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17화 (517/649)

517화. 첫 번째 탐색

이윽고 앞으로 몇 걸음 나선 성건우가 1215호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심령의 복도에 딸린 방을 잠글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주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도 주홍 문이 바로 열렸다.

방 안은 어둑했으며, 은은한 빛만 보일 뿐이었다. 문밖에선 안쪽 상황을 제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눈은 점차 이곳 밝기에 적응했고, 서서히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야에 들어온 건 복도와 그다지 공들여 배치하지 않은 듯한, 어떤 의미를 갖는 방이었다.

이에 대해 성건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현재까지 파악된 심령의 복도 관련 상식에 따라 기본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모든 사람에 대응하는 방은 아주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기원의 바다를 포괄하는 하나의 심령 세계였다.

그래서 심령의 방의 개조 결과는 주인, 혹은 그의 허락을 받은 방문객만 확인하고 접촉할 수 있었다. 멋대로 들어온 침입자는 상대의 기원의 바다에 직접 강림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러한 강림과 좌표를 안 상태에서의 침입엔 일정한 차이가 존재했다.

만약 모든 이들의 심령 세계를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전자는 방화벽에 접촉하기 시작하며 하나하나 시험들을 겪게 되었다. 언제든 위험에 봉착해 상응하는 힘에 제거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후자는 모든 방어 기제를 우회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직면할 수 있었다.

즉, 만약 성건우가 1215호 방 안의 모든 것을 순조롭게 처리하고 가장 깊은 안쪽까지 탐색한다면, 그건 디마르코가 그랬듯 이 방 주인의 기원의 바다를 완벽하게 침입한 것과 똑같았다.

이런 방면에서 보면 숙명통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일단 성건우가 1215호를 순조롭게 탐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곳에서 그는 이 방 주인의 갖가지 두려움과 특정 악몽들을 경험해야 했다.

그 안에 깊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가볍게는 정신에 타격을 입고 트라우마를 얻어 약점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됐고, 그보다 더 심하면 아예 자아 인지를 잃고 각기 다른 정도의 정신 문제를 앓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보다 더더욱 심각한 자는 의식이 흩어지거나 모처에 갇혀 현실 세계에서 식물인간으로 변하거나 염호처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고, 가장 심각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신룡교의 그 꿈 보호자처럼 무심병을 앓는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장목화는 특수한 몇몇 방에 들어갈 때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 의심했었다.

물론 각성자에게 각 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탐색해 상대의 의식을 마주할 이유는 없었다. 다들 이곳에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곧장 철수하는 게 보통이었다.

성건우는 이 복도가 방 주인의 두려움의 섬인지, 아니면 그의 악몽인 건지 호기심을 안고 허리춤에 달린 손전등을 꺼내 스위치를 눌렀다.

한 줄기 밝은 빛이 쏘아져 나갔지만, 곧장 주위 어둠에 삼켜지며 어떠한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각성자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심령 세계 환경을 직접 바꿀 순 없다는 건가? 완전한 침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성건우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다가 이 부분을 진지하게 기억해뒀다.

자신이 구현해 낸 손전등이 아무 소용도 없는 걸 확인하곤, 성건우는 이제 이 시도는 포기하고 복도에서 은은하게 스미는 빛에 기대 주위를 살폈다.

이곳 바닥 타일과 양쪽 벽에 걸린 장식은 다소 과장되게 뒤틀려 있었다. 경험자가 당시 느낀 두려움을 직관적으로 드러낸 듯 곳곳이 어수선했다.

그리고 빛은 천장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 등불들이 걸려 있었지만 전압이 부족한 듯 밝기는 충분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시 복도로 돌아온 그는 나아갈 방향이 한쪽뿐이라, 시간 낭비하지 않고 그대로 방문을 통과해 복도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 눈앞에 은백색 금속 벽이 나타났다.

벽은 누구도 지나갈 수 없도록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중앙엔 미닫이문이 하나 있는데, 문 옆에는 정교한 전자 설비가 있었다.

또 문은 약간 넓은 틈을 드러낸 채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틈 너머로 보이는 건 시커먼 어둠뿐, 들려오는 소리도 없었다.

현재 문에서 멀지 않은 성건우는 직관적으로 강렬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곳 환경에, 다른 사람의 심령 세계에 영향을 받은 그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설명할 수 없는 공황과 두려움, 불안에 시달렸다.

그는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 주인은 이 문 뒤에서 무시무시한 일을 당한 건가? 그건 각성자가 되기 전, 혹은 기원의 바다를 통과하기 전 어느 섬에서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심령의 복도에 들어온 후에 떨쳐낼 수 없는 악몽을 안긴 사건이었을까?”

그 둘의 위험도는 차원이 달랐다. 만약 전자라면 탐색에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후자라면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일 터였다. 무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기겁하게 한 그것이 어떻게 평범한 일이겠는가.

문 뒤의 고요한 어둠을 바라보던 성건우는 재차 아홉으로 분리해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투표로 정했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행동하자는 쪽이 여덟 명으로 월등히 많았다.

결과에 존중하며 성건우는 다시 하나가 되어 1215호를 나왔다.

문을 닫고, 흡사 100미터 달리기 준비 직전의 자세를 취한 성건우는 바로 다음 순간 냅다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 돌진하는 걸 보면 이 복도 끝이 어딘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헉……, 헉…….”

얼마나 달렸을까, 성건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췄다.

지금 주위에 자리한 방 대부분에는 금색 번호가 붙어있지 않았다. 황동색 문고리도 뭔가에 가로막혀 있었다.

일반인이나 아직 기원의 바다를 통과하지 못한 각성자의 복도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었다.

이만큼이나 달려왔지만, 어둠에 잠긴 복도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능력을 시험해보던 성건우는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심령의 복도를 나왔다.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소모한 탓에, 활동 센터로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힘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간이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성건우는 구조팀 사무실, 647층 14호에 들어섰다.

그보다 일찍 출근한 장목화는 이미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성건우를 발견한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부처의 응신이 잠들어 있다가 가끔 깨어난다는 내용을 쓰다가 떠오른 게 있어.”

“뭔데요?”

성건우가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장목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전에 얻은 정보랑 이번에 확인한 결과를 보고, 우린 신세계에 진입한 각성자는 육신을 포기하거나 깊은 잠에 빠져 아주 가끔만 깨어나 일을 처리한다는 걸 알았어. 그걸 우리 회사에 적용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아?”

턱을 매만지던 성건우의 표정이 점차 엄숙해졌다.

“빅보스.”

반고 바이오 내에 충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대라고 한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빅보스!

이 반고 바이오의 실제 통치자는 회사의 일상적인 운영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전부 이사회에 맡겨두고 있다가 새해에나 라디오를 통해 직원들에게 연설하고 복을 기원할 뿐이었다.

그녀를 바로 신세계에 진입하고도 육신을 남겨둔 각성자로 본다면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설명되었다.

물론 장목화와 성건우가 회사 고위층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특히 성건우는 뉴스에 흔히 등장하는 이들만 알아서, 현재 반고 바이오에 신세계에 진입한 각성자가 몇 명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다만 그들과 빅보스는 가끔 모습을 드러내도, 알고 있는 소수의 몇몇하고만 만나 비밀리에 일을 처리할 확률이 높았다.

성건우의 답을 듣고,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방 안에 전자 설비가 혹시 늘어난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내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심해.”

당연히 다음엔 ‘팀장님이 물어봤잖아요’라는 성건우의 황당한 반응이 나와야 했지만, 장목화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건 좋은 일이야. 우리가 그만큼 믿음직스럽고, 다른 세력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니까.

전에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어. 빅보스는 이 지하 빌딩 맨 아래층에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데 좀 답답하진 않을까, 무료하진 않나 하고.

생각해봐, 우리도 회사에 좀 오래 있다 보면 지상으로 나가고 싶어지잖아. 근데 구세계 파괴를 경험했을 그 어마어마한 인물이라고 다르겠어?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거기에만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지.”

직원들에게 알려진 이야기를 떠나, 원래 관리층 가정 출신의 장목화는 반고 바이오 건립 당시, 혹은 지하 빌딩으로 이주할 당시부터 빅보스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이따금 빅보스는 사실 조용히 교체되고 있고, 직원들을 그걸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의심한 적이 있었다.

클론 기술에서 반고 바이오를 따라올 세력은 없었다. 안 그럼 빅보스의 나이는 아흔이 넘을 텐데, 일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엔 굉장한 힘이 있었다. 기껏해야 부부장 제니처럼 서른 살 언저리의 여성일 것 같았다.

곧이어 성실한 성건우가 장목화의 말에 반박했다.

“그냥 방에서 게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죠. 수종이처럼.”

“수종이도 가끔은 산책을 하잖아! 말도 타고.”

바로 대꾸한 장목화가 잠시 뜸 들이며 머뭇대다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가 한 명뿐일 리는 없어. 안 그럼 퍼스트 시티 등의 대형 세력에 대항할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빅보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존재겠지. 아마 수종이처럼.”

성건우는 심사숙고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럼 빅보스는 어떤 애완동물을 기르려나⋯⋯?”

“내 말은! 레벨이 비슷할 거라는 거지, 정체성이 아니라.”

장목화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도, 성건우도 수종이의 정체를 비슷하게 생각했다.

무심자의 왕, 변이 생물의 노예 주인, 애쉬랜드의 독창(毒瘡).

장목화는 성건우가 또 다른 소리를 할까 봐 바로 물었다.

“너 돌아오자마자 네 심령 방을 바꾸고, 심령 복도도 탐색하고, 네 능력을 실험해 본 거지?”

순간 성건우가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안 봐도 뻔하지, 그럴 시간이 됐잖아.”

이내 그녀는 잔에 담긴 온수를 한 모금 마시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 능력들 한계는 확인해봤어?”

퍼스트 시티에서 용여홍의 회복을 기다리고, 또 반고 바이오로 돌아오는 내내 성건우는 줄곧 새로 얻은 능력과 레벨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질적인 변화를 모색했었다.

다만 이두형의 당부 때문에 자신의 방과 심령의 복도에서 소동을 일으키지는 못해서, 여러 부분에서 얻은 피드백이 그다지 정확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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