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부정적 상태를 이용하여
꿈은 더 이상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대신 상응하는 사고가 몽롱하게 잠든 것이었다.
실제적인 꿈의 주인은 꿈을 조종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강제 입면 능력을 발휘해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짙은 갈색 SUV는 방향을 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다시 이쪽으로 달려오려는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사파이어색 지프 안에서 우렁찬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 강아지는 멍멍⋯⋯.
열린 보조석 창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간 이 우습고 동요 같은 음악에는 어린아이의 ‘쉬’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려있었다.
- 쉬⋯⋯ 쉬⋯⋯ 쉬⋯⋯.
어린아이의 주문 속에, 차의 충돌과 총성에 놀란 행인들은 순간 하복부가 약간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린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변을 볼 수 있을 곳을 찾거나 집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사실상 퍼스트 시티 주민에게 총성과 교통사고가 당장 오줌을 지리게 할 정도의 충격을 안기지는 못했다. 상대적으로 레드울프 구역은 괜찮았지만, 그린올리브 구역 같은 경우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사나흘에 한 번씩 총격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빈번했다.
그래도 다들 최대한 빨리 이 현장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 사이, 방향 조정을 마친 짙은 갈색 SUV는 구조팀의 사파이어색 지프 쪽으로 접근했다.
현재 뒷좌석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 한 명과 운전 중인 사람도 주위 행인들처럼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꼭 움츠린 채 갑작스러운 요의를 참고 있었다.
경험 많은 사수인 이들은 적과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목이 타는 갈증과 급한 요의를 느끼게 되는 단계쯤은 일찍이 지나온 상태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강력한 각성자를 목격한 적이 있는 만큼, 이 요의의 원인을 특수하고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능력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당장 실례할 것 같은 느낌도 신체적 조건이 상당히 좋은 편인 이들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곧장 공격을 포기한 뒤 총을 쥔 채 차에서 내려 근처 전봇대나 가로수 아래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간신히 터질 듯한 오줌보를 참고, 한 명은 차 속도를 늦추고 권총을 운전석 창 너머로 뻗으며 열려 있는 보조석 차창을 겨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죽은 동료의 바주카포를 챙긴 뒤 그 시신 위를 가로질러 구조팀의 차를 조준하려 했다.
이 시각, 구조팀과 주세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잠들어 끝도 없고 실제적인 의미도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 쉬⋯⋯ 쉬⋯⋯ 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섞인 수종의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주위 행인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으며, 두 습격자는 바짝 모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안정적인 자세로 목표 대상을 조준했다.
바로 그때였다. 돌연 두 눈을 번쩍 뜬 장목화가 왼손을 들더니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몇 차례 연달아 당겼다.
그녀가 깨어난 것이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발휘한 강제 입면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뒷좌석의 성건우도 튕기듯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더욱 어둡고 깊어졌다. 그 역시 강제 입면 상태를 벗어났다.
두 사람을 깨운 건 바로 요의였다.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음악을 틀게 한 건, 근처 습격자와 어딘가에 숨어있을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들 구조팀이 현실에서 요의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상태가 점점 심해지면, 그에 따른 생리적인 자극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꿈속에서도 깨어날 수 있었다.
때론 능력에 따르는 부작용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이제 장목화가 총을 쏜 것과 동시에, 막 습격을 완수할 찰나였던 상대편 적 두 명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좀처럼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이는 그들의 뜻이 아니었다. 성건우의 양손 동작 불능 능력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탕! 탕! 탕!
곧이어 장목화가 들고 있던 아이스모스가 연속으로 총알을 뿜어냈다. 하지만 방금 막 깨어난 까닭에 적들의 방향을 정확하게 관찰하지 못해서 정확도가 높진 않았다. 아이스모스 총알은 짙은 갈색 SUV 표면에 불똥을 일으키며 총알구멍만 냈다.
두 습격자는 반격할 수 없는 상황에 속속들이 몸을 웅크리며 장목화의 사격을 피했다.
이를 보고 장목화는 권총을 내려두고 개인용 바주카포 사신을 들었다.
그녀는 왼손만으로 장착과 조준을 마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와 성건우의 눈이 재차 감겼다.
또다시 잠든 것이었다.
- 쉬…….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음악 속 수종이의 목소리가 다시 또 장목화, 성건우를 깨웠다. 이번엔 용여홍, 백새벽, 주세페까지 모두 다 깨어났다.
콰릉!
장목화가 조건반사적으로 당긴 방아쇠에, 바주카포는 짙은 갈색 SUV가 있던 곳을 관통해 더 먼 곳에 떨어지며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거리의 행인과 다른 운전자들이 극심한 요의에 일찍이 이곳을 떠나, 각자의 용무를 해결할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짙은 갈색 SUV는 구조팀이 잠든 틈을 타 앞으로 조금 더 이동했다.
장목화는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이 어딘가에 몰래 숨어있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라는 것을 알고, 곧장 백새벽에게 말했다.
“액셀을 밟아, 너무 세게는 말고.”
그럼 백새벽이 다시 강제 입면을 당할 경우 구조팀은 다시금 위험해졌다.
요의로 인해 졸음이 아주 잠깐에 그쳐도,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통제하기는 어려웠다. 때가 되면 지프는 두꺼운 장갑을 장착했다 한들 그 안에 탑승한 사람들을 절대 보호하지 못할 것이었다.
백새벽은 이유도 묻지 않고 액셀을 밟았다.
지프는 이제 정상 속도를 되찾았다.
그리고 백새벽은 비로소 장목화가 왜 그렇게 낮은 속도를 고집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보조 칩을 통해 꾸준히 신체 상태를 살폈던 장목화는 당시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차 속도를 늦추는 게 훨씬 유용한 상황이었다.
물론 꿈에선 보조 칩의 피드백까지도 헛것일 가능성이 있었기에 장목화도 이를 감히 확신하지는 못했다.
속도를 낸 지프가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허리와 등을 꼿꼿이 세운 용여홍이 트렁크에서 군용 외골격 장치를 꺼냈다.
하나는 일단 성건우에게 건네고, 다른 하나는 용여홍 본인이 바로 입기 시작했다.
너무나 능숙히 치러지는 행동에, 주세페는 잠시 넋을 잃었다. 동시에 이 팀의 실력이 매우 감탄스러웠다.
용여홍과 성건우가 서로를 도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는 동안, 장목화는 멈추지 않고 밖을 향해 공격했다.
이제 개인 바주카포 사신을 내려놓고 유탄발사기 폭군을 든 그녀는 짙은 갈색 SUV를 향해 유탄을 날리며 아무도 없는 길가도 공격했다.
콰릉! 콰릉!
이어지는 일련의 폭발음 속,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튼 짙은 갈색 SUV와 지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주위에 사는 퍼스트 시티 주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질서의 손에 신고했다.
이게 바로 장목화의 진짜 목적이었다.
퍼스트 시티의 공식 세력을 끌어내는 것.
구조팀도 당연히 붙잡힐까 두려웠지만, 그들을 습격한 이들 역시 질서의 손에 잡힐까 두려워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 상황을 보면 습격자가 퍼스트 시티의 자체적인 강자일 리는 없었다. 아마도 비밀스럽고, 위험하고, 구세계 파괴의 단서 제거를 주요 임무로 하는 조직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런 자들에 비하면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 정부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새어 나가야 할 비밀은 이미 다 새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달성된 걸 확인한 장목화는 공격을 멈추고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수종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이건 구조팀의 방책 중 두 번째 단계였다.
무슨 대가를 치렀는지 알 수 없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맞닥뜨렸을 때, 구조팀의 힘만으로 상황을 타개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퍼스트 시티 안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넷뿐이었다.
첫째는 이두형이었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둘째론 자비로운 잔나가 대사와 그로 대표되는 수정의식교가 있었다. 하지만 잔나가 역시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수정의식교 본부인 시카라 사원에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 상태였다. 나머지 원각자의 상태도 불명확했기에 장목화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셋째는 한번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포카스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정세 아래 구조팀이 골든애플 구역으로 향했다간 검문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포카스 장군을 만나기 전 퍼스트 시티의 또 다른 강자에게 즉결 처형되거나 체포당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넷째 인물은 무심자의 왕 수종이였다. 수종이가 머무는 레드울프 구역은 시카라 사원에서 그리 가깝진 않은데, 또 그렇다고 아예 먼 곳도 아니었다.
백새벽도 이 사실을 잘 알아서, 얼른 골든애플로 핸들을 꺾었다.
수종이는 골든애플 구역으로 향하는 곳에 자리한 어느 거리에 있었다.
* * *
지프가 달리는 와중, 군용 외골격 장치 착용을 마친 용여홍은 약간 힘이 다 빠진 듯 기운 없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젠 스피커 끄면 안 될까요?”
구조팀의 요의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주세페는 바지에 그냥 지릴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에겐 더 이상 존엄성도, 수치심도 없었다. 금단 현상으로 보인 온갖 추태 중엔 오줌을 지리는 것쯤이야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시카라 사원에서 세탁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끄자, 이제. 이 정도만으로도 괜찮으니까.”
이 정도 요의라면 구조팀 모두 꿈에서 곧장 깨어날 수도 있었고, 억지로나마 오줌보를 틀어막으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성건우도 이번엔 순순히 스피커와 휴대용 녹음기를 껐다.
달리는 지프는 마침내 짙은 갈색 SUV를 떨쳐냈다.
그러는 동안 구조팀은 더 이상 잠들지도, 꿈을 꾸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히 마음을 놓거나 안심할 순 없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얼마나 강력하고 무시무시한지는 이미 체험한 바 있었다.
몰래 숨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그는 여태 강제 입면과 실제적인 꿈 능력만 발휘했었다. 세 번째 능력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구조팀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에게 딱 세 가지 능력만 있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도 없었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시간은 너무나 느릿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