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변화의 방식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지프는 수종이가 머무는 거리에 도착했다.
용여홍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바주카포 한 발이 사파이어색 지프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바주카포가 날아들기 시작한 그때, 장목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돌려!”
멀찍이서 번득이는 불빛을 발견한 탓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장목화는 주위 환경에 대한 감시를 단 한 순간도 늦춘 적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저격과 폭격 등에 특히 주의했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성건우, 용여홍도 종합 경보 시스템으로 차 양 옆 구역과 뒤쪽 구역을 관찰하고 있었다.
운전 중인 백새벽 또한 정면과 좌측 전방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니 바주카포를 조기에 발견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장목화라는 점이 우연일 뿐이었다.
장목화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성건우가 발견했을 테고, 성건우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용여홍이나 백새벽, 구조팀 누구라도 발견했을 것이었다.
끽-!
마찰음과 함께 백새벽은 맹렬히 핸들을 돌렸다.
사파이어색 지프는 거의 통제력을 잃은 듯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닥에도 또렷한 바퀴 흔적이 남았다.
콰릉!
바주카포는 조금 전까지 지프가 있던 곳을 통과해 그로부터 약간 떨어진 옆쪽에 떨어졌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불빛 속, 어마어마한 충격과 급격한 회전으로 인한 강력한 관성 때문에 지프는 바닥에 뒤집힌 채 길가 가로수와 충돌했다.
쾅!
옆으로 기울어진 가로수가 엄청난 양의 진흙을 토해낸 끝에 지프는 겨우 멈춰 섰다. 현재 지프의 오른쪽 측면은 위쪽을 향해 있었다.
그래도 차를 뒤덮은 두꺼운 장갑 덕분에 방금의 충격은 안에 탄 사람들에게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히진 않았다.
용여홍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조금 전처럼 안전띠의 중요성을 절절히 실감한 적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그와 성건우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기 위해 안전띠를 풀고 있던 관계로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 차가 급격히 흔들리고 뒤집히며, 두 친구 모두 차 내부 곳곳과 충돌해 하마터면 깨진 유리창 너머로 튀어 나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행히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던 덕분에, 기계의 힘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용여홍은 현재 산소 부족으로 현기증만 살짝 느낄 뿐이었다. 동시에 이 뜻밖의 상황에 놀랐음에도 오랫동안 참아온 소변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탁-
이제 위로 난 문이 돼버린 차 문을 열고, 성건우는 무릎의 보조 관절을 이용해 지프 밖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는 왼팔을 들고 유탄발사기를 조정한 뒤, 지금껏 관찰한 결과를 이용해 멀찍이 자리한 어딘가를 향해 유탄 한 발을 발사했다.
콰아앙!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시 허리를 굽힌 성건우는 오른팔을 뻗어 주세페를 끄집어냈다.
용여홍도 주세페가 하고 있던 안전띠를 풀어준 뒤, 반은 기어오르고 반은 뛰어올라 옆으로 쓰러진 지프에서 벗어났다.
이내 장목화 역시 보조석 문을 열고 그걸 방어벽으로 삼아 밖으로 기어 나왔고,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손상된 운전석에서 백새벽을 끌어주었다.
“일단 차는 버려두고, 수종이가 있는 곳으로 가!”
장목화가 명령했다.
그녀도 습격자들이 여기에서까지 가로막을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아냐, 따라온 게 아니라 미리 여기서 매복하고 있던 것 같아. 그 사람들 중 예언에 능한 각성자가 있는 건가? 아니면 수종이의 존재를 파악하고 우리가 여기로 올 걸 알고 있었나? 근데 그건 잔나가 대사도 모르던 사실인데.’
분초를 다투는 이때, 더 이상 심층적인 분석을 할 여유는 없었다.
이윽고 성건우는 주세페를 겨드랑이에 꽉 끼운 후, 유탄발사기로 30미터 정도떨어져 있는 적을 제압하며 두 다리를 굽혔다. 군용 외골격 장치로 땅을 박차고 몇 걸음 내로 목적지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성건우가 목청을 높였다.
“수종아! 수종아!”
금속 골격으로 몸을 감싸고 어깨엔 전술 배낭을 멘 성건우가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런데 허공으로 막 떠오른 순간, 돌연 군용 외골격 장치가 묵직해졌다.
보이지 않는 손 하나가 금속 골격을 매개체 삼아 그의 어깨를 힘껏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쿵!
성건우의 커다란 날개가 꼭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처럼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예정된 고도의 절반밖에 뛰어오르지 못했던 그는 그대로 추락하듯 내리 떨어졌다.
그래도 억지로나마 균형을 유지한 성건우는 앞으로 몇 걸음 내디디며 몸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 순간, 그는 발목의 어느 보조 관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모든 시도를 포기한 성건우는 주세페와 함께 데굴데굴 굴렀다.
그와 마찬가지로 백새벽을 데리고 아파트로 이동하려던 용여홍 역시 보이지 않는 저지를 맞닥뜨렸다.
오른발 보조 관절이 보이지 않는 적의 도구가 된 것 같았다. 마치 왼쪽 다리가 저 스스로를 배반한 것 같았다.
평평한 땅 위에 있는데도 두 다리 모두 다 비틀거렸다.
쿵!
용여홍이 착용한 금속 골격이 땅과 충돌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온 힘을 다해 단거리를 질주하던 장목화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움직이는 다리는 보이지 않는 밧줄에 얽힌 듯 땅을 벗어나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몇 차례 시도에 모두 실패한 장목화는 그대로 몸을 말며 굴렀다.
그렇게 굴러가던 몸이 멈추자마자 그녀는 몸에 지니고 있던 유탄발사기를 들었다. 멀찍이 자리한 적을 제압하며 동료들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엄호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기가 너무나 묵직해졌다. 장목화의 힘으론 도저히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치 누군가 그녀와 유탄발사기를 둔 쟁탈전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장목화는 왼팔에 힘을 잔뜩 주고 결국 유탄발사기를 쳐들었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결국 탈환에 성공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했다.
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강제 입면과 실제적인 꿈 모두 원했던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자, 원거리 조작을 포기한 것이었다.
대신 구조팀과의 거리를 좁혀 물질적으로 간섭하는 기본적인 능력으로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잔나가만큼의 급에는 이르지 못해서 그런지 발휘하는 힘이 확연히 부족해 보였다. 장목화의 전기뱀장어 형 생체 공학 의수의 괴력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그래도 방해는, 그것도 치명적인 방해는 할 수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었든 안 입었든 활동 중인 인간의 균형은 굉장히 미묘했다. 그런 순간에는 최저 수준의 힘을 주어 관절을 슬쩍 치고, 당기고, 밀고, 누르기만 해도 균형을 무너뜨리고 아무 동작도 못 하게 할 수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을 받는 용여홍도, 폐허 건물을 평지처럼 걸을 수 있는 장목화도 바로 균형을 찾을 수 있긴 했지만, 그 사이 가장 중요한 적기를 놓치고 말았다.
여기에 강제 입면까지 더해지면 구조팀은 심각한 요의에 빠르게 정신을 차려도 상대에게 반격은커녕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멀찍이 자리한 적에게 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성건우의 양손 동작 불능 범위에 진입하지 않는 이상은 그랬다.
이는 장목화가 지금 가장 걱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 순간, 그녀가 잠들었다. 나머지 팀원과 주세페도 마찬가지였다.
* * *
북안 불모지.
한명호, 정도연, 게네바는 폐허 마을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게네바는 이미 전보를 보냈지만 한참이 지나도 회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도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지금은 분명 양측이 전보를 보내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한명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 때문에 전보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인가?”
게네바는 붉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전의 그 녀석이 전보를 통해 큰 흰둥이 팀 행방을 동료에게 알렸고, 그 동료가 지금 퍼스트 시티에 있다면 그것보다 나쁜 상황은 없을 거야.”
머뭇거리던 한명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서시월 팀은 수정의식교 본부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곳에는 강자들이 넘쳐날 거야.”
지난 시간, 한명호, 정도연, 게네바도 전보를 통해 시카라 사원이 수정의식교의 본부임을 파악했었다.
“확실히 그렇긴 한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야지.”
게네바가 상당히 신중하게 답했다.
이내 정도연은 일렁이는 모닥불에 눈길을 던졌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뭘 할 수 있지?”
도움을 제공해주려 해도 지금 당장 뭘 어쩔 수는 없었다.
게네바와 한명호 모두 침묵에 빠졌다. 그들 역시 지금으로서는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게네바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탐색했고, 한명호는 아무리 가망성 없는 상황일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다.
* * *
구조팀 네 사람과 주세페는 극심한 요의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때 멀찍이 자리한 적은 이미 조준을 마친 상태였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이용해 백새벽을 데리고 튀어 오르려던 용여홍은 방해 때문에 멀리 뛰지도 못하고 여전히 바주카포 사격 범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가 왼팔에 착용한 머리칼 같은 팔찌에 빛을 피워 올렸다.
맹목의 고리였다.
이를 이용해 감지 범위를 100미터로 확대한 성건우는 바주카포를 메고 있는 적을 포착했다.
번득이는 불빛 때문에 그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자 불안해진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살짝 젖혔다. 급기야는 약간 높아진 각도로 바주카포를 발사하기까지 했다.
콰릉!
발사된 바주카포는 구조팀이 자리한 곳을 뛰어넘어 사파이어색 지프 한쪽에 떨어졌다.
강렬한 폭발로 인해 차창에 무시무시한 균열이 일어났다.
우렁찬 폭발음 속, 사방으로 흩어졌던 행인들은 더욱 겁을 먹고 사력을 다해 달렸다. 그중엔 너무 급한 나머지 길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이동하다 넘어진 이들도 많았다.
또 거리 양옆에 딸린 건물 내 주민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숨어 바들바들 떨거나, 때로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무기를 들고 외부의 혼란을 저지하려 나서기도 했다.
그 외엔 넘치는 호기심에 유리창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려 하거나, 집 안에 설치된 전화로 질서의 손에 신고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은 골든애플 구역 근처에 자리한 레드울프 구역 거리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전화 정도야 무리 없이 설치할 수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습격자를 향해 달려가려는 자세를 취하며 크게 외쳤다.
“수종⋯⋯. 콜록! 콜록!”
그가 미처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순간, 한 줄기 기류가 목으로 파고들었다. 곧이어 격한 기침을 시작한 성건우는 외침은커녕 맹목의 고리 효과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생리적인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선, 여러 성건우 중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건우는 하마터면 최초로 바람에 사레가 들려 죽은 사람이 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