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화. 의심
구조팀이 탄 지프는 한창 골든애플 구역을 달리는 중이었다.
그때,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겐이 이번에 얻은 수확을 엄청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뭐? 왜?”
성건우의 이야기에, 용여홍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시간이 없어서 구조팀도 아직 아비아에게 얻은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목화는 제3 연구원의 두 방향과 오레이가 소스 브레인에 대해 가진 의심과 평가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머신헤븐의 인공지능에는 인간에 가까운 의식이 생겼을 수 있다는 거야. 존재의 기반과 표현 형식상에 비교적 큰 차이가 있을 뿐인 거지. 겐이라면 이 답을 엄청 좋아할 게 분명해.”
장목화가 웃었다.
운전하던 백새벽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소스 브레인이 인간화 정도를 제한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용여홍이 추측에 나섰다.
“어느 정도의 잠재된 위험이 있기 때문 아닐까? 소스 브레인 자체에 위협이 되는 위험?”
그 의견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성건우가 의욕적으로 입을 열었다.
“돌아가면 겐의 인간화 정도를 100퍼센트에 달하게 해서, 머신헤븐에서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한번 봐야겠어!”
‘……네가 있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내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겐이 명호, 정도연과 한 조가 되어 초봄 마을 쪽을 맡고 있잖아. 꽤 잘된 일인지도 몰라.”
“왜요?”
용여홍이 재차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곁에서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치려 했으나 왼팔의 상처 때문에 그냥 말로만 호응했다.
“맞아요, 전 겐이 이렇게 좋은 소식을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자폭해버릴까 걱정스러워요.”
백새벽은 미간을 팩 찌푸린 채 장목화를 힐긋 바라보았다.
“팀장님 말씀은, 겐이 그렇게까지 믿음직하지는 않다는 건가요?”
그녀는 이 점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아니, 겐은 믿음직하지. 근데 겐의 몸 안에 어떤 바이러스가 주입돼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숨겨진 뭔가가 있을 수도 있고.”
백새벽이 대꾸했다.
“소스 브레인이요? 팀장님은 원거리에서 겐을 통제하는 소스 브레인이 아비아를 목격하거나 소스 브레인과 관련된 정보를 접한 겐을 갑자기 폭발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러자 용여홍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어, 장목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약간 의심스럽긴 했어. 당시 겐한테 원체 많은 우연이 따랐잖아. 우리가 소스 브레인과 교류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사를 받았고, 우리 탈주는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어. 머신헤븐에서는 레드스톤 마켓에 인력을 파견하지도 않았고.
아비아한테 오레이가 소스 브레인을 포맷할 방법을 알고 있고, 그와 관련된 자료를 남겼다는 말을 듣고, 겐의 도주가 소스 브레인의 감독 아래 이뤄진 일이었을 거란 생각이 더 깊어졌어.
생각해봐, 소스 브레인이 자신의 생사존망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낯선 자들에게 쉽게 알려주려 하겠어? 정말로 그렇게까지 마음 놓고 있을까?
소스 브레인은 정말로 우리가 해당 자료를 얻은 뒤 회사에 넘기거나 퍼스트 시티 등의 대형 세력에 팔아넘길 것에 대해서는, 양측의 합작으로 머신헤븐과 그를 통제할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을까?”
짝짝짝!
한쪽 팔이 다친 이 상황에도 성건우는 열성적으로 손뼉을 쳤다.
용여홍 역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장목화에게 설득됐다. 소스 브레인이란 인공지능이 사람을 속이고 함정에 빠뜨리려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오늘 겐이 여기 있었다고 해도 사실 문제는 크지 않았을 거야. 폭발은 우리가 그 신비한 실험실을 탐색하다 오레이가 남긴 자료를 찾았을 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니까.
때가 되면 우린 불모지 13호 유적에는 오하명이 있으니 로봇이 들어가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세워 겐을 밖에 두고 들어가야 해.”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자조하듯 웃었다.
“그 실험실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야. 지금의 우리로서는 탐색할 수 없어. 회사에서도 아마 다른 팀을 보내려 하겠지. 그 팀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이끌 거고. 그럼 우리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네, 그럼 이제는 어쩌죠?”
용여홍이 창밖을 내다보며 화제를 돌렸다.
사전에 세운 계획과 그의 생각에 따르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는 여전히 혼란한 틈을 타 곧장 남쪽으로 이동해 퍼스트 시티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레드리버 북안을 한 바퀴 돌아 게네바, 한명호, 정도연과 합류해 최대한 빨리 초봄 마을 일을 해결하는 게 이 방안의 골자였다.
레드울프와 그린올리브 구역을 관통하고 북쪽으로 난 레드리버 다리로 향하지 않는 건, 그곳이 퍼스트 시티 내 중요 항구에 속해 있어서였다.
동란이 일어난 지금, 양측의 주요한 쟁탈지가 돼 있을 그곳은 당분간 통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설령 동란이 거의 막바지라고 한들, 승리한 쪽에선 패배 세력의 주요 지지자를 제거하려고 그 다리를 철통같이 통제하고 있을 터였다.
그보다는 퍼스트 시티 부속 구역 깊은 곳에 자리한 남쪽 출구의 경계가 훨씬 덜 삼엄했다.
이 방안의 문제는 잠깐이나마 안정을 찾기까지 이동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구조팀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도 포로로 데리고 있었다. 포로에게서 비밀 조직의 정보를 얻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동하는 도중에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확률도 높았다.
두 번째 방안은 퍼스트 시티에서 나가는 데 급급해하지 말고, 레드울프나 그린올리브 구역에 진입해 안전 가옥 한 곳에 포로를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면 구조팀은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얻어내고, 포로를 처리하여 잠재된 위험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안을 실행에 옮긴다면 동란이 완전히 안정되고 패한 쪽의 잔당들이 체포돼 삼엄한 경계가 해제될 때까지,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럼 초봄 마을 일을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때를 놓치게 될 터였다.
게다가 구조팀이 아비아와 접촉했다는 사실도 밝혀질지 몰랐다. 이로 인해 퍼스트 시티 강자들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면 참 골치 아파질 것이다.
장목화는 역시 이에 관해서도 일찍이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일단 레드울프로 돌아가서 포카스 장군에게 전화할 곳을 찾아보자.”
멍한 표정을 드러낸 용여홍이 곧 알겠다는 듯 대꾸했다.
“어⋯⋯, 팀장님, 포카스 장군을 이용해서 퍼스트 시티를 나가자고요?”
“포카스가 이번 동란에서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면 우릴 도시 밖으로 보내주는 건 일도 아닐 거야. 하하, 그렇게 노련한 사람이 실패했을 리 있겠어? 음, 그리고 아비아한테 얻은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그랬잖아? 지금 당장 알려주자!”
이는 아비아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고, 포카스에게 한 약속이기도 했다.
“네.”
용여홍과 백새벽도 지금은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앞서 포카스는 도움을 제공해주겠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받은 도움이라고 해봤자 통행증 하나가 전부였다.
주고받는 대가가 동등하려면 포카스는 당연히 구조팀을 더 도와줘야 했다.
“우리한테 축하연도 빚지고 있어요.”
지금껏 성건우는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순간 피식했던 용여홍은 갑자기 또 뭔가가 떠올랐다.
“근데 포로는 어떻게 심문하죠?”
상대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였다. 마취된 상태에서는 괜찮았어도 일단 깨어나면 구조팀이 아무리 충분히 준비해도 투항은 힘들 것이었다.
상대의 입에 시종일관 피 묻은 헝겊을 물려놓을 수도 없었다. 그럼 위험이야 방지하겠지만, 현기증과 심근경색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정보를 얻어내겠는가.
숙명주가 있었을 때 심문은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디마르코의 유품은 이미 효력을 다한 상태였다.
이때 백새벽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오하명의 음성을 들려주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우리를 믿게 할까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들어도 효과가 있을까요?”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문제도 포카스 장군에게 맡기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없는 구조팀이 포로를 심문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그녀가 포카스에게 연락하려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 * *
주민 집회로 인한 혼란과 빈번한 총성, 폭발음 등으로 레드울프의 여러 상점은 영업을 중단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열렸던 가게도 문을 닫았다.
지금 가게 주인들은 희망 광장으로 나갔거나, 집에 숨어 큰 소란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조팀은 당당히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능수능란하게 각종 자물쇠를 딴 백새벽 덕분이었다.
장목화가 장군 저택에 전화를 거는 사이, 차에 남아있던 용여홍은 허공에 나타난 헬기들과 드론들을 목격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그것들은 아무래도 빠져나간 잔당들을 찾는 중인 듯했다.
백새벽은 이를 느끼고 미리 카페에 숨어들었다. 아무래도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사람은 눈에 너무 띄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목화는 포카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보세요? 하……. 이미 관련 정보를 손에 넣었습니다.”
장목화는 가벼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포카스가 대꾸했다.
- 곧장 내 저택으로 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골든애플 구역이 가장 안전해. 보수파 저택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장목화는 포카스의 이 짧은 답을 통해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보아하니 가이우스가 이겼나 본데? 보수파 사람들은 지금 도시를 탈출하려는 중인가?’
골든애플 구역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심층적인 조사를 받아야 했지만, 골든애플 구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별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장목화가 답했다.
구조팀에게 심령의 복도 급 포로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했다.
물론 그 전에 상대가 속한 비밀 조직의 정보를 캐내야 했다.
이는 절대 놓치면 안 될 기회였다.
장목화가 위험을 무릅쓰고 강적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대신 포로로 잡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장목화, 백새벽은 상공의 드론과 헬기가 멀찍이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지프 안으로 돌아갔다.
이후 골든애플 구역으로 향하는 동안 장목화는 무선 통신기를 품에 안고 게네바에게 전보를 보냈다.
오늘은 중요한 때였던 만큼 장목화는 게네바에게 언제든 통신을 할 수 있게 계속 준비해두라고 일러뒀었다.
놀랍게도 게네바 일행은 전의 계획만 고집하지 않고 초봄 마을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다.
장목화가 기뻐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쪽엔 군용 외골격 장치 한 대와 겐이 있어. 초봄 마을에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만 없다면, 군대도 일부 소환되었을 테니 예상치 못한 습격이 성공할 가능성도 상당해.”
“그랬으면 좋겠네요.”
백새벽이 진심으로 답하며 장군 저택 후문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동하는 도중 구조팀은 역시 어떤 검문도 받지 않았다. 통행증 덕분에 모든 길이 다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