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75화 (575/649)

575화. 허풍의 결과

이제 장목화, 성건우는 지프의 앞 뒷자리에 오른 뒤 각자의 자리에 누웠고 게네바는 모닥불가에 앉아 불침번을 섰다.

그리고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쥔 용여홍과 기관단총을 쥔 백새벽은 2, 3미터 간격을 둔 채 야영지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부는 바람은 싸늘했다. 향긋한 봄날의 밤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이때 좌우를 두리번대던 용여홍이 용기를 내어 백새벽에게 물었다.

“옷 더 안 입어도 되겠어?”

“괜찮아.”

지금 백새벽은 반고 바이오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물론 나이도 팀원들보다 많고, 전에 받은 유전자 개조 효과도 그리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강화되기는 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가 받은 유전자 개조 항목 중 총기 재능은 시력이나 반응 속도, 협응력 등 여러 방면에서 좋은 영향이 있었다.

용여홍은 더 이상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조용하게 순찰만 하다가 또 새로운 화제를 떠올렸다.

“사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팀장님이랑 겐, 야한테 지나치게 의지할 필요도 없고. 나도 주위 상황을 감지할 수 있으니까,”

백새벽이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네 기계 팔에 있는 환경 신호 수집기랑 보조 칩 때문에?”

전기뱀장어 형 생체 공학 의수에도 보조 칩을 장착할 수 있는데, 기계 전자 제품인 T1형 다기능 기계 팔에 그것이 없을 리가 없었다.

백새벽이 이 화제에 관심을 보이자, 용여홍도 신난 듯 소개에 나섰다.

“응! 난 일정 시간마다 기계 팔로 수집한 반경 내의 환경 정보랑 예전 거랑 비교 분석해서, 무슨 변화가 있으면 빠르게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난 그 고등 무심자가 자기 의식은 숨길 수 있어도 몸에서 나는 냄새까지 숨길 순 없을 거라 생각해. 그자들의 행동 방식은 야수랑 비슷해. 씻는 걸 좋아할 리 없잖아. 각성자 능력이 은닉과 관련된 게 아닌 이상은 체취까지 감출 수는 없을 거야.

녀석을 발견만 하면 난 레이저로 그 몸을 꿰뚫을 거야. 녀석이 통증 때문에 꼼짝도 못 하는 동안 넌 달려가 의수로 녀석을 불살라버리면⋯⋯.”

말하면 할수록 용여홍은 점점 격앙되고 있었다. 상상일 뿐인데도 백새벽을 참여시켜 그녀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용여홍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들로부터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돌연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까악- 까악- 까악-

파드득!

그 까마귀들이 날아오르는 사이, 그쪽에 있었던 듯한 누군가가 밤하늘 어둠에 기대 빠르게 멀어져갔다.

“어⋯⋯.”

놀란 용여홍이 멍하게 있는데, 갑자기 지프 안에 있던 성건우가 고개만 쏙 내밀고 아쉬워 죽겠다는 듯 외쳤다.

“야! 너 때문에 놀라서 도망갔잖아!”

용여홍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놀라서 달아났다니?”

차 문을 열고 내린 성건우가 안타까운 얼굴로 설명에 나섰다.

“전에 우리가 그랬지. 누군가 어둠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 같다고. 근데 한참 기다려도 다시 안 다가왔으니까 팀장님은 그냥 자는 척하면서 녀석의 기습을 유도하려 한 거야. 기회를 봐서 녀석을 붙잡아 그 특수한 능력을 연구하려고. 그래, 만약 그가 정말 그 특수한 고등 무심자라면 말이야. 근데 네가 세운 나름의 방안 때문에 녀석이 놀라 달아나버린 거라고.”

성건우가 이야기하는 사이, 장목화도 지프에서 내렸다.

그러자 용여홍이 당황한 얼굴로 도움을 구하듯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팀장님은 그런 말 하신 적 없는데⋯⋯.”

용여홍이 생각하기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백새벽 앞에서 허풍 좀 떨었기로서니 고등 무심자가 그 말에 놀라 달아났다고?

상대에게 정말 예지 능력이 있다면, 허풍으로 만들어낸 방안과 실제로 실행 가능한 계획을 헷갈리지는 않을 터였다.

백새벽과 게네바 장목화의 계획을 미리 알진 못했지만 지금은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장목화가 무슨 답하기도 전, 성건우가 잔뜩 흥분하기 시작했다.

“눈치! 인마, 눈치! 알겠어? 눈치라는 게 있어야지! 큰 흰둥이 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 호기심도 많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팀장님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 그 어둠 속의 눈빛을 감지하기까지 했는데! 너도 이쯤 되면 언외의 뜻을 알아듣고 무언의 약속쯤은 할 줄 알아야지!”

‘자기가 무슨 작은 빨강이 선배야, 선생이야? 얘는 또 누구래? 농담을 좋아하는 건우야, 아니면 새롭고 신기한 걸 좋아하던 건우인가⋯⋯?’

한창 성건우를 아래위로 쏘아보던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었다.

“됐어, 여홍아. 쟤 말은 듣지 마. 난 그냥 뜻밖의 사고를 막으려고 잠들기 전에 조금 더 관찰해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결국 건우 말이 맞다는 거잖아요. 팀장님, 팀장님은 적을 속이기 위해 팀원까지 속이셨네요.’

용여홍은 순간 기계 승려 정법을 만났을 당시가 떠올랐다. 그때 장목화는 가짜 계획으로 팀원까지 속이며 정법을 속이고 매복에 성공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백새벽의 표정을 보고, 장목화가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 기계 승려 정법 기억하지? 그때 뛰어난 청력으로 우리 계획을 파악했었잖아. 그리고 수정의식교의 시카라 사원에 갇혀 있을 때도 우린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걸 경험하기도 했고.

내가 불경에 대해 이해하기론, 또 여기 불가의 성지가 있다는 사실에 따르면 이상 현상은 분명 그와 관련돼있을 거야. 그 특수한 고등 무심자가 장악한 능력은 예지가 아니라 천이통(天耳通), 천안통(天眼通)일 가능성이 커.

작은 빨강이가 겐은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 있고, 난 생물 전기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하자마자 비밀스러운 주시가 사라졌었거든. 그걸 보고 그런 의심을 하게 된 거지.”

“그렇군요.”

“그렇군.”

백새벽과 겐이 동조했다.

진지하게 고민해보던 용여홍 역시 장목화 말이 일리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 고등 무심자는 내가 조금 전 떤 허풍에 놀라 달아난 건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은 약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래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혹 하나가 있었다.

“팀장님, 상대는 고등 무심자일 뿐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우리 말을 알아듣고 거기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그건 예지 같은 위험에 대한 직감을 바탕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데?”

고등 무심자라면 일정한 지능을 회복했다 한들, 수종이를 따르는 몇몇처럼 비교적 간단한 말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특수한 고등 무심자면 분명 특수한 데가 있겠지. 어쩌면 그 역시 뭔가에 씌어 상대의 번역기 노릇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때, 성건우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고등 무심자를 마냥 얕잡아보면 안 돼요. 수종이 수하는 조금만 더 진화하면 비교적 복잡한 대화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아니야, 팀장님 얘기가 더 그럴듯하게 들려. 여긴 불가 성지인 데다가 일찍이 유옥로가 뭔가에 씌었던 적도 있잖아.’

용여홍이 속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생각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어느덧 또 인격이 바뀐 성건우는 제 의견만 고집하지 않았다. 그저 아쉬워만 할 따름이었다.

“함정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놓친 게 참 아깝네.”

장목화가 한숨을 토해냈다.

“됐어, 됐어. 이제 자자. 오늘 밤에 다시 오지는 않을 거야.”

나머지 팀원들 역시 그녀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 * *

밤을 무탈하게 보낸 구조팀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에 도착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이곳 대문은 여전히 파괴된 상태였고, 구조팀은 15분간 식품회사를 빠르게 수색해보았다. 분명 어젯밤의 상황과 다른 점은 없었다.

뒤이어 성건우는 병력 복원본과 옥부처를 이용해 연달아 같은 방식을 시도했지만, 그것 역시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때 장목화가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우린 어제 정말 환각에 빠진 건가? 그게 에이돌른의 목적이었나?”

다들 혼란에 빠진 동안, 서동수와 여상희가 탄 짙은 색 차량이 다가왔다.

서동수가 먼저 친절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물었다.

“어때, 무슨 발견이라도 했나?”

그에게 성건우는 더 열정적인 모습으로 응했다.

“없었어!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어제 환각을 경험한 거라 볼 순 없지!”

‘환각⋯⋯. 어쩌면 그게 좋은 변명거리가 될지도 몰라.’

아이디어를 떠올린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환각 속에서 변화를 일으켰어. 이것 때문에 내가 언급했던 그 직원 소개란이 온전한 상태를 드러냈지⋯⋯.”

그녀는 그렇게 어제 있던 일들을 그대로 전달했다. 다만 모든 건 환각 자체의 문제로 넘기고 옥부처는 철저하게 숨겼다.

“너희가 겪지 못한 환각을 우리만 겪은 건, 아마 우리가 장하시 연합 철강 공장에서 찾은 병력 때문일 거야. 그곳도 또 다른 불가의 성지지.”

서동수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말을 받았다.

“과연⋯⋯. 근데 너희가 환각에서 본 건 아무 가치도 없는 것 같은데.”

장목화는 일단 병력의 내용을 상대에게 공유한 뒤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 둘 사이의 연관 관계를 찾고 있어.”

그녀는 어젯밤 동료들과 했던 추측까지 밝히진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기도 하고,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는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떻게 감사해야 하지?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될까?”

서동수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고민 끝에 장목화가 이야기했다.

“전에 네가 그랬잖아, 아이언마운틴 시티에서 하드 디스크 몇 개를 찾아 데이터를 복원했다고. 전에 우리한테 정리해서 준 정보도 일부는 거기서 나왔다고. 혹시 그 데이터베이스, 전체 다 복사해서 줄 수는 없을까?”

“너희한테 준 건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정교하게 선별한 거야. 나머지는 다 잡다하고 쓸모없어.”

서동수는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봐도 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살짝 목을 가다듬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민속학자기도 하거든. 구세계 생활 환경에 엄청나게 관심이 있어. 아무리 잡다한 내용이라도 그런 부분에는 꽤 도움 될 거야.”

서동수는 그녀를 한 번 슥 살피더니 소리 내 웃었다.

“좋아.”

뒤이어 그는 차 안에 있는 동료에게 휴대용 컴퓨터를 꺼내달라고 했다.

곧 게네바가 적극적으로 방화벽과 백신 프로그램을 장착하고 나서서, 그 컴퓨터의 모든 자료를 복사했다.

장목화는 서동수 팀 앞에서 바로 이야기했다.

“겐, 일단은 그 데이터, 간단한 필터링만 몇 번 진행해줘.”

“첫 번째 키워드는 장하시야.”

말을 받은 건 성건우였다.

구조팀은 전에도 자신들이 파악한 아이언마운틴 시티 관련 정보에 대해 필터링을 진행했던 만큼 이러한 작업에 매우 능숙했다.

게네바는 빠르게 결과를 알려왔다.

“무역 관련 내용만 몇 건 있네, 아무 의미도 없어.”

백새벽이 바로 대꾸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몬티스.”

지하 방주 첫 번째 주인은 일찍이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가서 구 도시 개조 입찰에 참여하고, 구세계 파괴 후엔 보리 영역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었다.

“없어.”

게네바가 답했다.

장목화는 잠시 또 고민하다가 말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외국 상인.”

이번에도 게네바는 매우 빠른 속도로 검색을 마쳤다.

“외국 상회의 신문 기사만 몇 건 있는데, 몬티스나 구 도시 개조랑 관련 있는 기사는 아니다.”

뒤이어 구조팀은 구 도시 개조 등의 키워드로 여러 차례 필터링에 나섰지만 수확은 없었다. 서동수와 여상희 일행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구조팀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시간만 흘러가던 그때, 장목화가 이리저리 서성이며 입을 열었다.

“키워드, 외국인.”

또 한 번의 검색 이후, 몇 초 만에 게네바의 묵직한 합성음이 흘렀다.

“뭐가 있다.”

“뭔데?”

흥분한 성건우가 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게네바는 고개를 들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아이언마운틴 현지 전자 게시판에 업로드된 게시물인데, 불공평한 법 집행을 질책하는 내용이야. 누군가 이 게시물에 이런 내용을 올렸어.

‘전에 어떤 외국인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한 행인을 치어 식물인간이 되게 해놓고도, 배상금 조금만 지불했을 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무면허 운전을 하던 한 외국인이 행인을 치어 식물인간이 되게 했다고?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용여홍은 등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