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28화 (528/649)

528화. 비밀 매뉴얼

205 : 어느 달지기의 꿈으로 의심된다. 탐색에 따르는 위험도는 매우 높지만 수확도 굉장히 크다.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진입을 추천하지 않는다. 꿈은 수시로 변하며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탐색의 요점을 파악할 수 없다.

⋯⋯

503 : 출현 빈도가 매우 낮다. 정보에 따르면 진입자는 무심자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

506 : 방 주인은 감찰자 영역 각성자다. 그의 모든 트라우마에는 공통된 해결 방법이 있는데, 바로 위험에 직면하는 용기다.

요점을 파악한 뒤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이 방은 신입들의 정신 단련 기지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니 방 주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층적인 탐색은 권유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정신에 파동이 나타난 경우를 마주한다면 그에게 일정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잃지 않도록.

⋯⋯」

무려 백 개 이상의 번호와 설명이 몇 장에 걸쳐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를 다 읽고, 성건우는 어느 방이 극도로 위험한지, 어느 방이 상대적으로 안전한지를 알게 되었다. 또 특정한 방의 트라우마를 돌파하는 기술과 피해야 하는 위험 등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에 적힌 심령의 복도 관련 상식이 귀중한 거라면, 뒤에 적힌 내용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대부분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

반고 바이오 내부 강자들의 탐색 경험과 정보 체계가 수집한 진귀한 자료, 외부로 파견된 직원들이 우연히 알게 된 비밀들로 벼려낸 보물이었다.

503호에 달린 설명도 구조팀이 타르난에서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이 자료는 대형 세력이 왜 대형 세력이라 불리는지를 완전하고도 깔끔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야생의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한 방을 탐색하는 데 2, 3년이 걸릴 지도 모르지만, 이런 자료가 갖춰진 대형 세력의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단 2, 3개월 만에 같은 양의 일을 해치울 수 있었다.

또 전자는 자칫 잘못했다가 특정한 상황에 빠져 심각한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자는 들어가도 되는 방과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방을 알려준 선임자들 덕분에 수많은 위험을 미리 다 피할 수 있었다.

성건우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건⋯⋯. 이건 공략집이네요!”

몇 초를 들여서야 공략의 의미를 알아차린 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심령의 복도 급의 무공 비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이사님도 구세계 콘텐츠를 보십니까?”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다른 것에 집중했다.

소지훈은 솔직하게 답했다.

“가끔.”

그러나 이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진 않았던지 얼른 말을 돌렸다.

“이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들이 기꺼이 구속을 받아들이고 한데 뭉치기로 한 주요 이유 중 하나야. 근데 이건 참고 사항인 거지, 맹목적으로 이것만 따르면 안 돼. 사람 마음만큼 바뀌기 쉬운 것도 없거든. 그 마음에 대응하는 방에는 언제라도 함정이 생길 수 있어.”

소지훈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했다.

“그래야 재미있는 거 아닙니까?”

성건우는 흥미로운 얼굴로 방 번호들을 다시 한번 훑었다. 그의 심령 방에서도 성건우 여럿이 관련 내용을 구현하고 고정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료를 한 번 더 살핀 성건우는 나열된 방 번호 중 1215호와 522호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215호는 그가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이후 신기하게도 자취를 감춘 방이었으며, 522호는 그가 지금 탐색 중인 방이었다.

“출현 빈도가 낮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성건우가 물었다.

소지훈은 그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간단하게 설명했다.

“각성자들은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방을 보게 돼. 근데 그중에 소수의 사람만 우연히 만나게 되는 방들도 있어. 503이 바로 그 예지.

우린 지금껏 그 방을 본 적이 없거든. 자네들이 보내 준 그 정보가 아니면, 그 방에 들어갔다간 무심병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전혀 몰랐을 거야.”

“어째서입니까?”

성건우가 캐물었다.

그러나 소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겠어.”

성건우는 곧장 자료의 맨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쪽에도 방 번호들이 적혀 있었다. 대략 열 개 정도인데, 그중 설명이 달린 것은 없었다.

“이 방들은 뭡니까?”

성건우가 자발적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소지훈이 웃었다.

“그건 회사 내 일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방 번호야. 자네에게 이걸 알려주는 건, 혹시나 그 방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탐색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거야. 한 식구끼리 싸워서야 쓰나.”

“일부라고요? 그럼 그 외의 나머지는요?”

성건우는 매우 의욕적이었다.

“음, 나머지는 자신의 방 번호를 신입한테 알려주기 싫어하던데. 만약 자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도 그 사람들은 매우 수동적으로 굴 거야.

규칙에 따르면 자네도 방 번호를 회사에 알려야 해. 그 후에는 다른 동료들 방해를 받는 게 싫다면 방 번호를 알릴지 말지 선택할 수 있고.”

이 대목에서 소지훈은 성건우를 응시하며 정색을 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방 번호는 하나같이 중요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보를 요구하는 건 반고 바이오의 관리 수단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131입니다.”

뒤이어 그는 동료들의 방 번호도 한번 자세히 살폈다. 그들을 언제 찾아가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도 1215호와 522호는 없었다.

성건우가 자료를 반납하자, 소지훈은 천천히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다 그가 한담하듯 물었다.

“염호를 발견했을 때 자네는 이미 각성자였지. 혹시 무슨 시도라도 했나?”

소지훈의 질문을 받은 성건우는 말없이 표정으로 답하는 듯했다.

‘역시 똑똑하시네요.’

그리고 그가 소리 내 말했다.

“염호의 잠재의식과 접촉했습니다.”

소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뭘 모르는 놈은 용감하다니까? 그다음에는?”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염호가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잠시 한동안 침묵이 길어졌다.

이후, 소지훈이 입을 열었다.

“혹시 또 무슨 질문 있나? 없다면 나가봐도 좋아.”

성건우는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수정의식교의 수장은 신세계에 진입함과 동시에 육신을 버렸지만, 부처의 응신은 육신을 남겨뒀습니다. 신세계에 진입한 각성자 대부분도 그렇고요. 이 두 선택 중 어떤 것이 더 옳습니까?”

재차 침묵에 빠진 소지훈은 잠시 후에야 답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결론 내릴 수 없어. 육신을 남겨놓기로 선택한 신세계 강자 중에선 가끔 깨어나 후회하는 이도 있고, 매우 다행스러워하는 이도 있거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도 언급하지 않았고.”

“음…….”

말끝을 길게 늘이던 성건우는 바로 작별을 고한 뒤 21호를 떠났다.

* * *

성건우가 구조팀 동료들에게로 돌아가자마자, 장목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아직 문 앞에 있는 성건우를 보며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였다.

“어때? 가치 있는 자료였어?”

“응, 온 세상을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만한 무공 비책이었어요.”

소지훈의 비유가 꽤 마음에 들었던지, 성건우는 거기다가 형용사까지 잔뜩 붙여서 대답했다.

용여홍은 잠시 멍한 얼굴을 했고, 장목화는 생각에 잠겨 말을 이었다.

“값을 매길 수도 없는 보물이라 이거지⋯⋯. 회사 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경험들인가?”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장목화도 이젠 알아서 성건우의 뜻을 알아들었다.

자신의 추측이 정확했다는 의미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었어?”

“음, 주의사항이랑 각 방의 위험도, 트라우마 상황, 돌파 방법 등등이요.”

성건우가 간추려 설명했다. 상세히 말한다면 끝도 없기 때문이었다.

“진짜 어마어마한 보물이네. 그런 자료가 있다면 넌 1년 안에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장목화는 재차 문가를 바라보았다. 심령의 복도와 관련된 지식은 나중에 지상으로 올라가 얘기하자는 뜻이었다. 아마도 인공지능 갑옷 적응 훈련을 할 때일 수도 있고,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을 때일 수도 있었다.

말을 마친 장목화는 책상 위의 서류 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생명 천사 목걸이야. 지금 가져가도 돼. 육식주를 비롯한 나머지는 다음에 외출할 때 신청하면 되고.”

외출할 때 신청할 수 있는 물품엔 군용 외골격 장치도 포함돼 있었다.

생명 천사 목걸이를 성건우에게 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건 지금껏 마구잡이로 그를 위한 보호 조치였다.

성건우의 기원의 바다에 들어있는 잡다한 기운과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줄 도구였으니, 반고 바이오 안에서든, 애쉬랜드 위에서든 이 목걸이만큼은 성건우가 최대한 빨리 취할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했다.

그 기운은 심령 세계에 직접 강림해 작용할 수 있으므로, 성건우가 회사 안에 틀어박혀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성건우는 내내 생명 천사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고위층도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로 하나의 대형 살인 무기가 됐다고 볼 수도 있는 성건우에게 그런 도구 하나 내주는 것쯤이야 개의치 않았다.

성건우는 곧장 장목화의 책상으로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회사에서 처리했다면 부작용에도 변화가 생겼을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제니 부부장이 나한테 그랬거든. 최대한 이거랑 직접 접촉하지 말라고.”

장목화가 서류 봉투를 가리켰다.

“독성이 있나?”

성건우의 생각은 언제나 신선했다.

이내 서류 봉투를 집어 든 그가 바로 개봉했다.

안에는 또 단단하게 밀봉된 비닐봉투가 들어있었다. 한 겹, 한 겹 참 꼼꼼하게도 싸여있어서 뜯기도 어려웠다.

“이럼 안 되지,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때맞춰 열라고⋯⋯. 얼른 도와줘!”

투덜거리던 성건우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용여홍은 그를 빤히 보며 신중하게 반문했다.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당연히 기계 팔로 힘 좀 써달라는 거지. 이건 뭐 통조림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들어놨어.”

성건우는 언제나 그랬듯 당당했다.

결국 용여홍의 도움으로 빠르게 비닐봉투를 뜯어낸 성건우는 안에 들어있던 종이 재질의 보석함을 손에 넣었다.

은제 생명 천사 목걸이는 그 안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조심성이라곤 없이 바로 목걸이를 꺼낸 성건우는 무게를 한번 가늠해 보더니 돌연 탄식을 했다.

“아쉽네. 더 이상 빨리 잠드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겠어.”

소지자를 졸리게 했던 원래의 부작용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다르게 불편하고 그런 건 없어?”

장목화가 물었다.

성건우는 잠시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옆쪽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어쩐지 그의 오른쪽 다리가 힘을 잃은 듯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라 성건우는 어느새 절뚝거리고 있었다.

다시 성건우가 손에 쥐고 있던 생명 천사 목걸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그도 금세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후 왼손으로 다시 그 목걸이를 집어 들자 이번에는 왼팔이 갑자기 묵직해졌다. 하마터면 손에 쥔 목걸이마저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을 정도였다.

탁!

결국 왼손에 힘이 빠졌는지 목걸이는 아래로 추락했다.

성건우는 급히 집어 드는 대신,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제 사지 중 일부를 마비시키는 모양인데요. 발작 부위는 무작위예요. 집을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겠는데요?”

“그러니까 그 각성자의 대가는 사지 일부 마비라는 거네. 다만 그 사람은 능력과 대가를 분리하지 못해서 직접적으로 고정이 돼버렸고, 무작위적인 변화를 피한 대가는 그 사람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도구에 반영된 거야.”

장목화는 심층 분석을 하며 관리층 직원 중 신체나 행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머릿속에 네 명이 떠올랐다.

그중엔 그냥 질병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범위를 좁힐 수는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