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23화 (523/649)

523화. 이사

이때 용여홍이 약간 불안한 듯 장목화에게 물었다.

“팀장님, 저희는 심사에 어떻게 응해야 할까요?”

장목화가 웃었다.

“지금 그 말, 회사 사람이 들었다면 당장 지상으로 쫓겨났을걸.”

불안함에 용여홍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백새벽이 용여홍 대신 나서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말했어야 하는데요?”

장목화는 좌우를 한 번씩 둘러본 뒤 소리 내 웃었다.

“심사에 어떻게 협조해야 하느냐고 말했어야지. 일단 우리 세 사람 심사는 안전부 내부에 국한될 거야. 내가 좀 노력했거든. 아무튼 관례대로 진행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각성자를 만날 리도, 거짓말 탐지기 등을 부착하게 될 리도 없어. 너희는 예정된 방안에 따라 대응. 아니, 협조하면 돼.”

“네, 알겠어요.”

용여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팀장님은 정말 능력자셔. 역시, 배경과 능력이 있으면 살기 편해져.’

용여홍은 부디 심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이 후속 처리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오직 혼자만 받는 것이라 더 불안했다.

물론 그는 자신에게 별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하나 헤아려 봐도 겨우 네 개뿐이었다.

일단 성건우를 위해 각성자란 사실을 숨긴 것, 또 성건우가 염호로부터 보고 들은 것도, 수종이와 이두형에 관한 몇 가지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게네바가 사실상 같은 구조팀 동료임을 숨긴 것밖에 없었다.

제일 첫째로 성건우가 각성자라는 건 이미 폭로된 상태라, 앞서 동료들과 의논했듯이 성건우의 능력을 이유로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용여홍이 가장 걱정하는 건 자신이 저지른 짓이 회사에 대한 기만과 같다는 점이었다. 이 잘못이 발각되면 심각한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특수한 능력이 있는 각성자를 만나게 된다면 더 이상 게네바에 관련한 일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염호와 수종이, 이두형에 관한 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에 관한 기억도 조금뿐이라 상대가 명확한 목적을 가진 게 아닌 이상 기억을 뒤져도 딱히 나올 게 없었다. 지엽적이고, 애초에 몇 번 있지도 않은 일을 찾아내긴 쉽지 않을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그런 작업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지만. 망망대해에서 특정한 섬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급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 섬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또 군용 외골격 장치로 말할 것 같으면, 구조팀은 이번에 전부 다 밝히기로 얘기가 된 상태였다.

백새벽과 용여홍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장목화가 재차 당부했다.

“만약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솔직하게 털어놔도 돼. 나랑 건우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장목화 자신에게는 배경이, 성건우에게는 힘이 있으니 그런 잘못들로 처벌받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는 않으리라는 말이었다.

용여홍과 백새벽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성건우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자발적으로 이야기하며 물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탐색해야 할까요?”

장목화는 픽, 웃으며 놀리듯 물었다.

“하이고, 언제나 네 멋대로 굴던 분 아니었습니까?”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지금은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할 때예요. 우리 열셋이면 달지기들의 토론도 흉내 낼 수 있어요.”

열셋? 뜬금없는 숫자에 용여홍이 흠칫했다.

“열세 명?”

백새벽도 의아한 눈으로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성건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지금 열 명이거든.”

장목화는 잠시 고개를 살짝 틀어 콧바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먼저 분석할 건, 그 장면으로 대표되는 두려움 혹은 트라우마가 방 주인이 심령의 복도에 들어오기 전에 발생한 건지, 후에 발생한 건지야.”

“꿈일 가능성은 없나요?”

백새벽은 이 질문을 하자마자 깨달음을 얻은 듯 말을 이었다.

“아, 이미 신세계에 진입한 각성자나 전설 속 달지기를 제외하면 방에 나타난 꿈은 오래 유지될 수 없겠네요. 건우가 오늘 저녁 다시 그 방에 들어갔을 때 아무 변화가 없다면 꿈인지 여부는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거고요.”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장목화도 매우 흡족해했다.

“우리 작은 흰둥이, 갈수록 토론에 적극적이네. 머리도 똑똑하고. 사실 신세계에 진입한 각성자라도 그들 꿈에는 변화하기 쉽다는 특징이 남아있을 거야. 그런 꿈은 트라우마의 반복적인 양상과는 달라.

달지기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다른 종류의 생물이야. 우리로서는 분석할 수 없고. 근데 건우가 처음으로 들어간 방에서 바로 달지기의 꿈을 마주할 정도로 그렇게 운이 나쁘진 않을 거야.”

성건우는 그 말에 강하게 동조했다.

“맞아요, 전 작은 빨강이가 아니니까요.”

용여홍은 반박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은 운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좋을 때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도 살아났지만, 나쁠 때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가로막히곤 했다.

‘그래도 보통 때는 일반적인 수준인데!’

그 사이 성건우는 또 다른 성건우가 된 듯 화제를 전환했다.

“제가 분석해 봤는데 그 광경이 대표하는 위험은 그리 크진 않아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방 주인이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후 그 폐허를 탐색하다 그렇게 많은 무심자를 만난 거라면, 설령 그자들 모두를 처치하지는 못했다 한들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오긴 어렵지 않았을 거야.

트라우마가 남지도 않았겠지. 그 폐허를 탐색하다가 나중에 극도로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맞닥뜨린 게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근데 정말 그랬다면 트라우마에 그 이전 상황까지 반영됐을 리는 없어. 생각해봐, 너희가 뭔가 두려움을 느낀 것에 대한 기억은 그 주체에 집중돼 있잖아. 그 전후에 있었던 세부적인 것들까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진 않지?”

잠시 고민해보던 용여홍이 긍정했다.

“네, 맞아요.”

그가 떠올린 건 다쳤을 때의 기억이었다. 아수스, 크리스티나와의 전투는 또렷이 기억나도 도중에 만난 다른 이들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기억은 다 그래. 트라우마는 더 또렷하고. 거기 반영된 건 분명 당시 굉장히 무섭게 느껴진 상황일 거야. 1215호에서 확인한 상황처럼.”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호응했다.

“맞아요, 그 외의 다른 위험은 안 느껴졌어요. 그 광경이 방 주인이 심령의 복도에 진입하기 전에 얻은 트라우마를 의미한다면 당시 그 사람의 실력으로는 동료의 상황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숨거나 이동하는 방식으로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 했을 거예요. 그 사람을 흉내 내봐야겠어요.”

매우 의욕을 보이던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씩이나 돼서 조금 더 대담하게 굴 순 없냐? 백방으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무심자들을 모조리 다 해치운다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이는 성건우들의 토론과정이었다.

지켜보는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나름 덤덤한 얼굴이었다. 원래 반고 바이오로 돌아오는 중에도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었다.

성건우들이 이야기를 마치자, 장목화는 그제야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광경 속의 무심자 수는 방 주인의 정신적인 강도랑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거야. 당시 그 사람은 마주친 무심자의 수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 그냥 그 사람 느낌이 반영된 결과인 거지.

건우 네가 그 트라우마 속에서 정신력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까지 무심자를 다 해치울 수 있을까? 지금 네 정신력은 방 주인보다 훨씬 약할 텐데?

확률적으로 보면 네가 너처럼 방금 막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사람의 방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하나의 트라우마에 불과하다고 해도, 네가 반드시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보긴 힘들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트라우마 안에서는 오늘 이만큼을 해치우고, 내일 또 그만큼을 더 해치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쪽에서 회복할 수 있는 만큼 저쪽도 회복할 수 있었다.

성건우도 그 판단에 동의했다.

“차라리 숨거나 이동하는 게 낫겠네요. 총은 최대한 안 쏠게요. 소리 때문에 무심자만 더 많이 몰려드니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상황으로 볼 때, 그런 광경이 지금의 너한테 적합한 것 같아. 기이하고 미스터리 한 광경보다는 훨씬 나아.”

* * *

오후 2시 무렵, 구조팀은 순서대로 심사 장소로 향했다.

성건우는 먼저 지하 빌딩 3층의 C-14 프로젝트팀으로 가 민수안을 만난 뒤,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갔다. 관리층에 속한 층이었다.

민수안은 이곳에 도착해서야 성건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번째 심사 담당자는 소지훈 이사야.”

성건우도 그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소지훈은 정각 뉴스에서 수시로 나오는 이름이었다.

이사회 이사는 기택조, 인영구, 황인휘, 소지훈, 이영윤까지 해서 총 다섯 명이었다.

그중 기택조는 첫째로 손꼽히는 부총재로 빅보스 대신 총책을 맡았고, 인영구는 모든 생산 부서를 관리하는 부총재였다.

그리고 황인휘는 수석 과학자로 연구 시스템의 결재자이며, 이영윤은 또 다른 부총재로서 물자 분배, 직원 오락 등을 포함한 후방 지원 관련 업무를 주관했다.

그리고 소지훈은 대외 업무를 책임지는 안전부 부장의 직속 상관이었다.

물론 그도 안전부의 작전반을 지휘할 때는 이사회의 토론을 거쳐 지휘권을 얻어야 했다. 그가 어떻게 하고 싶다고 바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 * *

506호.

성건우는 이곳에서 안전부를 관리하는 이사 소지훈을 만났다.

이름은 상당히 우아한 편인데, 실제로 소지훈은 거칠고 호방한 남자였다.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였으며, 머리는 짧고, 얼굴엔 바람과 햇빛에 시달린 흔적이 보였다.

나이가 사십 대라 그런지 성건우와 세대가 달라서, 유전자 최적화 작업을 받았어도 선택받은 자라 불리기엔 조금 어려웠다. 그 시절엔 유전자 개량 작업이 그렇게 완전한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겉보기에도 그러했다. 짙은 눈썹에다 눈이 크고, 얼굴이 각져있는 소지훈은 못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피부가 좀 울퉁불퉁한 편이었다.

그래도 그 점만 제외하면 미남이라고까지 하긴 힘들어도 나름대로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였다.

이 소지훈은 안전부 일선 부대에서 한 단계씩 올라 이사 자리까지 오른 인물인데, 역시 그 내력을 증명하듯 군인다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온 성건우와 민수안을 발견한 소지훈이 곧장 방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

“밖에서 기다려.”

관리층 직속 작전반에 속한 경호원들은 각양각색의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성건우는 그들을 슥 훑어보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이 꽂혔다.

그가 착용한 인공지능 갑옷은 검은색의 세밀한 비늘로 덮여 있었지만 그리 무겁진 않아 보였다.

성건우는 그걸 보자마자 첫 번째 임무 수행 당시 사냥했던 검은 늪 철갑뱀이 생각났다.

곧이어 경호원들이 사무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소지훈의 안전 보장을 위해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며 고집 피우는 일은 없었다.

안전부의 회색 전투복을 입은 소지훈이 소파를 가리키며 웃었다.

“거기 앉아서 얘기할까?”

그의 태도는 그렇게까지 친절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꽤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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