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08화 (508/649)

508화. 작전

불법진료소 뒤쪽 구역.

콘리와 다시 교대한 장목화는 성건우, 백새벽 곁으로 돌아갔다.

상황 경과를 간단하게 물은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어. 가격은?”

순간 백새벽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안 물어봤는데.”

백새벽은 당연히 장목화가 총으로 값을 지불하리라 생각했었다.

‘지금 우리한테 남은 돈이 얼마인지는 팀장님도 잘 모르잖아요……?

그래, 불법 공방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하긴 확실히 까다롭지. 그들 배후에 분명 작지 않은 세력이 버티고 있을 테니까.

근데 우린 이미 그 사람과 친구가 됐잖아? 일단 차용증을 써주고 나중에 회사 정보요원한테 대신 값을 내달라고 하면 될 거야. 이건 산재니까 당연히 회사에서 비용처리를 해줘야지, 안 그래?’

이제 반고 바이오에 들어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백새벽은 어느새 ‘산재’니, ‘비용처리’니 하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장목화가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꽤 비쌀 텐데⋯⋯.”

“네, 그럴 것 같네요.”

성건우가 깊이 동조했다.

그때, 한창 수술하던 의사가 구조팀의 대화를 듣고 얼른 입을 열었다.

“전 수술비를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자재와 약, 혈액 값은 받아야죠. 200오레이, 그 아래는 안 됩니다. 공방의 이식 수술비는 아마 5, 600오레이 정도일 거예요. 돈이 없으면 저 응급 치료 주사를 주셔도 됩니다.”

의사가 여태껏 장목화와 대화하려 노력했던 건 어떻게든 미인과 말을 섞어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 기회를 틈타 장목화의 성격과 태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 태도를 갖추려는 목적이 더 컸다.

장목화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아꼈지만, 의사는 이 구조팀이 수틀린다고 냅다 사람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비용을 요구할 수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련하게 굴어선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절대로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갈 수 없었다. 물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들은 예외였다.

“그럼 총 800오레이⋯⋯.”

장목화가 약간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구조팀은 한동안 돈을 벌지는 못하고 쓰기만 했던지라 남은 활동비가 그리 많지 않았다.

* * *

레드울프 구역, 원로원.

남은 원로들은 아직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알렉산더는 마침 걸어오는 딸 갈루란을 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잔나가 대사는 좀 어떠냐?”

갈루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알렉산더가 가장 뛰어난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하려던 그때, 한 변혁파 원로의 핸드폰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 통화 상대가 보고를 올렸다.

“아수스를 찾았습니다.”

중요한 후처리를 위해 다른 곳으로 간 가이우스는 여기 상황을 이 원로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

변혁파 원로는 곧장 다급히 물었다.

“어디서?”

전화 상대가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리 부근의 아파트 건물 안에서 찾았습니다. 사냥꾼 협회의 크리스티나와 함께 있었는데, 둘 모두 죽었습니다. 도시 방위군에 습격당했답니다.”

“도시 방위군? 어느 엘리트 팀이지?”

변혁파 원로는 깊은 의혹을 느꼈다.

아수스와 크리스티나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전화 상대가 빠르게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사상자가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가이우스의 위탁을 받은 변혁파 원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히 답했다.

“아수스 시신은 여기로 보내라. 크리스티나는, 사냥꾼 협회로 보내고.”

변혁파 원로는 도시 방위군의 어느 엘리트팀이 한 짓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포카스가 신임 집정관에게 보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게네바, 한명호, 정도연은 멈추지 않고 이동했다. 레드리버 강가에서 출발한 그들은 연료가 거의 다 바닥났을 즘에야 초봄 마을 부근에 이르렀다.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저 멀리 가늘고 긴 돌울타리만 어렴풋이 보였다.

지금은 퍼스트 시티 주민 집회로부터 10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이곳 지형을 잘 아는 정도연이 최대한 직선으로 주행하지 않았다면, 도로 상황과 환경이 복잡한 북안 불모지에서 이렇게 빨리 이동할 순 없었다.

한명호는 망원경을 들어 초봄 마을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비교한다면 마을을 지키는 병사는 훨씬 적었다. 마을 밖 주둔지에서는 거의 아무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정문 구역의 장갑차도 없었다. 황토색 탱크 한 대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돌울타리 위를 순찰하는 이들은 전보다 훨씬 기합이 들어간 채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탐조등 불빛을 이용해 주위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기도 했다.

“예전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남은 것 같은데. 나머지는 다 퍼스트 시티로 돌아간 모양이야.”

지능 로봇이 아닌 한명호는 대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도연은 군대가 북안 불모지를 가로지른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가이우스가 어젯밤 라디오를 통해 주민 집회가 소집될 거라고 선포한 그 후에, 다들 명령을 받고 곧장 이동하기 시작했을 거야.”

곧이어 게네바가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남아 있는 이들의 화력도 그렇게 충분하진 않아. 겉보기에는 매우 집중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동요하고 있다. 퍼스트 시티의 동란이 본인한테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중간에서 시간을 지나치게 허비하지 않았다면, 저들한테 전보를 통해 동란의 결과를 파악하고 안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격할 필요도 없이 몇 마디 말만으로 저들을 궤멸시킬 수 있었어.”

게네바의 말대로였다. 수비군이 지지하던 편이 패했으며 상부에서 파견된 이들 모두 제거됐다고, 지금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모든 저항을 포기하라고 외쳤다면 초봄 마을의 주둔군들은 모두 투항했을 것이다.

이건 게네바가 장목화의 행동 데이터에서 찾아낸 수였다.

상대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다면 그들은 자멸하기 마련이었다.

정도연은 처음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러 번 곱씹은 끝에 얼마나 위험하고 대단한 계책인지 실감이 났다.

게네바가 지능 로봇이라 참 다행이었다. 그저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 낸 것뿐이니 달리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뒤이어 한명호가 게네바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공격할까?”

게네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한다. 지체하면 안 돼. 소환된 군대는 좀 늦더라도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지도 모르니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곧장 고개를 돌린 한명호가 정도연에게 말했다.

“네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해.”

“너는?”

정도연이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그녀가 아는 군용 외골격 장치는 안전한 장비인 동시에 강력한 무기였다. 이런 전투에서 이 장치를 착용하면 죽을 고비는 몇 번이나 넘길 수 있었다.

그러니 구조팀과 더 가까운 한명호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건만, 뜻밖에도 그는 그 장치를 정도연에게 양보했다.

한명호가 곧 초봄 마을을 가리켰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은 사람은 겐과 함께 적진 깊숙이 돌격해야 해. 나머지 한 명은 후방에 남아 저격에 집중하다가 정문의 적이 다 비워진 뒤에나 이동할 거니까 더 안전하지.

난 이기적인 사람이라 모든 결정을 궁극적으로 나한테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내린다. 그간 좋은 일들을 하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던 게 더 인간다워지기 위한, 그래서 인간들에게 배척당하지 않기 위한 짓이었던 것처럼.”

“그래⋯⋯.”

정도연도 결국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되었다.

하지만 게네바는 한명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소보다 말이 많네.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닌가?”

한명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게네바는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고, SUV 트렁크에서 꺼낸 군용 외골격 장치를 정도연에게 맞춰주고 입혀주는 한명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준비 작업을 마친 한명호는 자신의 소총을 들어 올리더니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지능 로봇인 게네바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정도연은 전자파 무기를 받쳐 든 뒤 멀찍이 자리한 초봄 마을을 바라보았다.

탕!

한명호가 방아쇠를 당겼다.

하늘은 어둡고 거리는 멀었지만, 그의 소총에서 쏘아져 간 총알은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초봄 마을 정문에 세워진 탱크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 빼꼼 나온 퍼스트 시티 도시 방위군의 머리가 한순간 땅에 떨어진 수박처럼 콱 터져버렸다.

탕! 탕!

게네바와 정도연도 사격에 나섰다. 은백색 전류에 휩싸인 탄환은 외벽 위를 순찰 중이던 병사들을 맞추고 방탄복을 관통했다.

두 시신이 추락함과 동시에, 게네바와 정도연은 바로 땅을 박차고 튀어 올라 초봄 마을로 질주했다.

콰릉! 콰릉!

둘은 유탄발사기를 이용해 정문의 적을 미친 듯 폭격하기도 했다.

제자리에 남은 한명호는 천부적인 능력과 소총을 이용해 장교로 의심되는 적들을 차례로 해치웠다. 혼란에 빠진 퍼스트 시티 수비군이 제대로 조직할 수도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단 수십 초 만에 초봄 마을 정문 구역 수비군은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주검이 된 동료들을 남겨둔 채 마을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그 안의 동료들과 합류해 방어선을 다시 구축하려는 모양이었다.

쿵! 쿵! 쿵!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정도연은 몸을 훌쩍 날려 황토색 탱크를 뛰어넘어 초봄 마을 외벽 위에 착지했다. 게네바도 마찬가지였다.

콰릉! 콰릉!

둘은 계속해서 유탄발사기로 수비군을 제압했다.

이윽고 한명호도 소총을 챙겨 몸을 살짝 숙인 채 황토색 탱크로 달렸다.

한 차례 폭격을 마친 정도연은 그제야 저녁 무렵 불빛 아래, 마을 안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했다.

건물과 도로 상황은 그녀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조악했지만 깔끔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초봄 마을 주민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에 갇혀 있나?’

막 이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돌연 정도연의 반신이 뻣뻣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옆쪽으로 기울어졌다.

콰릉!

그 사이 게네바는 어느 2층 건물을 향해 유탄 한 발을 날렸다. 치솟은 불빛이 건물 유리창을 깨뜨리며 활활 타올랐다.

정도연의 몸에 나타난 마비는 곧 사라졌다. 그녀는 황급히 군용 외골격 장치를 이용해 억지로 균형을 유지했다.

* * *

퍼스트 시티, 그린올리브 구역 안타나 스트리트, 그림 시계점 뒤쪽.

성건우, 장목화, 백새벽은 용여홍을 이곳 그림 시계점으로 옮겼다.

그림 시계점, 불법진료소 의사가 소개한 그 노인의 이름이 그림이었다.

이젠 기계 팔 이식 수술이 시작된 지도 벌써 거의 세 시간이나 지났다.

그전에 큰 수술까지 진행됐던 터라 하늘은 일찍이 어두워져 있었다. 태양은 곧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을 듯했다.

“팀장님, 정말 돈을 안 벌어와도 될까요? 야랑 같이 벌어올까요?”

백새벽이 이 불법 공방의 작업 구역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조팀은 이미 불법진료소 의사에게 남은 오레이를 치렀다. 마침 가진 돈이 의사가 요구한 기자재와 혈액, 약 등의 값에 딱 맞아떨어졌다.

물론 딱 맞아떨어졌단 건 장목화의 표현이었다. 의사는 그 표현에 감히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못했다. 그 역시 성건우의 친구가 됐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를 얻지 못한 것만 조금 아쉬워하고 말았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퍼스트 시티에 아직 계엄령이 내려져 있잖아. 뜻밖의 일이 벌어지면 골치만 더 아파져.

그림씨가 페이카 생물학적제제와 남은 무기로 수술비를 대신하겠다는 조건을 거부하면, 작은 빨강이는 잠시 여기 맡겨두자. T1형 기계팔은 저들 수술비보다 더 비싸잖아.

나중에 퍼스트 시티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면 그때 돈을 내고 작은 빨강이를 다시 찾아오는 거야.”

용여홍은 어차피 한동안 어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백새벽은 팀장의 기발한 묘수에 감탄했다.

그러다 잠시 또 무슨 생각을 하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거지만, 작은 빨강이가 과연 기계 팔을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장목화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괜찮아. 마음에 안 든다면 회사로 돌아가 몸을 완전히 회복한 뒤에 2차 수술을 받으면 돼. 아무 티도 안 나는 생체 공학 의수로 바꾸는 거지.”

“간단하네요.”

성건우가 짧게 호응했다.

바이오 회사의 일 처리는 이렇게나 간단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