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06화 (506/649)

506화. 응급 치료

콰릉!

아수스는 유탄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기며 폭발의 여파를 피하고자 바닥을 박차고 반쯤 누운 자세로 몸을 날렸다. 백새벽, 용여홍과 지나치게 가까이 있던 탓에 의도적으로 유탄을 조금 먼 곳에 쏘기도 했다.

콰릉!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방금 막 회복한 탓에 양손 동작 불능을 쓸 수가 없던 성건우는 전술 배낭에 넣은 왼손을 빠르게 거둬 아수스가 떨어진 곳으로 갈색 염주를 던졌다.

현재 성건우는 다른 손으로 은제 천사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생명 천사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폭발 때문에 침실 안쪽으로 더 숨어든 크리스티나는 이미 적들 몇몇을 향해 가려움 통제를 다시 발휘한 상태였다.

곧장 그 정도를 심화하려던 그때, 그녀는 돌연 위험한 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 어디로 숨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 순간, 크리스티나의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나타났다. 비할 데 없이 무시무시한 통증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 손을 뻗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셔츠에 닿은 손이 그대로 굳으며 몸은 옆으로 픽, 기울었다.

이미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단 한 줄의 생각만 떠올렸다.

‘심장 마비!’

유탄을 발사한 아수스는 그 여파를 성공적으로 피한 뒤 앞으로의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가 적들을 통제한다면 최대한 빨리 이들을 처리하고 더는 그 어떤 돌발 상황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크리스티나가 적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해도 욕망의 꽃으로 남자 각성자의 욕망을 증폭시키면 그만이었다. 그가 여자 동료를 덮치는 사이, 아수스는 그들을 하나하나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었다.

콰당!

붕 떠오른 아수스가 막 바닥에 떨어진 그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등에 배겨 통증을 일으켰다.

성건우가 던져둔 육식주였다.

그 육식주는 접촉한 순간부터, 색욕이 증강하는 부작용이 따랐다. 옷으로 가로막혀 있어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아수스의 대가는 성 중독이었다. 궤가 같은 두 대가가 결합했을 때, 당연하게도 그 효과는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두 눈이 붉게 달아오른 아수스의 호흡이 순간 거칠어졌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난 그는 엎어진 소파를 향해, 그 뒤에 숨어 유탄의 여파를 피한 백새벽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아찔한 현기증에 시달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백새벽도 가장 먼저 아수스의 일그러진 얼굴을 목격했다.

욕망에 불타오르는 아수스의 두 눈을 보자, 백새벽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이는 그녀가 끝내 떨쳐내지 못한 악몽 중 하나였다.

아수스는 웃음을 흘리며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짐승처럼 그녀를 덮쳤다. 백새벽은 그 끔찍한 때로 돌아간 것처럼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수스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사력을 다해 오른손을 뻗어 본인 가슴을 잡았다.

쿵!

이내 그는 백새벽 앞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사지가 경련하는 동안 그 얼굴은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놀란 백새벽의 입가론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낮은 신음이 흘렀다.

곧장 아수스의 몸을 타고 오른 그녀는 미친 것처럼 그의 목을 물었다.

피부는 찢어지다 못해 살점으로 뜯겨 나오고,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그 맞은편에 자리한 성건우는 허둥지둥 전술 배낭에서 구급함을 꺼내 곧장 용여홍에게 질주했다.

장목화 역시 천천히 의식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용여홍의 몸은 붉고 검었다. 곳곳의 피부는 이미 다 뭉그러져 있었다.

쓰러진 그에게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는 친구를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상처를 빠르게 확인하고, 구급함에서 페이카 생물학적제제를 꺼내 용여홍에게 놔주었다.

애쉬랜드에서 생물, 의료에 특화된 대형 세력 반고 바이오는 이런 방면에서 굉장히 뛰어났다. 페이카는 그야말로 직방이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듯하던 용여홍의 상태는 즉시 안정됐지만, 여전히 깨어나려는 조짐은 없었다.

성건우는 이제 구급함에서 다른 것들을 꺼내 용여홍의 몸에 난 크고 작은 상처를 간단히 처치하기 시작했다.

“거의 미라 같은데.”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황급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바로 성건우의 손에서 붕대 등을 가져와 다시 처치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쟁 시 응급 치료의 정석, 교과서와 같은 모습이었다.

성건우도 얌전히 바로 장목화의 보조를 자처하며 전술 배낭을 푸는 것을 돕고, 장목화의 구급함을 꺼내 벌써 부족해져 가는 물자를 보충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신을 차린 백새벽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피로 범벅된 그녀의 얼굴에는 애처로운 눈물까지도 피눈물처럼 고여 있었다.

거의 숨이 끊어진 아수스의 몸 곳곳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백새벽은 급히 일어나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용여홍을 살리는 데 집중하느라 슬픈 표정 하나 드러낼 틈이 없는 성건우, 장목화를 보고 백새벽도 이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상기했다.

백새벽은 재빨리 허리를 굽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연합202를 집어 들고, 아수스의 머리를 조준했다.

“후…….”

묵직한 숨을 토한 백새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총은 연달아 세 번이나 발사됐다.

단 세 방 만에 아수스의 머리는 깨진 수박 꼴이 되었다.

작업을 마친 백새벽은 황급히 장목화와 성건우의 곁으로 달려갔다.

응급 치료는 아직 진행 중이었고, 그녀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이에 다시 연합202를 쥐고 안방으로 향한 백새벽은 크리스티나에게도 방아쇠를 몇 번 당겨 잠재된 위험을 완벽히 제거했다.

그 후 침실 시트와 이불 등으로 매우 간소한 들것을 만들었다.

이때, 전장 응급 치료를 마친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해. 얼른 들것을 만들어서 여홍이 차로 옮기자.”

현재 용여홍의 상태는 업기도, 부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상처만 더 급속도로 악화되기 쉬웠다.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백새벽은 간이 들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래, 역시 경험도 많고 잘 통하는 동료만큼 최고는 없지.’

상황 탓에 속으로나마 백새벽을 칭찬한 장목화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성건우를 불렀다.

성건우, 장목화가 용여홍을 들것에 조심히 옮기는 사이, 아수스 옆으로 간 백새벽은 그의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책갈피처럼 바짝 마른 꽃 한 송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다급히 성건우에게 물었다.

“필요해?”

성건우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여홍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거야?”

“아니.”

백새벽이 곧장 답했다.

말린 꽃에는 욕망을 폭발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중상을 입은 사람에게 그 능력을 발휘했다간 죽음만 앞당기게 될지 몰랐다.

“그럼 필요 없어.”

성건우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백새벽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시체 옆에 놓인 육식주를 얼른 챙겨 성건우에게 건넨 뒤, 구조팀 무기들을 완벽히 챙겨선 화장실로 달려갔다.

말린 꽃은 이제 하수도를 타고 사라졌다.

의식이 없는 용여홍을 들것에 잘 고정한 장목화는 백새벽에게 반대편을 맡기고 성건우에게 말했다.

“넌 우리 엄호해줘. 생명 천사 목걸이 잘 쥐고 있다가 우리 앞길을 막는 놈이 있거든, 다 죽여버려.”

지금 그녀는 웃음기라곤 하나도 없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네.”

성건우도 단순히 생명 천사 목걸이를 꽉 쥐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육식주까지 왼 손목에 차고, 할 수 있는 무장은 다 했다.

검은 머리카락으로 짠 듯한 팔찌는 이미 모든 빛을 잃은 채 가벼운 접촉에 흩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맹목의 고리에 남은 힘은 성건우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소진돼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티나의 몸을 수색해 가치 있는 물건을 챙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구조팀은 용여홍을 들것에 잘 눕히자마자 곧장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는 복도에 쓰러진 남자를 발견했다. 의식을 잃고 기절했지만, 생명 전기 신호는 안정적이고 목숨도 위태롭지 않아 보였다.

이에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성건우의 보호 아래, 백새벽과 함께 용여홍을 잘 묶어둔 들것을 들고, 엘리베이터 1층으로 내려갔다.

* * *

누군가 벌써 신고한 건지 질서의 손의 구성원 몇몇이 도착해 있었다.

어느 정도 위장을 다 하고 온 장목화는 매우 침착하게 걸어가 질서의 손 구성원들을 향해 말했다.

“위층에 폭도 둘이 있어. 수배 대상으로 의심되던데. 그 사람들이랑 총격전을 벌이다가 우리 동료가 다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당당했다. 심지어 약간의 권위마저 느껴졌다.

현재 구조팀은 포카스의 집을 떠나며 도시 방위군 제복으로 환복한 상태였다. 거기다 상응하는 신분증과 문서도 가지고 있었다.

성건우가 내보인 신분증을 확인한 치안관 중 한 명이 얼른 물었다.

“그 폭도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미 처리됐어. 현장 수습만 좀 부탁한다.”

장목화가 지시했다.

지금 그녀는 레드리버인에 가까운 생김새로 보일 정도로 위장한 상태였지만, 아무리 분장했다고 한들 미모는 여전했다.

그 미모에 호감을 느낀 것인지, 질서의 손 구성원들도 아무 의심 없이 장목화의 말을 믿고 급히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었다.

난관을 가볍게 처리한 장목화는 백새벽과 들것을 안정적으로 든 채 아파트 밖으로 나와 부근에 세워둔 국방색 지프로 향했다.

* * *

언제나처럼 운전석엔 백새벽이, 보조석엔 장목화가, 뒷좌석엔 성건우와 용여홍이 탑승했지만 오늘의 그림은 사뭇 달랐다.

성건우는 늘 그 자리에서 다친 친구를 주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디로 가죠?”

백새벽이 시동을 걸며 다급하게 물었다.

장목화 역시 빠르게 거리를 한번 가늠해보았다.

“안타나 스트리트로 가자. 불법진료소를 찾아야겠어.”

이곳에서는 골든애플보다 안타나 스트리트로 가는 게 더 빨랐다. 설령 포카스를 찾아가더라도 여러 사람을 거쳐야만 의사를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러느니 차라리 불법진료소로 직접 가는 게 훨씬 나았다.

물론 불법진료소 의사에게 뛰어난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총상과 화상 등을 처치하는 데 있어선 실력이 발군이었다. 장목화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그들이 과연 충분한 설비를 갖추고 있겠느냐는 점이었다.

백새벽은 말없이 액셀을 끝까지 밟으며 그린올리브 구역을 누볐다.

“새벽아, 속도 좀 줄여.”

장목화가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백새벽은 대꾸도 없이 계속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운전 실력도 탁월한 데다, 이곳 지리에도 익숙해서 사고 낼 거란 걱정 같은 건 없었다.

점점 높아지는 속도를 보고, 장목화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조바심 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사고는 안 나더라도 이렇게 빨리 달리다간 상공의 헬기나 드론의 시선을 끌게 될 거야. 분명 의심을 사겠지. 질서의 손이나 도시 방위군에 층층이 포위된다면 상황은 더 골치 아파지는 거야.”

백새벽은 그제야 액셀에서 발을 떼었다. 속도도 줄었지만,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여전히 빠른 편이었다.

장목화는 다시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가지고 있는 페이카를 전부 건우 너한테 줄게. 여홍이 상태가 좀 안 좋다 싶으면 한 대씩 놔줘. 안타나 스트리트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

지금은 과도한 주사로 일어날 문제를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네.”

늘 장난기 많던 성건우는 평소와 달리 매우 간결한 답을 꺼냈다.

장목화도 정신을 다잡고 무선 통신기로 게네바에게 연락을 취했다.

자신들의 지원이 늦어질 수도 있고, 두 사람만 가게 될 가능성도 크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그녀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으면 한명호, 정도연을 데리고 곧장 행동에 나서되, 그러지 못한 상황이라면 일단 합류할 때를 기다리면서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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