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501화 (501/649)

501화. 북방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결국 이 질문을 내뱉었다.

“어떻게?”

카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 대상이야. 그 녀석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알겠어? 너희가 설령 말인 영역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 내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한들, 나한테서는 구체적인 과정을 알아낼 수 없을 거야.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을 찾을 수는 없잖아?

내가 아는 건 약을 주입받은 뒤, 특정 기기의 빛을 받았다는 것뿐이야. 그 후에 캡슐 같은 곳에서 잠들었지.”

카오가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각성하지는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후유증이 따랐지?”

카오는 그 방면은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멀쩡했어. 소수의 몇몇만 정신과 신체적인 장애를 얻었고. 근데 후속 치료로 거의 다 건강을 회복했어.

근데 이건 첫 번째 각성에 실패했을 때의 이야기지. 두 번째 시도 때는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커지고 치료도 어려워져.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죽기도 해. 그래서 우리 연구원은 실패자한테 각성 재시도는 권하지 않아.”

이 대목에서 카오는 장목화와 백새벽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어느 연구자가 그러던데. 그나마 우리가 충분히 발전된 방법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지 않았다면 첫 번째 각성 시도자들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야.”

몇 초간 침묵하던 백새벽이 말했다.

“각성 영역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

“대가를 고려해야지. 대가는 보통 영역에 대응하잖아. 하지만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아. 각 영역의 대가 중에서도 중첩되는 것들이 있으니.”

카오는 이런 가치 없는 정보로 시간을 끄는 걸 상당히 즐기는 듯했다.

백새벽은 실망스러운 낯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제8 연구원은 실험 대상들에게 상응하는 영역과 원하는 능력의 선택을 자유에 맡기는 것 같아서였다.

그 사이 카오의 말이 이어졌다.

“가장 가벼운 대가로 강한 능력을 얻기를 바라면 안 돼. 그건 불가능하다고. 설령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한들 상응하는 대가는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조금씩 심화해. 질적인 변화를 거쳐 더 무시무시해질지도 모르고.”

장목화는 그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

“너희 연구원에서 구세계 시절부터 살아온 구성원은 몇이나 돼?”

카오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답했다.

“부원장, 찰리, 이 교수, 박사. 이 넷은 모두 새로운 세계에 진입해 보통은 잠들어 있어. 가끔만 활동해.”

‘신세계 강자가 총 네 명이나 된다고? 제8 연구원의 실력은 정말 막강하구나. 그들이 오레이가 말했던 무시무시한 신체적 변화를 겪고 어둠의 앞잡이로 전락한 사람들일까?’

장목화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의 생각을 대충 짐작한 듯 카오가 낮게 웃었다.

“우리 실력은 퍼스트 시티에 비해도 뒤지지 않아. 어떤 방면에서는 더 강하기도 하지. 그것도 훨씬. 그러지 않았다면 악마의 유혹을 받아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장목화가 여세를 몰아 질문을 이어 나갔다.

“너희 연구원은 어디에 있어? 네가 말한 10년 전 파괴된 도시는 또 어디고?”

꽁꽁 묶인 카오가 목을 꼿꼿하게 세웠다.

“차라리 날 죽여.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을 거니까.”

장목화도 카오의 입을 열어 제8 연구원의 소재를 알아낼 방법에 급급하진 않았다. 대신 성건우 아버지의 사진을 꺼냈다.

“혹시 이분 본 적 있어? 이분도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셨어. 어쩌면 너나 네 동료, 부하한테……. 음, 살해됐을지도 몰라.”

사진을 슥 훑어보던 카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후로 몇 초 더 사진을 자세히 살피던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아까 그랬지?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다 적잖게 수확을 얻은 사람들이 북방에 있는 그 도시를 찾아내고, 하마터면 온 애쉬랜드에 여파를 미칠 뻔한 화를 일으켰다고.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들 중 하나였어.”

흠칫 놀란 장목화가 황급히 캐물었다.

“이분, 아직 살아계셔?”

카오는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답했다.

“그 사람 동료 대부분은 그 재난 속에 무심자로 변했거나 무심자 손에 죽었어. 그 사람과 나머지 두 사람만 행방이 묘연하지. 지금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찾는 중이야.

물론 그들도 그 도시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지. 무심자들한테 깔끔히 뜯어 먹히고 뼈까지 어딘가로 던져져서 판별 불가능한 상태가 된 걸 수도.”

‘생사 여부는 모른다는 거지.’

장목화는 그래도 이 사실이 성건우에게 희소식으로 여겨지리라 믿었다. 적어도 조금이나마 희망이 더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이때 장목화의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장목화는 포카스 하인의 음성임을 알아차렸다.

포카스는 그녀들에게 방 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것을 요청했다.

장목화는 꽁꽁 묶인 카오에게 잠깐 있으라고 전한 뒤 백새벽과 방에서 나와 후문 쪽으로 향했다.

* * *

늙은 사자 같은 포카스는 복도 가장자리 창문 앞에 서서 두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네들 능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군. 난 자네들과 아비아가 접촉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거든. 근데 완전한 정보도 얻고, 매우 유용한 포로까지 잡아 왔다니. 이건 그야말로 자네들의 능력 밖의 일이야.”

포카스는 구조팀에 별도의 도움이 필요하냐고 떠보는 것 같았다.

장목화가 웃었다.

“장군님, 시간이 없으니 아비아에게 들은 얘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포카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하게.”

장목화가 아비아의 말을 모두 다 전하자, 포카스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 신비한 번호, 나한테도 좀 알려줄 수 있겠나?”

“네.”

장목화는 곧장 종이와 펜을 꺼내 베껴놓은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포카스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 포로를 통해 제8 연구원과 그 도시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있어. 근데 그 방법을 쓴다면 포로는 머리에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될 거야. 자네들, 저 사람한테 더 물어보고 싶은 건 없겠지?”

백새벽과 시선을 주고받은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네, 없습니다.”

포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양하듯 눈을 반쯤 감았다.

뒤이어 장목화에게서 베껴 쓴 번호를 받아들고 장목화가 가진 번호와 비교를 한번 한 포카스는 포로가 갇힌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포카스가 다시 돌아왔다.

포카스의 손에는 조악한 지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현재의 애쉬랜드를 대충 묘사한 지도였다.

지도에는 빙원, 구산, 분노의 호수, 골드코스트, 검은 늪 황야, 승려 황원, 핏빛 황원 등의 지역이 그려져 있고 퍼스트 시티, 반고 바이오, 화이트 기사단, 구세군, 연합 공업, 머신헤븐, 임해 연합, 오렌지 컴퍼니, 퓨쳐인텔리, 스피릿 아일랜드, 안개 영역 등의 세력이 표시돼 있었다.

포카스는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곳이 그 도시라더군.”

그리고는 붉은 동그라미가 쳐진 곳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제8 연구원은 대략 이 범위 안에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백새벽의 모습에 포카스가 다시금 덧붙였다.

“저 포로의 이름은 카오, 특파원이라 저 사람도 연구원의 정확한 주소는 몰라. 근처에 이르러 신호를 보내면 다른 사람이 와서 데려가는 식으로 연구원에 돌아갔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눈을 가렸다는군.”

‘엄청 신중하네. 특파원이 임무에 실패해 체포됐을 가능성까지 항상 염두에 둔 거잖아.’

장목화는 지도에 표시된 붉은 동그라미와 점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전부 빙원 구역 안에 자리해 있었다.

빙원은 구세계에서 존재했던 개념이었다. 고대의 적잖은 빙원인은 기후의 영향을 받아 남하해 레드리버 유역으로 이주했으며, 그렇게 발전하고 변화한 것이 지금의 얄가이인이었다.

하지만 구세계 파괴 전까지 빙원의 범위는 사실 지금처럼 이렇게 넓진 않았다. 얼음과 눈은 최북단 일부만 덮고 있었을 뿐이었다.

장목화가 알기론 당시 발생한 격변 속에 사용된 수많은 파괴적인 무기가 기후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빙원은 그 후 2, 30년 동안 미친 듯이 확장되었다고 했다. 원래의 대북방은 그렇게 얼음과 눈에 점거된 것이었다.

제8 연구원과 그 도시가 자리한 구역은 당시의 대북방에 속해 있었다.

거의 동시에 장목화는 두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첫째는 강소월이 북방의 어느 병원으로 이송돼 지원자 신분으로 실험적인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폐허 철강 공장의 식물인간 역시 지원자 신분으로 북방 모처에서 새로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북방!’

장목화는 묘한 표정 변화를 보였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포카스는 그녀가 그렇게 큰 범위 안에서 어떻게 제8 연구원을 찾아낼지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포로를 이용할 수는 없어. 그자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신호를 보내게 해 제8 연구원 사람을 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포카스는 이에 상당한 아쉬움을 느끼는 듯했다.

개인적인 문제였다면 시카라 사원을 찾아가 수정의식교의 원각자들을 만난 뒤, 숙명통을 가지고 있는 고승에게 제8 연구원 특파원 카오에게 빙의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이는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었다.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온당하고 더 수월할 뿐이었다.

사실 한 사람을 통제하는 건, 말인과 장생 영역 능력을 활용하는 게 훨씬 더 간단했다.

그때, 장목화가 드디어 침묵에서 깨어났다.

“제8 연구원이 이렇게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특파원을 통제해 그 안에 들어가려는 방법이 그다지 효과가 있진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자들은 인간을 안정적으로 각성시키는 방법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각성자를 거느리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능력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경계해야 할지도 다 알 거고요.

그러니까 제8 연구원의 사람을 꾀어내려 할 때 각성자 능력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기술적인 수단을 고려하는 게 나을 겁니다.”

장목화도 제 말이 그리 정확하진 않다는 걸 알았다. 제8 연구원이 안정적으로 각성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 과정이 약 주입과 기기를 통한 조사 등으로 이뤄졌다면 그건 어느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일 가능성이 컸다.

각성자 능력 역시 기술적인 수단에 속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장목화는 포카스가 제 말뜻을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포카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창밖을 내다보았다.

“포로는 나한테 맡겨. 자네들은 이만 가봐도 좋아.”

장목화는 순간 의혹에 휩싸였다.

‘그 특파원의 머리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가해졌어. 근데 포카스 장군은 왜 그 사람을 데리고 있으려 하는 거지?

그 사람이 가진 물건도 두 개뿐이야. 설마 가지고 다니기 불편한, 그래서 누군가에게 맡겨뒀거나 어딘가에 숨겨둔 물건을 찾기 위해선 그 사람 지문이나 홍채가 필요한 건가?

그래, 머리에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가해졌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장목화의 표정을 보고, 포카스가 간단한 설명에 나섰다.

“그 염주 이름은 육식주. 구슬 여섯 개는 각각 한 종류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 능력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의식 박탈이야.

근데 의식 박탈을 단독으로 사용할 순 없어. 목표가 다섯 개 감각을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만 발휘할 수 있지.

또 육식주의 부작용은 색욕 증강이야. 장기적으로 쓰면 변태적인 행위들을 하게 되기 쉽지. 또 생명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목걸이 능력은 심장 마비야. 대가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졸음이고.”

포카스는 구조팀이 그 두 물건의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바보가 돼 버린 포로를 내주기 싫어한다고 오해한 줄 알고 파악한 정보를 다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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