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64화 (564/649)

564화. 복원된 데이터

방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엔 게네바가 도착해 있었다.

구조팀은 그와의 재회에 매우 기뻐했다.

이내 용여홍은 몸에 묻은 먼지를 터는 게네바를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응? 차 안 타고 왔어?”

게네바가 중저음 합성음으로 답했다.

“전기차를 타면 나도 전력을 소모하고 차도 전력을 소모해. 그보단 내가 태양열 충전기를 메고 걸어서 이동하는 편이 낫지. 에너지도 아낄 수 있고, 속도도 그에 못지않으니까. 그렇다고 연료 자동차를 쓰려면 멀리 돌아와야 할 뿐만 아니라 연료 보충을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도 너무 많아.”

일찍이 엄격한 계산을 거친 끝에 걸어서 이동하는 게 여러모로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때, 성건우가 안타깝다는 듯 외쳤다.

“겐, 그러면 안 돼!”

“왜?”

의문을 표하는 게네바를 보고, 성건우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게으름을 피울 줄도 알아야지. 그거야말로 기술 발전의 동력이라고. 네가 지친다는 게 뭔지 모른다는 건 알지만, 그런 척이라도 해야 더 인간다워질 수 있어.”

탕!

게네바는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알겠다! 흠이라는 게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로군!”

순간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넌 원래 인간이잖아.”

장목화는 더 이상 대화가 옆길로 새지 않게 목을 가다듬었다.

“겐, 설비는 다 준비됐어?”

게네바가 등에 멘 전술 배낭을 가리켰다.

“응, 데이터 복원과 추출이 가능하다.”

장목화는 곧장 철강공장에서 찾은 핸드폰 2대를 건넸다.

“바로 시작하자.”

게네바는 곧장 작업 모드로 들어갔다.

* * *

다음 날 오전, 게네바가 문서를 인쇄하며 결과를 알렸다.

“이 두 핸드폰에 데이터가 저장되기 시작한 건 구세계 파괴로부터 2년 전이었다. 그 안에 오래된 사진이 몇 장 저장돼있기도 했어. 그런 사진 중 복원된 건 몇 장뿐이었는데 모두 세 사람으로 이뤄진 가족사진이었다.

나머지 데이터 중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었는데 그 단어는 인혜 병원, 하버 홈랜드, 집세, 진도⋯⋯.”

‘인혜 병원이면, 방민서와 이진용의 아들, 식물인간이 된 그 아들이 지원자 신분으로 새로운 치료를 받게 된 곳일까?’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캐물었다.

“구체적인 주소는 없어? 그거랑 비슷한 이름을 가진 병원과 단지는 구세계에 널렸거든.”

게네바가 아쉬움을 표했다.

“이미 물리적으로 망가져 있어서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 사이 백새벽은 또 다른 디테일을 파악했다.

“그 핸드폰 두 대는 동시에 데이터 저장을 시작한 건가?”

“응.”

게네바가 단호하게 답했다.

“방민서와 이진용은 왜 그렇게 갑자기, 동시에 핸드폰을 바꿨을까?”

아무래도 백새벽은 이 상황의 배후에 다른 원인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단서일지도 몰랐다.

그때,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가 그게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대꾸했다.

“부부가 선물을 주고받는 건 이상할 게 아니잖아?”

바로 다음 순간, 성실한 성건우가 반박했다.

“아들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뒤에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은 거지.”

“그렇다기에는 시간이 안 맞아, 최소한 1년이 붕 뜬다고.”

용여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방민서, 이진용의 아들이 언제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는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병력 상 ‘몇 년’이란 단어를 통해 구세계 파괴로부터 최소한 3년 전에 사고가 났으리라 추측했다.

그리고 방민서와 이진용이 동시에 핸드폰을 바꾼 건 구세계 파괴가 일어나기 2년 전의 일이었다.

다시 성실한 성건우가 나름의 이유를 댔다.

“보상금을 받고 1, 2년 동안은 감히 그 돈을 쓸 엄두가 안 났을 거야. 아들을 치료하는 데에 쓸 돈으로 아껴둬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아들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무료라는 실험적 치료를 받도록 보냈고, 그제야 자기들 핸드폰이 간당간당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거지.”

굉장히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좌우를 둘러보던 게네바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장목화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만약 인혜 병원이 방민서, 이진용의 아들이 실험적 치료를 받으러 간 곳이라면, 하버 홈랜드는 그들이 살던 단지였을 거야. 방세라는 단어를 보면 짐작할 수 있어. 생각해 봐, 너희 아들이, 아, 너희는 아들이 없지. 아무튼, 너희 가족이 어느 병원에 실험적인 치료를 받으러 보내졌다면 당연히 그 근처에 방을 빌려 살면서 정기적으로 병문안 가지 않겠어?”

“당연하지!”

딸이 있는 게네바는 매우 힘차게 긍정했다.

용여홍은 잠시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다가 답했다.

“그렇다면 방민서와 이진용은 왜 다시 철강공장으로 돌아왔을까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용여홍은 한 가지 이유를 추측했다.

‘실험적인 치료를 받았는데도 아들이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겠지⋯⋯.’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구세계가 파괴된 건 춘절을 며칠 앞둔 때였어. 방민서와 이진용은 친척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온 걸 거야.”

“그러네요.”

용여홍도 애쉬랜드인이니 그런 풍습은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얘기를 나눈 장목화는 게네바에게 두 핸드폰을 거둬 넣으라고 한 뒤 다시 또 덧붙였다.

“이 안에 아이언마운틴 시티 관련 정보가 없다면 일단은 신경 쓰지 말자. 이제 우리는 구세군 출신으로 의심되는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갈 거야.”

“왜요?”

용여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구세계 파괴 원인과 불가의 5대 성지에 대한 조사는 한 팀이나 한 세력만이 가진 특권이 아니잖아. 그들이랑 얘기하면서 정보를 교환하지 못할 이유가 뭐야? 그런다고 해서 회사에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듯한 용여홍, 그리고 백새벽을 보고 장목화는 한발 더 나아가 설명했다.

“구세계 이론 물리 연구랑 같아. 성과는 인류의 것이야. 숨길 때보다 서로 교류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경쟁할 때 더 높은 가치를 도출할 수 있지.”

장목화의 설명을 듣고, 용여홍이 강철로 된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팀장님, 제 말은 그 사람들이 구세계 파괴 원인과 불가의 5대 성지를 조사하러 온 것인지 어떻게 아냐는 거예요.”

그들은 산 요괴들에게 아이언마운틴 시티 정보만 물었을 뿐이었다.

장목화가 답했다.

“음,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이미 다 사라졌어. 비밀이 숨겨져 있을 법한 곳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만큼 더 이상은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그곳에서 구세군과 같은 대형 세력에서 사람을 보내 조사시킬 만한 건 제2 식품회사라는 불가의 성지밖에 없지.”

최초로 개발된 도시 유적 중 하나인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벗겨 먹은 상태였다.

대형 세력이나 유적 사냥꾼은 벌써 수차례나 그곳을 조사했을 터, 제2 식품회사 외에 다른 곳은 갈 필요가 없었다. 제2 식품회사는 깊은 곳에 묻힌 데다 두 달지기 중 하나와 깊이 연루돼 있으니 조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불가의 성지를 조사하려는 건 단순히 불가를 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커. 이건 가장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추측이긴 한데, 또 예외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그들과 접촉한 후에 한 번 떠보자.”

장목화도 단호하게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용여홍은 걱정이 되었다.

“팀장님, 그들이 정말 구세군이고, 암암리에 제8 연구원과 합작하고 있을 건 걱정 안 되세요? 만약 그들한테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 발병 기원을 조사하면서 얻은 수확을 공유한다면 엄청난 재난이 초래될지도 몰라요.”

그들이 제8 연구원에 속한 특파원이 아니라고 해도 구조팀의 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면 제8 연구원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한편 더 많은 강자를 보내 단서를 지우려고 할 것이었다.

그때, 장목화가 실소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바보야? 다른 사람한테 냅다 모든 걸 드러내 보이게? 당연히 천천히 떠보면서 상황에 따라 숨길 건 숨기지. 자, 출발하자!”

손을 흔들며 지하 2층 접견실을 나간 그녀가 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머뭇거리다 입을 다물었고, 성건우는 살며시 웃었다.

하지만 겐은 망설임 없이 외쳤다.

“방향이 틀렸어, 엘리베이터는 저쪽이야.”

“⋯⋯.”

장목화는 우아한 중 가면을 슬쩍 착용했다.

그 사이 성건우는 게네바 곁으로 가, 속삭임을 가장해 또박또박 말했다.

“큰 흰둥이 팀장님, 각성자가 됐어. 대가가 길치고.”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겠어?’

장목화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게네바에게 할 말을 전한 성건우는 바로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을 쓰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타격받은 정신을 절반 이상 회복한 그는 오전에는 특히 상태가 좋았다.

장목화는 마음을 다스린 후,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이틀 전부터 서서히 한 가지 문제를 감지했다. 열 명의 성건우 중, 한 명, 혹은 여러 성건우는 연기에 강한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레드스톤 마켓에 돌아와 원숭이 가면을 다시 쓰고부터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었다.

이내 게네바는 성건우의 박자에 맞추는 대신 옆의 용여홍에게 물었다.

“길치라는 대가에 대응하는 건 깨진 거울 영역이지?”

‘그래, 알면 그냥 좀 넘어가. 굳이 얘기할 필요 없잖아. 팀장님 걸음이 한층 더 빨라진 거 안 보여?’

용여홍은 속으로 게네바의 눈치 없음을 한스러워하며 아예 답하지 않으려 했지만, 무시하기엔 계속 재잘댈 가능성이 있어 최대한 건성으로 답했다.

“응.”

그 두 사람 곁에서 백새벽은 어느새 미소 띤 얼굴로 걷고 있었다.

* * *

엘리베이터가 교회당 홀에 도착했다. 그리고 구조팀은 마침 에이돌른에 대한 예를 갖추고 곳곳에 숨은 경계 교파 구성원을 찾아 친분을 맺으려 시도 중이던 초유근 일행을 발견했다.

초유근 역시 곁눈으로 구조팀을 발견하고 열정적으로 다가왔다.

“백새벽!”

스모키 화장의 모지현과 꽃무늬 셔츠를 입은 청년 소양규도 뒤따랐다.

백새벽 앞에 도착한 초유근은 좌우를 한 번씩 두리번거리다가 게네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키 190센티미터, 은흑색 금속 골격을 가진 검푸른 제복 차림의 지능 로봇은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듯 말 머리 모양 가면을 쓰고 있었다. 다만 눈 부분에선 여전히 붉은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 광경에 초유근은 화들짝 놀랐다.

‘지능 로봇도 성장하고 커질 수 있는 건가?’

그가 기억하는 백새벽의 지능 로봇은 그녀와 키가 비슷했던 데다가 색도 은흑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상식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초유근은 백새벽이 새로운 동료를 사귀고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려는 게 원래 함께하던 그 로봇이 파괴됐기 때문인 모양이라고 의심했다. 그저 망가졌을 뿐이었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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