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20화 (520/649)

520화. 첫 번째 심사

잠시 망설이던 민수안은 성건우의 실력을 생각해 솔직하게 대꾸했다.

“나도 심령의 복도에 들어갔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씩이나 되면서 능력과 대가를 최대한 숨겨야 한다는 것도 모릅니까?”

성건우는 냅다 이 C-14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질책했다.

민수안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금테 안경을 추켜 올렸다.

“대가는 말하지 않아도 좋아. 그건 너무 명확하니까.”

정신, 아니, 뇌에 생긴 문제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능력이라도 더더욱 숨겨야죠.”

당당히 답하는 성건우를 보며, 민수안은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자네가 이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됐다면, 앞으로 두세 차례 테스트와 심사를 받아야 할 거야. 오늘이 그 첫 번째 시간이 될 테고.

성건우 씨, 자네의 목표는 뭐지? 혹은 추구하는 게 뭔가?”

성건우의 표정은 점점 엄숙해졌다.

“전 인류의 구원입니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민수안은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캐물었다.

“전 인류를 구원하고 난 다음에는?”

성건우는 잔뜩 신나서 말을 이었다.

“어느 층의 활동 센터 주관이 되어 노래 대회를 열 겁니다! 오락부 주관으로 전출시키겠다고 해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순간 말을 잃은 민수안은 만년필을 들어 앞에 놓인 노트에다 뭔가를 썼다.

성건우의 답을 모두 기록한 그는 끝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심사 대상은 회사에 비교적 강한 귀속감을 가지고 있음.」

그렇게 마음을 안정시킨 민수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모든 심사와 테스트를 통과하면, 그 정도 레벨에 이른 자네는 자네의 구조팀을 책임지게 될 거야.”

“안 됩니다.”

성건우는 매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민수안은 그 반응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팀장의 체면을 해칠까 걱정스러운 거라면. 회사에서는 팀장을 다른 팀의 장으로 보내 줄 수도 있어.”

성건우의 표정은 점점 더 엄숙해졌다.

“왜냐하면⋯⋯ 전 우리 팀장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수안은 이마를 긁적이며 또 한 번 트림했다.

“자네 팀장도 각성자인가?”

성건우는 재차 도리질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민수안의 미간이 더욱 세게 찌푸려졌다.

“근데 왜 이길 수 없다는 거지? 팀장한테 어떤 능력이 있어서?”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시무시한지는 민수안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성건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우리 팀장님한테는 머리가 있죠, 엄청나게 똑똑합니다.”

한동안 침묵하던 민수안은 보온병을 들어 입을 축였다.

“흠, 심령의 복도라는 레벨에 대해서는 뭘 알고 있나?”

성건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 대부분을 이야기했다. 다만 이두형의 마지막 당부만은 언급하지 않았다.

민수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 상당한 일을 겪었군.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절대 도구의 기운이나 힘을 기원의 바다로 옮기지 마.

그랬다간 자네의 심령 좌표가 폭로돼서 그 힘의 주인,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그 강자의 침입을 받을지도 몰라. 심지어 조력자와 함께 들이닥칠 수도 있어.

그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야. 상대가 우리를 찾아내지 못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잖아. 물론 우리 존재를 들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까지 대비해야지.

원래라면 자네가 기원의 바다에 진입했을 때 이 사실을 알려줬어야 했어. 하지만 자네가 힘을 숨기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또, 내 심령 방 번호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도 최대한 삼가야 해. 곳곳에 방 번호를 알렸다가는 심령의 복도 안에서 습격받게 될지도 모르거든.

현실에서 만난 적이 심령의 복도에서 자네 방문을 열고 들이닥쳐 방을 탐색하게 두고 싶지는 않겠지? 탐색 자체도 일종의 침략이야.”

진지하게 고민하던 성건우가 물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민수안은 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한참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자네 실력이 그 웅대한 마음에 필적하기를 바랄 뿐이야.”

성건우는 이내 자발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다른 심령 방을 탐색하는 행위가 제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까?”

민수안은 성건우를 몇 번이나 살피다가 답했다.

“자네, 정상일 때는 꽤 똑똑하군. 맞아, 회사 내부 정의에 기반하자면 그러한 단련으로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어.

근데 다른 심령 방을 탐색하는 행위도 아주 위험한 일이야. 그러니 조금씩 진행하면서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나왔다가, 그 이상한 부분을 처리할 준비를 한 후에 다시 탐색을 이어 나가는 게 좋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최소 심령 방 다섯 개를 탐색해야 신세계 대문을 볼 수 있을 만큼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어.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대문을 찾을 수 없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요?”

성건우가 호기심을 표했다.

민수안의 표정에 약간 변화가 일었다.

“심령의 복도에 들어가자마자 아무 방이나 열어도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볼 수도 있어. 그런 사람은 흔히 자기가 달지기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은 매우 묵직해져 있었다.

민수안은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특정한 방에 신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처럼, 상대적으로 중요한 지식은 성건우에 대한 심사가 전부 끝난 뒤에나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 알려줄 수 있는 건 대부분 주의사항이었다. 성건우처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각성자가 심사 기간에 무턱대고 심령의 복도를 탐색하다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문제도 피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시간에 달하는 대화를 마치고, 민수안은 아래 연구원에게 성건우에 대한 상세한 신체검사를 지시했다.

* * *

495층, C구역 활동 센터.

저녁 식사를 마친 용여홍은 용기를 내 이곳에 발을 들였다.

이웃 주민 중 그를 괴물로 여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기계 팔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그에게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표했다.

용여홍이 미리 준비해 둔 구실로 다들 기계 팔 기능에만 관심이 쏠려서, 기계 팔을 만지기도 하고, 두드려 보기도 하고, 시연해달라는 부탁도 줄을 이었다. 여기엔 젊은 여성들도 있어 용여홍은 약간 부끄러워졌다.

심리적 장벽을 성공적으로 허문 용여홍은 겨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구석진 곳에 이르렀다.

이내 용여홍은 웃으며 한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애초에 이 동기에게 인사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여름! 오랜만.”

조여름도 막 자리에서 일어나 동기에게 인사하려는데, 그녀의 남편 장이경이 얼른 달려와 살뜰히 부축했다.

“혹시……?”

밖에서 많은 일을 겪었던 용여홍은 단번에 상황을 눈치챘다.

이에 눈빛은 좀 예리해도 과묵하고 내성적인 듯한 장이경이 웃었다.

“네, 우리 여름이가 임신을 해서요.”

조여름과 장이경이 결혼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사실 임신과 출산을 격려하는 반고 바이오 분위기를 고려할 때 외려 좀 늦은 편이었다.

“축하해!”

활짝 웃으며 축하한 용여홍이 알아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동기에게 그리 지나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고마워. 근데 그 기계 팔, 그렇게 강해?”

조여름이 호기심을 보였다. 원래는 정말 자발적으로 이식 신청한 건지 물으려 했지만, 용여홍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 좀 더 완곡하게 물었다.

외부 출신인 그녀의 남편 장이경은 한발 더 나아간 질문을 했다.

“어떤 모델입니까?”

용여홍도 숨김없이 답했다.

“T1형이에요.”

순간 장이경은 퍽 놀란 듯 물었다.

“연합 공업에 갔었습니까? 신형 모델이라 퍼스트 시티에서도 흔히 볼 수 없었을 텐데요.”

“연합 공업 출신의 무기 상인을 알게 됐거든요.”

용여홍이 간단히 설명했다.

이 대화에 더 깊은 호기심을 느꼈는지, 조여름이 남편을 보며 물었다.

“저게 그렇게 대단해?”

“그럼. 잘만 쓰면 여기에 있는 사람을 다 죽여버릴 수도 있어.”

장이경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예를 들어주었다.

‘여기’란 활동 센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내 용여홍은 반사적으로 겸손을 보였다.

“이 안에 각성자도, 유전자 개량자도, 생체 공학 의수 이식자도 없었을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이긴 해.”

조여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계 팔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놀라웠지만, 장이경이 들어준 예시가 더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예시야? 게다가 여홍이가 그 예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

과도가 날카로운지를 물었더니만, 네 가족 전부를 다 찔러 죽일 수 있을 정도라는 답을 받은 듯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심각한 답은 아니었으나 기저에 깔린 논리는 비슷했다.

그래서 조여름은 저도 모르게 질책했다.

“조금 더 교양있게 얘기할 순 없어?”

이게 바로 지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생각일까?

용여홍도 문제점을 알아차렸는지 기계 팔을 들어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안해. 임신한 지는 얼마 안 됐나 봐? 티도 별로 안 나. 근데 이런 때엔 최대한 외출을 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는 무슨 일이야?”

그는 생명 제례 교단 신도 성건우 덕에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조여름이 입을 살짝 삐쭉였다.

“우리가 사는 그 층은 너무 답답해서 말이야. 활동 센터에 나와 있는 사람도 없고. 도저히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이쪽 분위기가 훨씬 나아서 왔어.”

용여홍은 그제야 조여름과 장이경이 외부 출신 직원들이 사는 층에 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막 활동 센터에 들어온 성건우가 보였다.

“어! 이쪽!”

용여홍의 손짓을 보고, 성건우가 바로 다가와 배를 문질렀다.

“야, 너희 집에 국수 좀 있냐?”

“응, 왜? 아직 밥 못 먹었어?”

용여홍이 물었다.

성건우는 조여름 바로 맞은편에 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태까지 연구소에 붙잡혀 있다 왔어. 밥도 안 주고! 식사 시간도 다 지난 마당에 어쩌겠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연구소에는 왜 갔는데?”

조여름이 물었다.

“연구 당하러.”

성건우의 솔직한 답에, 조여름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녀에겐 성건우의 답이 농담처럼 들렸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저 옛날처럼 농담하길 좋아하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생 때와 비교하자면 성건우의 성격은 매우 달라져 있었다.

시끌벅적한 활동 센터에서 네 사람은 매우 여유롭게 한담을 나눴다.

그러던 중, 장이경이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기계 팔을 이식했을 줄 알았어요.”

이는 그가 직감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자 성건우는 매우 안타깝다는 듯 용여홍을 가리켰다.

“얘한테 뺏겼어요. 기계 팔은 하나뿐이었거든요.”

그의 표정에는 질투와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여름은 그제야 용여홍이 정말 자발적으로 이식 신청한 것이라 믿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던 성건우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가 익숙한 인물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근데 진 영감은?”

그들은 이 층의 활동 센터 주관인 진현오를 진 영감이라고 불렀다. 물론 상대 앞에서는 어르신이라고 깍듯하게 대했다.

조여름의 표정이 몇 번 바뀌었다가 끝내는 약간 어두워졌다.

“8월 초쯤, 회사에서 무심병이 한 차례 일어났어. 안타깝게도 진 어르신은 그 병에 감염되셨고.”

“아⋯⋯.”

용여홍은 쉽사리 그 소식이 와닿지 않았다.

‘겨우 몇 달 못 본 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성건우 역시 침묵했다.

카드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고, 주말에 댄스파티를 열지 말지 시끄러운 이야기들 속에, 오직 이 네 사람 주위로만 짙은 침묵이 흘렀다.

용여홍은 방금까지만 해도 이런 여유로운 분위기가 참 즐거웠지만, 순식간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랑 건우는 먼저 가볼게. 일단 얘 저녁부터 해결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잘 가.”

조여름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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