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45화 (545/649)

545화. 다시 지상으로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코드점⋯⋯.

성건우는 스피커에서 흐르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차를 몰았다.

오늘 녹회색 지프의 운전대는 바로 그가 잡고 있었다.

그 옆 보조석엔 장목화가 오른팔을 창틀에 얹고 반쯤은 기대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지프는 한창 늪 가장자리 길을 따라 달리는 중이었다.

이제는 장목화도 운전할 때마다 음악을 트는 성건우에게 익숙해졌다. 가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음악이 나올 때만 다른 걸 틀라고 얘기할 뿐이었다.

그렇게 장목화는 차 안을 메운 음악은 무시한 채,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검은 늪 철갑뱀을 만났죠. 그 강도들이랑요.”

용여홍은 생애 최초로 마주한 그 위험한 상황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이내 장목화가 감개무량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맞아. 우리를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그만한 장비를 갖춘 강도들은 황야 대부분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텐데.”

겨우 몇 명뿐인 강도단이지만 그들에게는 군용 외골격 장치가 한 대 있었다. 대형 강도단 중에서도 그만한 장비를 갖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뒷좌석 반대편의 백새벽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과 부근의 기형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그 강도단 두목의 아내가 퍼스트 시티 사람한테 붙잡혀서 어느 원로나 그 직계 후손의 노예가 됐던 걸로 기억해요. 아들은 그 가문의 노예가 됐다가 나중에 학교에 다니게 됐고요.”

그런 연줄이 없었다면 그 강도단도 군용 외골격 장치라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백새벽의 말을 듣고, 장목화가 살짝 혀를 찼다.

“쯧, 그래서 난 그 강도단 두목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더라고. 그 사람한테 푹 빠진 퍼스트 시티 실권자가 그 사람 전남편, 아니 그 사람이 살았던 거점에 군용 외골격 장치 한 대를 덜컥 내줬을 정도니까.”

구세계가 파괴된 지 70년이 채 안 된 이때, 각 황야유랑자 거점에도 미모가 뛰어난 남녀가 몇몇 있기는 했다. 그래도 얼굴이 재와 모래에 뒤범벅되어 있거나 비쩍 말라 있어서 눈에 딱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다.

살아남기조차 어려운 황야유랑자 거점에서 자연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주위에 선택받은 자가 널린 데다 직접 유전자 개량을 받은 당사자이기까지 한 구조팀으로선, 미인이라고 칭할 만한 이는 몇 있을지 몰라도 엄청나다고 칭송할 미인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늘 예외가 있지 않은가.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은 황야유랑자라면, 제대로 씻기만 해도 빛을 발할 정도로 외모가 훌륭할 수도 있었다.

이내 운전 중이던 성건우가, 어느 성건우일지 모를 성건우가 대꾸했다.

“그래도 팀장님만은 못할걸요.”

장목화는 바로 웃음이 터졌다.

“하하! 뭐 감사합니다, 절이라도 해야 해?”

물론 그녀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성건우의 칭찬이니만큼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긴 꺼려졌다. 또 뒤에 어떤 말로 화를 돋울지 긴장은 하고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장목화는 자신의 진짜 매력은 외형이 아닌 힘과 지능이라고 여겼다. 얼굴이야 뭐, 보기에 잠시 좋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도 성건우가 이번에는 또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성건우가 모처럼 진지하게 답했다.

“저는 매우 솔직하고 할 말이 있거든 주저하지 않아요. 그렇게 쉽게 남을 비하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데요.”

‘이렇게 보면 언쟁을 좋아하는 건우도 귀여운 구석이 좀 있네.’

풋, 웃던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 그럼 지난번에 퍼스트 시티의 동란이 발생했을 때 그 편지를 쓴 사람과 그 사람 어머니도 영향을 받았을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실한 성건우가 겁에 질려 꽥 소리쳤다.

“뭐야, 화근의 뿌리까지 다 뽑아버리려고요?”

‘아니야, 전혀 귀엽지 않아.’

장목화가 이를 악물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겠어?”

지금의 구조팀이라면 어디를 가든 고위층의 중시를 받을 만했다. 퍼스트 시티나 화이트 기사단 같은 대형 세력에서도 등한시될 팀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분명 구조팀을 진압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전에 구조팀이 먼저 적잖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무엇보다 구조팀에겐 그들에게 진압되기 전에 미리 도망쳐 나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었다.

잠깐 당시 상황을 떠올린 장목화가 그립다는 얼굴로 창밖을 쳐다봤다.

“그때 뺏은 중형 오토바이를 타는 느낌도 꽤 괜찮았는데. 언제 또 그런 오토바이를 얻을 수 있으려나⋯⋯.”

용여홍은 입을 다물었다. 백새벽도 그랬다. 성건우 역시 이 순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 사람이 왜 그런 반응인지 모를 리 없는 장목화도 조금 울적해졌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중형 오토바이를 탈 기회가 없겠지⋯⋯.”

대가를 치른 그녀는 오토바이에 올라도 무사히 돌아오진 못할 것이었다. 옆에 줄곧 따라다니는 지프가 없다면 길을 찾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얌전히 지프만 따라다니는 게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그건 중형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나 다름이 없었다.

‘원래 건우랑 새벽이, 여홍이까지 투표로 내 운전 권한을 완전히 뺏으려고 했었지! 다행히 내가 논리로 박살 냈지만. 하! 이렇게 사이좋게 나란히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아, 이 사람들아!’

장목화는 출발 당시가 생각나 갑자기 속으로 씩씩거렸다.

그때 성건우는 장목화는 이제 운전하면 안 된다고, 자칫 잘못하면 팀을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데려갈지 모르니 철저히 승객이 되라고 얘기했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그 제안에 마음이 동한 듯했지만, 장목화는 강경한 태도로 그 성실한 성건우의 주장을 제압했다.

그녀의 길눈은 아직 다른 사람이 길 안내를 해주는 와중에도 잘못된 길로 빠질 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 * *

장하시 폐허 철강공장.

혼란의 시대에 발견된 이 소형 유적은 일찍이 대량의 유적 사냥꾼이 파헤칠 대로 파헤친 상태였다. 심지어 부근의 병원 대문까지도 누군가 떼어간 상태라 가치 있는 물건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식량으로 바꿀 만한 쓰레기를 찾으려는 사냥꾼을 제외한다면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건 구조팀이 원래 다 파악한 정보였고, 지금은 황량해질 대로 황량해진 이 폐허에 붙은 다른 이름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불가의 5대 성지 중 하나였다.

각기 다른 교파에 속한 보리와 장생의 신도들은 매해 애쉬랜드의 곳곳에서 이곳으로 성지 순례를 와 제강탑에 예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런 인적도 없는 폐허를 바라보던 장목화는 공장 진입로에 딸린 병원과 그 주위의 철강공장 직원 가족 구역을 둘러보며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바로 가족 2구역에 가보자.”

병력에 따르면 방민서의 주소는 가족 구역 2구역 4동 302호였다.

그리고 현재 구조팀의 주요 목표는 구세계 파괴 이후 그녀의 행방이었다.

어디가 가족 2구역인지 장목화는 이미 다 예습해둔 상태였다.

몇 번이나 탐색 됐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유적 사냥꾼이 훑고 지나간 탓에, 이곳은 더 이상 뒤져볼 가치도 없는 유적이 돼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 정보도 거의 다 공개된 상황이었다.

또한 검은 늪 황야의 배후 맹주라고 할 수 있는 반고 바이오에서 이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회사는 전에 분명 사람을 보내 이곳을 조사하게 했을 것이다.

회사 내부의 철강공장 관련 자료만으로도 장목화는 이곳의 완전한 구조를 파악하고 가족 2구역이 어디인지도 확인했었다.

그때, 장목화가 지도를 꺼내자마자 성건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이요!”

장목화는 하마터면 묻지 말라고 말하려다 이성을 되찾았다.

“뭐?”

성건우가 진지하게 물었다.

“지도 그릴 때 진짜 아무 실수도 없었다고 확신해요? 길치가 그린 지도의 신뢰도가 그리 높을까요?”

용여홍은 그 걱정에 어느 정도 동감하면서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당사자인 장목화는 오죽할까.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왼손을 붙들고선 입을 꽉 다물고 한 자, 한 자 힘주어 답했다.

“다섯 번이나 확인했다? 작은 흰둥이한테도 두 번이나 검사받았어.”

“맞아.”

백새벽의 답에, 성건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성건우는 옆으로 폴짝 뛰며 장목화의 따가운 눈총을 피했다.

잠시 후, 구조팀의 지프는 공장 진입로를 따라 대문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프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쪽에 연결된 건물들이 바로 가족 2구역이었다.

이곳의 건물은 더러는 이미 붕괴했고, 더러는 심하게 파괴돼 덩굴식물들로 덮여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 같이 문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무 문은 모닥불 땔감으로 쓰기 위해, 철문은 고철로 팔아먹기 위해 떼어간 모양이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구조팀의 지프는 구불구불 방향을 틀어가며 한참을 달린 끝에 4동을 찾아냈다.

이 건물은 여전히 우뚝 서 있긴 한데 마찬가지로 곳곳이 파괴돼 있었다.

잠시 감지해보던 성건우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3층에 인간의 의식은 없네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기 신호 감지 결과도 같다는 뜻을 밝혔다.

네 사람은 곧 속속들이 차에서 내렸다.

지원을 맡은 용여홍과 백새벽은 아래에 남고, 성건우와 장목화는 축축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 복도를 따라 3층으로 향했다.

* * *

3층에 자리한 두 채의 집에도 문은 없었다. 덕분에 그냥 복도에서도 거실 일부는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잠깐의 판별 끝에 302호 방향을 확인한 장목화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곧바로 바닥에 놓인 검고 긴 머리카락 한 움큼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고 긴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그것은 갈색 장판 틈 사이에 끼어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장목화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그러했다.

복도에서 보이는 거실은 그 외에 달리 특별한 점은 없었다. 가치 있는 가구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남은 오염만이 예전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었다.

이로써 유적 사냥꾼들이 4동 302호에 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을 탐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져갈 만한 건 다 쓸어간 모양이었다.

논리적으로 보면 여기엔 아무런 이상 현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조팀은 강소월 사건과 수정의식교 사건을 경험한 바 있었다.

성건우는 어느 트라우마 안에서 폐허 철강공장에서 발견한 병력으로 변화도 초래했었다.

구조팀에겐 이미 가족 2구역 4동 302호는 매우 위험한 장소였다.

네 사람은 이러한 겉모습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일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장목화는 무턱대고 302호에 들어가는 대신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자료에 따르면 철강공장 내에 귀신 관련 소문 같은 건 없었어. 가족 2구역을 특별히 위험한 곳으로 지적한 유적 사냥꾼도 없었고.”

돌연 성건우가 음산한 투로 말했다.

“이 방을 쓸어간 유적 사냥꾼들은 당시만 해도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돌아가 각자 흩어진 후부터 하나둘 죽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라 누구도 그들 죽음의 원인과 철강공장 4동 302호를 연결 짓지 못한 거예요.”

장목화는 소리 없이 실소를 터뜨렸다.

“⋯⋯쓸데없이 음산한 얘기 떠들 필요 없어. 난 작은 빨강이가 아니야. 그런 얘기에 벌벌 떨지 않는다고. 물론 그럴 가능성도 마냥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성급하게 굴지 말자는 얘기야.”

“성급한 성건우는 이미 저희가 붙잡고 있어요.”

성건우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장목화는 그를 힐긋 바라본 뒤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4동 뒤쪽으로 돌아와서 3층 발코니로 올라와. 발코니에서 안쪽 구역을 살펴보는데, 절대 안으로 들어가면 안 돼.”

- 네.

백새벽이 빠르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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