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옛 친구 (1)
수속을 마친 후 감호 병실 문 앞에 선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은 연구소의 전문 인력이 밀고 나오는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크게 소리치기도 했다.
“돌아온 걸 환영해!”
백새벽은 눈을 꾹 감았다. 그를 모른 척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뒤이어 용여홍은 자신이 침대를 밀겠다고 자원했다.
일반 병실에 이른 후,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작은 흰둥이, 침대에서 내려와서 좀 걸어볼래?”
이미 허락을 맡은 부분이었다.
“네, 좋아요.”
백새벽도 일찍이 누워만 있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다.
장목화는 얼른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백새벽이 약간 비틀거리면서도 한 걸음씩 조심히 걷기 시작했다.
이에 용여홍은 비로소 안도하며 진심 어린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면회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장목화가 백새벽에게 구조팀이 곧 밖으로 나가 훈련하게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걱정하지 마. 오후에 나가서 지상에서 하룻밤 보낸 다음에 다음날 오전에 돌아올 거거든. 우리 작은 흰둥이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을 거야.”
싱그럽게 웃는 장목화를 보며, 백새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어요.”
장목화는 이를 보고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면서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 *
647층으로 돌아오는 와중에야 장목화가 못다 쉰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흰둥이, 겉보기에는 강인해 보이고 다른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지만 원래 마음은 너무 여려. 조금 전의 말도 그냥 농담이었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이더라고. 혼자 있는 걸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새벽이가 저도 모르는 새에 우리한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어.”
용여홍은 입을 벙긋거리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조팀에 사무실에 도착한 직후, 용여홍은 마침내 용기를 냈다.
“팀장님, 저 조금 더 이 팀에 남아있고 싶어요.”
“결정한 거야?”
대답은 장목화가 한 게 아니었다. 용여홍의 친구 성건우였다.
성건우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이내 용여홍은 한숨을 토해냈다.
“결정했어.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는 조금 더 있어 보려고.”
장목화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뭐든 너도 충분히 숙고했겠지. 그렇다면⋯⋯. 복귀를 환영해!”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용여홍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네, 팀장님!”
이후 감정을 가라앉힌 그가 얼른 물었다.
“저도 생체 공학 의수 이식, 유전자 개조, 각성 실험을 신청할까요?”
그러나 말을 뱉은 후에야 그는 자신에게 그만한 공헌 점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을 위해 방을 큰 곳으로 옮긴 데다가 한동안 사치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음, 생체 공학 의수는 필요 없어. 네 기계 팔도 훌륭하니까. 유전자 개조와 각성 실험은 시도해 볼 순 있겠지만 지금은 아냐. 네 몸 상태가 아직 최상으로 돌아오긴 멀었어. 진짜 그런 게 필요한 상황인데 공헌 점수가 부족하면 내가 빌려줄게. 난 부모님한테 빌붙어 살아서 공헌 점수가 꽤 넉넉해.”
“네.”
용여홍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틀 뒤 오후, 허락을 받은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은 군용 외골격 장치 두 대와 전리품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갖고 반고 바이오를 나섰다.
다시 애쉬랜드 위, 지상이었다.
녹회색 지프는 시들한 식물로 뒤덮인 산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방향은 멀찍이 자리한 황야였다.
‘팀장님이 누구를 기다리나? 왜 이렇게 느리게 몰지?’
용여홍이 막 이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지프가 길가에 섰다.
장목화는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누가 보조석에 앉을래?”
출발하던 때 성건우, 용여홍은 지금 자리엔 없지만 백새벽도 함께라는 듯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앉았다.
뜬금없는 장목화의 질문에 용여홍이 혼란에 빠진 사이, 행동력 있는 성건우는 바로 차에서 내려 보조석으로 향했다.
그러자 장목화가 전방을 주시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네가 인간 내비게이션이 돼줘야겠다. 대가 때문에 길을 알아보는 데 문제가 좀 있거든.”
“길치군요.”
성건우가 대꾸했다.
용여홍도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팀장님은 깨진 거울 영역을 선택했구나. 그 대가는 길치고. 어쩐지, 시작부터 차를 느리게 몬다 했더니, 길 잃을까 걱정돼서 그랬던 거구나.’
장목화가 농담조로 가볍게 물었다.
“왜, 웃겨?”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아뇨. 대가 때문에 길치가 된 거라면 심각한 문제잖아요. 그리고 아무리 이상해봤자 건우 대가보다 이상할까요.”
장목화는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이며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난 네가 웃을 줄 알았는데.”
성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웃었어요.”
말하는 동안에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번져 있었다.
장목화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얼른 길 안내나 해!”
“일단은 어디로 가는지부터 알아야 안내를 하죠.”
지금은 또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대꾸했다.
일찍이 장목화는 생각해 둔 목적지가 있었다.
“지하 빌딩 입구에서 2킬로미터 안쪽인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어.”
“왜 2킬로미터 안쪽이어야 해요?”
먼저 의문을 표한 건 용여홍이었다.
장목화는 룸미러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위로 나온 건 건우가 트라우마 깊은 곳을 탐색하다가, 뜻밖의 사고로 주위 이웃들에게 영향을 미칠 걸 예방하기 위해서잖아. 이미 빌딩 밖으로 나왔으니, 지금 걱정해야 할 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야.
회사 내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나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는 지하 빌딩에서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감지할 수 있어. 혹시 무슨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빨리 와서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그렇죠⋯⋯.”
용여홍은 이렇게까지 모든 걸 세세하게 고려하는 팀장에게 감탄했다. 그가 구조팀에 남기로 했다고 해서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거나 뜻밖의 상황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리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믿어야죠.”
이번에 대꾸한 건 반기계 승려 제도 선사였다. 물론 지금은 현실 세계에 있는 성건우라, 금속으로 만들어진 육신도, 붉게 번득이는 눈도 없었다.
그 후 곧바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성건우가 나섰다.
“굳이 길을 안내할 필요 있나요?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인데요. 검은 늪 황야에 들어가고 나면 그때 다시 얘기해요.”
갈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이미 형성된, 비교적 넓은 길이 하나란 소리였다. 하지만 천연으로 만들어진 각종 길도 적지 않았다.
성건우의 말에 뜨끔해진 장목화가 속으로 외쳤다.
‘난 그냥 산길을 달리는 게 걱정된다고!’
* * *
한동안 바짝 마른 누런 길을 달리던 장목화는 출중한 시력으로 멀찍이 다가오는 군대를 발견했다.
100명 정도의 군인들은 전부 반고 바이오 안전부 흑회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모는 차량들에도 전부 대포가 장착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상당히 두껍고 묵직해 보이는 장갑차들이었다.
“동료네!”
성건우는 약간 즐거워 보였다.
“왜 그렇게 좋아해?”
장목화가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만나게 될 사람들은 바로 회사의 행동 대대일 것이다.
성건우는 진지하게 대꾸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 밤 모닥불 파티에 초청하는 건 어때요?”
“……우리가 언제 모닥불 파티를 할 예정이었는데?”
용여홍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건우가 당당하게 외쳤다.
“저 사람들을 본 순간부터!”
‘난 진짜 바본가봐. 왜 맨날 쟤 헛소리에 말려드는 거야? 날이 갈수록 대가가 더 심해지고 있잖아!’
용여홍이 속으로 짜증 내는 사이, 두 무리의 거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차이가 100미터 정도 좁아졌을 무렵, 장목화도 그제야 상대를 알아보았다. 상대는 자신과도 이미 아는 사이였다. 바로 양범석의 23 작전 대대였다.
저들은 늪 1호 유적 사건이 있었을 당시, 반고 바이오에서 구조팀에 보낸 지원 세력이기도 했다.
“자네들은?”
장갑이 더해진 지프 보조석에서 양범석이 고개를 쏙 내밀고 아는 체를 해왔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작년보다 피부가 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성건우가 창밖으로 오른손을 뻗어 몇 번이나 흔들었다.
곧이어 각자 차에서 내린 후, 장목화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양 대대장님, 늪 1호 유적에서 오는 길이십니까?”
장목화에 비해 거의 10살이 더 많은 양범석은 침착한 태도로 답했다.
“맞아. 작년 한 해 우리랑 다른 두 대대가 교대로 늪 1호 유적에 주둔하면서 탐색에 최선을 다했어. 우리 전 대대를 대신해 자네들에게 감사해야겠어. 자네들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도 늪 1호 유적을 발굴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아직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폐허 도시는 금광과 다름없지!”
그가 웃으며 군례를 취해 보였다.
지난 1년간 23대대는 휴식을 취하러 반고 바이오로 돌아올 때마다 대량의 전리품을 가져왔었다.
물론 그들이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전리품들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관대한 반고 바이오에선 그 비율대로 공헌 점수를 분배했다. 그 덕분에 23대대의 대원 모두는 꽤 많은 공헌 점수를 모을 수 있었다.
거기다 회사로부터 얻은 권한과 늪 1호 유적에 들어가 탐색하면서 맺은 사냥꾼들과의 인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저희가 아니어도 그곳에 가실 수 있었을 겁니다. 웨이루 역 북쪽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되어, 바로 거기로 가시던 길이었잖습니까.”
양범석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중요 정보들을 얻지 못했을 거고, 거기 잠재돼 있던 위험도 피하기 어려웠겠지. 게다가 자네들은 우리한테 장갑차 한 대와 중기관총 한 정도 지원해줬고 말이야!”
“회사에서 이미 그에 대한 공헌 점수를 저희한테 분배해줬습니다. 그럼 늪 1호 유적에선 뭘 발견하셨습니까?”
장목화는 장갑차와 중기관총에 대해 대충 넘긴 후 화제를 틀었다.
곧이어 양범석이 머리에 쓴 흑회색 베레모를 만지작거렸다.
“그 실험실은 파괴된 관계로 많은 걸 찾진 못했어. 현재까지 우린 폐허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구역을 탐색했지. 각종 과학 기술을 포함한 가치 있는 연구 자료는 상당했지만, 자네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건 아닌 것 같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등 무심자들은 만나보셨습니까?”
양범석이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 두 차례 정도. 자네들이 사전에 알려준 정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지.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마주친 일이 없어. 아직 탐색하지 않은 폐허의 모처에 숨어있을지도 몰라.”
옆에 있던 용여홍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아뇨, 아마 아르바이트하러 갔을걸요.’
그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보안 사항과도 관련 있고, 아직 구조팀의 권한을 확인하지도 못해서 양범석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양범석이 성건우, 용여홍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듣자 하니 자네들은 벌써 D5로 승진했다지? 지난 1년 동안 아주 많은 일을 해냈나 보군.”
약간 의아해하는 용여홍의 반응에 양범석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내 친척 하나가 자네들과 같은 층에 살거든. 덕분에 자네들 소식도 들었어. 회사 안에선 다들 그렇지 않나?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지.”
“그렇죠.”
용여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성실한 성건우가 양범석의 말을 바로잡았다.
“D7입니다. 저희는 이미 D7이 됐습니다.”
“뭐?”
양범석은 충격받은 얼굴로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그는 구조팀이 어디로 갔었는지, 가서 뭘 했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현재 그가 가진 권한으로는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이내 성건우가 얼른 장목화 대신 덧붙였다.
“팀장님은 D9입니다.”
“정말인가?”
양범석은 못 참겠다는 듯 확인에 나섰다.
이에 장목화는 그저 겸손하게 대꾸했다.
“운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