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16화 (516/649)

516화. 심령 복도

495층, C구역 11호.

용여홍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식구들은 이미 다 저녁을 먹고 정리 중이었다. 용여홍의 두 동생 용지고, 용애홍은 어머니 고홍자의 감독 아래 식탁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도 당연히 쉬지 않고 능숙하게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가족들을 바라보던 용여홍은 몇 초간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긁적이려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다섯 손가락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멍한 눈빛에는 순식간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피어올랐다.

이내 용여홍은 감정을 숨겨보려고 손안에서 스테인리스 빗을 꺼내 덥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을 열심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고홍자가 홱, 돌아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이게 몇 달 만…….”

감격에 젖었던 고홍자는 순간 말이 끊겼다.

아들의 낯선 손을 본 탓이었다.

차가운 금속광이 도는 손……. 평생을 봐왔던 아들의 손이 아니었다.

“이, 이건…….”

당황한 고홍자의 목소리에, 매우 기뻐하던 용대용과 용지고, 용애홍도 뭔가 의혹에 휩싸였다.

용여홍은 바로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팔을 한번 휘둘러보였다.

내내 연습했던 걸 제대로 보여줄 때였다.

“이번 임무가 좀 위험했거든요. 그런데 마침 이 기계 팔 한 대를 마련하게 됐지 뭐예요? 팀장님한테 이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저도 실력을 좀 높이고 싶었어요. 안 그럼 이렇게 안전하게 돌아오기도 힘들었죠.

하하! 이런 기계제품들, 전사라면 당연히 꿈꾸는 낭만이죠! 이 기회를 어떻게 참아요? 제가 과감하게 안 나섰으면 건우 차지가 됐을지도 몰라요!”

용여홍은 연습의 결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거의 말을 쏟다시피 한 아들을 보며 용대용은 심드렁한 얼굴을 했지만, 용지고는 정말 동감한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래, 진짜 쿨해!”

‘하, 여태 구세계 콘텐츠를 꾸준히 봤나 보네. 그런 표현도 다 알고.’

용여홍은 동생을 제대로 교육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물론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할 시간이었다.

“하하하! 보기에만 쿨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래!”

용지고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캐물었다.

“기능은 뭐가 있어?”

용여홍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건 보안 등급이 매겨진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알려주긴 힘든데. 간단한 기능 몇 가지만 보여줄 수 있어. 예를 들면⋯⋯.”

가족들 앞에 점점 번지는 죄책감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하던 용여홍은 본능적으로 손가락 모양을 바꾸며 외쳤다.

“통조림을 딸 수 있어!”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에 용여홍의 입가에는 약간 경련이 일었다.

‘아이, 진짜. 건우가 맨날 기계 팔로 통조림을 딸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나도 말버릇처럼 튀어나왔잖아!’

“확실히 쿨하네⋯⋯.”

그래도 용지고는 형의 말에 동경하는 눈빛을 보였다.

가족 중 통조림 따기 담당인 용대용도 그 점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그러나 고홍자만은 인상을 쓰고 몇 번이나 용여홍을 훑어내렸다.

“그래서 선은 어떻게 보겠어? 아가씨들은 어지간하면 다 겁낼 텐데.”

구조팀이 밖에 있는 동안 이미 계절도 늦가을로 접어들어서 올해의 공동 결혼도 다 끝이 났다. 시기를 놓친 구조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선을 통해 짝을 구해야 했다.

“그래, 그래.”

용애홍이 오빠의 말버릇을 흉내 내며 맞장구쳤다. 그녀가 보기에도 한쪽 팔이 기계인 남자는 아무래도 좀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용여홍은 그 부분은 예전처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데, 뭐. 내년 공동 결혼을 기다리면 되지.”

이후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그때쯤 이미 안전부를 나와 안정적인 직무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죽을 고비를 넘기고 깨어난 이후, 용여홍은 자신이 모험과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그보단 안전한 생활을 바라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생명을 담보로 헛되고 실속 없는 걸 취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용여홍은 구조팀의 이번 공헌에 중상을 당해 팔을 잃었다는 현실적인 상황까지 더해지면, 복무 기한이 다 차지 않았어도 구조팀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건, 자신의 이야기만 듣고 부모님이 너무 큰 기대를 할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본래 삶이란 언제나 각양각색 뜻밖의 일의 연속 아니던가.

동료들은 모두 구조팀에 남을 것이 확실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물론 백새벽도 그런 생각이라 유전자 개조까지 받으려는 것일 터, 용여홍은 혼자만 팀을 나간다는 것이 꼭 싸움터에서 홀로 도망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용여홍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팀원들과 함께 수많은 위기를 견뎌오며, 이미 너무 깊은 애정이 생겨버렸다.

결국 용여홍은 부모님에게 그 어떠한 확신도 줄 수가 없었다.

이내 고홍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년 공동 결혼이 이뤄질 즈음엔 넌 아마 D6급이겠지. 안전부를 떠나 한 등급 더 높아지면 D7 팀장급인데 누가 그런 사람을 마다해.”

그녀는 점점 더 커지는 자부심에 용여홍의 기계 팔에는 더 이상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용여홍도 어머니의 말을 듣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며칠 후에 포상을 받으면 난 바로 D6급이 될지도 몰라.’

일반적으론 꿈도 꿀 수 없을 승진 속도였다.

이윽고 용대용, 용지고, 용애홍은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자리에 앉아 용여홍의 모험담을 들었다.

이번 임부엔 아직 보안 등급이 결정되지 않아서 이야기해도 괜찮은지 모호한 일화들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용여홍의 동생들은 말해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에도 충분한 흥미를 보였다. 꼭 엄청 재미있는 구세계 콘텐츠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소등 시간을 맞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이후, 고홍자와 용대용은 침대에 누워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금세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고홍자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잠든 것이 아니었다. 내내 캄캄한 천장만 보며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이랑 똑같네. 거짓말할 때는 말이 많아져.”

“그러게⋯⋯.”

역시 잠들지 못한 용대용도 따라 긴 한숨을 내뱉었다.

* * *

심령 방 안.

말없이 방을 한참 살피던 성건우는 분산된 자신을 다시 하나로 합쳤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주홍 문으로 다가가 황동색 문고리를 쥐었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고리를 가볍게 잡아 돌렸다.

열린 문 너머로 어두운 노란색의 두꺼운 카펫이 깔린 어둑한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으로는 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문은 전부 주홍색, 각각의 문에는 황동색 문고리와 금색 번호가 달려 있었다. 문의 형태도 거의 모두 다 똑같았다.

또 문과 문 사이에는 일정 거리마다 하나씩 벽등이 설치돼 있었는데, 우아하게 어둑한 빛을 발하는 벽등이 있어도 복도 끝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곳이 바로 심령의 복도였다.

성건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틀어 자신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1 3 1]

그 문에 달린 금색 숫자였다.

“131⋯⋯.”

성건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방에 새로운 숫자 세 개를 구현했다.

[6 4 7]

그런데 131을 647로 교체하자마자, 다시 또 131로 변했다.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는 검은 천 하나를 구현해 원래의 131을 덮어버렸다. 뒤이어 펄이 들어간 금색 펜으로 검은 천에 196이란 숫자를 쓰고, 아예 손으로 눈꺼풀을 잡고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196도, 검은 천도 소리 없이 흩어져 사라졌다.

“못 바꾸나 보네.”

아쉬워하던 성건우는 더는 문패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다른 방문엔 538, 205, 912 등의 숫자가 보였다.

‘503이랑 102는 없네.’

성건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다시금 실망감을 표했다.

503호는 강소월의 것으로 의심되는 방으로, 일찍이 신룡교의 꿈 보호자가 무심병에 걸린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102호는 염호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진입한 방이었다.

성건우는 실망한 마음을 안고 산책하듯 복도 한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복도의 끝을 한번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네다섯 걸음을 옮겼을 때 1012란 숫자가 붙은 문이 나타났다.

몇 초간 망설이던 성건우는 두 팔을 들어 가슴팍 앞에 교차시키더니 낭랑하게 외쳤다.

“거리는 우리의 친구다!”

10으로 시작한다면 에이돌른, 경계심을 높여야 했다.

이후로도 한참을 나아가던 그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

시선은 왼편에 자리한 어느 방에 닿아있었다.

그 주홍색 문엔 1215라는 금색 숫자가 붙어있었다.

심령의 복도에서 12로 시작하는 방은 장생이나 사명 영역에 속했다.

그 방문을 한동안 진지하게 응시하던 성건우는 아홉으로 자신을 분리했다. 이 1215호를 탐색할지 말지 투표로 정하기 위해서였다.

전과 달리 열 명의 성건우는 각기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림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덕분에 구분하기는 훨씬 더 쉬웠다.

사슴사냥 모자를 쓴 성건우는 턱을 매만지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다들 투표하자. 우린 민주적인 팀이야. 소수는 다수에 따라야 해.”

“그건 다수의 폭정이야!”

여전히 회색 제복을 입은 성건우가 거침없이 반박했다. 그는 성실하고도 반박하길 좋아해서, 단 한 번도 생각을 숨긴 적이 없었다.

이내 사슴사냥 모자를 쓴 성건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파이프까지 꺼내 그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효율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필수적이야. 좋아, 그럼 이 방에 들어가 탐색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 손 들어.”

가장 담이 큰 성건우, 언제나 ‘맞아, 맞아’ 습관적으로 맞장구치는 성건우, 농담을 좋아하는 성건우, 나쁜 건 원수처럼 증오하는 성건우, 새롭고 신기한 것을 쫓으며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성건우, 총 다섯 성건우가 손을 들었다.

“반반이네. 이래서는 결정이 안 되겠다. 아홉 명이었던 게 더 나았어.”

사슴사냥 모자를 쓴 성건우가 파이프를 물고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성건우 민주 협의회의 소집자이자 진행자였다.

곧이어 성실한 성건우가 반박했다.

“기권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아홉 명으로도 의견이 딱 정해지진 않아.”

“맞아, 맞아.”

맞장구치는 성건우는 기계 팔을 장착한 상태였다. 그가 전에 갖고 있던 작은 스피커와 녹음설비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성건우의 몫이 되었다.

“두 시주님, 싸우지 마십시오.”

육식주를 쥔 성건우가 타일렀다.

노란 승복에 붉은 가사를 걸친 그는 얼굴이 메탈블랙 색상인 데다 눈까지 붉은빛으로 번득이고 있어 흡사 기계 승려처럼 보였다.

곧이어 회색 제복을 입은 유약한 성건우가 냉소했다.

“문 뒤에 뭐가 있을지 누가 알아?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위험한 짓이야. 가까스로 심령의 복도에 들어와 애쉬랜드에서 스스로를 지킬 힘을 막 갖게 됐는데, 그런 모험을 한다는 게 말이 돼?”

성실한 성건우가 또 바로 반박에 나섰다.

“그러면. 여기 있는 모든 문 뒤에 위험이 숨겨져 있는데 영원히 아무 곳도 탐색하지 않고 여기 이렇게 멈춰있을 거야?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까 탐색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는 결심했다는 듯 오른손을 들었다.

사슴사냥 모자를 쓰고 검은 코트를 걸친 성건우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성건우 공동 투표 결과, 탐색하기로 결정됐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명의 성건우는 회색 제복을 입은 성건우 하나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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