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담합
주민 집회로 일어난 동란과 이후의 검문으로 도로에 차는 많지 않았다. 덕분에 구조팀은 15분도 안 되어 안타나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이곳 상점 역시 대부분 다 닫혀 있었다. 뒤가 구린 이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굴에 숨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백새벽은 개의치 않고 한명호의 상태를 봐준 그 진료소 앞에 차를 댔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주인이 사는 2층에는 약간 기척이 있었다.
거의 차에서 튀어 내린 장목화는 진료소 앞에 굳게 내린 셔터 앞에서 망설임 없이 힘껏 흔들었다.
철컹! 철컹!
요란한 소음이 퍼져도, 아무도 호응하는 이가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바로 연합202를 꺼낸 장목화는 셔터에 걸어둔 자물쇠를 향해 몇 차례 총을 쐈다.
탕! 탕! 탕!
단 세 번의 사격으로 처리를 끝낸 장목화는 허리를 굽혀 왼손으로 셔터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려오시죠!”
2층에 있던, 금테 안경을 쓴 불법진료소 의사가 창밖을 힐끗 내려봤다.
그 순간, 유탄발사기를 쥔 채 거리를 지키는 장신의 남자가 보였다.
그를 보자마자 창밖으로 뛰어내려 도망치려던 생각은 쑥 들어갔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1층으로 내려온 의사가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입니까?”
장목화는 짧고 간결하게 물었다.
“수술할 수 있습니까? 동료가 폭격을 당했거든요.”
의사는 못 한다고 답하려다 그녀의 등등한 기세에 머뭇거렸다. 거절하기엔 그 시커먼 총구가 너무 위협적이었다. 그는 바로 한 발을 뺐다.
“할 수야 있지만, 전 달지기가 아니라 심각한 상황을 되돌릴 순 없습니다.”
장목화는 즉각 성건우,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작은 빨강이 데려와.”
“그럼 전 뒤쪽 수술실에서 준비하도록 하죠.”
의사가 진료소 뒤쪽 구역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절대 그를 혼자 돌아다니게 하지 않았다. 기회를 봐서 도망쳐 버릴 것까지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수술 준비를 마친 뒤 도움을 줄 조수를 부른 의사는 이미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환자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던 그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살아있네?”
용여홍의 부상은 약한 사람이라면 현장에서 즉사했을 정도로 심했다.
“응급 치료 주사를 놨거든요. 마음껏 쓰세요.”
장목화가 남은 페이카를 옆쪽에 다 내려놓았다.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에 돌입했다.
능숙하고 유려한 그의 모습에 수술복을 입은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은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렇게 한 차례 수술을 마친 불법진료소 의사가 알렸다.
“현장에서의 처치가 훌륭하기도 했고, 부상자의 몸 상태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운도 좋았고요. 저한테 이 환자에게 맞는 피가 남아있었거든요. 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애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오른팔과 손을 유지하긴 힘들 겁니다.”
장목화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가, 문득 자신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 물건을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성건우가 곧장 입을 열었다.
“저희한테 기계 팔이 하나 있는데, 그걸 이식해줄 수도 있습니까?”
구조팀에는 연합 공업 무기 상인 리만에게 얻은 T1형 다기능 기계 팔이 하나 있었다.
“그게 있다고요?”
의사는 어찌나 놀란 건지 하마터면 용여홍에게 상처를 더 입힐 뻔했다.
물론 의사도 외모나 분위기, 키, 가진 무기 등을 보며 구조팀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임을, 절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사람들이란 걸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기계 팔까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유탄발사기나 자동 소총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는 탓에 시중에 유통되는 양도 극히 적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수술 중이잖아.”
장목화가 인상을 쓰며 성건우를 저지했다.
이내 의사는 애써 정신을 차리며 자조하듯 웃었다.
“제 모습을 보세요. 제가 기계 팔을 이식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는 그렇게 고차원적이고 정밀한 기술을 필요한 일은 해본 적도 없었다.
뒤이어 백새벽이 얼른 캐물었다.
“안타나 스트리트에 기계 팔을 이식할 수 있는 불법 공방이 있잖아요. 당신이라면 그게 어딨는지 잘 알겠죠?”
불법진료소 의사는 계속 수술을 이어가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이 꼭 받아주리란 법은 없습니다. 이러는 게 어떨까요, 제가 제 조수한테 여러분을 그곳까지 안내해주라고 하겠습니다.
가서 협상을 잘해보세요. 수술이야 한꺼번에 끝낼수록 좋잖습니까. 여러 번 수술하면서 생길 피해도 줄일 수 있고.
근데 조수가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할 순 없습니다. 달지기도 아닌 저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일을 할 순 없으니까요.”
이에 장목화가 바로 나서서 조수의 일을 맡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야랑 작은 흰둥이랑 둘이 가 봐.”
원래는 성건우에게만 일을 맡기려 했으나 그가 또 혹여나 머리에 쥐가 나서 일을 그르칠까 염려한 탓에 백새벽까지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장목화는 당연히 이곳에 남아 의사가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상황을 잘 지켜봐야 했다.
말하자면 이 분배는 양측에 충분한 전투력을 유지하려는 방안이었다.
성건우, 백새벽이 불법진료소 의사 조수를 따라 앞문으로 나가자 장목화는 그제야 수술에 집중했다.
이런 수술이 끝나기까지는 보통 열 몇 시간이 소요되곤 했다.
불법진료소 의사는 바쁘게 움직이며 한담하듯 물었다.
“당신들, 도시 방위군 같지는 않네요.”
“도시 방위군이었다면 당신을 찾아올 필요가 없었겠죠.”
장목화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이내 의사는 옆에 놓인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 응급 치료 주사, 엄청 뛰어난 제품 같은데 어디서 생산한 겁니까?”
“알려드려도 구입할 수 없을 겁니다.”
장목화의 답에는 빈틈이 없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제가 하나 가져도 될까요? 수술비는 그만큼 빼 드리죠.”
“수술부터 마친 뒤에 말씀하시죠.”
장목화는 모호하게 답했다.
의사는 곧 그녀에게 메스 하나를 받아들며 웃었다.
“말을 그만하라고 하지는 않네요. 다른 환자의 보호자는 수술 중에 농담하면 엄청나게 불만스러워하던데.”
“수다를 떨고 농담을 한다는 건 수술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이 이 상황을 모두 통제하고 있고 자신감도 있다는 거죠.”
장목화에게는 현실 경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세계 콘텐츠가 미친 영향도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불법진료소 의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좋습니다. 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환자를 살리는 데는 문제 없을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 살아나느냐는 달지기의 기분과 당신들의 준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 * *
진료소 밖으로 나와 안타나 스트리트 근처 구역으로 향하는 와중, 백새벽이 성건우에게 일렀다.
“기계 팔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만만치가 않아. 배후 세력도 작지 않을 거야. 심지어 어느 강자의 지지를 받고 있을지도 몰라. 충돌이 나면 골치 아파져서 작은 빨강이 수술에 영향이 갈 수도 있어.”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앞장선 의사의 조수는 두 사람을 힐끗 돌아보더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는 게 꽤 많네.’
지금 레드리버인으로 위장한 구조팀은 의도적으로 애쉬랜드어가 아닌 레드리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백새벽의 말이 이어졌다.
“때가 되면 협상에 성공하든 그러지 못하든 상대랑 친구가 돼야 해.”
퍼스트 시티에 아직 계엄이 내려진 이때, 손에 넣기 어려운 기계 팔을 가진 무리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불법 공방의 사람이 돌아서자마자 신고라도 한다면 구조팀은 반고 바이오의 도움을 받아도 풀려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친구가 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된 상태라면 기계 팔 이식을 해주겠다고 할 가능성도 컸다.
“응, 알았어.”
성건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듯 빠르고 자신 있게 답했다.
길 안내를 맡은 의사의 조수는 다시금 속으로 중얼거렸다.
‘친구가 되고 싶다고 다 될 수 있는 건가?’
물론, 조수는 이 질문을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골목에서 두어 번 방향을 튼 조수는 길가의 한 평범한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엔 옅은 금색 수염을 기른 노인이 도구와 머리에 단 돋보기를 이용해 구세계 기계식 손목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다.
조수는 다른 말 없이 그가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노인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조수를 바라보았다.
“콘리, 누굴 데려온 건가?”
“네, 기계 팔 이식 수술을 받고자 하는 손님이십니다.”
의사의 조수 콘리는 자신이 협박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허리춤에 닿은 딱딱하고 차가운 물체는 없었지만, 바로 뒤에 있는 구조팀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으리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옅은 금색 수염을 기른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계 팔은 예약이 필요한데? 갑자기 찾아오면 이식을 못 받지.”
역시 그가 나설 차례였다. 성건우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왔다.
“기계 팔은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며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떤 모델이지? 내가 못 다루는 모델일 수도 있거든. 이런 작은 공방에서 이식할 수 있는 모델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T1형입니다.”
“T1?”
노인의 눈이 확 밝아졌다. 그 모델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물었다.
“이식받을 사람은 누군가?”
“다친 환자입니다.”
백새벽이 간단히 답했다.
노인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애초에 백새벽과 성건우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 불법진료소 의사의 조수 콘리였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몇 초간 생각한 뒤 말했다.
“수술 끝나면 데려와. 이쪽 설비를 거기까지 가져가긴 쉽지 않아.”
이내 성건우가 빙그레 웃었다.
“알겠습니다. 근데 보세요, 저희는 기계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기계 팔을 이식해주는 사람이고요. 저희는 의사의 소개를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은 의사의 지인이고요. 그러니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걱정하지 말게, 보수만 충분히 주면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옆에 있던 콘리가 흠칫 놀랐다. 그는 지금 이 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당최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성건우는 다시 조용히 웃으며 뒤돌아섰다.
이제 불법 공방을 나와 진료소로 돌아가려는데,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절망이 아니었다. 안도감에 터진 한숨이었다.
“작은 빨강이, 다행히 운이 좋았네.”
처음으로 찾은 불법진료소에서 수술받게 된 것도, 또 그곳에서 불법 공방을 소개받자마자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T1형 기계 팔에 흥미를 느낀 불법 공방의 주인과 친구를 맺는 것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보통 행운이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서 그동안 운이 쌓여온 모양이야.”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