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15화 (515/649)

515화. 결국 남은 건 우리뿐

용여홍이 힘겹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됐을 무렵, 구조팀은 원래의 지프에 가리발디 주세페와 회사에 보고할 다른 정보원 두 명을 태운 채, 퍼스트 시티를 떠나 서북쪽의 검은 늪 황야로 향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구조팀과 보고를 위해 돌아온 정보원 3명은 드디어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 입구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엄격한 안전 검사부터 받아야 했다.

기계 팔은 원래의 팔과 다름없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용여홍은 기계 팔로 물건들을 꺼내 나무 상자에 담다가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옆에서 성건우가 육식주와 생명 천사 목걸이를 모두 꺼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 숨겨진,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의 기운은 아직 전이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두 물건의 표면에선 광택이 돌았다. 윤기가 나는 표면은 어느 정도 빛이 반사되기도 했다.

용여홍은 이 상태에 놀란 게 아니었다. 그가 흠칫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빌딩 바깥 어딘가에 숨기기로 한 거 아냐? 회사에 들키면 어쩌려고?’

성건우는 용여홍의 그 마음을 읽은 듯 알아서 웃으며 이야기했다.

“오늘의 난 어제의 내가 아니야. 어제의 나도 그제의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난 그냥 성실한 성건우야.”

“⋯⋯.”

용여홍은 한동안 반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친구에게 딱 어울리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바보.’

장목화는 이번에 얼굴을 감싸 쥐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럴 힘도 없었거니와 사실 그리 큰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구조팀은 지금껏 실로 상당한 임무를 수행했고, 그중에는 고난도의 임무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 임무로 받게 될 공헌 점수는 굉장히 높아서, 어느 정도 깎인다고 한들 겁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구조팀이 제8 연구원의 특파원을 포로로 사로잡았다는 건 칸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이미 카오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도구를 회사에 보고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새벽은 빠르게 최종적으로 받게 될 공헌 점수를 계산해보았다. 그건 앞으로 그녀에게 주어질 몇 가지 선택지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 * *

안전 검사를 통과하고 차를 세운 구조팀과 주세페를 비롯한 세 정보원도 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너희는 649층에 가야 할 거야.”

주세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 사람들도 방금 그렇게 말하더라고.”

장목화는 그들을 위해 649층 버튼을 누른 뒤 구조팀의 사무실이 자리한 647층 버튼도 눌렀다.

잠시 후 649층에서 내린 세 정보원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용여홍이 불쑥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백새벽이 물었다.

용여홍의 목소리에 감정이 물씬 묻어나왔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을 마주치고, 또 수많은 사람과 동행했는데……. 결국 남은 건 우리뿐이네.”

백새벽이 무슨 대꾸를 하기도 전, 성건우가 용여홍을 빤히 돌아보았다.

“너한테 문학청년 능력을 발휘한 기억은 없는데.”

이때 엘리베이터가 647층에 멈췄다.

“가자.”

장목화는 또 놀림 받을 용여홍을 지켜주려고 빠르게 움직였다.

14호는 떠났을 때와는 약간 달라졌지만, 대체적으로는 일치했다. 때마다 청소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터였다.

장목화는 팀장 의자에 던지듯 앉아 편안히 뒤로 기댔다. 그녀의 얼굴에 몹시 만족스러운 빛이 흘렀다.

“하⋯⋯, 역시 집이 편해!”

여기에 아무도 없고 어릴 때부터 써온 침대가 곁에 있었다면, 장목화는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며 이 편안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맞아요.”

용여홍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성건우가 전술 배낭을 벗고 배를 문지르자, 때맞춰 신호가 울렸다.

꼬르르륵…….

장목화는 바로 웃음이 터졌다.

“소독부터 하고, 씻고, 옷 갈아입고 식당으로 가자. 내가 살게!”

“만세!”

성건우는 거리낌 없이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용여홍과 백새벽도 말없이 서로 기대감 어린 시선을 주고받았다.

“전 홍소육이요!”

이어진 성건우의 당당한 요구에, 용여홍도 못 참겠다는 듯 군침을 삼켰다.

“저는 감자 소고기볶음이요.”

잠시 머뭇거리던 백새벽도 결국 합세했다.

“저는 지삼선(*地三鲜: 중국 동북쪽 요리. 세 가지 종류의 채소볶음)요.”

장목화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얘들아, 언제부터 우리한테 메뉴 선택권이 있었어? 그건 식당 영역이야! 관리층이 아니면 특별 메뉴는 꿈도 못 꾸잖아. 특별 메뉴를 골라도 그날 식재료가 뭔지부터 봐야 하는데. 일단 얼른 소독하고 씻고 옷부터 갈아입자!”

사실 이들은 지하 빌딩에 들어왔을 때부터 소독도 하고 먼지 제거와 살균도 했다. 하지만 장목화는 별도의 보호 조치를 한 번 더 취하려 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구조팀 네 사람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한동안 그들의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장목화가 몸을 일으켰다.

“너희는 이만 돌아가 봐. 난 빨리 보고서 초안부터 작성해야겠어. 내일 천천히 수정할 수 있게.”

“네.”

드물게도 용여홍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간 끝에 반고 바이오로 돌아온 그는 유난히 더 가족이 보고 싶었다.

동료들이 사무실을 떠나고, 장목화는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번호를 눌렀다.

“아빠, 저 돌아왔어요.”

장목화의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피어났다.

수화기 너머 장문봉은 화들짝 놀라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 드디어 왔구나! 듣자 하니 퍼스트 시티에서 아주 큰 일을 해냈다던데?

“저희는 그저 졸개인데요, 뭐⋯⋯.”

장목화는 어리광을 피우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보안 등급이 결정되면 그때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 사이 유선 전화에서 시선을 뗀 그녀는 맞은편의 벽을 응시하며 한참을 또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빠, 저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고 싶어요.”

- 뭐?

장문봉은 그 말에 매우 놀랐다. 해가 서쪽에서 뜬 건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뒤이어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밖은 아주 위험해요. 어떤 약점이라도 남겨뒀다가 팀 전체의 안위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돼요. 어휴, 아빠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바로 전화 끊을게요. 얼른요, 더는 이런 생각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 알겠다. 내가 바로 일정 잡을게.

장문봉이 다급히 답했다.

이내 장목화는 입술을 약간 깨물고선 저도 모르게 작아진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각성에 관련한 실험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장문봉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 마음을 확실히 먹은 거냐? 그 실험은 아주 위험해.

장목화는 맞은편 벽을 응시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네,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틈도 주지 않고 웃으며 바로 말을 붙였다.

“아빠, 저 어렸을 적 꿈이 뭐였는지 기억하세요?”

기억을 더듬어 보던 장문봉이 쓰게 웃었다.

- 기억하지. 네가 10살쯤이었지, 아마? 내가 구세계 파괴, 무시무시한 무심병, 애쉬랜드의 과거 참상과 현재 상황을 얘기해주니까 넌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의 기원을 조사하겠다고 꽥꽥 소리를 질렀었지. 졸업하고 실험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말이야.

그때만 해도 난 매우 안심했었어. 얌전히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을 줄만 알았지, 네가 그 길을 걸을 줄은 전혀 몰랐거든.

장목화의 얼굴에 더 환한 웃음이 번졌다.

“제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장문봉은 또 한동안 길게 침묵하다가 답했다.

- 그래.

장목화는 그제야 전화를 끊고, 컴퓨터의 음악 플레이어를 클릭했다. 그중 지금 심정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선택해 틀었다. 성건우가 가진 음악 파일 복사본 중 하나였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음악이 방 안을 감쌌다.

- 어렸을 적 꿈을 아직 기억하니, 영원히 지지 않는 꽃 같은…….

이 대목에서 살짝 미간을 구긴 장목화는 일련의 조작을 거쳐 이 노래의 시작 부분만 반복 재생되도록 설정했다.

* * *

647층 복도 모처.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 모퉁이에 이르렀을 무렵, 백새벽이 한쪽을 가리키며 멈췄다.

“난 이만 가볼게.”

그녀가 사는 곳은 622층이라 성건우와 용여홍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다른 구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의 답이 있기 전, 입술을 오므리던 그녀가 덧붙였다.

“포상이 나오면 난 생체 공학 의수 이식과 유전자 개조를 받아보려고.”

“엄청 위험할 텐데.”

용여홍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이 가리키는 건 바로 유전자 개조였다.

그래도 백새벽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결심했어.”

‘더 이상 내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아.’

그녀가 소리 내 덧붙이지 못한 말이었다.

“그래.”

용여홍도 자신에게는 백새벽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저 팀장 장목화가 최대한 팀원의 결정을 막아줄 수 있기만 바랐다.

자그마한 동료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 용여홍과 성건우도 그제야 다른 구역의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용여홍이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자신을 보며 약간 불안한 듯 물었다.

“나 괜찮아 보이지?”

그가 입은 부상은 며칠 쉬었다고 다 나을 그럴 수준이 아니었다. 최근에야 각종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완전히 치유되긴 했지만, 용여홍의 몸은 아직도 허약했고 앞으로는 물리 치료도 받아야 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가족들도 당연히 속상해할 것이었다.

그래도 차마 숨길 수도 없는 기계 팔에 대해선 이미 핑계를 마련해두었다. 친구 성건우의 도움이 있었다.

‘이게 더 쿨하고 강하잖아요! 멋진 기계 팔의 유혹을 참을 수 없었어요!’

성건우는 용여홍은 위아래로 몇 번 훑어내렸다.

“싸우지 않는 이상에는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바보냐?”

용여홍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몸 상태가 이런데 지금 누구랑 싸우겠는가. 여태까지 그는 남달리 규칙을 어긴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내 말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 기계 팔의 위력이 드러날 거라고.”

“⋯⋯.”

용여홍은 느릿하게 한숨만 토해냈다.

엘리베이터는 곧 495층에 도착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서로를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든 뒤, 각자 집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향했다.

성건우는 느릿느릿, 황동색 열쇠를 휘휘 돌리며 마주치는 이웃과 수시로 인사를 나눴다. 다들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온 그에게 강한 관심을 보였지만, 방금 막 돌아왔을 사람을 위해 귀찮게 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성건우는 그의 집 196호 앞에 이르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답답할 정도로 협소한 내부가 들어왔다.

가장 안쪽에 가로로 놓인 침대 왼편엔 붉은 칠을 한 책상과 등받이 의자가, 오른편으로는 스토브와 세면대가 놓인 6평 방이었다.

성건우는 정리부터 하는 대신 문을 닫고 침대에 기대듯 누웠다.

혼자가 된 적막 속에, 성건우는 오른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렇게 텅 빈 심령 방에 이른 성건우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 후 성건우는 셋으로 나뉘어 의지로 이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방 두 개를 분리하고, 매우 비좁은 화장실도 하나 만들고, 기억을 바탕으로 붉은 칠을 한 책상 등의 가구를 하나하나 구현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그가 이미 입을 수 없게 된 옷도 포함돼 있었다.

개조가 거의 끝나가던 그때, 성건우는 기원의 바다를 상징하는 자욱한 안개 덩어리를 한쪽 벽 위에 고정해놓고 그것을 액정 TV로 바꾸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그는 말없이 방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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