란, 무슨 일이지?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공손하게 답했다.

“박사님, 누군가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를 파괴했습니다.”

박사라고 불린 인영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답했다.

- 저녁에 도와 전자제품 수리 방송을 듣도록. 오하명과 대화해봐야겠다.

“예, 박사님.”

청바지 입은 여자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동시에 답했다.

* * *

저녁이 오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여자와 남자는 라디오를 찾아 주파수를 119.2에 맞췄다. 도와 전자제품 수리 방송국의 방송이었다.

동시에 청바지 입은 여자 허란은 재차 그 태블릿 PC를 켰다.

화면 속 흐릿한 박사가 떠오르자마자 라디오에서 오하명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는 여전히 레드리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 돌아왔군. 어떤가, 신세계의 현재 상황은? 난 전에 진리 그 녀석의 기운이 퍼스트 시티에 나타난 걸 느꼈어. 하지만 결국 그 사람과 맞닥뜨리고 말았지. 운이 없었어.

박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해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 신세계 상황은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 그럼 나를 왜 찾았나? 내가 불가의 성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라디오 안에서 흘러나오는 오하명의 목소리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박사는 침착하게 답했다.

- 그것도 이유 중 하나야.

몇 초간 사라졌던 오하명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그러나 또렷한 웃음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 그렇게 알고 싶다면 알려주지. 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 만물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다투지는 않으니. 내가 자리해 있는 이 폐허에는 호움 난임 센터라는 곳이 있어. 그곳도 불가의 성지 중 하나야.

* * *

구조팀은 아이언마운틴 시티 외곽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 특수한 고등 무심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들은 그제야 북쪽에 자리한 퍼스트 시티로 향했다. 불모지 13호 유적에 있는 호움 난임 센터를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각종 오염 구역과 위험 지대를 우회하며 이동한 지 이틀이 지났을 때, 게네바가 바깥의 황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근에 유랑자 거점이 있는데 가서 물자를 보충할래?”

그곳은 그가 전에 퍼스트 시티에서 남하했을 당시 들렀던 거점이었다.

백새벽도 이곳은 처음이라 이 황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보조석의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좋아.”

구조팀의 지프는 개조를 거쳐 트렁크가 더 넓어졌다. 그러나 군용 외골격 장치 3대, 인공지능 갑옷 2대, 총알, 유탄, 대전차 수류탄, 로켓탄, 고성능 폭약, 예비용 무기까지 싣느라 다른 물자를 실을 공간은 많지 않았다.

진정한 인공지능 내비게이션의 도움 아래, 작은 숲과 몇 개의 언덕 사이를 가로지른 지프는 지형과 구세계 폐허에 의탁해 지어진 거점에 도착했다.

차가 목적지로부터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무렵, 성건우가 돌연 몸을 곧추세웠다.

“아무도 없어.”

“이주라도 했나?”

백새벽이 차 속도를 늦추며 말했다.

애쉬랜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황야유랑자들은 정보의 폭로, 극심한 기후 변화, 환경 문제, 변이 생물과 무심자의 사냥 범위 변경 등의 이유로 몇 년에 한 번씩, 혹은 그보다 더 빨리 거점을 떠나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곤 했다.

그러나 게네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전에 이곳을 거쳤을 때 그 사람들은 거점 뒤쪽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어.”

떠날 사람이 굳이 힘과 자원을 들일 이유는 없었다.

성실한 성건우가 곧장 반박했다.

“지난 며칠 새 퍼스트 시티 노예 포획대에 들킨 걸 수도 있잖아.”

그랬다면 이 거점을 떠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탄소 기반인과 규소 기반인의 논쟁을 싣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지프는 점점 목적지 근처에 가까워졌다. 그러자 장목화가 성건우의 판단에 힘을 실었다.

“진짜 인간의 생물 전기 신호는 없네.”

통나무들을 이어 만든 거점 대문은 한쪽은 닫혔고, 한쪽은 열려 있었다.

그쪽을 슥 한번 훑던 백새벽이 돌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닥에 피가 있어요.”

그녀의 자리는 동료들보다 훨씬 잘 보였다. 그리고 그녀 곁의 장목화는 한창 감지에 집중하던 중이었다.

백새벽의 말을 따라 시선을 옮긴 구조팀은 대문 밖에 자리한 피 웅덩이들을 발견했다. 암적색의 피는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용여홍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검은 쥐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퍼뜩 떠오르기도 했다.

“습격을 당한 건가?”

장목화가 지프를 세우라고 눈짓하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유탄 발사기를 몸에 건 그녀는 개인용 바주카포를 받쳐 든 채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팀원들도 황급히 뒤따라 거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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