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85화 (485/649)

485화. 15호 저택

말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엠퍼러 스트리트 부근에 이르렀다.

장목화는 몸을 틀어 주세페를 쳐다보았다.

“넌 이만 내려도 돼.”

주세페는 난데없는 달지기 토론에 멍한 표정이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끝없는 물음표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따라가려야 따라갈 수 없는 대화였다. 꼭 퍼스트 시티의 원로 교체와 사냥꾼 길드의 권력 투쟁을 주제로 토론하는 햇병아리 사냥꾼, 렌터카 회사 직원, 목욕탕 종업원 등을 본 듯 황당하기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더했다. 구조팀은 지금 달지기의 태도를 논하고 있었다.

주세페가 조용히 내려 부근의 한 건물로 향하고, 어느 가로수 근처에서 뒷모습까지도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장목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이우스의 강연은 진짜 선동적이었어.”

그들은 여태 퍼스트 시티의 라디오를 통해 주민 집회에서 진행 중인 강연을 듣고 있었다.

“기껏해야 특정 부분만 살짝 과장됐지, 기본적으론 전부 사실이잖아요.”

백새벽은 액셀을 밟아 엠퍼러 스트리트 안으로 차를 몰았다.

* * *

골든애플 구역 모처,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진 밀실 안.

퍼스트 시티의 집정관 겸 총사령관 베울리스는 방 중앙에 놓인 큼지막한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엔 벨벳 이불을 덮은 한 노인이 누워있었다. 성긴 백발, 팔과 얼굴은 거의 뼈와 가죽만 남아서 푸른 핏줄까지 밖으로 다 드러나 있었다.

몸 곳곳에는 금속 센서가 부착돼 있고, 코에는 호흡기, 정맥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말하자면 노인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갖가지 기기에만 의지해 목숨만 유지 중인 식물인간처럼 보였다.

젊을 땐 건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그는 한없이 약하게만 보였다.

이 노인이 바로 퍼스트 시티의 창립자 중 한 명이자 구세계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카스였다. 그는 이미 90살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간 베울리스가 그에게 깊은 존경을 표했다.

“카스님, 일이 매우 순조롭습니다. 사냥감이 이미 함정을 밟았습니다. 잠깐 깨어나시어 반 지성교 팔인회에 명령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퍼스트 시티 내에, 카스가 이미 신세계에 진입해 달지기 말인을 모시고, 신도들의 인도를 담당하는 반 지성교 교황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반 지성교는 그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기 전에 창립한 교파였다.

이번에 반 지성교가 원로 바로를 모함하고 중도파 포카스를 노린 건, 모두 베울리스가 카스를 통해 벌인 짓이었다. 좋은 기회가 온 줄 알고 모습을 드러낼 반대파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 임기가 끝나는 대로 한직으로 물러나야 할지 모르는 베울리스는 이번 숙청을 통해 원로원이 자신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오레이처럼 야심가인 그는 당시 상대가 했다는 말을 매우 좋아했다.

‘집정관이 황제보다 좋을 리 있나?’

베울리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던 카스가 눈을 번쩍 떴다.

그 파란 눈동자에 천장의 무늬가 비치고, 주위의 빛은 급속도로 수축하며 침대에 누운 노인의 몸으로 몰려들었다.

밀실의 다른 구역은 그대로 극단적인 어둠에 잠식되어, 뻗은 손가락 하나 볼 수가 없었다.

새로운 세계까지 겨우 한 발짝 남았을 뿐인 베울리스는 허상의 대문이 열리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덜컹!

다음 순간, 베울리스는 기억이 한 권의 책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책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넘어가더니 점차 한 장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침대에 일어나 앉아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인영은 어둠에 휩싸여 구체적인 생김새를 확인할 수 없었다.

베울리스는 그 모호한 인영을 보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넌 카스님이 아니야⋯⋯.”

그러자 침대에 앉은 인영이 공허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래, 진아라고 불러라. 장차 말인의 존재를 대체할 몸이다.”

* * *

희망 광장.

감정이 고조된 주민들은 ‘바로를 엄벌하라’란 구호를 외치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원로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가이우스가 손을 휘둘렀다.

“갑시다! 모든 원로에게 우리의 외침을 들려줍시다!”

“바로를 엄벌하라! 바로를 엄벌하라!”

몇몇 사람들의 인도 아래, 집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나름 질서정연하게 원로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원로원 밖의 도시 방위군은 이미 인간 방벽이 되어 방폭 방패를 세우고 있었다. 다들 무기를 쥐고 있었지만 새카맣게 몰려드는 수많은 주민 앞에선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최루탄을 사용할 용기 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최루탄으로도 소동이 되려는 이 시위를 막지 못하면 그때는 진짜로 총을 쏴야만 했다. 그럼 주민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니, 그렇게 단호한 결심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카스는 명령을 내릴 때 상황이 마무리되면 모든 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한 이상, 사람이라면 사건의 발전과 나중의 퇴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회에 온 주민 중 충고를 듣고도 기어코 온 가족, 친척, 친구가 있을지도 몰랐다. 피에 물든 땅과 널린 시신 속에 혹여나 그들을 발견하게 되면?

뜨거운 피가 도는 사람이라면 이런 염려를 하는 건 당연했다. 이 도시 방위군들 역시 퍼스트 시티의 주민이었다. 가이우스의 연설은 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남긴 것이다.

집회 참가자 중 지인이 없다고 한들 거리낌 없이 난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건 더 이상 일부 소수 주민의 문제가 아니었다. 온 도시 주민 대부분이 가이우스의 연설에 호응한 결과였다.

때가 되어 정말로 유혈 사태가 벌어진다면, 도시 방위군은 주민 전체를 배신하고 손에 피를 묻힌 학살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차마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않을 수는, 영원히 큰 무리를 형성한 채 행동할 순 없었다. 게다가 퍼스트 시티 주민들은 무사도로 충만한 자들이었다. 사냥꾼 신분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으며 총기 소지율도 상당히 높았다.

그런 사람들이 학살자가 된 도시 방위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가하려 한다면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정상적으로 거리를 거니는 일도, 게릴라 전술에 능한 적의 소굴에 멋대로 난입한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질 터였다.

도시 정글은 순식간에 살육의 정글로 변할 것이었다.

도시 방위군은 각기 다른 달지기를 향해 기도하며 부디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기만 빌었다. 동시에 뒷줄에 자리한 이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틀어 원로원의 문과 창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곳엔 전부 누군가가 지키고 서 있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옅은 노란색 비늘이 돋아 있거나, 눈이 툭 튀어나와 기이한 빛으로 번득이거나, 팔이 네 개나 있어 동시에 소총 두 자루를 들 수 있는 자들이었다.

보통 사람과는 분명히 다른, 원로원에서 선발해 꾸린 아류인 호위대였다.

이 아류인들은 갖가지 이유로 퍼스트 시티 주민들에게 광대한 미움을 받고 있었다.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 원로원 근처 거점을 벗어난다면 반드시 습격받거나, 현장에서 죽거나, 납치되어 다른 곳에 팔려 갈 신세였다.

이런 처지에 원로원 집권파에 의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당연히 그들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라야만 했다.

그런 아류인 호위대가 주민들의 죽음과 부상에 신경 쓸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류인 호위대 중 적잖은 변이자에겐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이들은 선진화된 무기까지 가진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였다.

“바로를 엄벌하라! 바로를 엄벌하라!”

주민들이 목청껏 소리쳤다. 아직은 원로원을 향해 달려들려는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기를 쥔 도시 방위군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고 있었다.

* * *

평범한 지프 한 대가 엠퍼러 스트리트로 꺾어 들어갔다.

이곳의 경계는 더욱 삼엄했다. 용여홍이 상상했던 것처럼 검문소는 대여섯 걸음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조팀은 9호 쪽으로 향하지 않고 보증된 통행증도 있었으며 중무기도 휴대하지 않았다.

밖에 나와 있는, 혹은 숨어있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은 지프가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 무렵에야 겨우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백새벽은 전방에 억지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차를 몰았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은 정원이 딸린 15호 저택에 이르렀다. 좁은 길로 들어간 뒤엔 순찰차가 있을 공간도 없는 구석진 옆문에 도착했다.

구조팀은 절대로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딱 창문만 내린 후, 회사 전보에서 언급한 그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15분쯤 지났을까, 정원에서 녹색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옆문 꼭대기에 안착했다.

앵무새는 구조팀을 보며 매우 유창한 애쉬랜드어를 내뱉었다.

“당귀! 당귀!”

‘……?’

용여홍은 순간 넋을 잃었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만나라고 한 게 앵무새였다고? 이, 이게 말이 되나?’

반면 성건우는 매우 흥분한 눈치였다.

“회사의 최신 연구로 얻은 성과야? 심령의 복도 급의 변이 앵무새?”

앵무새는 성건우를 보며 대꾸했다.

“멍청이.”

“⋯⋯.”

장목화는 이 앵무새 주인이 좀 욕에 능한 사람인가 추측했다.

그 사이 성건우는 진지하게 반박했다.

“에이, 이럴 땐 미친놈이라고 해야지.”

‘건우야, 넌 언제봐도 참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구나.’

용여홍이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미친놈! 따라와.”

앵무새는 성건우의 충고를 잘 흡수한 뒤, 옆문 뒤로 천천히 날아갔다.

정원이 딸린 이 저택은 원로 마이어스의 집이었다. 마이어스는 반고 바이오의 수석 과학자 황인휘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장목화는 이 사실을 토대로 용기를 내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렸다.

아, 이미 그녀보다 더 앞서 달리고 있는 사람, 성건우가 있긴 했다.

* * *

옆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닫혀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근처에도 경호원이나 하인은 없어서 이미 오랫동안 버려진 곳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잔디밭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정원도 정연했다. 버려진 곳 같다는 건 순전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녹색 앵무새를 따라 정원을 가로지르고 잔디밭을 지난 구조팀은 본채에 도착했다. 이곳의 문 역시 살짝 닫혀 있기만 했다.

저택에 들어오니, 앵무새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날아갔다.

성건우는 고개를 살짝 틀어 평소의 음량으로 말했다.

“안에 한 사람이 있네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감지 결과도 똑같다는 뜻을 표했다.

똑똑똑-

방문은 이미 약간 열려 있지만 성건우는 그래도 예의를 갖췄다.

“들어오세요.”

방에서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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