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예비 방안
구조팀은 일찍이 디마르코라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처리한 적이 있었다. 또한 수종이 말을 들어보면, 지금 적에게 걸려 있는 일시 정지 효과는 한동안 지속되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약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상대가 드러낸 실력을 볼 때, 용여홍은 구조팀의 반격과 처리가 마냥 순조롭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제 입면이라는 능력만 해도 구조팀만으론 대항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요의가 점점 심해지면, 다 큰 어른이 돼서도 어린 시절처럼 바지에 실례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 몰랐다.
이때 장목화가 나섰다.
“그럴 필요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린 지금 목표가 어딨는지도 몰라.”
이 말은 성건우를 향한 것이었다. 그의 집착을 막기 위해서였다.
조금 전 가방을 쌀 때 수종이는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른다고 말했었다. 그저 구조팀을 향한 무차별적인 범위형 공격을 해제하고,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도록 막아줬을 뿐이라고만 했다.
지금 만약 수종이가 곁에 있었다면 주위 구역을 감지하면서 누가 가장 먼저 일시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상대가 바로 목표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수종이가 사라진 이때, 성건우와 장목화의 감지 능력만으론 현재 범위 밖에 있을 확률이 높은 목표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성건우가 얼른 장목화의 말을 받았다.
“저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죠.”
그가 자유로운 팔을 들어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화력을 통한 압도를 담당하는 일반인 습격자들이 자리한 곳이었다.
뒤이어 성건우는 재차 왼손을 들었다.
“이걸 이용해 감지할 수 있어요.”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어쨌건 일단 차를 몰고 저쪽으로 가보자. 목표가 은신한 곳을 물을 수 있다면 시도는 해봐야지. 악을 근절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그 악에 당하기 마련이야. 정 안 되겠으면 최대한 빨리 그린올리브로 방향을 틀어서 목표가 통제하는 구역에서 벗어나자.”
그녀는 곧 길가에 옆으로 쓰러진 사파이어색 지프로 향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단 두 번의 점프만으로 장목화보다 먼저 지프 옆에 도착해, 주세페와 백새벽을 내려주었다. 그 후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을 받아, 또 장목화도 힘을 가세해 두꺼운 장갑으로 덮인 지프를 제대로 세웠다.
따로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모두가 속속들이 바로 차에 올랐다.
* * *
백새벽은 액셀을 밟아 멈춰있는 행인들 사이를 지나 멀찍이 자리한 습격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운전하긴 적합하지 않았다. 멎어버린 기사들이 있는 차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전에 있던 두 차례 폭발로 수많은 차는 빠르게 이 구역을 벗어나 있었다. 덕분에 구조팀의 사파이어색 지프는 탁 트인 도로를 관통해 몇몇 습격자 곁에 이르렀다.
백새벽은 속도를 내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잠들어 교통사고를 당할까 아직도 단단히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바주카포를 짊어진, 혹은 저격 소총을 쥔 습격자들은 은백색 다용도 자동차 한 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들 꿇어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엎드린 상태로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차창을 내린 성건우가 큰소리로 물었다.
“너희 배후에 있는 놈, 어딨어?”
습격자들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답하는 이도 없었다.
“너희 배후 어딨냐니까?”
결국 한 습격자가 고개를 살짝 틀었다. 뒤이어 입을 약간 벌린 그가 매우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보아하니 이 녀석들, 일시 정지된 게 아니라 뭔가 모종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를 본 장목화는 당분간은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성건우가 추리 광대나 억지쟁의 능력을 발휘한다 한들 특정 명령보다 우선하지는 못할 터였다.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가자.”
백새벽은 핸들을 돌려 다른 거리로 차를 몰았다.
그 사이 그녀는 차창을 내리고 한 손으로 아이스모스를 뽑아, 점차 시야로 들어오는 습격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일시 정지 상태의 습격자들은 분분히 피를 뿜으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방면에서 백새벽은 언제나 깔끔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했다.
백새벽은 현실 세계에서 해를 가할 수 있는 수하가 없어진다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적잖이 줄 거라고, 그가 가할 수 있는 해도 확연히 적어지리라고 판단했다.
현재 장목화는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집단 통제를 포기하고 기회를 만들어 구조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가장 걱정했다. 그럼 구조팀은 추리 광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꿈에서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상대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장목화는 주위 상황을 관찰하며 팀원들과 주세페에게 당부했다.
“서로 잘 살펴봐, 알았지? 절대 누구도 잠들면 안 돼!”
* * *
북안 불모지, 마을 유적 안.
게네바, 한명호, 정도연은 한나절 동안 고심했지만 끝내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도대체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의 구조팀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도와줘야 한단 말인가.
결국 게네바가 결정을 내렸다.
“난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서 구체적인 상황을 조사할게. 너희는 여기 남아 계속해서 퍼스트 시티를 유도해도 좋다.”
잠시 침묵하던 한명호가 말했다.
“나도 너랑 함께 갈게.”
그리고는 정도연을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정도연이 자조하듯 웃었다.
“나도 갈 거야. 그 사람들 없인 마을 사람들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지능 로봇 게네바는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겸손을 떨지는 않았다.
“좋아, 같이 가자고.”
* * *
레드울프 구역, 로스타 스트리트 19호, 질서의 손 본부.
갑작스럽게 긴장된 정세에 월을 비롯한 사람들이 소집됐다.
멀리서도 폭발음이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정말로 시작된 건 아니겠지?’
서로를 돌아보던 그때, 한 치안관이 방에 들어와 상황을 보고했다.
“시카라 사원 근처 구역에서 총격전이 한 차례 벌어졌답니다. 양측 모두 바주카포와 유탄발사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의 목격자는 동요 같은 음악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음악을 듣자마자 급한 요의가 느껴져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요.”
‘동요? 급한 요의?’
월은 단숨에 특정 사건을 떠올렸다.
“그 녀석들이 돌아온 건가?”
대체 어떻게?
* * *
사파이어색 지프가 다른 거리로 방향을 틀었을 때, 성건우 왼 손목에 걸린 맹목의 고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활성화돼 있던 듯했다.
성건우는 차에 오를 때부터 100미터 범위 내 인간 의식을 감지 중이었다.
다들 일시 정지된 상태라 활력은 거의 굳어있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상태를 회복해 사고가 활발히 하면 밤하늘 반딧불이처럼 눈에 확 띌 것이었다. 그럼 구조팀도 그 여명 영역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만약 상대가 100미터 범위 밖에서 물질을 간섭하고 있다면 구조팀으로서도 그를 특정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성건우는 뭇별처럼 수많은 인간 의식 가운데 얼음을 털어내는 듯 약간의 떨림을 보이는 정신체 한 줄기를 발견했다.
“찾았다!”
흥분해 홱 돌아선 그가 이곳에서 수십 미터는 떨어진 아파트 건물 3층을 가리켰다.
그와 같은 쪽에 앉아있던 장목화도 고개를 돌려 유리창을 확인했다.
성건우를 나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는 의심 대상이 분명 저 어느 유리창 뒤에 있으리라 판단했다.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방이에요.”
이어진 성건우의 말에, 백새벽에게 오렌지 소총을 넘겨받으려 했던 장목화의 손이 우뚝 멈춰버렸다.
그들의 현재 위치와 각도로는 그 유리창 뒤쪽은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장목화가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직접 저격하긴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무릎에 놓인 개인용 바주카포 사신을 바라보던 장목화는 머릿속으로 유리창 뒤쪽 방으로 이어지는 포물선을 하나 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왼손은 아직 머뭇대고 있었다.
정상적인 논리로 볼 때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거주지가 마침 이 근처일 리는 없었다. 그는 미리 그 방에서 매복하고 있거나 입시로 특정 아파트를 점거한 것일 터였다.
상대가 보인 능력의 특징을 감안하자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는 강제 입면 능력을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든 들어갈 수 있고, 사용하고 싶은 방 어디든 사용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비밀 유지 또한 더 철저하게 할 수 있어, 빌려둔 방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거나 계획이 폭로 당할 위험도 없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지금 그 방에는 목표뿐만 아니라 잠들어 있는 그 방 주인 또한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런데 무작정 바주카포를 쏴버린다면 물질을 간섭할 수 있는 심령의 복도 급 강자를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반해, 무고한 방 주인만 해치게 될 수 있었다.
아마도 운이 끝장나게 좋지 않은 한, 방 주인은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몰랐다.
장목화는 평소 무고한 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최대한 피해왔다.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백새벽이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마음이 너무 무르시네요.”
성건우가 반박했다.
“내가 보기에도 큰 흰둥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장목화도 약간 허탈하게 웃으며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그럼 네가 할래?”
백새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마음이 무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행동에 나섰다가는 구조팀 동료들과 갈등하게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곧 장목화가 일찍이 생각해둔 듯한 예비 방안을 내놓았다.
“살짝 우회한 다음, 각도를 조정해서 저격해보자.”
그때, 성건우가 아쉬움에 탄식을 했다.
“목표가 창문 구역을 벗어났어요. 아주 기이한 방식으로요.”
그는 어떻게 기이하다는 것인지까진 말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원거리 저격은 안 되겠네. 꼭 저 아파트에 접근해야만 목표와 만날 수 있나? 그럼 시간도 걸리고 목표도 어느 정도 움직임을 회복할 텐데?
저 사람은 건우가 추리 광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 걸 알아. 우리랑 절대 대화하려고 하지 않을 거야. 양손 동작 불능도 소용이 없어. 그 사람이 능력을 발동하는 데 특정한 손동작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억지쟁이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에게 얼마나 유효할지는 아직 모르지. 거기 희망을 거는 건 미련한 짓이야.
맹목의 고리로 눈을 멀게 하는 것도 별 의미 없어. 주위 사람들이 일시 정지된 상태에서 점차 회복하고 있는데, 우리 인간 의식은 그 사람한테도 또렷하게 포착될 거야.
정말로 저쪽에 접근하려면 그 사람이 아직 철저히 회복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 군용 외골격 장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아무 대응도 못 하게 할 수도 있겠지.
아니야, 지나친 도박이야. 위험 부담이 커. 안타깝네. 줄곧 멀찍이 숨어있는 사람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대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알 수 없으니.’
머리를 굴리다 애써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백새벽에게 말했다.
“우회할 필요는 없겠어. 계속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가자. 최대한 빨리 저 아파트랑 거리를 벌리자.”
장목화 개인은 가끔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지만, 구조팀장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휴, 역시 팀장님은 지혜로우셔!’
용여홍이 속으로 짧게 장목화를 칭찬했다. 그는 수종이가 없는 상황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와 정면으로 대항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새벽 역시 위험 부담이 지나친 시도는 지양했다.
곧이어 발에 힘을 실은 그녀가 차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아쉽네⋯⋯.”
성건우는 계속해서 맹목의 고리를 활용하며 지프와 그 아파트 사이의 거리가 100미터를 넘길 때까지 목표의 상태를 수시로 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