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화. 만남
무선 통신기를 구하기 전 퍼스트 시티에 발생할 수도 있는 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구조팀은 일찍부터 밖을 나섰다. 주민 집회가 예정된 시간까지 족히 1시간은 더 남은 때였다.
이른 아침 레드울프 거리에는 행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니는 차량의 수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주민들은 이 시간에 보통 집 안에서 아침을 먹으며 가이우스가 소집한 집회에 참가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당한 이유 덕분에 오전에는 따로 일할 필요도 없었다.
그 외의 나머지는 일찍 문을 연 빵집에서 먹을 것을 고르거나, 노천카페에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앉은 뒤 아침 식사를 가져다줄 종업원을 기다렸다.
주위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공기의 질이 조금 더 좋았다면 용여홍은 상쾌함마저 느꼈을 것 같았다.
방향을 틀어 그린올리브 구역에 진입하자 거리는 거의 양쪽에 자리한 불법 건축물 사이에 끼인 것처럼 느껴졌다. 위로 보이는 하늘은 숨이 막힐 만큼 좁았고 빛도 잘 들지 않아 주위는 전보다 더 어두웠다.
이곳의 행인들 역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공장으로 떠나 바쁜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파는 몇몇 가게 앞에는 장사진이 길게 늘어 서 있어 안 그래도 좁은 길은 더욱 협소해졌다.
구조팀의 지프는 각종 쓰레기가 흩어진 길을 따라 그리 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서북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안타나 스트리트였다.
* * *
퍼스트 시티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암시장인 이 안타나 스트리트만큼 무선 통신기를 구하기 쉬운 곳은 없었다.
하지만 구조팀이 안타나 스트리트에 도착했을 때 길 양옆으로 자리한 가게들이 다 닫혀 있었다. 오가는 행인도 드물어 거리 전체가 굉장히 썰렁했다.
“망했나?”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치며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순간 그가 이런 말을 주절주절 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타나 스트리트, 안타나 스트리트가 망했다. 망했다, 망한 사장들은 어마어마한 빚을 진 채 아내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그녀와 비슷한 예감을 한 용여홍이 급히 입을 열었다.
“전에 있던 충돌로 질서의 손의 타격을 받은 걸까요?”
그가 말한 충돌이란 구조팀이 안타나 스트리트 주위에서 한명호와 정도연을 데려갔던 그 사건이었다.
“물어보면 알겠지.”
지프를 길가에 세운 백새벽이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행인들이 없다고 물어볼 사람조차 없는 건 아니었다.
백새벽은 위장을 단단히 하고 단순히 닫혀있기만 한 가게 문을 밀었다.
안에선 틈새를 통해 밖을 훔쳐보고 있는 사장이 있었다.
“오늘은 쉬시나 보죠?”
백새벽의 말투엔 의도적인 비웃음이 약간 실려 있었다.
곧이어 레드코스트인으로 보이는 사장이 건조하게 웃었다.
“주민 집회가 열린다잖아? 최근 정세가 가뜩이나 긴장돼 있어서 다들 며칠 쉬면서 상황을 관망하기로 합의를 봤어. 어느 쪽 과녁에도 쏘이지 말아야지. 휴, 돈 있고 자원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갖고 교외 장원으로 가버렸고.”
백새벽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구세계의 고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봄에 강물이 풀리는 것은 오리가 먼저 아는 법⋯⋯.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위법 행위로 먹고 살아가는 회색분자들은 정세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예민한 후각을 자랑했다.
물론 이는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거래되는 불법 상품 중에 정보라는 것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백새벽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분의 무선 통신기를 보유한 가게는 어딨죠?”
레드코스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방면 사업을 하는 녀석들은 사람과 물건을 가지고 남쪽 장원으로 갔어. 아니면 가장 가까운 북안 불모지 도시 유적으로 가서 숨었지. 이 거리엔 없어. 정 그게 필요하면 사냥꾼 길드에 가 임무로 걸어. 여분의 무선 통신기를 가지고 있는 사냥꾼 팀도 꽤 많은 편이거든.”
조용히 얘기를 듣던 백새벽은 여전히 약간 비웃음 어린 투로 답했다.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사냥꾼 협회로 장사를 떠넘기는 건 처음 보네요.”
“안전이 제일 중요하잖아, 안전이.”
레드코스트인이 웃으며 가게 문을 닫았다.
* * *
“이제 어디로 가서 찾죠?”
운전석으로 돌아온 백새벽이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녀는 조금 전 사장의 제안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구조팀이 임무를 제시하고 거래를 완료하기까진 어마어마한 운이 따라야 했다.
무엇보다 구조팀은 지금 당장 무선 통신기가 필요했다.
“우리 형제 테렌스?”
성건우가 나서서 제안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시원한 콜라 맛이 그리운 듯 침을 꼴깍 삼켰다.
테렌스라면 무선 통신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용여홍도 성건우의 제안이 매우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야……, 얘는 진짜 가끔가다 이렇게 합리적이고, 정상적이고, 실행 가능성도 있는 방안을 내놓는단 말이야?’
물론 성건우가 여태 생각해낸 방안 중 실행 가능성이 없는 방안도 거의 없었다. 다만 정상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건 최후의 선택지로 두자.”
이해하지 못한 듯한 팀원들을 보고,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테렌스는 늑대 소굴의 불쌍한 사람들이랑 연관돼 있잖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최대한 안 건드리는 게 나아. 그 여자들한테 아무 영향도 가지 않게. 우리한테 다른 루트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휴고 사장.”
장목화가 씩 웃었다.
휴고의 배후에는 비밀 조직이 있었고, 그는 포카스의 친구이기도 했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좋아요.”
백새벽과 용여홍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주세페는 전의 정보책이 다 폭로되어 어떤 제안도 할 수가 없었다.
* * *
레드울프 구역, 로스타 스트리트 19호, 질서의 손 본부.
월은 어젯밤 발생한 몇 차례 폭발 사건을 조사한 동료들과 회의를 위해 본부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와 그런지, 동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먼저 자리에 앉은 그는 모든 이들의 자리에 놓인 자료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시카라 사원 부근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당시, 주위 사람들은 동요 같은 음악을 들었으며 그 후 거의 동시에 소변이 마려워졌다고 증언. 격투장에서 발생했던 상황과 기본적으로 맞아떨어진다.」
‘역시 그 사람들이었어. 그들이 정말로 퍼스트 시티에 잠입했어! 노스 앙헤포드 구역 행적은 가짜였던 건가? 아니면 함정?’
월은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는 그야말로 질서의 손에 대한 멸시와 모욕이었다.
월이 다시 자료로 눈길을 돌렸다. 뒷부분에는 그가 조사에 참여한 다른 무력 충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시카라 사원 부근에 발생한 무력 충돌과 마찬가지로, 목격자들은 사파이어색 지프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들이 같은 자들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시카라 사원 부근에서 기이하게도 극도로 느린 속도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길가 전봇대와 충돌했고, 그곳에서 바주카포 습격을 여러 차례 받고 차가 아예 쓰러져 버리기까지 했다.
그들은 외골격 장치 두 대를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강력한 각성자와 그 부하들 습격을 받은 까닭에 갖가지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말고 또 누가 그자들을 노리고 있다는 거지?’
어젯밤 현장에 가서 추적을 시도한 월은 이런 결론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대체 그 습격자가 누구일지 궁금할 뿐이었다.
동시에 그는 또 다른 부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젯밤 그가 도착한 현장의 모든 건 매우 정상적으로 보였고, 무력 충돌의 특징도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이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매우 피곤하고 몽롱해 보였다.
월이 자료를 뒤적이던 그때, 레드울프 질서관 트레비스가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그 지프를 쫓는 데만 집중하게. 두 번째 현장 목격자들과는 더 이상 접촉하지 말고.”
“왜죠?”
월이 바로 의혹을 드러냈다.
그러자 트레비스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상부 지시야. 아마 고급 기밀 사안에 연루돼 있겠지.”
‘고급 기밀 사안이라.’
월도 입을 다물었다.
이후 트레비스가 짐짓 여유롭게 덧붙였다.
“정말로 알고 싶다면 가이우스 장군에게 가서 물어봐. 아, 오늘 장군은 오전 주민 집회에 참여한다지? 혹시 사람들을 데려가 질서 유지를 돕는 데에 힘을 보태고 싶지는 않나?”
* * *
그린올리브 구역, 휴고 여관.
구조팀은 홀에 들어서자마자 리셉션으로 향했다.
휴고는 이미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곳을 정리하고 있었다.
“너희들, 돌아온 거냐?”
고개를 들었던 그가 몇 초 후에야 구조팀의 위장을 간파했다.
장목화가 웃었다.
“저희한테 거액의 빚을 지셨잖아요.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빚을 떼먹으려고 할까 걱정돼서요.”
평정심을 되찾은 휴고가 대꾸했다.
“원하는 게 뭐지?”
“무선 통신기 한 대요.”
장목화의 말에, 휴고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한 대?”
그건 구하기도 쉽고 값도 싼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장목화가 웃었다.
“이건 이자고, 진정한 보수는 포카스 장군을 뵌 뒤에 말씀드릴 거예요.”
잠시 침묵하던 휴고가 말했다.
“지금 만나겠다고?”
장목화는 떨리는 심장을 안고서 답했다.
“네.”
포카스는 구조팀에게 도움 한번을 빚진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연락하는 것이 좋았다.
“마침 부근에 있어. 저 문밖에서 기다려라.”
휴고가 여관 홀 반대편을 가리켰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은 휴고를 따라 한 골목길을 관통한 뒤 어느 아파트에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발길이 멈춘 곳은 1층 가장 안쪽 방 앞이었다.
똑똑똑-
휴고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포카스는 조금 피곤한지 목소리가 좀 깔깔했다.
이윽고 휴고가 문을 연 순간, 구조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늙은 사자 같은 장군이 상의를 벗고 채찍으로 본인을 끝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채찍이 지나간 자리마다 몸에 남는 핏빛 흔적이 그야말로 끔찍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 아래,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안 아프세요?”
“아파. 하지만 아플수록 외재적인 것들과 과거를 잊고 진정한 자아를 볼 수 있게 되지.”
포카스는 답하면서도 스스로를 때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답하는 목소리도 약간 떨리고 있었다.
‘기이한 말이네. 설마 무슨 종교 조직 이념인가? 퍼스트 시티는 정말이지 타락할 대로 타락했구나. 수많은 원로가 각기 다른 교파와 얽혀 있으니. 어쩐지 내부 갈등이 점점 첨예해지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망설이던 장목화가 의도적으로 물었다.
“장군님은 어느 달지기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숭배하시는 건가요?”
짝!
포카스는 스스로를 한 번 더 채찍질했다.
“아니, 여명이 바로 진아다. 진아가 바로 여명이야.”
‘2월의 달지기 여명을 숭배하는 또 다른 교파구나.’
장목화는 포카스와 휴고가 속한 조직과 여명샛별 사이에 등호를 그려 넣진 않았다. 지금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그 두 조직 사이에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반고 바이오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여명샛별은 여태 ‘진아’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또 구조팀은 포카스와 휴고가 믿는 달지기가 여명이란 점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휴고가 꿈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보인 바 있어서였다.
동시에 이들은 휴고의 방에 있는 그 기구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고문해 얻은 고통으로 진아를 찾는단 이념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