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새로운 섬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상하네. 아직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찍이 어떤 거물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거든. 제8 연구원 내의 몇몇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변화를 겪고 어둠의 앞잡이로 전락했다고.”
그 거물은 퍼스트 시티의 전 황제, 소스 브레인의 아버지 오레이였다.
서동수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수십 초쯤 지나 입을 열었다.
“곧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갈 생각인가?”
“정보를 조금 더 수집한 다음에. 혹시 뭐 더 아는 거라도 있어?”
장목화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물었다.
서동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돌아가 정리한 다음 레드스톤 마켓의 도 대장을 통해 전달할게. 근데 큰 기대는 말고. 우리 구세군과 아이언마운틴 시티 사이는 퍼스트 시티에 가로막혀 있어. 이전까지는 이쪽에 발도 들이지 못했지.
현재 파악한 정보는 제2 식품회사라는 불가의 성지를 탐색해야겠다고 결정한 후에야 천천히 모은 거니까 너희가 파악한 만큼 풍부하진 않을 거야.”
“상부상조하는 거지.”
웃음기 어린 말투로 답한 장목화가 뒤이어 여유롭게 덧붙였다.
“인수영이란 구세계 천재 과학자는 알고 있어? 그 사람과 아이언마운틴 시티, 영생인 프로젝트, 승려 교단은 어느 정도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거든.”
서동수는 잠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들은 적 없어. 이따가 전보를 보내 조사해보게 해야겠네. 수확이 있으면 알려줄게.”
“좋아.”
성건우가 기쁘게 응했다.
양측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서동수와 여상희는 감사의 뜻을 표한 뒤 먼저 돌아서서 약속 장소를 떠났다.
먼 곳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장목화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구세군이 타락했다고들 하더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바로 걸음을 뗀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저들을 따라가시려고요?”
“…….”
장목화는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 * *
지하 방주로 돌아오는 와중, 용여홍은 성건우와 어깨동무한 게네바를 바라보다가 보조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팀장님, 구세군에서 정보를 주면 바로 아이언마운틴 시티로 가나요?”
그는 레드스톤 마켓에 며칠 더 있고 싶었다. 여길 떠나면 아이언마운틴 시티로 출발함과 동시에 방은커녕 텐트에서도 지내기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급하게 굴 필요는 없지. 어쨌든 건우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니까. 야는 우리 팀 최강 전력이잖아.”
장목화의 답에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칭찬을 받은 성건우는 곧장 고개를 틀어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난 이제 네가 받는 전자파 신호도 방해할 수 있어!”
흠이 있어야 더 인간다워진다는 이야기에, 게네바는 전처럼 정좌하는 대신 성건우처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더불어 금속으로 만들어진 팔꿈치를 성건우 어깨에 받치고 있기도 했다.
“문제군. 음성 수집 장치를 개량하고 싶기도 하고, 나한테 장착된 생체 공학 재료 비율도 높이고 싶은데. 그래야 전자파 신호를 방해하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만나도 내 촉감이 받는 영향을 적잖게 줄일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인간처럼 피부로 환경의 온도와 습도 등을 직접 파악하고 싶었다.
게네바의 핵심 부품은 전부 절연체로 보호받고 있었다.
“돌아가면 회사의 관련 연구에 성과가 있었는지 확인해볼게.”
장목화도 게네바의 생각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환경 정보를 왜곡할 수 있는 깨진 거울 영역 각성자 앞에선 아무 소용도 없을 터였다.
성건우 역시 그런 생각을 한 듯 양손을 펼치며 고개를 살짝 젖혔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디 있나요!”
이때 운전 중이던 백새벽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에이돌른과 깨진 거울, 두 달지기의 관계는 어떨까요?”
“경계 교회당을 거칠 때 한 번 물어보자.”
그리고 장목화가 몸을 틀어 성건우를 보며 웃었다.
“두 달지기 관계가 형편없을 정도로 나쁘다면, 넌 아마 레드스톤 마켓에서 한 짓만으로도 흠씬 두들겨 맞을 거다.”
성건우가 웃었다.
“그러려면 일단 저를 때릴 수 있어야겠죠.”
“교구 회의를 위해 여기 모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차치하더라도, 경계 교회당 자체만 해도 네가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에이돌른은 언제라도 이곳을 주시할 수 있다고. 디마르코처럼 지하 방주에 짓눌린 채 갇힌 신세가 되고 싶어?”
장목화는 바로 성건우의 자신감 넘치는 기세를 눌렀다.
* * *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이, 구조팀은 경계 교회당 밖에 이르렀다.
백새벽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각자 나무 상자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다.
백새벽만 빠진 이유는, 유전자 개량 효과가 약간 떨어지는 데다 근육이나 힘의 강화를 택하진 않은 그녀를 위한 동료들의 배려였다.
솔직히 감지 범위가 지하 2층을 아우르는 성건우라면 전기차 근처에 누군가 접근할 경우 원격 조종해 경고음을 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고작 그 정도의 조치를 위해 성건우의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더군다나 그는 지금 회복을 위해 휴식이 절실했다.
그러니 군용 외골격 장치나 인공지능 갑옷 같은 것들은 최대한 근처에 두면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 * *
붉은색, 금색으로 칠해진 교회당으로 들어온 장목화는 가면을 쓰지 않은 한 남자를 목격했다. 그는 배후에 기습을 당할까, 겁을 잔뜩 먹고 벽에 달라붙다시피 해서 숨죽여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엇?”
한 통풍관 안에서 훌쩍 뛰어내린 사람이 허공에서 소리를 냈다.
벽에 붙어가던 남자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몸을 굴리며 총을 빼려 했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사람은 착지하자마자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 옆문을 통과한 뒤, 홀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게 뭐지?”
용여홍은 그걸 보고 의아해했다.
2초간 고민하던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숨바꼭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네. 놀라게 하기! 플레이어는 발각되지 않도록 숨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놀라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원숭이 가면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장목화는 성건우의 몸짓 언어만으로도 그가 이 게임을 굉장히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 순간, 위쪽 통풍구에서 최대한 억누른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거 아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백새벽은 흰 가면을 쓰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교회 경비 한 명을 발견했다.
교회당 경비는 몸을 살짝 내민 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말했다.
“이건 공포 이단의 의식이야. 갑작스럽고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통해 신도들이 늘 공포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래.”
“지나친 충격에 죽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이는 자비로운 제도 선사의 질문이었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건우는 어느새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그러자 교회당 경비가 마뜩잖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니까 이단인 거지.”
정말로 쇼크사한다면 자연히 달지기 에이돌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구나. 그럼 저들의 대형 미사는 어떤 식인데?”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경계 교파의 대형 미사는 숨바꼭질이었다.
통풍구 안의 교회당 경비는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일단 모든 사람을 밀폐된 건물에 모아두더라고. 다들 위장한 다음 요괴나 귀신 같은 걸 흉내 내면서 최대한 서로를 놀라게 하는 것 같던데.”
이 교회당 경비는 애쉬랜드인이었다.
“오오⋯⋯.”
성건우는 흥미를 느낀 듯 작게 감탄했다.
그걸 보자마자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작은 틈도 주지 않으려 교회당 경비에게 얼른 감사 인사를 한 뒤, 팀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지프에 손상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게네바는 완곡한 방식으로 그녀의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건 감성 지수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직접 지적했다간 장목화의 대가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될 거란 분석 결과 때문이었다.
가면 속 숨겨진 장목화의 입꼬리가 억지로 말려 올라갔다.
“맞아.”
재차 고개를 든 그녀가 조금 전의 그 통풍관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깨진 거울에 대해 들어봤어?”
“달지기잖아.”
교회당 경비는 그렇게 우호적인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 * *
1시간 동안 자유롭게 휴식한 구조팀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운 장목화는 이미 잠든 맞은편의 성건우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줄곧 짬을 내어 기원의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두 번째 섬을 찾아내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 * *
잠시 후, 미약한 빛이 흐르는 바다와 하늘의 교차점에 황량한 산 같은 섬이 나타났다.
순간 조금 흥분한 장목화는 더욱 빠르게 헤엄을 쳤다.
그녀는 구현한 교통수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신력이 더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나무가 시들시들한, 황량한 목적지에 이른 장목화는 가볍게 그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아무런 이상 현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주위를 한번 돌아본 장목화는 이 섬의 황량한 산에 자리한 거대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조심스레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굴 속의 평평한 광장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결과, 점차 그 익숙함의 출처를 깨달았다.
이곳은 반고 바이오의 지하 주차장과 똑같았다. 그러나 기둥만 있을 뿐,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장목화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기억에 의지해 지하 빌딩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녀는 길을 잃고 말았다.
동굴 밖에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동굴 밖에는 각종 표지물이 있어서 그에 맞춰 이동하기만 하면 길을 잃지는 않을 수 있었다.
결국 장목화는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정확한 노선도를 그릴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 노선도 아래서도 그녀는 적잖게 힘을 들인 끝에야 겨우 엘리베이터 구역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장목화는 647층 버튼을 눌렀다. 정말로 반고 바이오에 돌아온 것처럼 엘리베이터는 순순히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구조팀 사무실 14층으로 가도 사무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책상과 의자만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정확한 엘리베이터 구역을 찾아간 장목화는 또 한 번 아래로 내려갔다.
장목화는 노선도를 따라 자신의 집, 349층 C구역 12호 앞에 이르렀다.
창문을 보니 역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티테이블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듯했다.
빌딩 전체가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다. 버려진 지 아주 오래된 곳 같았다.
방문을 연 장목화는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정신력이 거의 바닥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모습이 빠르게 흐릿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