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84화 (484/649)

484화. 맹점

월이 폭발하려는 화약통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 가이우스가 다시 화제를 틀었다.

“원로 바로가 구세군, 반 지성교와 결탁해 퍼스트 시티를 해하려 했는데도 원로원 내 어느 인물의 보호 아래 여태 유죄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소식, 다 들으셨을 겁니다.”

이내 광장 안에서는 고막을 찢을 듯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바로를 엄벌하라! 바로를 엄벌하라!”

월은 약간 흠칫했다. 장인어른이 최후로 지목한 목표가 집정관 겸 총사령관 베울리스도, 원로원 내 보수파 혹은 중립파 인물도, 급진적인 개혁을 꺼리는 상류층 인사도 아닌 곧 원로직을 박탈당할 바로일 줄은 몰라서였다.

‘이만하면 다행이야, 이만하면. 적어도 충돌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잖아. 큰 동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고.’

월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는 지금 당장의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원로원 사람들이 타협을 거부한다면 상황은 더욱 과격하게 변할 테고, 그 여파는 온 도시로 퍼져 수습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 * *

골든애플 구역에 가까운 레드울프 구역 모처.

선글라스를 낀 채 빠르게 몇 걸음을 옮긴 성건우가 허리를 굽혀 한 건물의 벽 틈에서 뭔가를 빼냈다.

포카스가 누군가를 시켜 그곳에 놓아둔 통행증이었다.

백새벽은 앞 유리 아래에 통행증을 끼워놓은 다음, 골든애플로 차를 몰았다.

곧 구조팀은 첫 번째 검문소에 이르렀다.

도시 방위군들은 통행증의 진위 여부만 확인하고 아무 검사 없이 통과시켰다.

“휴⋯⋯.”

뒷좌석의 용여홍이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말도 안 했어!”

두 친구 사이에 자리한 주세페는 좌우를 한 번씩 살폈다. 왜 이런 걸 갖고 유치하게 싸우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그때, 백미러를 보고 잠시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말했다.

“주세페, 이따 그 사람을 만나면 우리 작전도 커다란 풍파를 만날 거야. 그 전에 차에서 내려 적당한 곳에 숨어있다가, 상황이 안정되면 그때 우리랑 다시 합류해서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어때?”

장목화와 성건우는 물론, 용여홍과 비교해도 주세페는 그의 적수가 못 됐다. 그러니 이번처럼 개인 능력이 강조되는 작전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었다.

고민하던 주세페가 답했다.

“엠퍼러 스트리트에 진입할 때 내려주면 돼. 부근에 경비대 대장 친구가 있거든. 동란이 끝날 때까지 부탁하면 될 거야.”

동란이 발생하지 않으면 구조팀은 어떤 후속 작전도 진행할 수 없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장목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방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약간 불안해진 용여홍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팀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최후의 평안이잖아. 이 틈을 타서 퍼스트 시티의 이번 정세 변화를 복기해보고 있었어. 가능한 발전 방향을 추측해 보려고.”

“그렇구나⋯⋯.”

용여홍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장목화가 덧붙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맹점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주 중요한⋯⋯.”

“맞아요. 뭔가를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성건우가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용여홍의 몸은 재차 딱딱하게 굳었다.

그 사이, 운전 중인 백새벽이 떠보듯 물었다.

“그 집정관 겸 총사령관의 태도? 퍼스트 시티의 심령의 복도 급, 그 이상 급 각성자의 태도?”

장목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처음부터 감안해야 하는 요소지⋯⋯. 그 방면은 계획할 때 몇 번이나 헤아려 봤어. 발견된 맹점은 없었고. 과거에 있던 사건들을 빠르게 되짚어 봐야겠어. 혹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한 가지 문제를 고민하다가 막다른 곳을 만나면, 일단 그 문제에서 빠져나와서 자기 경험을 분석해보는 것도 방법이야. 그걸로 추론하는 거지.”

그녀는 이 상황에도 팀원들을 지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예.”

용여홍이 대꾸했다.

이내 지프가 느릿하게 나아가더니 안이 곧 고요해졌다. 모두가 퍼스트 시티에 일어날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추측해 보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1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돌연 몸을 꼿꼿하게 세운 장목화가 내뱉듯 외쳤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어. 나랑 야가 달지기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았을 때 말이야.”

용여홍과 백새벽이 멍한 표정을 드러낸 사이,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맞아요! 우리가 달지기를 소홀히 생각하고 있었네요!”

장목화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레드스톤 마켓처럼 작은 곳에서의 정세 변화도 달지기의 시선을 끌었는데, 애쉬랜드에서 가장 큰 세력인 퍼스트 시티의 내란이 어떻게 달지기들의 태도를 무시할 수 있겠어?”

* * *

골든애플 구역 모처.

퍼스트 시티의 집정관 겸 총사령관 베울리스는 두꺼운 커튼을 친, 매우 어둑한 밀실에 홀로 걸어 들어갔다.

* * *

“달지기들의 태도?”

용여홍은 이 문제가 갑자기 매우 현학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퍼스트 시티 정세 변화에 달지기가 무슨 상관이지? 애쉬랜드에서 오랜 시간 발생한 전란과 분쟁에 전부 달지기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단 건가?’

용여홍이 보기엔 신께선 오늘 저녁, 토마토 달걀 볶음, 닭 날개 구이, 쌀밥, 얼음 띄운 콜라로 메뉴를 정했으니,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신께 불경하게 군 죄로 그분의 간섭을 받으리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장목화도 용여홍, 백새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고 있었다.

“솔직히 레드스톤 마켓 경계 교회당에서 달지기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지 않았더라면, 나도 달지기의 태도가 퍼스트 시티 정세 변화에 영향을 미칠 요인이 될 거란 생각은 못 했을 거야.

우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정보원도 문제를 분석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하진 않아. 기껏해야 각기 다른 교파의 경향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지.”

이내 장목화는 몸을 틀어 주세페를 힐긋 바라보았다. 역시, 이 반고 바이오의 정보원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지기의 태도라니, 그게 뭐지?”

장목화는 주세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할 말만 이었다.

“아마 수많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와 원로원의 구성원 역시 정세의 향방을 판단할 때 달지기의 태도를 생각하진 못할 거야.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달지기의 의지가 상부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이 돈 적은 없잖아.

달지기는 가장 정석적인 신령처럼 높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신앙과 숭배를 받고, 때로는 호응하면서 속세에 간섭하지는 않는, 전설에 가까운 존재로만 여겨졌어.”

“그렇게 말하면 디마르코 선생이 팀장님을 욕할 텐데요.”

성건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반박했다.

갖가지 흔적과 디마르코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달지기 에이돌른에 의해 지하 방주에 제압되고 어느 정도 봉인되었던 그는 심령의 복도 안에서의 활동에도 제한을 받은 듯했다.

이내 장목화가 말했다.

“대부분의 달지기가 애쉬랜드와 속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 근데 그들은 무려 열세 명이야. 개중엔 자기 교회당이나 특정 지역의 정세 변화를 주시하는 걸 좋아하는 이가 있을지도 몰라.”

“에이돌른이 그랬죠. 내 전자카드 번호만 대면 된다고.”

성건우가 아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말로 동조했다.

지하 방주에서 디마르코와 전투를 떠올린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시 내 각 대형 교파의 경향뿐만 아니라 달지기들의 태도에도 신경 쓸 필요는 있겠네요. 중요한 순간 새로운 세계에서 이쪽으로 쏘아진 눈빛에 정세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니까요.”

장목화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찬찬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건 이래. 영원한 세월 교파는 퍼스트 시티를 도와 오하명을 봉인했고, 수정의식교는 퍼스트 시티 안에서 공개적으로 전도하면서 수시로 정부에 도움을 제공해. 또 거울교에선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파견해 오레이의 두 후손 아비아와 마커스를 보호하고 있지.

이는 장생, 보리, 깨진 거울 세 달지기가 퍼스트 시티의 정부 세력에 편향돼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이번에 발생한 각종 사건 중 반 지성교와 욕망 성인 교파는 원로원 중도파를 처리하려 했고, 보수파를 가리키는 단서를 남겨놓기도 했어.

그들은 퍼스트 시티 정세가 혼란스러워지길 바란다는 거고, 이는 달지기 말인과 만다라는 퍼스트 시티 정부 반대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단 뜻이야.

그 행위예술가가 믿는 달지기 감찰자도 이쪽일 가능성이 커. 신자 대부분이 군인인 왜곡의 그림자와 포카스 장군이 믿는 여명이 어떤 태도인진 지금은 알 수 없어. 근데 후자는 우리처럼 이 혼란을 이용하려는 것 같아.”

작열하는 문, 에이돌른, 사명, 쌍태양, 황금 저울 같은 달지기들의 태도 역시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신도들은 이번 퍼스트 시티 정세 변화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구조팀 앞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달지기들은 왜 속세의 권력 다툼에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이긴 쪽은 공개적으로 전도하며 신도를 늘릴 수 있지만, 진 쪽은 지하로 숨어 고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일까요?”

이건 용여홍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평소 신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호응도 거의 하지 않는 달지기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누가 알겠니.”

장목화도 대충 대답했다. 달지기와 인간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들을 상식과 경험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용여홍 역시 답을 기대한 건 아닌 듯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팀장님, 방금 한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달지기들의 태도를 무시했든, 아니든 상관없었겠는데요? 그들 교파의 경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거예요. 그게 달지기들의 태도를 대표하니까요. 그러니 이건 우리의 맹점이 아니었어요. 이전부터도 고려하고 있던 부분이에요.”

그는 장목화가 달지기들의 태도를 진지하게 언급한 것이, 자신을 기겁하게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장목화가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훌륭해, 무턱대고 권위를 믿고 따르는 대신 독립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네. 겉보기엔 네 말에 아무 문제도 없어. 그 종교 조직들만 고려해도 충분해.

근데 만약 달지기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삼으면, 특정 문제를 마주했을 때 각각의 세력과 각각의 강자가 보이는 반응에 변화가 생길 거란 걸 알 수 있을 거야.

하하……. 물론 이건 사건에 깊이 연루된 당사자들한테나 중요한 문제지. 우리는 그냥 기억해두기만 하면 돼.

이제 며칠간 어느 종교 조직의 구성원을 만나든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 우호적인 교파의 구성원을 따라 그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자제하자. 안 그럼 우리도 사건에 연루될 수 있어. 우리한텐 아무 저항력도 없잖아.”

장목화는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았을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역시 우호적인 교파의 구성원인가요?”

성건우가 물었다.

“아니, 넌 모든 달지기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그림을 가지고 있잖아.”

장목화는 아무 논리도 없는 답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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