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49화 (549/649)

549화. 여객선 위

한편,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성건우는 원래 이 방 주인의 두 번째 트라우마를 마주하기 위해 바다에 떠 있는, 아주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여객선에 오를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 주인은 성건우의 탐색을 감지한 듯, 어느 정도 환경을 바꾸면서 경고를 해왔다.

상식에 따르면 방 주인은 누군가 그의 트라우마 여러 개를 극복하고 의식 세계 깊은 곳까지 탐색한 후에나 연속적인 악몽을 꾸면서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상식과는 퍽 다른 상황이었지만 예의 바른 성건우는 곧장 그 방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부터 구조팀이 반고 바이오에서 출발할 때까지 그는 반고 바이오에서 제공한 공략집에 따라 근처에서 방 두 개를 찾고, 각각의 방에서 트라우마를 세 개씩 극복하며 불완전한 탐색을 진행했다.

방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험은 커져도 별 수확은 없을 수도 있어서, 공략에서는 심층적인 탐색을 추천하진 않았다.

그래도 성건우의 각성자 능력은 확실히 강화되었다.

사고 유도의 범위는 여전히 상대가 상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에 그쳤지만, 전파를 통해 멀리까지 전달된 소리는 효과가 훨씬 강해졌다.

문학청년-억지쟁이의 범위는 110미터로 늘었고, 사지 동작 불능은 150미터, 전파 방해는 150미터, 물질 간섭은 60미터까지 늘었다.

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원은 전부 70명으로 늘어났다.

본디 각각의 방과 트라우마들은 능력을 단련시키는 정도도 각기 다 달라서, 각 능력의 강화 폭도 서로 다 달랐다.

그러니 식품회사에 진입한 이후 이만큼까지 능력치가 강화된 걸 보면, 그 트라우마의 효과가 얼마나 좋았는지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131호에서 나온 성건우들은 어두운 노란 카펫이 깔린 복도에 이르렀다.

그때, 한 성건우가 좌우를 살핀 후 묵직한 투로 말했다.

“늘 공략집에 적힌 방만 들어갈 순 없어. 그럼 아무 재미도 없잖아.”

유약하고 겁 많은 성건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 그럼 101호나 205호 같은 방에 가보지 그래? 공략집에 적혀 있다고는 해도 무척 자극적일걸!”

정신 병원의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는 101호는 굉장히 위험했다. 부처, 혹은 장생의 꿈으로 매우 괴상하다는 205호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성실한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첫째, 205호는 너무 위험해서 지금 우리한테는 적합하지 않아. 둘째, 공략집 속 다른 방들은 근처에 없기도 하고, 언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건우가 덧붙였다.

“셋째, 가능하다면 난 꼭 101호에 가보고 싶어.”

한차례의 언쟁 끝에 성건우들은 겨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근처에서 공략집에는 적혀 있지 않은 방 하나를 탐색해보자는 것이었다.

주위를 대충 슥 훑던 성건우가 912호란 번호가 붙은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공략집에는 없는 번호였다.

반기계 승려 제도 선사가 육식주를 굴리며 말했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기 마련이지요.”

다시 하나로 합쳐진 성건우는 912호 앞에 이르러 문고리를 돌렸다.

그 안엔 어스름한 바다와 패류가 잔뜩 붙은 여객선 한 척이 보였다.

몇 초 후, 성건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네⋯⋯.”

이곳의 트라우마는 522호의 두 번째 트라우마와 똑같아 보였다.

대부분의 성건우들은 옳다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들은 저항하려는 소수의 성건우들을 제압한 뒤, 이 트라우마를 탐색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풍덩~

성건우는 일단 나는 물고기처럼 몸을 쭉 늘이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스름한 바다는 조금도 출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굳어버린 것 같았다.

곳곳이 파손돼 음산해 보이는 여객선과 아주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성건우는 개의치 않고 자세를 취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기원의 바다에서의 경력 덕분에 지금의 그는 수영에 매우 능숙했다. 접영, 평영, 배영, 자유영, 뭐든 상관없었다. 심지어는 개헤엄이나 허우적거리는 막 수영도 전부 그럴듯해 보이는 데다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곧이어 성건우는 근해에 떠 있는, 아주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여객선 근처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제야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바로 이 여객선 위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의 여객선이 사다리를 내린다거나 전방의 카고 도어를 열어줄 리 없었다.

성급한 성건우는 나머지 성건우들의 질타에 어쩔 수 없이 의식 깊은 곳으로 물러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성건우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 방 주인과 522호 주인은 당시 여객선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여객선 위에서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자 성실한 성건우가 코웃음을 쳤다.

“간단하잖아? 분명 부두 어딘가에서 소형 선박을 타고 와서 위로 끌어올려졌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아까 이렇게 냅다 물에 뛰어들어 수영할 게 아니라 부두 쪽에서 뭔가를 찾아봤어야 해.”

그는 성건우들의 무시를 넘어 급기야 당시 성급한 성건우에게 동화돼 그를 저지하지 못한 성건우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이에 반기계 승려 제도 선사가 육식주를 굴리며 말했다.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해결 방법을 찾는 거지요.”

성건우 민주 협의회에서 언제나 평화와 자비를 지향하는 제도 선사는 수습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부두로 다시 헤엄쳐 돌아가 봤자 정신력만 낭비돼. 다른 방법이 있는지부터 찾아보자.”

명랑한 성격의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폭발로 선체에 큰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어!”

“좋습니다, 좋아요!”

제도 선사가 동조했다. 이 반기계 승려는 언제나 화력이 우세한 쪽을 주장하는 편이기도 했다.

성실한 성건우는 바로 의문을 표했다.

“배가 가라앉으면 어떡해?”

지금 성건우들은 하반신은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상반신은 분리돼 있었다. 원을 그리듯 빙 둘러 자리한 덕분에 서로 대화를 하기에는 편했다.

이때 명랑한 성격의 성건우가 얼른 설명했다.

“농담이야, 농담. 내가 진짜 하려던 말은 각종 도구를 구현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거지. 예를 들면 헬리콥터나 군용 외골격 장치처럼 우리를 갑판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도구 말이야.”

반성이 끝나기 무섭게 성급한 성건우는 망설임 없이 시도에 나섰다.

몇 초 후, 그가 물었다.

“구현해낸 물건이 효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물질 간섭 능력을 사용해 충분한 정신력을 주입해야 하나?”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유약하고 겁 많은 성건우가 되물었다. 그는 평소 성급한 성건우를 가장 탐탁지 않아 했다.

곧이어 성급한 성건우를 대신해 성실한 성건우가 답변했다.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아. 게다가 헬리콥터나 군용 외골격 장치는 다 큼직하잖아. 주입해야 하는 정신력은 수영에 소모되는 정신력 못지않을걸.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고!”

짧은 침묵에 잠긴 성건우들은 다른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방법이 있어.”

“뭔데?”

다른 성건우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성건우는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인간 사다리를 만드는 거야! 우리는 무려 10명이나 되잖아.”

“좋아!”

성급한 성건우가 즉각 호응했다.

“열 명이면 충분하려나?”

어렸을 적 옷을 입고 있는 성건우가 이곳에서 1층 갑판까지의 높이를 눈으로 가늠해 보았다.

냉정한 성건우가 웃었다.

“그야 시도를 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지.”

열 명으로 분리된 성건우들이 흩어지는 사이 성급한 성건우는 선체로 다가가 표면에 다닥다닥 붙은 패류 생물을 움켜쥐었다.

다음으로 나선 건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건우였다. 그는 성급한 성건우를 사다리로 삼아 기어오른 끝에 그의 어깨 위에 섰다.

그렇게 열 성건우는 서로의 어깨를 밟으며 인간 사다리를 만들었다.

이곳은 의식 세계인 데다가 성건우의 균형 능력은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이 인간 사다리는 위태로워 보이기는 해도 절대 쓰러지지는 않았다.

맨 위에 자리한 냉정한 성건우는 아직도 한참 멀어 보이는 갑판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 이후 비수 한 자루를 뽑아든 그는 약간의 정신력을 주입한 뒤, 강철로 만들어진 유람선 선체 용접층에 꽂아 넣었다.

“나를 중심으로 합체해.”

쉭-

냉정한 성건우가 낮게 외치자마자 나머지 모두가 그에게 몰려들었다.

뒤이어 성건우 하나가 분리되더니 냉정한 성건우를 타고 기어올라 그의 어깨를 밟았다.

한 명, 또 한 명……. 성건우들은 재차 인간 사다리를 형성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극소량의 정신력만을 소모하면서 순조롭게 1층 갑판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다시 하나로 합쳐진 성건우는 몸을 훌쩍 날린 뒤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는 돌연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온 세상이 살아난 것 같았다.

사방에서는 어떠한 징조도 없이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갑판 위로는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를 실은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아래쪽의 바닷물 역시 출렁이면서 크지 않은 파도를 일으켰다.

위를 보니 각기 다른 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청장년 위주의 남녀가 갑판 위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말과 표정 모두 생동감이 넘쳐서 사실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주위를 슥 둘러보던 성건우는 선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세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해 왔는지 모를 쪼글쪼글한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마저 아까운 듯 불도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 곁에 자리한 나머지 둘은 30대로 보였다. 그들이 입은 옷은 매우 낡아 곳곳에 기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선 성건우는 세 남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먼저 담배를 문 짧고 단정한 머리의 남자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이따 그 섬에 가면 더는 무심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질 거야.”

그의 허리춤이 불룩한 걸로 봐선 그 안에 무기가 숨겨져 있는듯했다.

“그럴 리가 있나? 이전까지는 무심자가 없는 섬이었다고 해도 이 배에 탄 사람들이 도착한 후에는 언젠가 새로운 무심자가 나타날 텐데.”

그의 말에 답한 건 곁에 있던 두 일행이 아닌 사교성 좋은 성건우였다.

순간 미묘한 변화를 보이던 남자의 표정은 성건우의 몸을 슥 살핀 후에는 다시 또 평온해졌다.

이내 그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새까맣게 몰려드는 수만, 수십만의 무심자들을 마주하지는 않겠지. 게다가 전에 그 섬에 갔던 사람이 말하기로는, 거긴 토지도 비옥하고 볕도 충분하고 비도 많이 와서 농사를 짓기에도 적합하다던데.”

“오염되지도 않았고.”

그 남자의 일행 중 하나도 선망하는 듯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에게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오른쪽 눈썹 끝에 난 검은 점이었다.

그 말에 성건우가 크게 놀랐다.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니⋯⋯.”

담배를 문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성건우는 얼른 표정을 다잡은 뒤 정색하고 대꾸했다.

“내 질문에 답을 안 해줄 줄 알았거든.”

논리상 트라우마 안의 인물은 방 주인의 관련 기억으로 구성되고 활동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은 일종의 ‘NPC’와 같아서 고정된 질문에 대한 답만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건우가 방금 한 질문은 당시 누군가 실제로 했던 질문이거나, 이 트라우마 속 인물들은 특별하게도 실시간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곧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가 손에 끼운 담배를 입에서 뗐다.

“답을 안 할 이유가 어디 있지? 난 언제나 아는 체하기를 좋아하는데.”

성건우는 돌연 입을 벌리더니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세 남자는 몇 초간 멍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충격에 빠진 그들은 머지않아 불같이 성을 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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