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화. 성급하게 굴다
연락을 받고 장목화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부처 펜던트? 불가와 관련된 물건이 나왔다 이거지. 작은 빨강이가 보고 있는 건 환각이 아닐 거야. 상황을 주관하는 사람이 없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그런 세세한 환각이 나타날 수는 없잖아. 하긴 이 상황을 주관하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법은 또 없지만.’
장목화는 곧 백새벽에게 물었다.
“작은 흰둥이, 지금 네가 볼 때 작은 빨강이한테 이상이 있어 보여?”
- 아니요.
백새벽이 짤막하게 답했다. 지금 그녀는 4동 뒤에서 계속 302호 외벽에 매달린 용여홍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건우는 여전히 망가진 침대와 구멍 뚫린 비닐만 보인다고 했다.
고민하던 장목화는 명령을 내렸다.
“작은 빨강이, 건우한테 그 옥 부처의 구체적인 위치 좀 알려줄래? 정확한 위치를 건드려볼 수 있게. 어쩌면 그게 스위치일지도 몰라. 넌 계속 경계 늦추지 말고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는 거 잊으면 안 돼.”
용여홍은 숨을 깊이 마신 후 창문 너머의 침대 모서리와 붉은 이불의 위치를 기준으로 성건우를 지휘했다.
현재 성건우를 통제 중인 성건우는 용여홍의 말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조금씩 범위를 좁혀나갔다. 병력 복원본을 쥔 손도 때에 따라 위아래, 좌우로 거두며 열심히 응했다.
마침내 용여홍은 성건우의 손가락이 옥 부처에 닿는 순간을 목격했다.
“어때? 뭔가 느껴져?”
용여홍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용여홍은 낮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이후 장목화가 미처 새로운 명령을 내리기도 전,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성건우가 의욕 넘치는 표정을 보였다. 동시에 그의 반대편 손에 있던 육식주가 청록색 빛을 발했다.
성건우는 다른 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이 도구의 기운만 활성화했다.
육식주에서 발산된 청록색 빛이 침대에 닿자, 성건우의 오른손도 가볍게 몇 차례 움직였다.
그리고 성건우도 마침내 손끝에 닿는 딱딱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창밖의 용여홍도 성건우가 오른손을 콱 움켜쥐면서 그 옥 부처를 잡아채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성건우의 시야가 확 바뀌었다.
남루했던 침대에는 붉은 시트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는 각기 다른 옷을 입은 유해 두 구가 누워 있었다.
또 그의 손에 호수를 방불케 하는 녹색 옥 부처가 쥐어져 있었다.
“대단해!”
성건우가 진심 어린 감탄사를 내뱉었다.
- 왜 그래?
장목화가 곧장 무전기로 물었다.
성건우들은 용여홍과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조금 전 일을 설명했다.
이후 장목화는 혼잣말을 하듯 그들의 말을 정리했다.
“육식주의 기운을 방출하니 옥 부처를 만질 수 있었고, 옥 부처를 손에 쥐니 눈속임이 해제됐다⋯⋯. 그래, 현재 육식주 기운에 제2 식품회사에 잠재돼 있던 이상 현상 일부가 녹아들어 있으니까.”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그곳은 불가의 성지 중 하나였다.
더불어 지금 그들이 자리한 이곳 역시 불가의 성지 중 하나였다.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곧장 말을 이었다.
- 건우야, 그 옥 부처를 바로 가지고 나오지 말고 유골들이 입고 있다는 옷을 한번 뒤져봐.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옥 부처는 철수를 확정한 후에 가지고 나와도 안 늦어, 알지?
성건우도 이번에는 성급하게 구는 대신 육식주를 쥔 왼손으로 두 유골이 입고 있는 옷 주머니를 더듬었다.
잠시 후 수색을 마쳤지만, 그가 찾아낸 물건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구세계에서 생산된 핸드폰 두 대, 새것도 아니지만 낡은 것도 아닌 지폐 몇 장, 지갑 하나, 신분증 두 개.
성건우는 신분증의 앞뒤를 번갈아 살피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방민서, 이진용. 아무래도 목표는 구세계 파괴 당시, 아니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모양이에요.”
“그런 것 같네⋯⋯.”
창밖의 용여홍도 동조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상황에 근거하면 녹색 다운재킷을 입고 있는 유골이 바로 구조팀의 이번 목표인 방민서인 듯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 우리도 저들 영면을 방해하지 말자. 옥 부처랑 핸드폰만 갖고 나와.
핸드폰은 데이터를 환원할 수 있을지 한번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네.”
성건우는 옥 부처와 핸드폰 두 대를 회색 제복 주머니에 잘 챙겨 넣고, 어느덧 사명의 신도로 돌아왔다.
다시 붉은 이불로 유골들을 잘 덮어준 그는 예를 갖춰 세 번 절을 했다.
의식을 마친 성건우가 막 안방에서 빠져나온 그때였다.
갑자기 온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목화 역시 이상을 감지했다.
“철수해!”
쿵! 쿵! 쿵!
성건우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02호 입구에 있던 장목화는 먼저 도망치지 않았다.
성건우가 302호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그를 도와 뜻밖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고, 혼자 나갔다가 길을 잃어 더 위험한 상황이 될까 봐 두려웠던 이유도 있었다.
한편, 302호 안방 창문 밖에 매달려 있던 용여홍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날린 후 2층 발코니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그렇게 연달아 몸을 날리면서 무사히 땅에 착지한 그는 백새벽과 함께 4동 앞쪽으로 달려갔다.
거의 동시에 성건우도 무탈하게 302호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른손이 마비된 장목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은 점점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떨어지는 분진 속에 성건우가 앞서 길을 인도했고, 장목화도 그를 따라 아래로 내달렸다.
* * *
잠시 후 속속들이 지프 근처에 도착한 구조팀 네 팀원은 약속이나 한 듯 민첩하게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장목화, 용여홍, 성건우, 백새벽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4동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주 이상한 붕괴였다. 이상하리만치 느릿한 속도를 유지한 채 와해되고 있는데, 딱히 큰 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지프가 가족 2구역을 벗어났을 무렵, 구조팀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4동의 붕괴도 그제야 끝난 상태였다.
그곳에 쌓인 콘크리트가 꼭 거대한 무덤처럼 보였다.
302호 역시 그 안에 묻혀 있었다.
* * *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은 속도를 늦춰 반대편에 앉은 장목화, 성건우가 계속 4동 상황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미 완전히 무너졌으나 주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은 건물은 부옇게 일어난 먼지도 많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상황을 관장하면서 물리학 규칙에 어긋나는 현상을 일으키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한참을 관찰하고 있던 장목화가 물었다.
“우리가 그 옥 부처를 가지고 나와서 4동이 무너져 내린 걸까?”
성건우도 차창에 바짝 붙인 얼굴을 떼고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죠? 핸드폰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운전 중인 백새벽도 가세했다.
“게다가 여긴 불가의 5대 성지중에 하나잖아요.”
옥으로 조각된 부처만큼 불가와 밀접하게 관계된 것도 없었다.
곧이어 차가 방향을 틀자, 용여홍도 4동 건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깥을 살피던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근데 붕괴 현상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건물을 유지하던 힘이 사라졌다면 단번에 해체되면서 요란하게 무너져 내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어쩌면 저것이야말로 4동의 원래 상태인지도 몰라. 옥 부처가 저 비정상적인 상태를 60여 년이나 유지해온 거지.
우리가 옥 부처를 가지고 나온 순간 4동 건물은 붕괴한 게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회귀한 거야. 기척이 지나치게 작았던 건 그것 때문이고. 물론 이것도 그냥 가설 중에 하나일 뿐이야.
또 옥 부처를 통해 302호 특수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곳을 주시하고 있던 누군가가 유골들과 현장이 파괴될까 봐 힘을 발휘해 건물을 조용히 파괴한 것일 수도 있고. 봐봐, 저 건물 잔해, 거대한 무덤처럼 보이잖아.”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진지하게 고민해보던 용여홍은 후자에 더 무게를 뒀다. 과거 상태니, 현재 상태니, 회귀니 하는 개념들은 지나치게 고차원적이었다. 아무리 각성자들의 힘이 특수하다 한들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창 머리를 굴리던 용여홍은 순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옥 부처를 꺼내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눈을 휘둥그레 뜬 용여홍은 말까지 더듬으며 외쳤다.
“잠깐, 잠깐만!”
기이한 곳에 있던 기이한 물건은 철강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후에 꺼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럼 또 어떤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하지만 성건우는 아무렇지 않게 펜던트 같은 옥 부처를 만지작거렸다.
“여기 어떤 기운이나 힘 같은 건 없어.”
장목화가 바로 추측에 나섰다.
“네가 그걸 건드린 순간 기운이나 힘이 흩어져 사라진 건가? 그래서 4동이 무너져 내린 거고?”
성건우는 조금 전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것보다 더 먼저였을 걸요? 제가 건드린 순간에 이미 이건 그냥 평범한 옥 장식이었어요.”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용여홍은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확인한 후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가 육식주의 기운을 발산하면서 안방 안의 눈속임을 깼을 때 옥 부처의 힘도 사라지기 시작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백새벽이 의혹을 표했다.
“302호 안방이 환각으로 뒤덮여 있었던 거야?”
용여홍이 빠르게 설명했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난 분명 건우가 이 옥 부처를 건드리는 걸 봤는데 건우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더라고. 환각으로 물질의 존재까지 지워버리지는 못하잖아?”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별히 강력한 환각이라면 촉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잠시 고민하던 용여홍은 조금 전 자신이 굉장히 무시무시한 상황을 겪은 것이었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강력할 수도 있다고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진 것들이 전부 환각의 영향을 받은 거였다면 우리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각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어지는데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는 양손을 펼쳐 몸을 살짝 젖혔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왜 진지하게 임하는 거야!”
장목화도 따라 웃었다.
“깨진 거울 영역의 대형 교파들은 아마 다 그렇게 생각할걸?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휴, 이 문제는 그만 얘기하자. 우리가 파악한 정보나 지식이 너무 적어서 지금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파. 그저 열심히, 지금을 살면 그만이지.”
철학적인 분야로 대화를 마무리한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근데 넌 환각이라고 생각해?”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성건우는 왼손을 세우며 장엄하게 답했다.
“전설 속의 아라야식이지 않을까요?”
“이유는?”
장목화가 캐물었다.
용여홍과 백새벽도 조용히 귀를 쫑긋 세웠다.
“없죠. 직감이에요.”
성건우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
세 사람이 정적에 빠진 순간, 타박받기 전에 성건우가 알아서 덧붙였다.
“제가 보기에 302호 내부에는 두 개의 세계가 중첩돼 있던 것 같아요. 두 세계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아라야식을 열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두 세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결국 용여홍이 인상을 썼다.
“구세계 콘텐츠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귀한 자료니까.”
성건우도 부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도 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