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55화 (554/649)

555화.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

이내 주차장에 차를 세운 구조팀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앞을 지키던 경비 하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잠깐!”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가 뒤를 돌았다.

“왜?”

경비는 용여홍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빠른 말투로 질문을 쏟아냈다.

“제, 제가 기억하기로 고 회장님께는 이전까지만 해도 기계 팔이 없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위장한 거 아닙니까?”

“⋯⋯.”

장목화와 용여홍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경계심이 강해도 너무 강한 거 아냐?’

그래도 레드스톤 마켓의 풍습을 이해하고 또 존중하기에, 장목화는 얼른 설명에 나섰다.

“얘는 미인을 구한 영웅이야. 영웅으로 활약하면서 팔 한쪽을 잃었지. 그래서 기계 팔을 장착할 수밖에 없었어. 영광의 상처야.”

용여홍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레드스톤 마켓의 풍습도 도움이 될 때가 있네.’

세 명예 회장이 모두 용여용을 위한 증언에 나서자, 경비들도 그제야 의심을 거두고 길을 내주었다.

* * *

방주 내부 지하 2층, 디마르코와 구조팀이 만났던 접견실.

구조팀은 이곳에서 긴 소파에 앉은 울리히, 여천수, 보드를 마주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오늘 마침 지하에 있던 방주 관리위원회 위원들이었다.

울리히는 디마르코의 3대 집사 중 한 명이기는 했으나 당시 그를 도와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던 데다, 디마르코가 분노를 발산한 뒤 그 대상이 된 하인들을 위로하고 돕기만 했었던 관계로 모두의 인정을 얻은 바 있었다.

또 밀수 사업에 익숙하고 관련 루트의 중요 인사를 알고 있는 점을 높이 사, 방주 관리위원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거기다 하인이나 경비 출신인 다른 위원에 비해 경험도 풍부하고 일 처리 능력도 뛰어나 모두의 신망이 두터웠다. 이 덕분에 그는 게네바가 이곳을 떠날 무렵 임시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2년이라는 임기를 채우는 동안에도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의 직함에서 ‘임시’라는 두 글자마저 떨어져 나갈 터였다.

그리고 여천수와 보드는 처음으로 구조팀에게 복종해 구조팀을 도왔던 경비들이자 구조팀이 세운 간판이었다. 게네바는 방주에 있을 당시 장목화의 의견에 따라 이들을 특별히 교육했고, 게네바의 시범 덕에 두 사람도 위원의 직책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었다.

또 방주 내부에 자리한 이 세 위원은 가면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뒤, 장목화가 물었다.

“혹시 최근에 구세군 사람이 레드스톤 마켓에 오지 않았습니까?”

40대인 울리히는 여전히 검은 머리를 뒤로 말끔히 빗어넘긴 채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나, 전처럼 나비넥타이까지는 매지 않은 모습이었다.

살짝 파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던 울리히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그자들이 구세군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랑 따로 얘기한 적은 없고, 바로 애쉬랜더, 어, 애쉬랜드인들을 찾아가더군요. 스무 명이 채 안 되는데, 다들 애쉬랜드인이었습니다. 또 여관이 아니라 도제훈의 집 근처에 버려진 건물에서 머물고 있고요.”

구세군에는 레드리버인 구성원도 있었다. 인류 전체를 운명 공동체로 여기는 그들의 이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현재 그들의 세력 범위는 구세계 당시 애쉬랜드인이 통치하던 구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비애쉬랜드인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들이 뭘 하러 왔는지는 아십니까?”

성건우가 도움을 제공하고 싶다는 듯 호기심을 표했다. 물론 가면을 쓰고 있는 관계로 누구도 그런 표정까지는 읽지 못했지만.

울리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도제훈의 가족 구성원이나 다른 애쉬랜드인이 무엇을 모으는지 관찰할 수는 있겠지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위쪽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최근 경계 교회당에 찾아온 낯선 자들은?”

각진 얼굴의 여천수가 곧장 답했다.

“있었어. 다른 세력 사람들 여러 무리가 교회당에 모여들더라고. 근데 안토넬라 주교는 그 이유를 알려주지도, 방문자들을 소개하지도 않았지.”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송 경고자님도 말씀이 없으셨고?”

이번엔 주근깨가 난 보드가 대답했다.

“아무 말도 안 하셨어.”

곧이어 성건우가 누군가를 경계하듯 잔뜩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방문자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거나 하지는 않았어?”

여천수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 번 보기는 했어. 달지기 성휘 양 끝에 앉아 서로를 질책하던데? 한 명은 경계는 결과지 원인이 아니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목적이라고 했어. 또 한 사람은 말다툼하던 두 사람을 중재했고.”

장목화는 어째서인지 입이 건 앵무새를 키우는 칸나가 떠올랐다.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에게는 놀라운 친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장목화는 생각과 달리, 구조팀 임무와 관련된 사항만 물었다.

“아이언마운틴 폐허에 대해서는 뭘 알고 계시나요?”

빈틈없고 엄숙한 분위기의 울리히는 방주 관리위원회 임시회장이 되었다고 구조팀 앞에서 방만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마치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폭군 같은 디마르코를 마주했을 때처럼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는 그의 본능이자 습관인지도 몰랐다. 디마르코가 처리되기 전까지 인생 절반을 집사로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머지 절반의 삶도 수많은 황야유랑자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이 좋아 위험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황야유랑자의 몸 상태는 극도의 영양 부족과 극악의 주위 환경으로 장년에 이르면서 더 악화되었다. 갖가지 병에 전염되다가 끝내 죽음을 맞아, 수명이 보통 마흔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황야유랑자 거점은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노인 대하듯 하는 곳도 있었다.

이내 할 말을 정리한 울리히가 장목화의 질문에 답했다.

“방주, 나아가 레드스톤 마켓 사람들은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릅니다. 혼란의 시대가 지나 이쪽의 질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외부로의 개척을 진행하며 물자를 찾을 여력이 생겼을 때 아이언마운틴 시티는 이미 거의 다 발굴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별 가치가 없었거든요. 저희는 당시 밀수라는 생업 수단을 찾기도 했고요. 그래서⋯⋯.”

울리히는 말끝을 흐렸지만, 어린아이라도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덧붙였다.

“아마 산 요괴들이 더 잘 알 겁니다. 구세계가 파괴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언마운틴 깊은 곳에 살았으니 그쪽 폐허와도 접촉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신력 이후 태어났으니 혼란의 시대 중기에 지하 방주에 얼마나 여유가 있었는지 몰랐겠지. 하지만 디마르코는 당시 염호와 호수 섬 주민들에 정신이 팔려있었어. 그 후에는 경계 교파의 사람들이 전도하러 왔고.’

그리고 마침 울리히가 산 요괴를 언급한 틈을 타, 장목화는 곧바로 전에 맡긴 일을 물었다.

“거의 1년이 다 돼가네요. 어인, 산 요괴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엉덩이 절반만 소파에 걸친 채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울리히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답했다.

“전에 레드스톤 마켓을 공격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어인과 산 요괴는 지난 1년간 더는 이쪽을 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정세는 상대적으로 안정됐습니다.

그들은 저희의 접촉도 전혀 거부하지 않습니다. 산의 광석, 호수의 특산물을 식량, 무기, 약물 등 더 유용한 밀수품으로 바꾸길 바랍니다. 다만 인간에 대해서는 아직도 깊은 경계심과 또렷한 혐오를 유지하고 있더군요.

만약 방주의 사람이 레드스톤 마켓 방어전에 참여했더라면 그들과의 접촉은 이렇게 순조롭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 차례 접촉을 거친 덕분에 저희에 대한 일부 어인과 산 요괴 태도도 꽤 개선됐습니다. 저 역시 거래를 담당하는 자들에게 인성이나 문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면서 그들에게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데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리도록 지시했죠.

그들은 이 말을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와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으니까요.”

레드스톤 마켓을 떠날 당시, 성건우는 어인, 산 요괴와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이 원한을 풀고 더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었었다.

그리고 장목화는 추리 광대로라도 거짓 평화를 실현하려 하는 성건우를 저지하고자, 방주 관리위원회 위원들에게 밀수팀을 조직해 어인, 산 요괴와 접촉하며 그런 상호활동을 바탕으로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고 서로의 거리를 줄이기를 당부했었다.

겨우 몇 년 안에 효과가 나타났으면 하는 사치스러운 욕심은 없었다. 그들 사이의 원한은 최대한 한두 대는 지나야 서서히 잊힐 것이었다.

무엇보다 휴전이 유지되도록 노력도 필요했다. 밀수를 통해 기본적인 물자에 대한 어인과 산 요괴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교류를 통해 다시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그들의 갈망을 가라앉히고, 또 그들의 심령을 위협할 만한 힘을 보여줘야 했다.

말하자면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성건우의 몇 마디 말로 해결될 그렇게 쉽고 간단한 작업이 절대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목화는 순간 흠칫 놀랐다. 지금의 성건우는 어쩌면 정말 몇 마디 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성건우는 심령의 복도에 이른 각성자였다. 그가 가진 사유 유도, 사유 이식과 추리 광대의 특징을 겸비한 그 능력이면, 어인과 산 요괴에게 어렵지 않게 특정 이념과 생각을 받아들이게 할 수도 있었다.

어인과 산 요괴 집단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다. 성건우가 조금 비밀스럽게, 약간 힘을 써주기만 하면 열흘에서 보름 안에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터였다.

그 후에는 아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방송을 듣도록 유도하면서 그 효과를 공고히 하면 되었다.

이러면 어인과 산 요괴는 뼛속 깊이 박힌 원한을 가진 이들이 모두 죽어버릴 때까지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물론 레드스톤 마켓은 경계 교회당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성건우가 대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었다. 다만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은 불모의 척박한 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인과 산 요괴들이 그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대부분은 현재의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려 할 것이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다시 또 표정이 약간 변했다. 하마터면 모두가 보는 가운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뻔하기도 했다.

‘레드스톤 마켓의 갈등을 각성자 능력을 써서 강제로 해결하려 하다니!’

예전이라면 그녀는 이것만큼 사악한 행위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능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의지를 왜곡하는 짓은 본질적으로 그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능력은 적에게 쓰기에나 적합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여전히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면서도, 해당 능력을 바탕으로 한 계획을 세워나가는 걸 그만둘 수가 없었다.

‘휴, 어인과 산 요괴들의 의지를 존중해야지. 스스로를 대형 빌런이라 부르고 다녔다고 해도 진짜 대형 빌런 같은 짓을 하면 안 돼.

근데 만약 나중에도 레드스톤 마켓을 되찾으려는 어인과 산 요괴를 저지하지 못하면, 이곳 주민들에게 그들을 받아들이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곳에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나고 말 거야.

일시적으로라도 능력을 이용해 그런 사태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계속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고려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애쉬랜드에 사는 이상, 마냥 청렴결백할 수는 없어. 오히려 그런 태도가 수많은 이들을 다치고 죽게 한다고. 몇 년간 그들의 의지를 왜곡시키는 대신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죄책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현재 주도권을 잡은 성건우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성건우는 울리히의 말을 듣고도 의욕이 넘치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울리히, 여천수, 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네요. 그 부분은 계속해서 이렇게 진행하시면 되겠어요.”

울리히가 답했다.

“어인, 산 요괴를 대상으로 한 밀수 사업은 저희한테도 이익이 되니까요.”

이 명예 회장들이 그렇게 당부하지 않았더라도 방주 관리위원회에서는 계속해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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