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목적 (2)
구조팀은 송 경고자의 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약간 성긴 눈썹, 희끗희끗한 귀밑머리,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송하균의 모습은 이전과 똑같았다. 더 늙은 것 같지도 않았다.
“경계하는 마음이 영구히 존재하기를.”
송하균은 두 팔을 가슴팍 앞에 교차시키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거리는 우리의 친구!”
성건우도 같은 자세도 호응했다.
송하균은 아무 표정 변화도 없이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를 쳐다보더니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엔 어쩐 일로 돌아왔습니까?”
장목화가 답했다.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가보려고요. 여기선 그 지능인과 만나기로 했고요. 근데, 송 경고자님. 방금 전 홀에 있던 사람들은 뭘 하고 있던 겁니까?”
송하균이 쓴웃음을 흘렸다.
“같은 뿌리를 가진 교우들과 교리를 가지고 토론하는 거죠. 구세계 파괴 이후, 달지기의 계시를 처음으로 받은 권자(眷者)들은 교파를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한쪽은 달지기를 경계의 화신으로 여겼고, 다른 한쪽은 공포야말로 근원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몇 년을 싸운 끝에 각자의 당파를 세웠죠. 최초의 에이돌른 교파가 경계 교파와 공포 교단으로 나뉜 겁니다. 이후 그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대표와 장소를 골라 한데 모여서 그 당시의 쟁론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성건우가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장목화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친근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요?”
“그들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와는 또 다릅니다.”
송하균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를 보고, 성건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던 의문을 표했다.
“어느 쪽이 잘못되었다는 달지기의 지적은 없었습니까?”
선생님이 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답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송하균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태까지는 두 교회 모두 달지기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이따금, 매년마다요. 제가 보기에는 양쪽 모두 일리가 있고 어느 정도는 달지기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듯합니다. 그 표현의 방향이 좀 다를 뿐인 거죠.
하하, 더 이상의 이야기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교께서 저한테 관련 교리를 베껴 쓰게 하는 벌을 내리실 거거든요.”
이렇게까지 거절 의사를 밝히는데, 장목화도 더는 이 방면의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에이돌른이 주시하는 경계 교회당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송 경고자님, 디마르코의 아버지, 조부, 혹은 증조부가 혹시 당시에 지하 방주를 떠나 아이언마운틴 시티로 가지는 않았나요?”
‘이게 무슨 말이지?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는 거지?’
순간 혼란에 빠졌던 용여홍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디마르코, 혹은 디마르코나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를 연기 중이었던 그 각성자는 보리 영역이었다.
그리고 산 하나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아이언마운틴 시티는 불가의 5대 성지 중 하나였다.
언뜻 봐서는 공교로운 우연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용여홍은 그제야 장목화가 굳이 아이언마운틴 시티 부근이 아닌, 레드스톤 마켓에서 게네바와 합류하려 한 이유를 깨달았다.
장목화는 방주 관리위원회의 작업 성과를 확인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염호의 문제, 디마르코, 그리고 아이언마운틴 시티라는 불가 성지의 관계까지 조사할 생각인 것이다.
장목화의 질문을 듣고, 송하균은 의혹을 드러냈다. 그녀의 질문은 굉장히 기이할 뿐만 아니라 뭔가를 파헤치려는 듯 지향성도 명확했다.
작은 땅에서라도 안락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경계 교파의 성직자 송하균은 인생 경험과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풍부하기는 해도, 그 시야는 레드스톤 마켓이라는 작은 공간에 국한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여러 교파에 연루된 특정 인사의 경질과 교리의 분쟁 정도만 파악하고 있을 뿐, 산 너머에 자리한 폐허 도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장목화가 어떠한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단순한 감조차 잡지 못했다.
머리를 굴리던 끝에, 송하균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 디마르코의 증조부 몬티스를 만나기는 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별것도 아닌 사람에 불과했지요. 하하, 지금도 그렇지만요.
아무튼 그와 접촉한 것도 다섯 번이 채 안 됩니다. 몬티스는 수시로 방주를 떠나 지상 곳곳으로 향했지만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모릅니다.
이후 저희 교파로 귀의하고 달지기를 믿기 시작한 이래,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지하 방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손자, 그러니까 디마르코의 조부와 아버지 역시도 그랬습니다.”
레드스톤 마켓에 오래 머무르면서 수시로 레드리버어로 신도들에게 설교한 까닭인지 송하균의 말에는 가끔 그 언어의 문법적 특징이 묻어났다.
‘하……, 경계 교파에 귀의하여 달지기를 믿기 시작했다뇨. 어쩔 수 없이 굴복한 거겠죠.’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물었다.
“디마르코의 증조부 몬티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송하균이 솔직하게 답했다.
“오만할 정도로 자존감이 높고, 무정할 정도로 위엄있고, 위협적인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성격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거의 접촉한 적이 없어 잘 모릅니다. 저보다는 방주의 나이 든 하인들과 경비들에게 물어보거나 몬티스의 장서실로 가보는 게 나을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한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일기를⋯⋯.”
그는 뒷말은 채 맺지 못했다. 장목화가 중간에 끼어들어서였다.
“만약 몬티스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절대 그걸 일기에는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생각이 아니었다면요.”
다시 성실한 성건우가 반박했다.
“만약 그 사람한테 일기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게 있었다면요?”
“저는 그저 하나의 조사 방향을 제시한 것일 뿐입니다.”
송하균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말투 역시 여전히 온화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목화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뒤, 팀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 *
복도가 지척에 가까워졌을 무렵, 갑자기 홱 돌아선 장목화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롭게 물었다.
“혹시 그때 이 교회당에서 사람을 보내 지하 방주의 장서실을 조사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방주 관리위원회가 조직된 후, 구조팀은 사실 지하의 장서들을 한 번씩 살폈었다. 다만 당시에는 산 너머에 자리한 아이언마운틴 시티가 불가의 성지인지 몰라서 디마르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 구조팀은 종말론 관련한 책에만 관심을 쏟았었다.
디마르코 가문의 선조는 종말론의 광적인 애호가였다. 그에 대비하고자 지하 방주를 지은 사람인 만큼 보관된 책 중에는 관련 책들이 넘쳐났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송하균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직자를 몇 명 보내긴 했었습니다. 지하 방주에 보관된 책 중 기술 자료나 구세계 문명 관련 귀중한 서적이 있을까 해서요. 그건 레드스톤 마켓의 미래와 인류의 신세계 강림 맞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까요.
말하자면 그것들은 우리의 선조가, 구세계의 인류가 우리에게 남긴 귀중한 재산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 안에서 가지고 나온 유일본은 없습니다. 유일본의 경우 필요한 내용을 베껴 썼을 뿐이고요.”
즉, 경계 교회당에서는 비슷한 책이 여러 권 있을 때만 그중 한두 권을 가지고 나왔다는 소리였다.
장목화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렇군요. 뭔가 눈여겨볼 만한 기록을 찾으셨습니까?”
송하균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방주 내부, 지하 2층 접견실.
구조팀은 전 방주 집사 울리히를 다시 찾았다.
장목화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방주 1대 주인, 디마르코의 증조부 몬티스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몇 초간 기억을 떠올리던 울리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님이 그 사람이 임명한 집사 중 한 분이셨죠. 할아버지께서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해주신 적이 있긴 합니다. 성격은 여러 방면에서 디마르코와 매우 흡사했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거칠고 포악하지는 않았답니다.”
그 나름의 이유를 찾아낸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그 사람이 방주에 갇혀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심리가 그렇게까지 왜곡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장목화는 계속해서 캐물었다.
“성격 외의 다른 부분은요?”
곧 울리히는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일찍이 구세계의 어느 오래된 종교의 신도였는데, 그 종교의 ‘성경’을 수시로 가지고 다녔답니다.
디마르코와 그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구세계 성직자 복장을 즐겨 입은 것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더군요. 하지만 그 사람은 끝내 달지기에 귀의해 그 교파에 가입했고 최후 몇 년간은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용여홍이 재차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한 사람의 취향은 같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테고.’
장목화는 울리히가 한 말 중 중요한 부분을 곱씹었다.
‘종교⋯⋯. 성서⋯⋯.’
그 사이 백새벽이 물었다.
“그 성경은 아직 장서실에 보관돼 있나요? 몬티스가 수시로 휴대하고 다니던 그 책이요?”
“그렇습니다. 교파에서는 다른 성경 몇 권만 가지고 갔죠.”
울리히는 매우 확신에 찬 말투로 답했다.
장목화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성건우가 극심한 피로와 졸음을 가까스로 견디는 중이라 대화가 다른 곳으로 샐 염려도 없었다.
“몬티스 선생이 가장 즐겨보던 것이 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혹시 그 사람이 남긴 일기가 있나요?”
울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또 몬티스는 물론 디마르코, 디마르코의 아버지, 조부까지 전부 다른 사람한테 자신의 사적인 비밀이 들통날까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독서 취향도 비밀로 했었죠.”
몇 초간 침묵하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아 참, 지난번 저희가 본 가문 자서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까?”
그건 구세계 파괴 이전 디마르코 가문이 작성한 자서전이었다.
구조팀은 종말이나 방주에 관련된 부분이 있는지 집중해서 살폈는데, 디마르코의 선조는 사전에 어떤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종말론에 매우 심취해 있어서 지하 방주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장목화는 이번에 그 자서전을 다시 살펴보면서 전에 건너뛴, 혹은 소홀히 넘겨버린 부분까지 자세히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렇습니다.”
울리히가 침착하게 답했다.
* * *
지하 방주, 어느 층의 장서실 안.
울리히는 중앙 책상에 놓인 암적색 커버의 ‘성경’을 장목화에게 건넸다.
“이게 몬티스 선생이 수시로 휴대하고 다녔던 그 책입니다.”
장목화는 그 책을 받으며 동시에 주위에 세워진 책장을 살폈다.
이곳은 장서실이라기보다는 서고에 가까워 보였다.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되겠습니다.”
울리히도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 역시도 앞으로의 상황에 자신이 참여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울리히가 떠난 후, 장목화가 바로 팀원들에게 말했다.
“난 이 성경을 볼게, 너희는 디마르코 가문 자서전을 중점적으로 살펴봐. 건우야, 넌 현기증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책장에 기대서 좀 자.”
“네.”
성건우는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천천히 누워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쟤는 진짜 언제봐도 무던한 놈이야.’
용여홍이 피식 웃곤 울리히가 책상에 골라둔 책 중 한 권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