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86화 (486/649)

486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구조팀이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채광이 좋은 거실이 나왔다.

암적색 카펫 위에 티테이블, 소파, 의자 등의 가구가 놓여 있고, 소파엔 30살이 채 안 돼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긴 금발은 위로 틀어 올리고, 이목구비는 그리 출중한 편이 아니었지만 피부가 굉장히 좋았다. 레드리버인의 인종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았다.

‘유전자 개량을 받았군.’

용여홍은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탁!

그 사이 성건우는 잊지 않고 문을 닫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가 구조팀을 보며 웃는 낯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소개부터 할게. 난 마이어스 원로의 막내딸이야. 칸나라고 부르면 돼.”

신중하게 손을 뻗은 장목화가 상대와 악수를 했다.

“회사에서 접선하라고 한 게 당신인가요?”

칸나가 웃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도 회사에서 컸어. 특정 구역에서만 활동해서 다른 직원들과 접촉이 많지 않았을 뿐이지.”

장목화가 흠칫 놀랐다.

‘퍼스트 시티 원로 마이어스와 회사가 그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고?’

칸나는 이들의 반응이 놀랍지도 않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그녀는 애쉬랜드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했다.

“구세계 당시에도 우리 가문은 고대에서부터 쭉 이어진 귀족이었어. 우린 늘 한 이념을 신봉했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돈을 걸려면 이길 가능성이 있는 사람한테 거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이야.

우리 아버지는 전에 퍼스트 시티 군대 체계에서 전장 치료를 담당하셨어. 그러다 언젠가 어느 거점을 정복했을 때 우연히 황 씨, 그러니까 회사의 현임 수석 과학자 황 씨를 알게 되셨지.

의료랑 생물 분야에서 통하니까 두 분은 빠르게 친구가 됐어. 권력을 갈취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오레이 때문에, 퍼스트 시티의 수많은 원로가 불안에 떨던 때의 일이야.

우리 아버지는 가문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게 회사에 친히 생물 재료를 제공했어. 지하 빌딩에서도 여러 후대가 자라날 수 있도록 한 거지. 난 바로 그렇게 태어난 마지막 존재고.

아버지 걱정은 어떤 의미에선 현실이 됐어. 오레이 사후 퍼스트 시티에 발생한 혼란 속에서 아버지의 수많은 자손은 목숨을 잃고 겨우 아들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 후 몇 년간 아버지는 사력을 다했지만, 육신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니 아이는 둘밖에 낳지 못하셨어.

난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야. 자연스럽게 각성하기도 했고, 유전자 조작도 받았으니까. 몇 년 전에는 퍼스트 시티에 파견돼 이렇게 사생아로 이 집에 돌아오기도 했고.”

‘그래, 뭐. 엄격하게 말하면 사생아이긴 하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랬군요.”

장목화가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칸나는 퍼스트 시티 정보 체계의 질의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DNA 검사에도 얼마든 응할 수 있었다.

칸나가 소파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난 너희가 뭘 하려는지 알아. 기회를 엿보다 아비아와 접촉하기.”

“마이어스 원로는 어디 계시나요?”

장목화가 신중하게 물었다.

칸나는 웃으며 답했다.

“위층에서 쉬고 계셔. 원로원에는 언제든 뜻밖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잖아. 내가 병 핑계를 대고 가지 마시라고 했거든.”

* * *

골든애플 구역 모처.

퍼스트 시티의 집정관 겸 총사령관 베울리스가 대문 밖으로 나섰다.

파란 눈동자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그는 낮은 목소리로 하인과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원로원으로.”

* * *

퍼스트 시티, 원로원.

호크아이 저격 소총을 창틀에 받힌 몰은 신중한 표정으로 도시 방위군이 막고 있는 주민들을 응시했다. 긴장감에 자꾸만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물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몰은 진짜 전장에서 이와 비슷한 상태로 인해 궤멸한 병사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아류인이기 때문이었다.

몰의 변이 부위는 뇌였다. 거기다 눈까지 튀어나와서 꼭 구세계의 어느 이야기 속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변이된 머릿속에는 총을 쏠 때마다 탄도의 궤적이 매우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사전에 정확한 조정을 할 수도 있어, 그의 명중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달했다.

이런 특장점 덕에 몰의 아버지와 누나, 형들은 퍼스트 시티 군에 끌려가기 전까지 북안 불모지에서 꽤 유명한 악마의 눈, 데몬아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이 능력이 신의 눈이라 믿었다.

악마의 눈이든, 신의 눈이든, 이 능력을 갖춘 그들은 아류인 종족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능력은 몰의 할아버지에게서 기인했는데, 그 아래로 큰 가정이 몇 개는 더 생겼어도, 몰은 평소 자기 가족과 같은 특징이나 천부적인 능력이 있는 아류인을 본 적이 없었다.

몰은 황야에서 모험해본 경험이 없었다. 가족이 퍼스트 시티 군에 끌려왔을 때는 여덟 살도 채 안 됐었고, 그때야 막 몇몇 총기 사용법을 익혔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아류인 호위대 저격 소대 대장이 되었다.

“충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곁에서 몰의 부하 하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애써 마음을 안정시킨 몰은 불룩 튀어나온 눈으로 그 부하를 돌아봤다.

“큰 충돌은 없을 거다. 저 주민들이 엄벌을 요구하는 바로 원로는 이미 여러 차례 지목을 받아 원로 대부분에게 버림받았어. 만약 집정관이 계속 충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두세 명의 증언만으로 처벌받아선 안 된다고 고집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창밖으로 내던져지고도 남았을 거야.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집정관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원로원에게 지명된 호위대 구성원 몰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에 대해 꽤 깊이 알고 있었다. 평소 그들과 접촉하는 일이 거의 없는 다른 사람들만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몰의 부하의 양쪽 귀는 안으로 오그라들어 검은 구멍만 남아있었고, 이마에는 상당히 민첩해 보이는 눈이 하나 자리해 있었다.

그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몰은 다른 아류인 호위대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란 걸 알았다. 물론 원로원 집권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외부에선 집회 참여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총을 쏠 수 있는 존재처럼 알려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실이긴 했지만, 이들 역시 상황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 경우 승리한다면 다행이지만, 원로원 집권파가 패했을 경우 아류인 호위대의 모든 대원은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몰은 아이들이 제게 수시로 하는 질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 우리는 왜 이 단지 밖으로 못 나가요? 밖은 시끌벅적하고 반짝반짝한 것 같던데, 우리도 가보고 싶어요!’

‘아빠, 바깥은 정말로 라디오나 TV에서 나오는 거랑 같나요? 우리는 언제 나가볼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몰은 씁쓸한 마음을 숨긴 채, 애써 답을 줘야만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엄청 위험해서 그래. 모두의 안전을 위해 미성년자들은 이 단지를 떠날 수 없어.’

그럼 아이들은 또 이렇게 물었다.

‘아빠, 그 일 안 하면 안 돼요?’

몰은 마음 같아선 그 일을 안 하면 모두 죽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류인 호위대도 충돌을 바라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들의 존재가 영원한 위협이 되길 바랐다.

그래야만 이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고, 후손 중 겉으로 두드러지는 변이가 없는 행운아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몰은 이따금 충돌이 발발한 후 원로원 집권파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뒀을 경우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아류인 호위대의 지위는 보다 더 높아질 것이었다.

어쩌면 일부 정상인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부여받고 더 많은 동료를 얻게 될지도 몰랐다. 사회적인 규모도,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뛰어놀 공간도 더 많아질 것이었다. 아류인들이 퍼스트 시티 거리를 당당하게 돌아다니며 쇼핑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몰은 매우 냉정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패한 것보단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는 이 역시 소수의 야심가 몇몇을 제외한다면 아류인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바로를 엄벌하라! 바로를 엄벌하라!”

고함 속에 이미 몇몇 주민은 도시 방위군들 사이를 뚫고 나가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 방폭 방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바로 그때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몰 이하 저격수들의 시야에 원로원 옆문으로 달려오는 검은 방탄 세단들이 들어왔다.

집정관이었다.

아류인 저격수들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집정관이 뭉그적대고 이 안의 원로 중 누구도 나서서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동안, 밖에 모인 주민들이 점점 과격한 움직임을 보일까 심히 우려되었다. 때가 되면 아주 작은 뜻밖의 사건이라도 화약통 안에 떨어진 불티가 될 게 뻔했다.

올리브색 총사령관 제복을 입은 베울리스가 밖으로 드러나 있거나 숨어있는 경호원들과 보안요원들에 둘러싸인 채 원로원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왔군.”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감찰관 알렉산더가 오랜 정적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볍고 간소한 무릎길이의 회색 드레스를 입은 그의 딸 갈루란은 곁에서 비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베울리스는 조용히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 짙은 파란색 눈동자 아래, 대부분의 원로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이 위풍당당한 총사령관은 창가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서는 시위 중인 주민과 그 인파 속 가이우스를 바라보았다.

가이우스와 베울리스는 솔직히 좀 서로 닮은 모습이었다. 둘 다 머리가 검고, 뺨이 약간 움푹 들어가 있을 정도로 얼굴에 살이 없었으며,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 그랬다.

다만 둘 중 하나는 매부리코인데 다른 하나는 별다른 특징이 없고, 하나는 음험해 보이지만 다른 하나는 매우 침착해 보인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시선을 주고받던 그때, 카를이라는 원로가 베울리스에게 다가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정관님,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온 도시의 주민이 가이우스 편에 섰습니다. 바로 원로의 신분을 박탈해야 합니다. 앞으로 재판도 치러질 테고 시간도 있으니 무죄를 입증할 증거는 그때 찾으면 됩니다.”

베울리스가 돌연 고개를 홱 틀었다.

“입장을 바꾸겠다는 건가?”

카를이 황급히 변명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의미 없는 헛된 명성을 위해 소란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

쉰 살이 조금 넘은 이 아크슨인 원로는 이 대목에서 돌연 말을 멈췄다. 베울리스의 눈에서 번득이는 매우 기이한 빛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배신자!”

베울리스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거의 동시에 카를은 어린아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듯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혀를 비죽 내밀지는 않았다. 되레 안으로 말려든 혀가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컥컥!

카를은 끝내 몸부림을 치며 쓰러졌다.

“베울리스!”

알렉산더가 기함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막 외친 순간, 베울리스의 깊은 파란색 눈동자 안에 돋아난 붉은 핏줄들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빠르게 혼탁해졌다.

거기다 등이 굽기 시작하고, 벌어진 입에선 침이 길게 흘러내렸다.

‘……무심병!’

이 퍼스트 시티 집정관 겸 총사령관이 갑자기 무심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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