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10화 (510/649)

510화. 뜻밖의 만남

도시 방위군 몇몇은 직접 가까이 다가가 신분증의 내용과 가장 중요한 압인까지 확인했다.

그제야 안도한 도시 방위군들은 문 근처로 속속들이 돌아갔다. 혹시 두 동료가 엄격하게 지키는 뒤쪽 구역의 비밀을 보게 될까 염려해서였다.

이는 그들이 오랜 시간 걸쳐 쌓아온 경험이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말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성건우는 이런 행동 양식을 완전히 무시했다. 장목화의 신호를 받은 그는 어떤 위장도 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너희는 여기서 뭘 찾고 있는 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얄가이 혈통의 도시 방위군 병사가 솔직하게 답했다.

“도사. 원로원에서 포카스 장군을 뛰어넘어 직접 하달한 명령이야.”

순간 장목화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치솟았다.

‘도사? 영원한 세월 교파의? 이번 퍼스트 시티 동란에서 달지기 장생이 원래의 영향력을 잃기라도 한 걸까?’

여태까지 봐온 도사가 많지도 않아서, 지금 연상되는 것은 영원한 세월 교파밖에 없었다.

바로 성건우가 캐물었다.

“도사라고? 어떻게 생겼지? 혹시 내가 본 적 있나 확인해봐 줄까?”

우두머리 도시 방위군이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 인물은 50대 남성이었다. 갈루란의 것과 비슷한 가운을 입고,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린 상태였다.

순수 애쉬랜드인인 듯했고, 남자의 귀밑머리는 잿빛, 아래 눈두덩이는 두툼했다. 수염은 코와 턱, 양 볼까지 뒤덮을 정도였고, 주름도 뚜렷했다.

“아, 본 적 없어. 처음 보는 사람이야.”

성건우가 굉장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도시 방위군 엘리트 팀 병사 역할에 푹 빠져있는 듯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사진을 내준 병사가 성건우를 위로했다.

성건우는 다시금 멀지 않은 곳에서 돌아가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지휘를 맡은 건 누군데?”

이 도시 방위군 팀의 팀장은 뒤쪽 천장을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답했다.

“우리 쪽 사람은 아니야. 원로원에서 보낸 사람이었어.”

“어떻게 생겼는데?”

성건우는 이번에도 거침이 없었다.

도시 방위군 팀장 역시도 고분고분 기억을 더듬었다.

“검은 가운을 입고 있었어. 머리가 덥수룩하고, 눈동자는 옅은 파란색, 얼굴형은 좀 길어. 광대가 도드라졌고, 주름도 많이 져 있고⋯⋯.”

“모르는 사람이야.”

성건우가 재차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다 장목화의 눈빛을 받고, 성건우가 또 새로운 질문을 했다.

“혹시 어떤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았어?”

“그런 적은 없어.”

도시 방위군 병사 여럿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목화가 약간 실망하려던 찰나, 얄가이인 도시 방위군 팀장이 덧붙였다.

“하지만 상부에선 그자가 있는 한 오늘 임무 집행엔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고, 위험한 일이 발생하진 않을 테니 담대하게 작전에 임하라고 했어.”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이 말에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머지않아 한 가지 능력을 떠올려냈다.

가상 세계!

이 구역을 가상 세계로 뒤덮어 놓는다면, 임무를 수행 중인 병사들에게도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장목화의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마커스를 보호하던 가상 세계의 주인인가? 폐소 공포증이라는 대가를 지불한 그 사람?

거울교가 믿는 달지기 깨진 거울은 전에 퍼스트 시티 정부를 지지했어. 게다가 오레이와도 밀접하게 관계돼 있었지. 그들은 원래의 보수파를 포기하고 신임 집정관 가이우스를 지지하기로 한 건가?

가이우스가 그들의 지지를 수용했다는 건, 깨진 거울과 그의 배후 지지자가 엄청나게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상황에 따라 맞설 수도, 합작할 수도 있는 그런 사이?

시카라 사원 쪽에서는 별다른 기척을 보이지 않고 있어. 수정의식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는 거야. 그럼 달지기 보리와 깨진 거울은 비슷한 입장인 걸까?

이번 동란으로 가장 심각한 손실을 입은 건 달지기 장생의 지지자인 것 같네. 일부 달지기들이 한 해를 대표하는 그 신에 저항하고 있는 건가?’

“그래?”

성건우는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도시 방위군들을 보며 의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권총을 뽑아 들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는 듯한 눈치였다.

팀장 얄가이인은 다시 확신 없이 답했다.

“우리 같은 병사들이야 상부에서 말하는 대로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실제로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는 그래도 조심해야 해. 자신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건 본인뿐이잖아.”

말을 마친 그는 시계점 안의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계산했다.

“이제 나가봐야겠어.”

“조심해.”

성건우가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타나 스트리트로 오는 동안 붕대로 다시 쌌던 왼팔 상처는 불법진료소 의사가 다시 몇 바늘 꿰매준 상태였다.

도시 방위군들이 떠나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던 장목화는 아직 상공의 헬기가 이 구역을 떠나지 않고 근처에 머물러 있다는 걸 확인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장목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약 가상 세계가 넓은 의미의 안타나 스트리트를 뒤덮고 있다면, 구조팀의 데이터 역시 이미 그 주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현재 도시 방위군 셋이 어느 불법 공방에 숨어 있다는 건, 그중 둘은 군용 외골격 장치까지 착용한 상태란 건 아무리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가상 세계의 주인은 이 데이터를 검사하자마자 문제를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구조팀에는 포카스가 준 신분증과 문서가 있었다. 하지만 헬기 안의 가상 세계 주인은 전에 접촉한 적이 있는 만큼 서로에게 익숙한 상대였다.

때가 되면 상대는 구조팀을 알아볼 터였다.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에 생각이 미친 장목화는 곧장 백새벽에게 자신을 따라 외골격 장치를 벗으라고 지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래 봤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외골격 장치를 벗는다고 가상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는 구조팀에게 신경도 안 썼던 가상 세계의 주인이 오히려 이러한 데이터의 파동 때문에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가능성도 있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장목화가 고민에 빠져 문득 성건우를 쳐다봤다가 그 역시 진지한 표정인 걸 발견했다. 성건우도 이 문제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 *

북안 불모지, 초봄 마을.

펑! 펑! 펑!

게네바가 방공포 안으로 마취탄을 투입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고 부근에 통풍 시설까지 찾아낸 그는 그 안으로도 마취탄을 몇 발 던져 넣었다.

잠시 후, 목표 구역을 면밀하게 관찰하던 게네바가 정도연을 돌아봤다.

“입구 부근을 지키던 이들은 처리 끝.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와.”

“알겠어.”

정도연이 군용 외골격 장치의 헬멧을 방독 모드로 전환했다.

뒤이어 한명호는 입을 달싹였지만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

쿵쿵쿵!

챙- 챙- 챙-

게네바는 성큼성큼 뛰고, 달리고, 몸을 날리며 바리케이드로 돌진했다.

안에서는 그제야 드문드문 울리는 총성과 함께 폭탄 하나가 튀어나왔다.

콰릉!

폭탄을 피하고 총알을 막아내며 방공호 안으로 난입한 게네바는 기관단총을 한 차례 난사했다.

다다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퍼스트 시티 병사 대부분은 쓰러졌다. 나머지는 이미 의식을 잃었거나 총을 피하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게네바의 뒤를 바짝 따라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은 정도연은 유탄발사기로 공격에 나섰다.

결국 이 구역의 적들을 모두 제거한 정도연과 게네바는 함께 방공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명호는 마취 가스가 어느 정도 흩어지며 효력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후에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동료들을 쫓았다.

죽거나 살아있는 적들을 보며 지나치는데,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수비군의 무기와 장비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물론 그들의 평소 수준에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병력 대부분이 소환됐어도 겨우 탱크 하나, 장갑차 둘, 인공지능 갑옷 하나, 각성자 둘만 남겨놓진 않았을 텐데. 심지어 군용 외골격 장치도 없어.’

한명호는 이러한 행운이 이어지기를 기도하면서도 경계심을 높였다.

* * *

어둑하고 넓은 방공호는 여러 개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창 주위를 둘러보던 정도연은 이내 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녀의 이웃, 이길훈이었다.

입술 색이 창백하고 이가 밖으로 드러난 이길훈은 어느 방의 유리창에 얼굴이 짓눌려 있었다.

정도연은 황급히 그 방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로도 짙은 피비린내 가득한 광경이 비쳤다.

우선 이길훈은 나체였고, 눈으로 보이는 혈관은 전부 다 터져 있었으며 몸과 바닥에 묻은 피는 다 굳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류인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고개를 조금 갸웃하게 되는 부분은 이길훈의 몸에서 분비된 듯한 끈적거리는 액체였다. 그 분비액 때문에 이길훈은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유리창에 얼굴이 짓뭉개듯 붙어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험 결과인가?’

정도연은 졸아드는 마음을 안고 방공호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복도 좌우에 있는 방 중엔 아무도 없는 듯 캄캄한 방도 있고, 유리창에 난 균열에 머리카락과 피부 같은 게 걸려 있는 방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그중 한 유리창 앞으로 다가간 정도연은 복도 등불에 기대 안을 살폈다.

그 안에 마을의 선생님 김영신이 있었다.

30대 여성인 김영신은 초봄 마을에서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상은 몸 안에 나타났다. 그녀의 변이는 내장에 일어나 변이된 내장이 두 개였다.

김영신의 눈은 완전히 툭 튀어나와 있었다. 측면이 빽빽한 미세혈관으로 뒤덮인 심히 험상궂어 보였고, 가슴팍에 하나 난 구멍으론 심장과 위가 다 드러나 보였다.

그 심장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도연은 유전자 실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증오를 느꼈다.

쿵쾅- 쿵쾅- 쿵쾅-

정도연의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너무 늦게 온 것일까 봐, 온 마을 사람이 전부 퍼스트 시티 유전자 실험의 희생양이 됐을까 겁이 났다.

정도연은 복도 양쪽의 방을 더 살필 새도 없이 게네바를 따라 방공호 깊은 곳을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히 넓은 곳에 이르렀다.

이곳은 퍼스트 시티 수비군들이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버린 곳이었다.

철창들 너머로 정도연에게 매우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초봄 마을 주민들이었다.

다들 구석에 웅크린 채 총성과 폭발음이 멈추길 기대하거나 철창을 움켜쥔 채 상황을 확인할 수 있길, 도망칠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도연의 마음속에 기쁨이 차올랐다. 기억하는 주민들 숫자보다 훨씬 적은 걸 보면, 적잖은 이들이 끔찍한 실험 때문에 이미 죽음을 맞거나 죽음보다 못한 삶에 시달린 모양이지만 그래도 아직 3분의 2 정도가 남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주위를 훑어보던 정도연은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던 촌장을, 청력은 발달했지만 눈은 시종일관 까뒤집힌 사촌 오빠를, 세 쌍의 가슴을 가진 여자 동기를 발견했다.

변이된 아류인 중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더 흉측한 괴물처럼 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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