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69화 (569/649)

569화. 꺼내다

경계 교회당 홀은 소리소문없이 어둠에 뒤덮였다. 벽등들은 여전히 어스름한 노란빛은 발산하고 있었지만,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빛만 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발도 차가워졌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험준한 절벽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바위를 보고 있으면서도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강렬한 공포에 그녀의 머리에선 자극적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장목화는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10월의 에이돌른이 신세계에서 이쪽으로 재차 시선을 돌린 것이었다.

이 순간, 장목화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도 낭떠러지 끝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반걸음만 더 나아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떨어져 온몸이 흔적도 없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인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전자에서 기인하는 이 본능적인 공포는 사람들의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

경계 교파, 공포 교단, 친절한 손의 구성원은 동시에 엎드리더니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댔다. 누구도 감히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공포 교단 사람들은 특히 더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위엄있고 무관심한 시선은 한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듯했다. 그 주시에 여기 모두가 자신들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장목화 역시 고개를 숙였다.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마구 솟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달지기 에이돌른이 그 신도가 아닌 자신들을 중점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여홍도 이를 위아래로 부딪히며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장목화는 곁눈으로 손에 꼭 쥐고 있던 해바라기씨를 버리고 힘겹게 전술 배낭을 앞으로 끌어오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결국 전술 배낭에 손을 넣은 성건우는 바들바들 떨면서 아주 천천히 뭔가를 찾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오른손을 펼쳤다.

성건우의 손엔 호수 같은 색상의 작은 옥부처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짙은 어둠은 순간 그 옥부처를 집어삼키려는 듯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옥부처는 실체를 잃은 것처럼 이상하리만치 흐릿해지더니 조금씩 흩어져 사라졌다. 꼭 현실과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신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은 단 2, 3초 만에 썰물처럼 천천히 밀려갔고, 옥부처는 조금씩 성건우의 눈앞에 드러나면서 다시금 실체를 갖췄다.

거의 동시에 장목화는 반쯤 열린 흰색 문 뒤, 끝없는 어둠 속의 보일 듯 말 듯 한 여성의 인영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로부터 또 몇 초가 지나자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다. 벽등의 빛이 전처럼 홀 안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달지기의 주시는 그렇게 급작스레 시작됐다가 기이하게 사라졌다.

“헉, 헉⋯⋯.”

용여홍의 입가로 비로소 거친 숨이 튀어나왔다. 곁눈으론 옆에서 여전히 살짝 떨고 있는 백새벽이 보였다.

이내 용여홍이 애써 입을 열었다.

“이게 달지기의 주시인가요?”

“맞아.”

경험자인 장목화가 단호하게 답했다.

이때 이미 다시 손을 움츠려 옥부처를 움켜쥔 성건우는 또 바닥에 떨어진 해바라기씨를 줍고 있었다.

장목화는 그의 절약 정신을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그 담대함을 칭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용여홍은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 있는 3대 교파의 구성원들을 훑어본 후, 백새벽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휴, 에이돌른이 이곳을 직접적으로 주시한 건 경고하기 위해서일 거야. 저들도 더 이상 이런 시시껄렁한 주제로 논쟁하려 하지 않겠지.”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계 성휘 앞의 교회당 주교 안토넬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간소한 흰색 가면을 쓴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달지기께서 이곳을 주시하셨습니다! 우리의 토론이 의미 있다는 뜻입니다! 달지기께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에요! 다들 계속합시다!”

‘엥?’

용여홍은 시선을 거두다가 초유근이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얼굴에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와, 그런 식으로도 해석 가능하다고? 이 사람들 진짜 제멋대로네.’

그 순간, 용여홍은 자신과 초유근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 아니 내가 왜 저 자식이랑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작은 흰둥이에게 치근거리기나 한 놈이랑!’

용여홍은 얼른 이성을 되찾았다.

토론이 다시 이어지는 동안 장목화는 더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수시로 멍해지기 일쑤였다.

반면 성건우는 여전히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손뼉까지 쳐가며 몰입했다.

* * *

드디어 오늘의 교구 회의가 끝나고, 구조팀도 지하 2층 접견실로 돌아왔다. 장목화는 이곳에서야 성건우를 보며 묻고 싶던 질문을 했다.

“옥부처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거지?”

‘……?’

용여홍과 백새벽은 당시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잔뜩 겁을 먹고 있었던 터라 성건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지능 로봇 게네바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핵심 모듈이 주위 데이터를 분석한 뒤, 이런 상황에선 고개를 움츠리고 몸을 웅크려야만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는 피드백을 줬기 때문이다.

또 그런 상황에는 겁을 먹은 척을 해야 더 인간다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게네바는 마찰음이 날 정도로 금속 골격에 진동을 일으키면서도 주위 상황을 관찰하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달지기의 주시를 경험한 적이 있는 장목화만큼이나 침착했다.

곧 성건우가 주머니에 넣어둔 옥부처를 꺼내며 진지하게 답했다.

“질감, 색, 투명도, 촉감에는 아무 변화도 없어요. 늘어난 능력도 없고요. 근데……. 전이랑은 달라진 느낌이 들어요. 아주 약간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용여홍이 물었다. 그는 백새벽 역시 궁금해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성건우는 모두를 위해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한번 설명해 주었다.

제일 먼저,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에이돌른의 선물인가?”

그러자 장목화가 바로 말했다.

“선물이란 표현은 하지 말자. 나중에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르니까.”

그녀는 최근 한 구세계 소설을 읽고 선물이란 단어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후 성건우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깔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표식일 수도 있고.”

역시 용여홍은 제일 먼저 숨을 헉, 들이킨 뒤 화제를 전환했다.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왜 옥부처를 꺼냈어?”

성건우는 정색하고 대꾸했다.

“이게 약간 움직이는 것 같더라고.”

“⋯⋯.”

용여홍은 성건우의 말이 진실인지, 그냥 늘 그랬듯 헛소리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때 감정을 추스른 장목화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옥부처의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거면 겐한테 넘겨. 겐의 측정기로 전면적인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어. 검사를 마치면 방으로 돌아가서 쉬자. 내일 오후에는 아이언마운틴 시티로 출발해야 하니까.”

“그래, 먼저들 가서 쉬어. 난 충전하면서 검사를 진행하면 되니까.”

게네바가 동료들을 배려했다.

“안돼, 무슨 뜻밖의 사고라도 일어나면 어떡해?”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걱정을 표했다.

“맞아.”

백새벽도 동조했다.

* * *

게네바가 검사를 마쳤을 때는 밤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가 옥부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자체적인 자기장이 일반적인 옥에 비해 약간 다르긴 한데, 그 외의 모든 건 다 정상이야.”

그에 대한 표본이 없으니 게네바도 정확히 몇 %나 차이가 나는지까지 계산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다른 부분이 있었네.”

“그럼 특정 장소에서 옥부처가 무슨 변화를 보이려나?”

백새벽이 말하는 특정 장소란 구조팀의 이번 목적지인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를 포함한 불가의 5대 성지 중 한 곳이었다.

“아마도.”

용여홍이 사뭇 진지하게 대꾸했다.

성건우가 바로 흥분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랬으면 좋겠다! 변화가 있어야 단서도 생길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변화여야겠지.’

용여홍이 막 이렇게 대꾸하려는데, 장목화가 손뼉을 쳤다.

“자자, 지금 토론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아. 다들 돌아가서 쉬자, 이젠.”

* * *

방으로 돌아온 뒤, 성건우가 장목화에게 말했다.

“회복을 마쳤으니 오늘 밤에는 다시 그 여객선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

장목화는 잠시 고민했다.

“오늘은 상황만 확인해. 지나친 시도는 금지야. 혹시 또 무슨 뜻밖의 일이 발생하면 네 정신이 다시 타격을 받잖아. 그럼 우리 아이언마운틴 시티 출발 일자도 또 늦어지게 되는 거야.”

“맹세해요.”

성건우가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의 성건우는 정신 연령이 가장 어리고 또 가장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였다.

* * *

심령의 복도, 912호.

다시 이곳에 들어온 성건우는 자신이 현재 여객선의 어느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건우는 창밖을 봤다가, 마침 파란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과 눈이 마주쳤다. 전과 달리 지금은 또 하늘이 밝았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던 건가?’

턱을 매만지며 방문을 연 성건우가 복도로 나갔다.

이윽고 성건우 앞으로, 누군가 트림하며 지나쳐갔다.

상대의 오른쪽 눈썹 끝에는 점이 하나 나 있었다.

성건우는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전에 마주친 세 남자 중 한 명이었다.

처음으로 봤을 때는 평범하기만 했던 상대는 두 번째로 봤을 때는 광기에 차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정신도 멀쩡해 보였고 행동도 정상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와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아니, 다른 점이 하나 있긴 했다.

그는 지금 두 일행 없이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나 오랜 친구처럼 굴며 농담하길 좋아하는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어이, 두 친구는 어디 갔어?”

상대는 애쉬랜드인이었기에 일부러 레드리버어를 할 필요는 없었다.

오른쪽 눈썹 끝에 점이 난 남자가 몸을 틀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아직 식당에 있어. 끅⋯⋯.”

순간 말을 맺기 무섭게 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때 그 자식이잖아! 내가 무슨 바보인 줄 알아? 어젯밤에 날 조롱한 놈도 못 알아볼까 봐?”

이야기하는 사이 앞으로 나선 그가 주먹을 쳐들었다.

성건우는 분노는커녕 기뻐하며 자신보다 키 작은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오른팔을 굽히자, 불룩해진 근육에 소매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사실 성건우는 대학 졸업 당시만 해도 근육질의 몸은 아니었다. 상당히 마른 편이었는데, 구조팀에 가입하고 난 이래론 체중도 훨씬 늘고, 근육질의 탄탄한 몸이 되어 힘도 매우 세져 있었다.

성건우의 압도적인 키와 옷 아래 감춰져 있음에도 존재감이 뚜렷한 근육을 확인하고, 남자는 묵묵히 손을 거뒀다.

“너 같은 놈하곤 상대도 하지 않는 게 낫지.”

남자는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리며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는 혼자였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따져보는 게 좋았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총을 뽑아 드는 사이 상대의 주먹이 먼저 날아들 것이다.

멀어지는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성건우가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데, 그 속도는 현실과 다른 모양이네.”

현실 세계에서는 며칠 만에 이 트라우마에 방문한 것인데도 이곳은 겨우 하룻밤만 지나있었다. 혼란과 광기에 차 있던 사람들도 날이 밝은 뒤엔 원상태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중요 정보를 파악한 성건우는 배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식당?”

그는 곧 눈썹 끝에 점이 난 남자가 왔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복도 양옆에 붙은 방들을 힐끔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