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18화 (518/649)

518화. 능력의 경계

성건우는 곧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요. 사유 유도는 사유 이식의 방식으로 쓸 수 있어요. 추리 광대 형식으로 완성할 수도 있고요. 전제는 목표가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말에 의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장목화는 오하명의 기이한 능력을 떠올리고, 곧 흥미를 보였다.

“그러니까 목표가 어디에 있든 네 말을 똑바로 듣기만 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네, 이 능력의 효력 범위는 제 목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는 범위랑 목표의 청력 범위가 교차하는 부분이에요. 특정한 거리로 딱 고정된 건 아니고요. 만약 전자 설비로 영향 범위를 넓히려면 힘을 주입해야 해요. 아직은 오하명만 못해서, 방송으로 인한 효과는 대폭 떨어질 거예요.”

오하명 얘기를 하는 성건우의 얼굴에 언뜻 동경의 빛이 어렸다.

그러자 장목화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넌 이제 막 승급했는데 어떻게 오하명에 비견할 수 있겠어. 오랜 시간 봉인된 오하명이라도 지금의 너랑 비교할 순 없어.

우리가 전에 구상한 전신 편취, 이제는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애쉬랜드의 각종 설비는 다 낙후돼서, 전화는 고사하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소수잖아. 구세계였다면 완전히 넌 물 만난 물고기였을 텐데.”

“맞아요, 맞아요!”

어느새 성건우의 몸을 차지한 건 언제나 맞장구를 치는 성건우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다 또 그는 대담하고 성급한 모습을 보였다.

“만약 제가 사무실 유선 전화로 이사회 구성원한테 전화를 걸어보면 그 사람들을 손쉽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전혀 모르고, 자체적으로도 강력한 각성자가 아니라면 그렇겠지. 그래, 그밖에 다른 능력은?”

장목화는 점점 더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는 대화를 적절히 끊었다.

성건우는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는 듯 곧장 답했다.

“문학청년-억지쟁이의 주요 변화는 범위에요. 무려 80미터로 늘어났어요. 이 두 종류의 능력은 여러 부분에서 비슷해서 융합될 수 있었나 봐요.

근데 거기도 차이점은 있어요. 문학청년은 상대의 감정이입이나 자기연민을 유도하는데 편향됐는데, 억지쟁이는 목표의 지능을 떨어뜨려 반대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편향돼 있거든요.

제가 누군가에게 공격당해 쓰러져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문학청년은 상대에게 다친 상황을 떠올리게 하거나 그와 비슷한 상황을 보고 듣게 해요. 그렇게 저한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절 살려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억지쟁이는 상대를 더 오만하게 만들어, 절 당장 처리하는 대신 치욕스럽게 하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전 그 틈에 살길을 모색하는 거고요.”

성건우는 장목화가 잘 이해하지 못할까 상세한 예까지 들어 주었다.

장목화가 못 참겠다는 듯 웃었다.

“하하, 공감이 어쩌다 그런 뜻이 됐을까. 자기연민은?”

이번에 성건우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답했다.

“제가 목표를 다치게 하면, 그 사람은 반격에 나서지 않고 난 태어나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혹은 슬프거나 스스로를 감동하게 하는 노래를 부르게 되기도 하고, 만약 독한 술이 있다면 취하려 할 수도 있어요.”

“정말이지⋯⋯. 그럼 사지 동작 불능 범위랑 인원은?”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한 장목화는 그냥 질문에만 집중했다.

“현재 세 가지 능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총 스무 명이에요. 범위는 120미터고요. 거리 증대를 선택했다면 범위가 200미터를 넘었을 텐데.”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 전투에서는 때때로 능력보다 거리가 더 중요했다.

장목화는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이미 선택한 거니 받아들이자. 이제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 없잖아.”

성건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전자파 방해 범위는 120미터, 범위가 가장 넓은 능력에 비교하면 물질 간섭은 비교적 약한 편이에요. 50미터밖에 안 되거든요.”

장목화는 팀장으로서 다시 한번 그를 칭찬했다.

“그만하면 엄청 강한 거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답네!

음……. 일단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랑 일반적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전자의 기운은 분리돼서 심령의 복도 어느 방에 남겨지거나 현실의 특정 물품과 결합하고 고정돼서 신기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후자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심령 방들을 탐색하다 보면 유용한 도구를 얻게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단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여러 번 탐색해서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봤자 본질적인 강도는 변화가 없을 테니까.”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시도해보진 않아서요. 이번에는 회사를 속이지 않았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 지도를 받게 될 수도 있겠죠.”

“시도를 안 해 봤다고? 네 성격에 어떻게 참았대?”

살짝 눈이 커진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사람과 사람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성건우마다 각각 다 나름의 생각이 있거든요. 투표 결과를 존중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고요.”

장목화는 그에게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백새벽과 용여홍이 속속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방금 나눈 이야기는 나머지 두 팀원에게도 다 공유되었다.

“자, 그럼 이제 체력 단련하러 가자.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지. 아, 그리고 다들 머리도 좀 다듬자. 뭐든 깔끔해 보여야 좋으니까.”

“예, 팀장님!”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답했다.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 입을 모아 알겠다고 대답했다.

* * *

트레이닝 룸에 들어간 성건우는 용여홍을 힐긋 바라보다가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한번 붙어보자.”

용여홍은 약간 짜증 섞인 웃음을 흘리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진심이야?”

지금의 그는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도 설 수 있었다.

물론 반드시 오른손 손가락이어야 했다.

그러자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안 붙어보고 어떻게 기계 팔을 한 대 더 마련할 결심을 굳히겠냐?”

‘아이, 자식 진짜 고집하고는.’

용여홍은 친구를 한번 흘겨보았다.

그때, 갑자기 백새벽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우리한텐 이제 인공지능 갑옷을 신청할 자격이 생겼을 거야. 더는 기계 팔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그 말을 듣고 용여홍은 눈동자를 살짝 굴리다 조금 머뭇대며 물었다.

“작은 흰둥이 넌 지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게 좋은가 봐? 회사 안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게 더 낫지 않아?”

백새벽은 그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오므렸다.

“그런 안정된 생활도 언제 사라질지 몰라. 다음 달에 당장 무심병에 걸릴 수도 있는데.”

남들에게 따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이미 스스로를 의심할 여지도 없이 구조팀 일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 이 세 동료가 바뀌지 않으면, 그녀도 계속 이 팀을 떠나지 않고 싶었다. 전의 경험을 다시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또한 백새벽은 지금 댄 이유만으로 용여홍을 충분히 설득하리라 생각했다. 그것도 분명 그녀가 구조팀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용여홍은 우물쭈물 반박에 나섰다.

“근데 회사 내부의 무심병 발병률은 엄청 낮잖아. 몇몇 난치병이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런 난치병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무심병에 걸릴 것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백새벽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나한테 그 둘은 완전히 달라. 난치병은 예방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지만 무심병은 아니잖아. 무엇보다 난치병은 걸린다고 다 죽는 게 아니야.

병에 걸려도 일도 처리하고, 내 바람을 이룰 방법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어. 근데 무심병은 걸리는 그 순간부터 모든 이성을 잃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야.”

“그건 그렇지⋯⋯.”

용여홍은 더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는 반고 바이오 직원들도 다 알았다. 이미 수십 년간 대를 거듭하며 이런 생활을 해왔기에 그런 사실은 애써 무시한 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언제 또 다른 성건우로 바뀐 것인지, 용여홍과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 대결을 포기한 성건우가 새로운 주제를 제시했다.

“여홍이 넌 안전부를 떠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데?”

인적이 드문 깊은 밤 그 문제로 진짜 고민해 본 적이 있지만, 정말 그랬다는 얘기를 할 순 없어서 용여홍은 일단 할 말을 골랐다.

“회사에서 가라는 데로 가야지.”

“거짓말.”

성실한 성건우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법이 없었다.

용여홍의 얼굴이 달아오르던 그때, 성건우는 친구를 위해 함께 고민해주었다.

“활동 센터 주관은 어때? 진 영감님을 보면, 보통 때는 할 일이 없잖아. 컵이나 들고 거기 앉아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 듣고, 물건 대신 팔아주고, 줄 설 필요도 없이 부하가 갖다주는 밥 먹고. 나중에 바빠진다 싶으면 노래 부르기, 춤추기, 바둑 두기, 농구 등등의 활동을 짜서 하면 되잖아.”

그러자 용여홍이 내뱉듯 말했다.

“그건 나랑은 별로 안 어울려. 난 많은 사람이랑 얘기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잖아. 활동 짜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하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이런 문제를 심사숙고해본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용여홍은 급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난 이제 겨우 D5고 한 단계 더 승급해도 D6이야. 안전부를 떠날 때 관례대로 한 등급 더 높아져봤자 D7인데, 활동 센터 주관은 D8급이잖아.”

“그러니까 더 노력해야지!”

성건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용여홍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때 보고를 마치고 온 장목화가 두 친구의 대화를 듣고 웃었다.

“작은 빨강이, 허튼 생각하지 마. 설령 네가 우리 팀을 떠날 수 있다 한들 안전부에서 벗어날 순 없을 거야. 기껏해야 내근직으로 전환되는 거지. 그럼 정보 분석 방면의 작업을 할 가능성이 커. 여태 쌓아온 경력을 어디다 쓰겠어?”

반고 바이오로 돌아오는 도중, 그녀는 용여홍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었다. 안전부 규정에 중상을 입어 장애를 얻게 된 직원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 일선 팀에서의 전출을 신청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이렇게 적잖은 공을 세운 직원의 후속 직무를 결정할 때, 안전부는 그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하기도 한다고 했었다.

즉, 지금 장목화는 자신의 생각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자세히 고민해보던 용여홍은 자신에게 적합한 작업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지상에서 생활해 본 그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일을 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심각한 상실감을 느껴 빨리 적응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정보 분석은 여전히 외부와 어느 정도 접촉을 유지하며 땅 위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용여홍은 어쩐지 점점 구조팀을 떠난 이후를 상상한다는 데 거부감이 들었다. 그 이후의 거취 같은 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그는 급히 화제를 바꿔보려고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넌 만약 안전부를 떠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성건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인류를 구하고 나면, 활동 센터 주관으로 전출 신청을 할 거야! 노래 대회랑 집단 댄스는 주마다 번갈아 가며 진행해야지!”

‘진짜 소박한 이상이네. 인류 구원이랑은 영 딴판인 소원이잖아. 너도 그런 자각은 있는 거지?’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대충 대꾸했다.

“그래, 꼭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장목화는 언제나처럼 두 친구의 대화를 끊고 손뼉으로 환기했다.

“자, 이제 잡담 그만하고 단련 시작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