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화. 과거의 광경
현재 복도는 매우 어두웠다. 오후 4시쯤이 아니라 저녁 6, 7시는 된 것 같았다. 햇빛도 아주 약간만 남아 있었다.
장목화, 성건우는 계속 유옥로 뒤를 따르며 복도 중턱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성건우가 표지판을 보고 알아서 걸음을 멈췄다.
유옥로가 들어간 곳은 공공 화장실이었다.
매너 있는 성건우는 당연히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장목화는 그를 설득하려 애쓰는 대신 혼자서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옥로는 종잇조각을 그대로 화변기에 던지곤 발로 밸브를 콱 밟았다.
콰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종잇조각은 하수도로 쓸려 내려갔다.
‘구세계 파괴 이후 습격받지 않은 도시는 전기랑 수도 공급이 한동안 유지됐었나 보네.’
짧게 생각하던 장목화는 다시 유옥로는 쳐다보았다.
그녀는 화변기를 내려다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호흡이 매우 거칠었다.
‘굳이 왜 저러지?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장목화는 자신이 이렇게 기묘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이제 성건우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언제 들어온 건지 성건우가 다가와 이쪽저쪽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픽,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매너는?”
성건우가 살짝 인상을 쓰고 답했다.
“고리타분하시기는! 지금 그런 거에 얽매일 때인가요?”
장목화는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살짝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성건우야? 유약하지만 겁 많고 지독한 그 건우인가?’
어느새 숨이 고르게 안정된 유옥로는 화장실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 직원 소개란 앞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성건우와 장목화를 지나치는 와중에도 마치 공기를 스치듯 두 사람에게 눈길 하나 주는 법이 없었다.
원래 방으로 돌아간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일단 직원 소개란의 사진을 찍어 문서로 저장할 생각이었다.
성건우도 벌써 유옥로에게도 시험을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그때였다. 장목화는 유옥로의 인영이 약간 투명해지는 걸 보았다.
장목화가 막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주위 빛은 빠르게 밝아졌다. 유옥로의 인영과 완전했던 직원 소개란은 강렬한 햇볕 아래 눈처럼 녹아내렸다.
곧장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장목화는 그곳에 피어올랐던 짙은 안개 역시 흩어져 사라져 가는 걸 목격했다.
장목화는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방금 무슨 변화 있었어?”
용여홍이 빠르게 답했다.
- 네, 방이 갑자기 엄청 어두워졌어요. 팀장님이랑 건우 인영도 엄청 흐릿해졌고요.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 건물 전체가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아요.
“겐은? 그쪽 상황은 어때?”
장목화가 물었다.
곧이어 게네바의 합성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만, 데이터를 종합하는 중이다……. 됐어. 일차적인 결론은 조금 전 건물 안에서 강렬한 자기장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난 왜 아무것도 못 느꼈지⋯⋯.”
장목화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뒤이어 어느 성건우일지 모를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산속에서는 산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같은 시각, 그의 손엔 조금 전 사라진 옥부처가 다시 나타나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장목화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곧 5시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색해보면서 뭔가 더 나오는지 보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철수하자. 그리고 내일 다시 오는 거야.”
“예, 팀장님!”
성건우의 답은 아주 우렁찼다. 또 어떤 나사가 풀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약 30분간의 노력 끝에 구조팀은 제2 식품회사 내부 상황이 성건우가 옥부처를 사용하기 전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구조팀 전원은 차로 다시 돌아갔다.
* * *
도시 가장자리로 향하는 도중, 구조팀은 그 어떤 토론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야영지를 마련한 후에 브레인스토밍을 할 예정이었다.
그때,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백새벽이 운전 중에 불쑥 입을 열었다.
“구세군 차예요.”
반대편에서 서동수, 여상희 일행의 짙은 색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건우는 바로 차창을 내리고 팔을 뻗어 흔들었다.
“드디어 왔구나!”
짙은 색 차량의 보조석에서도 서동수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이미 제2 식품회사에 다녀왔는데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었어. 기이한 고등 무심자의 습격만 받고. 그러다 그 건물 대문을 부숴버렸어.”
‘……응?’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조팀은 방금 막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에서 나왔다. 당시 그곳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부서진 데라고는 하나 없이 멀쩡했었다.
장목화 역시 서동수의 말과 현실에서 겪었던 일을 연관 지었다.
두 일행은 분명 같은 장소에 가놓고 왜 다른 상황을 목격한 걸까?
게다가 구조팀이 제2 식품회사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구세군과 마주쳤다는 건 구세군이 분명 먼저 탐색했고, 구조팀은 그 후에 도착했다는 걸 확실히 뒷받침해주었다.
망가진 대문이 시간을 거꾸로 흘러 완전무결한 상태로 변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틀림없이 중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장목화가 생체 공학 와우로 손을 뻗는 사이, 조금 전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성건우가 서동수 일행을 비웃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다른 건물을 제2 식품회사로 착각한 거 아냐?”
서동수는 여상희에게 차를 한쪽에 세우라고 한 뒤, 문을 열고 내렸다.
“저쪽 아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그 건물.”
그가 가리킨 곳은 정확히 구조팀이 지나온 그쪽이었다.
장목화도 곧 백새벽을 보며 차를 세우라는 뜻을 표했다.
이후 그녀도 차에서 내려 서동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물었다.
“거기 상황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경험이 풍부한 서동수는 단박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감지하고 자신들이 제2 식품회사에서 목격한 각종 상황을 전체적으로 한번 설명해주었다.
그들이 부쉈다는 대문을 제외하면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기본적으로 구조팀이 보았던 것과 일치했다.
이내 장목화를 따라 차에서 내린 성건우가 대견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길을 잃은 건 아니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본 제2 식품회사랑 너희가 갔던 제2 식품회사에 약간 차이가 있어. 돌아가서 다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같이 갈까?”
서동수의 제안에, 장목화는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차는 한 대만 가져온 거야?”
차 안에는 넷뿐이었다.
서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레드스톤 마켓에서 거래를 기다리고 있어. 와봤자 소용도 없잖아. 이런 작전은 소수 정예만 참여하는 게 기동성도 좋고 효율적이지.”
‘전략적인 전환이네.’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더 이상의 말을 늘어놓는 대신 다시 차에 올라, 백새벽에게 제2 식품회사로 차를 돌리라고 말했다.
구세군의 짙은 색 차량도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잠시 후, 폐허에 우뚝 서 있기는 하나 간판은 없는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앞에 차량 두 대가 들어섰다.
표면은 약간 말라붙은 초록 덩굴에 뒤덮여 스산하고 황량해 보였다.
그러나 모두의 관심사는 그 광경이 아닌 대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무리 집중해도 구조팀의 눈앞에 보이는 건 완전히 무너져 잔해로 쌓인 대문이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온전했던 문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뛰어넘어가야 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순간 용여홍은 마치 조금 전의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된 꿈이 구세군을 만났을 때까지 이어진 듯했다.
마음을 다잡은 장목화는 돌아서 서동수 일행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너희, 여기 언제 왔다고?”
서동수가 얼른 답했다.
“어제 오전!”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의 대문은 어제 오전에 이미 망가져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답을 듣고, 구조팀은 동시에 침묵에 빠졌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백새벽이 먼저 저도 모르게 낮아진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가 조금 전 탐색한 곳은 대체 어디였던 거지⋯⋯.”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겐, 혹시 아까 이상한 문제 같은 거 발견했었어?”
게네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내가 본 대문도 완전한 상태였어. 우리가 저 건물로 들어가는 동안 어떤 장애물을 넘어가거나 하지도 않았지.”
이 지능 로봇의 말에, 서동수도 구조팀이 어떤 일을 겪은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쩌면 너희는 이 구역에 접근하자마자 모종의 이상 현상을 유발해 환각을 겪은 것인지도 몰라.”
“그럴지도.”
장목화도 반박하지 않았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그녀는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한 성건우를 다독인 후, 서동수 일행에게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근데 곧 해가 질 테니 일단은 철수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는 게 낫겠어.”
“현명하군. 우리도 그럴 계획이야.”
서동수가 칭찬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색을 한번 살폈다.
“식품회사 탐색을 마친 뒤에는 어디로 갔는데?”
서동수가 솔직하게 답했다.
“시청을 찾고 있었어. 구도시 개조 계획도와 건축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몬티스가 여기서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을 겪었는지 알아보려고.”
몬티스의 일은 이후 두 번 정도 소통하며 구조팀이 알려준 사실이었다. 다만 그렇게 자세히 알려준 건 아니었다.
지하 방주의 전 주인이 일찍이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가서 구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구세계 파괴 이후 보리 영역의 능력을 각성했다는 사실만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동수 일행은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불가 성지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정보는 충분히 의심할 만한, 중요한 조사 방향이었다.
“그래서, 찾았어?”
장목화 역시 그 부분에 관심이 있었다.
이내 서동수가 쓰게 웃었다.
“찾기는 찾았는데 수확은 없었어. 전에 왔던 유적 사냥꾼이 워낙 많았어야지. 거기 있는 모든 걸 싹싹 긁어 가져갔더라고.”
계획도와 건축 자료 중 종이 문서는 땔감과 화장지로 쓸 수 있었고, 저장 장치는 다른 자원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성건우는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투와 안색을 토대로 논리적인 추리를 해본 장목화는 서동수의 말이 거짓이 아니리라 판단했다. 곧 그녀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내일 확인해보면 우리도 일부 정보는 너희한테 공유해줄게.”
이후 구세군 팀이 맞닥뜨린 고등 무심자 특징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눈 구조팀은 내일 오전 10시에 식품회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뒤 헤어졌다.
* * *
깊은 밤,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 외부, 으슥한 산골짜기 안.
저녁 식사를 마친 구조팀은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오후에 겪었던 일과 수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의심되는 건 환각인데 이 부분은 내일 조사해본 뒤에 다시 이야기해보자. 지금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강준호가 어떤 사람이고, 유옥로에 빙의돼 있던 존재는 왜 그 사람 사진이랑 소개를 찢어버렸냐는 거야.”
장목화는 그 기이한 상황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지나갔다.
성건우가 바로 의욕적으로 나섰다. 일찍이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한 게 있던 모양이었다.
“유옥로와 교제하던 강준호가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 유옥로를 찬 거예요. 유옥로에 빙의한 존재가 그 사진을 찢은 건 유옥로 대신 화를 풀어준 거고요. 유옥로의 소원을 들어주고, 집착을 해소하고, 그 인과를 정리해서 그 육신을 철저히 차지하려는 거죠.”
구조팀원들은 앞부분을 들을 때까지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끝으로 갈수록 눈길을 돌리며 그냥 딴청을 피웠다.
평범한 사람으로선 로맨스에서 갑자기 판타지 스릴러로 장르를 꺾는 성건우의 생각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