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53화 (552/649)

553화. 발상의 중요성

끝없는 어둠 속, 저 멀리 하나하나 떠오른 빛이 그 구역을 물들이며 장목화의 의식을 깨웠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장목화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전과 다르게 깨어난 후, 그녀의 시야를 채운 모습도 예전과는 달랐다.

회사 내부의 천장이라든가, 지프의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흰 구름이 뜬 파란 하늘과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도 아니었다.

그녀가 보는 건 기원의 바다 상공, 짙은 안개에 뒤덮인 듯한 하늘이었다.

‘성공이다⋯⋯!’

장목화는 밀려드는 기쁨을 느끼며 바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조금 전 혼수상태였던지라 그녀가 구현한 물건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휴대용 컴퓨터도, 노랫소리도 모두 다 사라진 뒤였다.

장목화는 살짝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노래가 좀 도움이 되네. 야가 그렇게나 노래에 집착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그녀가 조금 전 듣던 노래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였다. 그녀를 깨우는 데 어떤 작용을 했다기보단 또 다른 심리 암시 역할을 한 셈이었다.

장목화는 곧장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대신 이곳에 남아 곳곳을 거닐면서 이 섬의 완전한 모습을 관찰했다.

“왜 이렇게 동굴이 많아?”

약간 의혹 어린 눈으로 중얼거리던 그녀가 곧장 한 가지 추측을 했다.

“봉신연의에 나오는 일곱 개 구멍이 난 심장을 의미하는 건가?”

장목화는 이 말을 하자마자 스스로를 비웃었다.

“풉, 자기애가 너무 강한 거 아냐? 음, 이 섬은 마음속 두려움의 구현이잖아. 일종의 왜곡인 거지.”

중얼거리던 그녀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 * *

장목화가 눈을 뜬 것을 보고, 백새벽이 물었다.

“어때요? 뭔가 또렷한 효과가 있었어요?”

장목화가 웃었다.

“응, 성공했어.”

뒷좌석의 용여홍이 놀란 듯 외쳤다.

“네? 이렇게 빨리요?”

짝짝짝!

성건우는 계속된 구토에 진이 다 빠진 상태에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내 장목화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빠르긴 뭐가 빨라? 난 이 섬에 거의 석 달이나 발목 잡혀 있었는데.”

용여홍은 얼른 설명에 나섰다.

“제 말은, 방안을 바꾸자마자 바로 성공한 게 신기하다는 뜻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장목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모든 걸 좌우할 때가 있는 건가 봐.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난관도 더 이상 난관이 아니게 될 수 있는 거지.”

“맞아요, 맞아.”

성건우가 깊이 동조했다.

순간 장목화는 용여홍을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내 능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당장이라도 실험해 보고 싶네.”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물었다.

“저한테요?”

장목화는 계속 웃는 낯으로 용여홍을 차분히 설득했다.

“그럼 건우한테 해야겠어? 야 한번 봐봐, 지금 그냥 반죽음 상태인데? 그렇다고 저 쪼끄만 흰둥이한테 할 수는 없잖아. 운전도 해야 하고.”

그때, 백새벽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작은 빨강이가 운전할 때이기도 해요.”

용여홍은 얼른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할게.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뭐.”

백새벽은 입을 감쳐물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곧이어 비교적 탁 트인 곳을 찾은 백새벽이 지프를 세웠다.

그리고 장목화는 몇 분간 자신이 가진 세 가지 능력 변화를 실험했다.

첫째, 공간 환각은 원래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최대 능력 범위도 15미터였는데, 지금은 네 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능력 범위는 20미터로 늘어났다. 또한 이 능력은 사용을 멈추는 순간 효과가 사라졌다.

다음으로 물품 인식 불능의 최대 능력 범위도 10미터에서 13미터로 늘어났는데, 이건 여전히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거기다 목표는 한 번에 한 물품 인식에만 어려움을 겪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용여홍은 이번에 장목화가 던진 통조림을 폭탄으로 여기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는데, 그 효과가 유지되는 시간은 현재로선 1분에 불과했다.

마지막 자극 장애는 여전히 한 번에 목표 하나를 대상으로 한 가지 관련 반응에만 영향이 있었다. 이 또한 용여홍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용여홍은 소리를 들으면 눈을 감는 반응을 보였다. 이 효과가 유지되는 시간은 1분에서 1분 20초로 늘어났고, 최대 영향 범위는 10미터였다.

종합적으로 이번 섬을 극복한 장목화의 능력은 대략 30퍼센트 정도 강화된 셈이었다. 또 각 능력의 강화 폭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 * *

분노의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진흙은 점차 축축해졌고 각종 초목은 점점 더 푸르러졌다.

겨울이 갈 때마다 이 근처에 원래 있던 길은 다시금 다듬어야 했다.

이곳에서 구조팀은 격세 유전으로 변이된 새의 습격을 받았다.

몸집이 거대하고 비행 속도가 어마어마한 새는 돌을 집어 던지는 식으로 사람을 공격할 줄도 알았다. 꼭 좀 낙후된 장비가 장착된 헬기 같달까.

그러나 새와 맞서기 위해 성건우나 장목화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와 인공지능 갑옷도 필요 없었다. 처리는 아주 간단했다.

용여홍이 그 새를 살짝 유인하는 사이, 기회를 잡은 백새벽이 단번에 새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것으로 이 작은 전투는 끝났다.

유전자 개조를 거친 그녀의 사격 실력은 무서울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지?”

성건우가 거대한 조류 괴물 옆에서 깊은 고민을 하게 하는 질문을 했다.

그는 상처가 낫자마자 아픔도 잊어버린 듯, 현기증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금세 먹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이내 그가 팀원들이 무슨 답을 하기도 전에, 오른손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치며 질문에 자문자답했다.

“알겠어, 통째로 끓이는 거야!”

장목화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큰 웍을 어디서 구하냐? 구해봤자 그릴에 올리지도 못할걸.”

언제나처럼 옥신각신하는 팀원들을 보다가, 백새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기 멀리 차 두 대가 오고 있어요.”

이곳은 사방이 트인 곳이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난 차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성건우는 바로 겁에 질린 척 말했다.

“설마 이 새가 저 사람들 애완동물이었던 건 아니겠죠?”

장목화는 그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백새벽만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이 굳이 150마터 안까지 진입하면 하늘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해.”

150미터로 한정을 둔 건 성건우가 그 범위 내의 존재에게 영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량 두 대는 원래 모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조를 거친 상태였다. 지붕에는 기관총을 설치하고 양쪽에 깃발을 달았고, 먼지투성이인 겉엔 래커로 피와 장기, 반쯤 벗은 사람 등이 그려져 있었다.

용여홍은 절로 북안 뭇 산 전진캠프의 개조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그것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저마다 개성이 독특하고 다양했다.

본디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환경 속에 살아간다면, 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배출할 곳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때, 다가오던 두 차량 역시 구조팀을 발견한 듯 옆으로 방향을 틀면서 구조팀을 우회할 준비를 했다.

그러다 앞서 달리던 차에서 누군가 놀라고 기쁜 듯한 소리로 외쳤다.

“백새벽?”

맞은편에서 들려온 큰 목소리에 용여홍은 하마터면 넋을 놓을 뻔했다.

‘뭐야, 작은 흰둥이를 아는 사람인가?’

자신들을 우회하려는 차들을 보고, 경고 사격은 접고서 단순한 경계만 하던 백새벽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상대가 누군지 기억해내려는 것 같았다.

“나야!”

개조된 차의 보조석에서 머리 하나가 쏙 내밀어졌다.

30대 남성이었다. 애쉬랜드인으로 수염은 매우 깔끔하게 깎여 있었는데 유적 사냥꾼 중에서 그런 사람은 굉장히 드문 편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이렇게 함부로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남들에게 저격당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빠르게 고개를 거뒀다.

“좀 웃긴 느낌이 나는데⋯⋯.”

성건우가 솔직하게 평가했다.

그는 원래 구세계 콘텐츠에서 배운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아직 타격받은 정신이 마냥 온전치는 않아서 그러진 못했다. 지금은 머리를 굴릴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백새벽은 밖으로 잠깐 내민 고개를 보고 상대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바로 팀원들을 돌아보며 간단히 설명했다.

“예전에 저랑 같이 팀을 이뤄서 몇몇 폐허 도시를 탐색했던 유적 사냥꾼이에요. 이름은 초유근이고요.”

장목화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아, 지인이면 와서 인사나 하라고 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백새벽은 초유근이 탄 차를 향해 어인 형 생체 공학 의수를 휘휘 흔들어 보였다.

그녀가 생체 공학 의수로 바꾼 것은 왼팔이었다.

두 차가 느릿하게 다가오는 동안 용여홍은 자꾸 입술을 달싹거렸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언제나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팀장 장목화는 용여홍을 힐긋 보고 웃다가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팀까지 이뤄서 같이 다녔는데 왜 결국 찢어진 거야?”

백새벽은 덤덤하게 답했다.

“저 사람은 굉장한 야심가였어요. 퍼스트 시티 동쪽에 있는 세력으로 가서 자기 운을 시험해보고 싶어 했어요. 저는 당시 제 지능 로봇과 함께 있었던 데다가 익숙한 지역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요. 결국 저 사람만 동료 몇 명을 데리고 떠났죠.”

장목화가 다시 차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완이 꽤 좋네.”

일반적인 유적 사냥꾼이 중기관총을, 그것도 두 대나 갖기란 불가능했다. 개조를 거친 자동차 역시 전투에 적합한 쪽으로 변형돼 있었다. 자원이 없고 인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곧이어 양쪽에 깃발까지 단 두 차량이 자신들끼리 간격을 벌렸다.

앞쪽 차는 속도를 더 내서 구조팀에게 접근했고, 뒤쪽 차는 속도를 낮춰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멈췄다.

그들의 깃발은 과장되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색채나 특정 세력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특정 브랜드의 아름다운 스카프나 화려한 카펫 등 구세계의 각종 방직물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서 만든 것 같았다.

종합적으로 보면 깃발 네 개는 분명 서로 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론 자유분방하면서도 억압에 저항하려는 듯한 느낌이 났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예술가는 언제나 예술가를 알아보는 법 아니겠는가.

마침 차에서 내리던 초유근은 흠칫 놀랐다. 때아닌 낯선 사람의 갈채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머리를 네모반듯하게 깎은 남자는 잘생겼다는 표현은 할 수 없었지만 퍽 친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초유근은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 그리고 녹회색 지프를 살핀 뒤 웃으며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꽤 잘살고 있었네.”

그 사이, 개조된 차의 뒷좌석에서 여자와 남자가 더 내렸다.

남자의 키는 장목화와 비슷했다. 꽃무늬 셔츠를 입고 금목걸이를 건 남자에게선 차 옆에 달린 깃발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또 170센티미터가 좀 안 되는 여자는 아직 초봄이라 공기는 쌀쌀한 편인데도 벌써 반바지에 부츠를 신고 있었다. 더불어 그녀는 섀도와 블러셔로 스모키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아마도 어느 폐허 도시에서 찾아냈을지 모를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으로 빚어낸 결과물인 듯했다.

그러나 여자는 딱히 그 화장이 아니어도, 방금 막 전투를 마치고 온 것 같은데도 이목구비 자체가 상당히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