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7층짜리 건물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목화가 묵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 고등 무심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그래도 주위 변화에 주의해야 해. 제8 연구원은 어쩌면 이미 새로운, 그리고 더 강력한 특파원 팀을 조직해서 여기로 파견했을지도 몰라.”
파견의 목적은 이곳의 비밀을 파헤치러 온 구조팀 제거뿐만 아니라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란 불가의 성지 파괴 역시 포함돼 있을 터였다.
보다 현실적이고 맞닥뜨려 본 적도 있는 제8 연구원은 소문 속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고등 무심자보다 훨씬 더 긴장되는 존재였다. 이에 용여홍은 곧장 장비를 착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성건우가 마침 잘됐다는 듯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겐! 저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 입어 봐! 어떤 환경에도 흔적 없이 녹아들어 발각될 리 없는 지능인 킬러! 얼마나 무시무시해? 그냥 사기지.”
‘……그럼 난?’
용여홍이 끼어들려던 그때, 게네바가 대꾸했다.
“괜찮을 것 같은데⋯⋯.”
‘지능 로봇에게 군용 외골격 장치를 권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장목화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 뒤 농담을 했다.
“그래, 우리 팀은 지능인에게도 장비를 착용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 말에, 게네바는 금속 목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상당한 만족을 표했다.
이내 장목화가 용여홍에게 말했다.
“넌 검은 늪 철갑 뱀 인공지능 갑옷 입어.”
그 장비 역시 오른팔이 특수하게 처리돼 있어서 용여홍도 충분히 기계 손을 밖으로 뻗을 수 있었다.
원래 장목화는 본인이 그 인공지능 갑옷을 입으려 했다. 그 초강력 방어력을 통해 적 근처에 이른 뒤 공간 환각 등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그녀의 계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아주 심각한 문제 하나를 발견했다.
그랬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장목화에게는 차라리 자동 내비게이션 기능이 있는 군용 외골격 장치가 더 적합했다.
반고 바이오를 떠나기 전,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한 장목화는 용여홍이 꼭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만 입을 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회사에 검은 늪 철갑 뱀 갑옷에도 특수 처리를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었다. 지금 보니 그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뒤이어 백새벽은 M-45라는 모델의 비교적 신형인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했고, 장목화는 AC-45형을 착용했다.
성건우가 택한 건 개중 가장 구식인 AC-42형이었다. 그는 주로 원격 통제를 맡을 것이었으므로 근거리 전투에 나설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배터리를 아끼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구조팀은 이 상태로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로 향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지하 방주의 아이언마운틴 입구까지는 겨우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었다. 배터리가 바닥난다 한들 그곳으로 철수해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출발해.”
보조석의 장목화가 옆자리에 뚱하니 앉은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번에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용여홍이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이곳에 간접적으로나마 와본 적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보다는 성건우가 더 익숙할 것 같아 그에게 계속 운전을 맡겼다. 휴식은 겨우 90분뿐이었다.
성건우가 곧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출발점이 잘못됐어. 트라우마에 들어갔을 때 전 도시 중앙에 있었어요.”
“⋯⋯알아.”
장목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리고 전술 배낭을 앞으로 돌린 후, 대량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려낸 아이언마운틴 시티 지도를 꺼냈다.
“일단 어디가 눈에 익은지부터 봐봐. 거기 먼저 가보자.”
성건우가 답했다.
“환경도 달라요. 트라우마 속 건물은 대부분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참고할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백새벽이 아무래도 자신이 운전하는 게 낫겠다고 나서려는데, 성건우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걔는 이렇게 도전적인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해요.”
장목화는 살짝 고개를 돌린 뒤,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래, 또 내분이 일어난 모양이네. 아, 진짜 대가만 아니면 이 까다로운 놈은 진작에 밀어내고 내가 운전하는 건데.’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지프는 대략적인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그러나 운전하는 성건우는 불만을 표했다.
“길도 엉망이네. 아주 오래도록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모양이에요. 물질 간섭을 통해 차를 그대로 들어 올려 땅에서 5미터 정도 떨어져 달리고 싶네요. 그럼 훨씬 덜 덜컹거릴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깝네요.”
‘성실한 녀석인가?’
장목화는 뒤를 힐긋 돌아보더니 백새벽과 게네바 사이에 앉은 용여홍을 보고 피식 웃었다.
구조팀은 결국 이 폐허 도시에서 길을 찾는 데 장장 2시간이 걸렸다. 아주 지루한 작업이었다. 성건우가 언제나처럼 우스갯소리를 하며 자기 혼자 입씨름하지 않았다면, 구조팀 역시 내내 불안했을지도 몰랐다.
* * *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구조팀의 눈앞에는 아주 오래됐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선 7층짜리 건물이 자리해 있었다.
건물 표면에는 녹색 덩굴이 뻗쳐있었으나 아직 완전히 뒤덮이지는 않아서 곳곳에 누런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1층 홀 입구에 달려있던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간판은 일찍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누군가 떼어다 땔감으로 쓴 모양이었다.
가슴까지 탕탕 두드리며 여기가 제2 식품회사라 확신하는 성건우가 아니었다면, 용여홍은 아마 목적지를 잘못 찾아온 거라고 의심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잠시 밖을 살피던 용여홍은 어지럽게 널려있는 돌조각과 자라난 잡초를 보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동안 아무도 안 왔나 봐.”
순간 장목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성건우는 겁먹은 듯한 얼굴로 용여홍의 말을 막았다.
“조용, 조용히 해!”
용여홍이 막 대꾸하려던 그때, 장목화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세군 사람들, 이틀 전에 출발했는데.”
“그렇다면⋯⋯.”
용여홍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아이언마운틴 시티까지 거리를 생각해 보면, 구세군 사람들은 진즉 이곳에 도착해 제2 식품회사를 여러 번 탐색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곳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때 백새벽이 떠보듯 물었다.
“길을 잃었나? 표지판 같은 것도 없으니까.”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는 굉장히 드넓었다. 길을 잘못 든다면 목적지를 찾아오는 데 하루 이틀 정도 더 걸릴 수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조심하자.”
장목화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말을 맺자마자 전술 배낭을 앞으로 돌려 지퍼를 여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장목화가 바로 경계심을 드러냈다.
“뭐 하려고?”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옥부처를 꺼내려고요.”
장목화가 잠깐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단 일반적인 수색부터 하자. 그러고 나서 그 병력과 옥부처가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 확인하는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자극적으로 나가면 그 누가 견딜 수 있겠어?’
“그러죠.”
성건우는 아쉬운 듯 손을 거뒀다.
지프에서 내린 성건우가 말했다. 지금은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였다.
“허공에 신호탄을 한 발 쏴서 서동수 일행에게 제2 식품회사가 이곳이라는 걸 알려주는 건 어떨까요?”
용여홍이 바로 되물었다.
“그러다 적들이 오면 어쩌려고?”
현재 가면을 쓰지 않은 성건우는 있는 그대로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장목화에게는 어딘가 익숙한 웃음이었다.
“오히려 잘된 거 아냐? 미리 잘 숨어서 신호를 보고 달려든 적들이 알아서 함정에 빠져들기를 기다리면 되잖아.”
“어⋯⋯.”
약간 설득된 용여홍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번엔 장목화가 웃으며 성건우를 놀렸다.
“하하, 야. 제8 연구원 특파원들 지능이 그렇게 낮을 것 같아? 내가 그 사람들이면 누가 신호탄을 쐈고, 그 장소가 마침 내가 가려던 제2 식품회사면 바로 원거리에서 폭격을 퍼부을 거야. 목적은 이 불가 성지 파괴지, 보호가 아니니까 더 편하고 안전한 방법을 취한다고 문제 될 건 없잖아.”
백새벽이 이의를 제기했다.
“제8 연구원 특파원의 일 처리 방식은 비교적 은밀하고, 그 인원은 소수 정예에요. 이쪽은 그 사람들 본거지도 아닌데 어떻게 유도탄과 다연장 로켓 같은 무기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어요?”
원거리 폭격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기는 굉장히 얻기 어려워서 대형 세력에서만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거나, 대량의 조작 인원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수십 개, 혹은 100개의 대구경 대포로도 먼 곳의 제2 식품회사 구역을 뒤덮을 순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졌고 한 번에 동원되는 인원도 너무 많았다. 이는 제8 연구원 특파원 스타일이 아니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설명했다.
“대형 빌런이자 배후 흑막에게는 암암리에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과 팀이 있기 마련이야. 안 그럼 누가 그들한테 정보를 전달하고, 특파원을 위한 물자와 안전 가옥을 준비해주겠어?
생각해 봐, 우리가 퍼스트 시티에서 습격당했을 때 그 특파원도 팀의 도움을 받았었잖아. 그러니 제8 연구원을 절대 얕잡아보면 안 돼. 어쩌면 이 주위에 그들의 명령에 따르는 중형 세력이 있을지도 몰라. 언제라도 그 특파원한테 화력을 지원할지 모른다고.”
장목화는 제8 연구원에 비하자면 반고 바이오는 아직 대형 빌런이라는 역할을 맡기는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성건우가 왼손바닥에 오른주먹을 내리쳤다.
“그러네요. 회사처럼요!”
“⋯⋯들어가자.”
장목화는 한 손으로 바주카포를 받쳐 들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백새벽, 용여홍에게 밖에 남아 지원을 맡으라고 하지 않았다. 철강공장 가족 2구역 4동에서 있었던 일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비슷한 상황에서는 여러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때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지프는 매우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으슥한 곳에 세워뒀다. 제2 식품회사는 총 7층이라, 구조팀이 옥상에 오른다 한들 성건우가 충분히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장목화 역시 상대의 전기 신호쯤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 * *
총 세 조로 나뉜 구조팀은 성건우, 장목화 조를 필두로 속속들이 식품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성건우가 트라우마에서 본 것과는 판이했다. 곳곳에 떨어진 포장지는 거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엎어졌거나 서 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와 대량의 카운터도 보이지 않았다.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네⋯⋯.”
용여홍이 얼룩덜룩한 벽과 갈라진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적 사냥꾼들이 해마다 찾아와 훑고 지나간 결과였다.
용여홍의 말을 듣고,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곳이 철강공장 폐허의 불가 성지와 같다는 뜻이야. 표면적으론 아무 이상도 없지. 유적 사냥꾼들은 말하자면 마른오징어의 물까지 다 꼭꼭 짜서 훑어갔어.”
“맞아, 맞아요.”
내내 장목화보다 더 앞서 걷고 있던 성건우가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