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66화 (566/649)

566화. 같은 이상

각진 얼굴에 짙은 눈썹, 나이는 대략 서른일고여덟 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간단히 자기소개부터 했다.

“서동수다.”

그 후 옆에 있는 곧은 눈썹과 반듯한 콧대의 젊은 남자를 가리켰다.

“여상희고.”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과 성건우의 가명을 댔다.

양측이 인사를 마치자, 오후에 일부러 한숨 자고 온 성건우가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구세군이야?”

서동수가 자기 세력에 이렇게 호의적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대부분 40살 이상이었다.

혼란의 시대 중후기와 신력이 시작된 지 십여 년이 지날 때까지 인류의 삶은 그야말로 암흑 속이었다. 무심병과 변이, 기아, 전란 속, 혼란은 한층 더 사람들을 짓누르며 숨통을 조였다.

그때 전 인류를 위한다는 구호를 제창하며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던 구세군은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각종 조치가 굉장히 필요성 있는 것이라 느꼈고, 그것이 당시 존재하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서동수는 성건우를 응시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아버지나 조상이 우리 구세군과 무슨 관련이 있나?”

“아니.”

일단 고개를 젓고 한발 앞으로 나선 성건우는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서동수는 2초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같은 예를 취했다.

“전 인류를 위해!”

이를 보고 옆에 있던 여상희가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 세력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서동수가 소리 내 웃었다.

“그렇게까지 당파에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혼란의 시대에는 전 인류를 위해 분투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기만 하면, 구세군에 가입했든 안 했든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였어.”

“그럼, 그럼!”

성건우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장목화는 살짝 서동수를 떠보았다.

“겉보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모양이지?”

외양만 봐서는 기껏해야 서른일고여덟 살로 보이는 서동수가 웃었다.

“난 쉰 살이 넘었어. 혼란의 시대 중후기에는 핏덩어리에 불과했지.”

그는 이 주제를 계속 끌지 않고 즉각 본론으로 되돌렸다.

“근데 너희들도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에 관심이 있다고?”

장목화가 웃었다.

“산 요괴를 보러 갔다가 그쪽 얘기를 들었어. 불가 성지가 목표인 거야?”

그녀는 확실히 더 직접적으로 물었지만, 서동수는 이 질문에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너희도 마찬가지군⋯⋯.”

“우린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의 기원을 조사하다가 불가의 5대 성지를 알게 됐어. 그리고 거기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고.”

자폭은 장목화가 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구세군의 일원으로 여기는 성건우가 줄줄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를 저지할 시기를 놓친 장목화도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건우가 솔직하게 굴자, 서동수는 뭔가 더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리가 불가의 성지를 인지한 건 잡아들인 제8 연구원의 특파원들 때문이야. 너희들이라면 그 조직도 알고 있겠지?”

‘과연 구세군이네, 특파원들을 잡아들였다니.’

장목화는 답을 하는 대신 되물었다.

“그게 불가 성지와 무슨 상관인데?”

서동수가 보다 심층적인 설명에 나섰다.

“제8 연구원은 무심병의 기원과 구세계의 비밀을 조사하려는 우리를 내내 방해해왔어. 어쩌면 그건 구세계 파괴의 진상과 연루돼 있는지도 몰라.

우리는 그들이 구세계의 비밀 실험실들을 파괴하고, 상응하는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불가의 성지를 매장하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어.

그리고 그중 그들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곳은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뿐이야.”

‘제8 연구원이 불가의 성지를 그렇게나 중시하고 있다고?’

장목화는 순간 그것에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성건우를 가리켰다.

“우리 동료가 일찍이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포함된 트라우마를 깊이 탐색한 적이 있어.”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포함된 트라우마를 탐색했었다니!

서동수는 입을 벌렸지만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는 개인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공 정보가 아니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경험에 속한 만큼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서동수는 그냥 침묵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장목화도 세워둔 계획이 있는 듯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했다.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에는 확실히 뭔가 이상한 데가 있어.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것에 대응하는 트라우마에 영향을 미칠 정도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 일엔 육식주나 옥부처처럼 구조팀의 적잖은 비밀이 연루돼 있어, 장목화는 그 이상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경험이 풍부한 서동수는 빠르게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트라우마의 주인은 당시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에 진입한 후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으나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가? 그래서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것을 탐색한 네 동료는 트라우마에서 기인하는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 주인은 그때만 해도 아직 각성자가 아니었거든.”

여상희가 깜짝 놀라 그대로 굳은 사이, 서동수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못 참겠다는 듯 반문했다.

“그러니까, 방 주인은 영향을 받은 뒤 각성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기원의 바다를 순조롭게 건너기까지 했다? 그리고 심령의 복도에 진입했는데도 그 영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건가?”

“지금은 사라졌을 거야.”

성건우가 뿌듯하게 답했다.

잠시 고민하던 서동수가 떠보듯 물었다.

“숙명통?”

그는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불가 성지 중 한 곳이라는 사실에서 바로 숙명통이라는 능력을 연상해냈다.

‘과연 대형 세력의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답네. 꽤 많은 걸 알고 있어.’

장목화는 상대를 속이려 하는 대신 솔직하게 답했다

“우리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

서동수는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소한 신세계 급의 숙명통이어야겠지.”

그도 장목화,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하고, 중요한 정보도 알려줬으니만큼 자신의 경험과 식견을 아끼지 않고 드러냈다.

“설마 그곳에 죽지 않은 미라가 하나 묻혀 있기라도 한 건가?”

성건우가 짐짓 놀란 듯 중얼거렸다. 염호를 토대로 한 짐작이었다.

그때, 장목화가 즉각 그 트라우마를 탐색하는 동안 성건우에게 있었던 일들을 마저 이야기했다.

매번 다른 상태를 보였던 커리어우먼 유옥로, 사진과 소개가 사라진 직원, 몇 차례나 시작점으로 돌아왔던 성건우의 경험이 포함된 이야기였다.

물론 장목화는 성건우가 끝내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제도 선사가 병력을 경처럼 읊었을 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성건우가 몇 차례 겪은 상황과 보리 영역의 각기 다른 능력을 한데 연결 지은 서동수는 짙은 감정이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불가의 성지 중 하나답네⋯⋯.”

그 이후 장목화, 성건우를 한번 바라보던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렇게나 성의를 보였으니 나도 마냥 입 다물고 있을 순 없지. 일단 확인부터 좀 할까? 무심병 기원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지?”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신세계. 아직은 우리 추측일 뿐이지만.”

서동수는 본능적으로 좌우를 살폈다.

“잠에 빠진 신세계 강자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내 말은, 자발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자들 말이야. 예를 들어 분노의 호수 중앙 섬에 있는 염호처럼.”

그는 레드스톤 마켓의 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인 신사와 염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곧 장목화는 회사에서 제공한 주의사항을 비교적 모호하게 설명했다.

“염호 주위 구역에서 일정 시간 이상 머물러 있으면 무심병에 걸려. 염호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시간은 짧아지고.”

서동수가 웃었다.

“정말로 아는 게 많네. 그래서 신세계가 무심병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신은 신세계에 진입했으나 육신은 애쉬랜드에 남아있는 강자들은 하나의 교차점처럼 무심병의 전파를 유도한다고?”

성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셈이지.”

서동수가 다시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구세군의 추측도 그와 같아. 우리 중 신세계에 진입한 몇몇 선배는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암시는 해줬지.”

“왜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는 거야? 모든 인류를 위한다는 정신은 어디에 팔아먹은 건데?”

성건우는 순간 흥분한 듯 살짝 분개하고 있었다.

곁에서 장목화는 속으로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성실한 성건우야, 강렬한 동정심을 가진 성건우야, 아니면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야?’

솔직히 말해 그녀는 이 구세군 두 명이 부끄러워하다 못해 분노한 나머지 성건우에게 바로 달려들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됐다.

젊은 여상희는 확실히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쉰 살이 넘었다고 말했던 서동수는 그저 침묵하다 자조하듯 웃었다.

“나이 많은 일부 선배를 제외한다면, 내가 봐온 사람 중 전 인류를 위한다는 구호에 제일 진심인 사람은 너야. 외부인인 너.”

빠르게 표정을 거둔 그가 다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말하기 어려운 걸 수도 있고, 아직 기회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우리 추측에 착오가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그 착오에 그들이 우리에게 무심병의 기원을 직접 알려주지 못하는 이유가 포함돼 있을지도 모르고.”

잠시 말이 그쳤지만, 서동수는 성건우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하, 하마터면 너 때문에 옆길로 샐 뻔했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염호처럼 상태가 이상한 신세계 강자가 주위에 무심병을 전파할 수 있다고 친다면 이건 너무 명확하고 또 매우 중요한 단서야.

그렇다면 구세계 파괴 원인과 관련한 정보 제거를 소임으로 여기는 제8 연구원에서는 왜 그들의 존재를 내버려 두고 있는 걸까?

우리가 잡아들인 제8 연구원 특파원 중에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세 명 포함돼 있어. 그러나 그들은 염호 같은 신세계 강자를 죽이고 관련 흔적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그런 숙면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야. 그들은 적어도 그중 일부 숙면자의 구체적인 소재를 파악하고 있어. 근데 제8 연구원 고위층은 그들에게 그런 장소에 관여하지 말고 우회하라고 했다는 거야.”

‘심령의 복도 급 특파원을 셋이나 잡아들였다고?’

장목화는 구세군의 강력한 실력에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각성의 일부 비밀을 장악하고 있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여럿을 연달아 잃어도 별 타격이 없는 제8 연구원을 부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내 또 어떤 인격으로 바뀌었을지 모를 성건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길 수 없기 때문일 수도⋯⋯.”

구세군에서 잡았다는 특파원 중 수준이 가장 높은 자라고 해도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염호 같은 숙면자들은 이미 신세계에 진입한 상태였다.

서동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숙면자를 정말로 제거하려 한다면 너나 나는 손댈 필요도 없어. 여상희 혼자서도 충분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이용하든, 초고공 폭격을 가하든 위험을 피하면서도 숙면자의 육신을 완전히 파괴할 방법은 넘쳐 나.

그들이 물질 간섭 능력을 발휘할 수 있대도 미사일이나 폭탄의 운동량은 어마어마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손쓸 수도 없지. 그리고 그들이 억지로나마 영향을 가할 수 있을 때쯤의 거리는 이미 폭발 범위에 뒤덮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을 거고.”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지금 보내는 박수는 우세한 화력을 좋아하는 제도 선사의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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