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72화 (572/649)

572화. 시도

10분간 구조팀은 텅 빈 1층을 자세히 수색했다. 창문 밖에서도 안쪽 상황을 관찰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어느새 3층까지 오른 구조팀은 성건우가 직원 소개란을 발견했던 그 방에 이르렀다.

소개란이 걸려 있던 벽은 이미 폭격으로 엉망이 돼 있었다.

위에 붙은 사진도 새카맣게 타버렸거나 종적을 감춘 상태였고, 문자로 된 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새벽은 상황을 관찰하며 일차적 판단을 내렸다.

“전투가 한 차례 있었나 보네요. 최소 유탄발사기가 사용됐어요.”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음, 직원 소개란이 파괴된 건 의도치 않은 결과인 것 같아.”

누군가 일부러 그 흔적을 제거하려 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맞아.”

게네바도 백새벽, 장목화의 말에 동조했다.

용여홍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사라진 그 사진을 찾기는 더 어려워지겠는데⋯⋯.”

벽이 온전한 상태고 아직 직원 소개란이 남아있다면, 구조팀은 게네바의 능력으로 잃어버린 사진과 상응하는 소개의 흔적도 분석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유용한 단서를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성건우는 걱정 대신 매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뭔가 기발한 방법을 떠올려야지!”

장목화가 엉망이 된 벽에서 시선을 뗐다.

“잠깐만. 흩어져서 여기 모든 방을 수색해보자. 구석 하나까지 놓치지 말고. 소개란에서 떨어진 사진이 어디 숨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거야.”

사실 장목화도 이렇게 수확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꼭꼭 숨겨져 있던 사진은 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 진작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또 애초에 소개란에서 그 사진과 소개를 떼어버린 누군가의 목적만 놓고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찢거나 태워버렸을 가능성도 매우 컸다.

사진 한 장과 그 밑에 딸린 소개만 가져간 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거나 특별한 감정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었다.

둘 중에서도 전자일 확률이 더 높았고, 그렇다면 해당 증거를 완전히 인멸해버리는 것이 비밀 유지에는 훨씬 확실한 방법이었다.

* * *

구조팀은 1시간을 조금 넘게 들인 끝에 온 건물의 방 수색 작업을 마쳤다. 남은 것이 워낙 적어 방의 모든 게 한눈에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용여홍이 먼저 장목화에게 수색 결과를 알렸다.

게네바도 바로 뒤따랐다.

“나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성건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랑 팀장님이 수색한 쪽도. 근데 팀장님은 지나치게 깨끗하다고 생각한대. 생각했던 것만큼 더럽지 않다고. 쥐 오줌이나 다른 생물의 배설물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원래대로면 그 자리에 남아있어야 할 유옥로의 유해도 안 보여. 그것까지 굳이 가져가려 할 유적 사냥꾼은 없지 않나?”

“시체 성애자라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성건우가 내놓은 의견이었다.

대꾸는 백새벽이 대신했다.

“애쉬랜드의 상황을 감안하자면 그보다는 누군가가 끓여 먹으려고 가져갔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바쁜 황야유랑자 중, 그런 기이한 성 도착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건우가 웃었다.

“이상 성욕이라는 대가가 있다는 걸 잊은 거야? 자동차 배기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시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이유가 어딨겠어?”

논리적인 그의 말에 다들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이후, 백새벽이 다시금 이야기했다.

“내 생각에는 누군가 어디 묻어준 것 같아.”

성건우도 바로 호응했다.

“누가?”

“일찍이 그 사람한테 빙의해 있었던 비정상적인 존재. 그 여자는 첫 번째 빙의 대상이었어. 어쩌면 묘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게네바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백새벽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적당한 표현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용여홍이 얼른 그녀를 도우려 했으나,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직감. 여자의 직감이지. 아무래도 너희는 조금 더 섬세한 마음을 가져야 그런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을 거다.”

“아⋯⋯.”

게네바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합성음으로 짧은 탄사를 뱉었다. 아마 성건우로부터 배운 모양이었다.

“더 섬세한 마음?”

다들 조용한 가운데, 성건우만 의혹 어린 눈으로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순간 장목화는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살짝 발끈했다.

“뭐, 나한테는 그런 것도 없다 이거냐?”

그래도 다행히 이곳이 기이한 불가의 성지라는 걸, 주위에 어떤 위험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에 분노는 애써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정색하고 말했다.

“좋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아무 효과도 못 봤으니까 철강공장 폐허에서 찾은 병력 복원본과 옥부처를 이용해보자.

자, 작은 빨강이 넌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서 밖에서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 작은 흰둥이는 작은 빨강이 아래 대기하면서 뜻밖의 사고도 방지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 건물 한번 관찰해줘. 겐도 밖으로 나가서 각종 기기를 잘 조정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해.”

“예.”

“알겠어요.”

“그러지.”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가 각자 위치로 돌아가 준비를 마쳤을 무렵,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지시했다.

“시작해 봐. 일단은 병력 복원본부터.”

어느새 육식주를 꺼낸 성건우는 천천히 굴리며 염불을 외는 한편, 옷 주머니에 넣어둔 병력 복원본을 펼쳤다.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자세 때문에 육식주의 대가는 더욱 두드러졌다. 이를 목격한 장목화는 얼굴 근육이 살짝 경련했다.

진보적인 데다 안전부 부대에서 일한 적도 있는 만큼 그녀는 성적인 농담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가와 염주, 염불, 성건우의 장엄한 표정은 너무나 모순되어서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거북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성건우는 한없이 담담하게 염불을 외듯 병력의 내용을 읊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성명 방민서, 성별 여, 연령 52세, 기혼, 주소 가족 구역 2구역 4동 302호⋯⋯.”

이 엄숙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장목화는 주위 관찰을 시작했다.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곧이어 성건우가 병력의 내용을 다 읊자, 그녀는 무전기를 들었다.

“무슨 변화라도 있어?”

세 팀원 역시 모두 없다고 답했다.

성건우는 의혹이 어린 얼굴로 병력 복원본과 육식주를 거둬들였다.

“트라우마 안에서는 효과가 있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토론은 이따 하고, 이번에는 옥부처로 시도해보자.”

성건우는 곧장 호수같이 푸른 빛의 옥부처를 꺼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장목화는 주위가 약간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목화는 그 예리한 감각으로 이 건물 내 뭔가가 반응하는 걸 곧바로 감지했다. 그 후 그녀는 성건우의 손안의 옥부처가 조금씩 사라져가는 걸 목격했다. 전에 경계 교회당 어둠에 잠식되던 그때 그 모습이었다.

쿵쿵 떨리는 마음을 안고, 장목화가 창밖으로 고개를 틀었다. 밖에는 어느새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 근처에 붙어있는 용여홍의 인영도 마치 수백 m 이상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장목화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변화가 생겼어.”

그 사이 그녀의 눈빛이 점차 굳어졌다. 성건우의 등 뒤, 바로 직원 소개란이 붙어있던 그 벽이 온전하게 바뀌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망이던 벽이란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어두워진 공간 속, 사진들과 글로 된 소개란이 드러났다.

그쪽을 살피던 장목화는 곧 뭔가를 발견했다. 식품회사 직원들의 사진 중에 판매부장 유옥로의 사진이 있었다.

성건우가 전에 522호 방 주인의 트라우마 속에서 보았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광경이었다.

이때 벽을 향해 돌아선 성건우가 혀를 쯧쯧 찼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걸까요?”

장목화는 조용히 직원 소개란의 네 귀퉁이를 살폈다.

이내 그녀의 눈이 또 한 번 커다래졌다.

그 네 귀퉁이에 뜯겨나간 사진은 없었다.

애써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황급히 성건우에게 물었다.

“사진이 뜯어져 있던 데가 어디라고 했지?”

성건우는 당시 그림을 그리며 설명한 게 아니라 단순한 말로만 상황을 설명했었다. 그때 말했던 사라진 사진의 위치가 성건우를 기준으로 했을 때인지, 소개란이 붙은 벽을 기준으로 했을 때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직원 소개란 좌측 아랫부분이란 말은 소개란 자체의 왼쪽 아랫부분이 될 수도 있고, 성건우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좌측 아랫부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둘이 가리키는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성건우가 짧게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정말 옛날로 돌아왔네? 저쪽이에요.”

그가 바로 소개란 한쪽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즉각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데, 순간 이 방의 문가에서 번쩍 나타난 인영 하나를 감지했다.

일정한 전기 신호도 느껴졌지만 인간 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목화는 공간 환각 능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며 문가를 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시야에 한 인영이 들어왔다.

상대는 여성이었다. 귀를 살짝 덮는 검은 단발머리, 흰 셔츠, 짙은 파란색 정장 재킷, 젊고 아름다운 미모까지 소개란에 붙은 사진과 똑같았다.

“유옥로?”

장목화가 낮은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물론 그녀가 질문한 상대는 문가의 여자가 아닌 성건우였다.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력을 되찾은 것 같네요.”

“하, 기력을 되찾았다고? 젊을 때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아?”

성실한 성건우는 바로 스스로에게 반박했다.

유옥로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장목화는 성건우가 전에 말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언뜻 보면 20대 같아도 제대로 보면 30대 후반 같았다던 성건우의 진술과 달리 문가의 여성은 정말로 졸업한 지 3, 4년밖에 되지 않은 듯했다. 머리와 옷 스타일도 성숙하고 전문적인 티를 내려 노력한 듯 앳되게만 보였다.

성건우, 장목화의 대화에도 유옥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충혈되긴 했어도 눈동자가 혼탁하지는 않은 여자는 두 사람이 안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씩 직원 소개란 앞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벽 앞에 선 그녀가 사진과 소개를 진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명랑한 성격에 사교성이 좋은 성건우는 그녀 곁으로 가서 관찰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 역시 함께 다가가, 먼저 사라진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젊은 남자였다. 단정한 생김새에 머리도 깔끔히 자른, 딱히 도드라지는 특징은 없었다. 나이는 한 23, 4살 정도로 유옥로보다도 어려 보였다. 곧 장목화는 그 사진에 딸린 소개로 시선이 갔다.

[강준호, 판매부장, 아이언마운틴 시티 시민⋯⋯]

‘장하시 출신이 아니네.’

장목화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장하시 연합 철강공장은 그 폐허 철강공장 원래 이름이자 성건우가 가지고 있는 병력 복원본의 발굴지였다. 또 불가의 5대 성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구조팀은 지금껏 사라진 사진의 주인이 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방민서와 이진용의 아들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용여홍이 당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힘주어 주장했지만, 정말로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장목화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다른 사진과 소개글로 시선을 옮겼다. 나중에 자세히 분석할 요량으로 하나하나 기억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어둑한 환경 속, 장목화는 직원 소개를 한 번 슥 훑기만 했는데도 단번에 몇 가지 디테일을 파악했다.

아이언마운틴 시티는 특대형 도시였다. 그런 만큼 이곳에 사는 외부인은 굉장히 많았지만, 식품회사 판매부 직원 중 절반 이상은 현지인이었다.

‘보수가 안정적이면서도 큰 야망이 없는 사람들한테 적합한 직무였나?’

장목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이, 성건우 옆에 서 있던 유옥로가 새로운 동작을 취했다. 옆쪽 코너로 눈길을 돌린 그녀는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한 발 앞으로 나서 강준호의 사진과 그 아래 딸린 소개를 뜯어냈다.

찍! 찍! 찍!

빠르게 사진을 갈기갈기 찢는 그녀를 보고, 성건우는 어찌나 놀란 건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단 손은 들었지만 박수하는 것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뒤이어 유옥로는 흰 판지에 적힌 소개 역시 박살을 내버렸다.

“바람이라도 피웠나?”

성건우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이후 유옥로는 찢긴 종잇조각을 가지고 방 밖으로 나갔고, 장목화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안은 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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