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화. 방안
‘몬티스는 외국인이다. 방민서의 아들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 그리고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한 외국인이 행인을 차로 쳐 식물인간이 되게 한 사고가 있었다.
몬티스는 구세계 파괴 후 보리 영역 능력을 각성했다.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는 불가 성지중 하나가 됐고, 그 회사의 직원 유옥로는 알 수 없는 누군가로 인해 숙명통에 빙의 됐다.
건우는 방민서의 병력을 이용해 아이언마운틴 제2 식품회사가 속한 트라우마에서 변이를 일으켰다. 그리고 방민서와 이진용 부부가 잠들어 있는 장하시 연합 철강 공장 역시 불가의 성지가 됐다.’
용여홍의 머릿속, 오래도록 구조팀이 쌓아온 정보들이 차례차례 정렬하며 서로 빈틈없이 엮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보엔 구조팀이 전에 했던 추측과 모순되는 부분도 있었다.
‘만약 방민서의 아들이 정말 몬티스 때문에 식물인간이 됐다면, 달지기 보리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그 사람은 왜 상대를 해당 영역의 각성자로 만든 거지? 또 심령의 복도에까지 들어간 몬티스는 왜 또 다른 달지기 에이돌른에게 진압된 걸까?’
천천히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에게 시선을 돌린 용여홍은 동료들 역시도 각자의 의혹과 혼란 속에 깊은 고민에 잠긴 걸 볼 수 있었다.
게네바는 원래 표정이랄 것이 없기에 뭔가를 관찰할 순 없었지만, 역시 붉은 눈빛을 몇 번 번득이기는 했다.
구조팀 외에 구세군 서동수, 여상희 일행도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들은 구조팀에게 방민서의 병력을 공유받았고, 몬티스가 보리 영역의 강력한 각성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놀란 구세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간의 정보나 단서들로 짜이는 이야기를, 그 이야기 배후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서동수가 자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많은 일이 한데 뒤얽혀 있다면, 그 안에는 현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휴,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 관련된 정보가 하나만 더 파악돼도 진상의 한 귀퉁이라도 들춰볼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찾아낸 단서로는 이러한 사람들과 사건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점만, 그것들을 하나로 연관 짓는 존재가 방민서의 아들, 식물인간이 된 그 아들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왜 연관이 되는지, 이러한 현상이 암시하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맞아, 맞아.”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성건우가 친구 용여홍의 말버릇을 흉내 냈다.
서동수의 말을 듣고,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건물을 한번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더 많은 관련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은?”
경험이 풍부한 서동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었다.
“너희들이 만났다던 그 특수한 고등 무심자 말이야.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의 특수성들은 아마 이 불가 성지와 관련돼있을 거야. 그 고등 무심자가 여기서 너희를 습격했지. 그러니까 그자를 잡아 그 특수성의 근원을 파악하면 더 많은 정보를, 심지어 문제의 답까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서동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장목화의 말에 동조했다.
하지만 여상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고등 무심자는 붙잡기 쉬운 녀석이 아니야. 어쩌면 예지 능력이 있는 녀석인지도 모른다고.”
“예지가 아냐.”
성건우가 여상희의 말을 끊었다. 지금의 성건우는 너무나 성실해서 매너는 없는 성건우였다.
그 말에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우리는 그자가 가진 능력이 천이통이리라 의심하고 있어. 어쩌면 천안통이 더해져 있을지도 모르고.”
뒤이어 그녀는 그렇게 판단한 이유도 말해줬다. 물론 이번에도 구조팀이 가진 능력까진 밝히지 않고 모든 덕택은 게네바의 공으로 돌렸다.
그것도 영 근거 없는 사실은 아니었다. 레이다와 적외선 감시 시스템 등의 기능을 갖춘 게네바는 그 고등 무심자의 존재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지능 로봇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기능도 다 알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서동수가 말했다.
“만약 천이통이라면 우리가 당시 겪었던 일도 설명이 되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천안통을 피해 그를 붙잡을 방안을 마련해야 해.”
“일단은 목표부터 찾아야죠.”
성실한 성건우는 같은 동료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게 반박하는 이도 없었다. 그건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아이언마운틴 시티는 특대형 도시이며, 폐허가 된 지금도 굉장히 넓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이루어진 숲에서 은닉에 능하고 본능이 출중한 사냥감 하나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습격을 당했던 서동수 팀도 상대의 흔적을 쫓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고등 무심자가 물러나면서 남긴 흔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반에는 좀 있는가 싶던 자취도 나중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평소 생활 구역은 부근의 산일 것이다. 그런 곳이어야만 그와 그의 수하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동수는 몇몇 고등 무심자와 맞닥뜨린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녀석을 사냥하려면 목표를 유인하고 함정을 설치하는 게 가장 나아.”
고등 무심자들은 일반적인 무심자보다는 더 똑똑하고 지능도 높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야수와 같은 본능의 통제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장목화가 떠보듯 물었다.
“그럼 미끼로 뭘 써야 할까? 음식?”
일찍이 그 고등 무심자와 맞서본 여상희가 말했다.
“녀석한테 먹을 게 부족해 보이진 않았어.”
한편, 타인과 있으면 늘 평범한 로봇인 척하는 게네바는 한 가지 가능성을 분석해냈지만 그걸 말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장목화만 쳐다보며 붉은 눈빛을 번득였다. 번뜩이는 빈도로 모스 부호를 전하는 것이었다.
탄소 기반인이 눈치에 의지한다면, 지능인은 기술에 의지하는 법이었다.
이내 게네바를 향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인 장목화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고등 무심자는 아마 우리가 이 식품회사를 탐색했기 때문에 우릴 습격하려 한 걸 거야. 전에 아이언마운틴 시티에서 그를 맞닥뜨린 유적 사냥꾼 대부분이 습격당하지는 않았어. 약간 영향만 받았을 뿐이지. 아주 극소수만 조건반사적으로 그자에게 총을 쐈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고.”
생각에 잠겨있던 서동수가 옆에 있는 식품회사 건물을 가리켰다.
“이걸 미끼로 삼자는 건가?”
이때 내내 조용히 경청하던 용여홍이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만약 그 고등 무심자가 주위에 숨어 있다면, 이미 천이통을 통해 우리가 한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어떤 계획을 세우든 소용이 없었다.
순간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심지어는 그 장난기 많은 성건우 역시 우스갯소리도 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잠시 후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역시 천이통에 대적하긴 쉽지 않네. 휴,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른 불가 성지로 가서 새로운 단서를 찾아보는 수밖에. 나머지 세 성지는 각각⋯⋯.”
알고 있는 정보를 서동수 팀에 공유한 구조팀은 다시 지프에 올랐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폐허 도시 북쪽이었다.
서동수는 구조팀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다시 일행과 짙은 색 차량에 올라 남쪽으로 향했다.
* * *
지프가 1~2킬로미터 이동했을 무렵, 보조석의 장목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운전할게.”
‘네? 팀장님, 정신 차리세요!’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길 안내만 해주면 장목화도 길을 잃지는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속도는 좀 느려지겠지만.
그래도 용여홍은 장목화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건 아무래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내 운전하던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냥 제가 계속할게요.”
그 순간 핸들을 확 꺾은 그가 좌회전한 뒤 왼쪽으로 한 번 꺾었다. 동시에 성건우는 후시경으로 뒷좌석을 보며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워 보였다.
“쉿.”
흠칫 놀란 용여홍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
‘이건⋯⋯. 제2 식품회사로 돌아가려는 건가? 조금 전 팀장님과 서동수의 대화 자체가 그 고등 무심자를 노린 함정이었던 거야?’
백새벽을 돌아본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확인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돈 끝에, 구조팀이 탄 지프는 다시 식품 회사 앞으로 왔다.
여전히 고요한 이곳에는 아무런 인적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서동수 팀의 짙은 색 차량도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서 내린 장목화는 그들과 다시 합류한 뒤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깝네, 안 속아.”
“정말로 그자를 속이려던 거였군.”
서동수가 감탄한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곧이어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언제 알아차린 거야?”
서동수가 웃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나도 경험이 꽤 있어. 너희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음……. 이제 어쩌지?”
몇 초간 고민하던 장목화가 돌아서서 7층짜리 식품회사를 바라보았다.
“여길 파괴해볼까? 혹시 흥분한 녀석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잖아.”
폐허 철강 공장 가족 2구역 4동의 붕괴를 떠올린 것이었다.
한동안 침묵에 빠져 있는가 싶던 서동수가 응했다.
“한번 해보지.”
장목화는 다시 진지하게 일렀다.
“여긴 불가 성지야. 일반적인 파괴는 가능할지 몰라도 파멸적인 파괴는 무시무시한 변이를 초래할지도 몰라.”
나이가 어린 편인 여상희는 재차 미간을 찌푸리며 서동수를 쳐다봤다.
“고작 고등 무심자 하나를 잡자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녀석이 아무리 특수하다 한들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갖고 있겠습니까?”
고민하던 서동수가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여상희, 넌 차에 올라 동료들과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라. 여긴 나한테 맡기고. 진상이 밝혀질 것 같은 희망을 본 이상, 시도는 해봐야겠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이건 명령이다.”
“예.”
여상희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얹었다.
이 광경을 본 성건우는 자발적으로 앞으로 나서서 서동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여상희처럼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은 채 묵직하게 외쳤다.
“전 인류를 위해!”
순간 엄숙한 표정을 드러낸 서동수가 그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전 인류를 위해!”
짧고도 힘찬 구호를 외친 두 사람은 동시에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잠깐.”
장목화가 바로 당당히 걸어가는 성건우, 서동수를 붙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장목화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그녀는 연장자인 서동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성건우와 죽이 척척 맞는 상대를 보자니 마냥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와 동시에 서동수가 답했다.
“저 하중벽을 파괴하고, 녀석이 나오면 건물에 최후의 일격을 날려야지.”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순간 성건우를 보는 서동수의 눈빛이 퍽 복잡해졌다. 성건우와 같은 팀을 이룬 것을 후회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장목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야. 저 구세군 강자, 반백 년을 산 만큼 경험도 풍부해. 건우처럼 못 미더운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계속 각 방면으로 상황을 살펴볼게. 두 사람도 조심해.”
장목화가 일찍이 준비해둔 유탄 발사기를 성건우에게 던져주었고,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도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히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이는 전술 가이드 내용에 따른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