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51화 (556/649)

551화. 보수로 뭘 원하지?

이렇게 간단한 질문일 줄은 몰라서,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정상적인 길로 가려면 이삼 일이면 도착해. 도중에 분노의 호수가 범람한다면 우회로로 가야 하니까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고.”

곁에서 용여홍은 눈앞의 남자가 한 질문에서 중요한 정보를 파악했다.

‘여태 레드스톤 마켓에 한 번도 안 가본 모양이네. 거긴 뭐하러 가려는 거지? 각종 밀수품을 사러?’

장목화는 상대가 무슨 대꾸를 하기 전 농담하듯 물었다.

“길잡이를 못 구한 거야?”

젊은 남자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구했어. 등신이라 그렇지⋯⋯.”

각진 얼굴의 남자는 동료를 힐끔 보며 입을 다물라는 듯 눈치를 주곤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지역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길잡이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녀석이라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지.”

그는 자신들이 이 지역에 익숙지 않음을 솔직하게 밝혔다. 사실 레드스톤 마켓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장목화는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길잡이가 등신이라고? 어젯밤 습격은 설마 그 길잡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나? 이 사람들한테 고용된 길잡이가 외지인들을 속이고 강도단과 결탁하면서 약속된 기호로 불러들인 건가?’

그때, 성실한 성건우가 상대가 한 말의 빈틈을 지적했다.

“너희는 길을 잃지 않았어. 지금 아주 정확한 길을 따르고 있다고.”

나이 많은 남자는 성건우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그럴 뻔했다니까. 사실 우리는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할 수 없이 너희한테 도움을 청하는 거고.”

성건우는 얼른 왔던 길을 가리켰다.

“일단 이쪽은 아니야.”

용여홍은 말없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건 말 안 해도 알아.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아. 아, 팀장님 같은 길치는 빼야겠구나.’

장목화는 성건우가 더 이상 팀의 인상을 해치지 못하게 오른손을 들어 방향을 가르쳐주려 했다.

순간 용여홍은 그녀를 저지하려 했지만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잠깐! 팀장님, 길치가 길 안내라니요. 말이 되는 얘기에요?’

성건우 얼굴에도 겁먹은 표정이 떠오르던 그때, 백새벽이 먼저 나섰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돼. 가다가 분노의 호수가 보이면 호수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규모가 큰 폐허 도시를 찾아.”

백새벽이 알려준 길은 또렷했고 기준이 되는 표지도 명확했다. 중간에 어디로 꺾었다가 어디로 돌리라는 등의 이야기도 없어서 알아듣기도 쉬웠다. 가는 길이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이 많은 남자는 머릿속으로 그 노선을 따라 그려보더니 다시 물었다.

“도중에 다른 폐허 도시는 없나?”

레드스톤 마켓이 찾기 어려운 건, 분노의 호수와 그곳 주변 구세계의 거대 도시가 아주 많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었다.

“분노의 호수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개 있지만 남쪽에는 없어.”

백새벽이 간단히 설명했다. 이는 구조팀이 전에 확인한 사안이었다.

나이 많은 남자가 안도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레드스톤 마켓은 확실히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거군. 2, 3일이면 도착할 수 있다더니, 그 말대로였어. 레드스톤 마켓의 단골인가?”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길을 훤히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두 번 가봤어.”

장목화가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게 답했다.

물론 자신들이 단 두 번 만에 레드스톤 마켓을 뒤집어놓고 그 세력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보수로 뭘 원하지?”

고민에 빠진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그가 또 어떤 소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

“통조림 몇 개면 돼.”

“가서 차에 있는 통조림 여덟 개 가져와.”

나이 많은 남자가 고개를 틀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두껍고 낮은 그의 목소리는 매우 위엄있었다.

젊은 남자는 곧장 돌아서더니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짙은 산악자동차로 향했다.

그 틈을 타 나이 많은 남자가 질문을 이어갔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주의할 사항 같은 건 없나?”

“숨바꼭질하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성건우가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

상대는 그 말을 듣고 몇 초간 침묵하더니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물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에이돌른을 믿는 모양이지?”

“맞아. 거리는 우리의 친구!”

성건우는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시키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나이 많은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쪽도 에이돌른을 믿나?”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답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그딴 식으로 구는데도 네가 아직 달지기의 벼락을 맞지 않은 건 그들이 아직 순번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눈앞의 남자에게 알렸다.

“레드스톤 마켓에 도착하면 폐허 도시에 숨어있는 주민을 찾아야 해. 안내를 받아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어. 그들 풍습이 그래. 전에 가봤던 사람이라도 레드스톤 마켓의 구체적인 위치는 다른 사람한테 알려줄 수 없어.”

남자는 곤란하다는 표정 같은 것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고맙다.”

이때 그의 동료가 통조림 여덟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정어리 통조림, 돼지 다리 통조림⋯⋯.

통조림들을 대충 살핀 용여홍은 그 품목이 자신들이 흔히 먹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장목화가 통조림을 받아들자 나이 많은 남자가 작별을 고했다. 남자는 동료와 함께 차로 돌아간 뒤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기본적인 대비만 했을 뿐 특별한 경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짙은 색 산악자동차를 바라보던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자신들의 실력에 꽤나 자신이 있는가 본데.”

뒤이어 손에 든 통조림들을 내려다본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한번 맞춰볼래? 저들이 어디에서 왔을지?”

백새벽은 방금의 대화를 떠올리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답했다.

“억양을 통제하려 굉장히 애는 쓰는데 그래도 티는 좀 났어요. 아마 애쉬랜드 동북쪽에서 왔거나 그곳 사람들과 수시로 교류했을 거예요.”

용여홍도 대륙 동북쪽과 애쉬랜드인이란 단서를 바탕으로 추측해봤다.

“구세군 사람들인가요?”

화이트 기사단과 퍼스트 시티 동쪽은 구세군에 속해 있었다.

장목화가 낮게 웃었다.

“적어도 이 통조림들은 거기서 왔을 거야. 저들 행동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일사불란했지. 강도나 사냥꾼보다는 군인에 가까웠어.”

밀수품으로 쓰기 위해서인지 통조림에는 생산지 표시가 없었다.

순간 흥분한 성건우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더니 꼿꼿하게 선 채 동료들을 향해 경례했다.

“전 인류를 위해!”

당장이라도 떠난 이들을 쫓아가 옛일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장목화는 바로 그를 저지했다.

“레드스톤 마켓에 도착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저들이 왜 분노의 호수에 왔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구세군과 분노의 호수 사이에는 퍼스트 시티가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은 대부분 퍼스트 시티에 흡수되곤 했다. 평소에 여기까지 오는 구세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밀수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서일까요?”

백새벽이 추측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퍼스트 시티 동란 이후 갈등을 외부로 돌리려는 추세가 있었잖아. 구세군은 가장 처음으로 지목된 대상 중 하나고. 그러니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비축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지.”

* * *

짙은 색 산악자동차 안.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도중, 운전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옆자리의 연장자 동료를 보며 존경심을 표했다.

“서 위원, 저들 중에 가장 까불던 남자는 분명 각성자일 겁니다. 심령의 복도 급인지는 모르겠네요. 또 다른 각성자가 더 있을 수도 있고요.”

서 위원이라 불린 연장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남자는 대가 때문인지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해 보이더군. 이건 말인 영역에 속한 대가지.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표현되는 대가는 아주 많아.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 * *

구세군에서 온 듯한 일행이 강 유역을 떠나 백새벽이 가리킨 쪽으로 향하자, 구조팀은 그제야 질서정연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지프에 올랐다.

장목화는 뒷좌석에 앉은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좀 자도 돼. 그 트라우마 속에 다시 들어가서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

성건우는 벌써부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 * *

심령의 복도, 912호.

트라우마의 출발점, 부두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던 성건우의 예측과 달리 그는 이 방에 진입하자마자 여객선 선실에 도착했다.

성건우는 놀라면서도 기뻤다.

“이것까지 세이브되는 거야?”

이런 식이면 매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그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것도 또 다른 차이점이네. 게다가 우리가 여객선에 처음으로 올랐을 때만 해도 하늘은 아직 완전히 새카맣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밖에 달이 떴어.”

그 사이 먹구름이 몰려들어 달을 가렸다.

복도에 설치된 벽등의 조명 아래, 성건우는 옆쪽의 문을 열었다.

이곳은 그가 지난번 몸을 숨기기 위해 들이닥쳤던 그 방이었다. 성건우는 방 안의 남녀가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음 순간, 성건우는 격전을 벌이던 그 남녀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 한 사람은 침대 가장자리에 서서 앞뒤로 끊임없이 허리를 흔들며 찌르는 중이었고, 한 명은 가슴을 끌어안은 채 이 좁은 공간에서 길이라도 잃은 것처럼 문 근처 구역을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실례했네요.”

성건우는 다시 또 사과한 뒤 문을 닫아주었다. 그는 여전히 예의 바른 사람이라, 심지어 눈까지 꼭 감고 물러났다.

조용히 선실 밖으로 나온 성건우는 이제 1층 갑판으로 돌아가려 했다. 전에 대화하던 그 사람들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막 복도 끝에 이르렀을 무렵, 하늘 높이 뜬 달의 희미한 빛과 복도 양쪽 벽등 빛이 어우러진 곳에서 세 사람을 발견했다. 성건우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분노해 그를 마구 쫓았던 사람들은 선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중 쪼글쪼글한 담배를 문 남자의 눈빛은 멍했다. 왼손에 담배를 끼운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입에 넣고 있었고, 눈썹 끝에 점이 난 남자는 넘치는 힘을 방출하겠다는 듯 격한 뜀박질을, 다른 한 명은 옷을 훌훌 벗어버린 채 자리에 서서 바보같이 실실 웃고 있었다.

깊이 고민해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성건우는 상의를 벗은 남자를 향해 다시 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찰자 앞에 위장은 없다!”

예를 갖춘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세 사람을 우회해 갑판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보다는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100명 남짓이었다.

다들 양팔을 마구 흔들고 있거나, 아무 데나 배설해버리거나, 아무도 없는 곳을 매섭게 응시하거나, 멍하게 각양각색의 기이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정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통은 저만한 인원의 무심자를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광경이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이함이 온몸의 솜털을 쭈뼛 서게 할 정도였다. 본래 원인을 아는 곤경보다 알 수 없는 상황이 더 무섭게 느껴지지 않던가.

성건우는 어떤 시도를 하려고 하기보다, 누군가를 찾으려는 듯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가 찾으려는 건 바로 522호의 주인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트라우마에 진입한 각성자는 어느 정도는 방 주인인 척 연기하기 때문에 상대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912호고, 성건우는 이 방의 주인을 대체하고 있었다.

또 두 상황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볼 때 522호 주인도 당시 이 여객선에 탑승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그가 이 기이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지도 몰랐다.

그를 찾고 따른다면 성건우는 비교적 순조롭게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심령의 복도에도 진입한 522호 방 주인에게는 분명 이 광경을 트라우마로 바꿀 기회가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이 책략이 반드시 유효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이 여객선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난 건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었다. 거기다 두 방의 주인이 같은 피해자 집단에 속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이에 성건우도 522호 방 주인을 찾고는 있어도 확신을 갖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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