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72화 (472/649)

472화. 자해

턱을 매만지던 성건우는 어느새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용여홍이 내뱉듯 물었다.

성건우가 정색하고 말했다.

“적이 우리가 모두 꿈에 있는 틈을 타 현실에서 공격하면 어쩌지?”

“그건⋯⋯.”

용여홍은 순간 그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는 순간 주변 공기가 진득진득해지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철판처럼 굳어지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숨 쉬기가 어려워지고, 폐로 들어오는 산소도 희박해졌다.

순간 시카라 사원 7층에서 겪었던 일이 절로 떠올랐다.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심장이 그대로 멎어버릴 뻔했다.

바로 앞자리에 있어 보이지 않는 백새벽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표정이 매우 뻣뻣해져 있었다. 눈빛도 극도로 멍했다.

자리에 앉은 동료들은 얼굴빛이 점차 붉어지고 급기야는 보랏빛을 띠는 데도, 호흡도 거칠어지는 데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란 용여홍이 황급히 성건우를 차 밖으로 떠밀어주려는데, 그 순간 용여홍의 온몸이 싸늘해졌다. 냉한 기운이 체내로 침투한 것 같았다.

이로 인해 그의 동작은 빠르게 굳어졌으며 생각도 점점 둔해졌다.

누군가가 목을 틀어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호흡마저 어려워졌다.

하지만 용여홍은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그저 눈뜨고 지켜보며 이 모든 것을 가만히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극도의 고통 속에 장목화, 성건우, 주세페의 얼굴이 푸른빛을 띤 보라색으로 변하는 걸 보았다. 혀도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용여홍의 머리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임종 체험인가? 꿈이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진짜로 죽을 것 같은데.’

의식이 흐려지고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퍼뜩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서둘러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는 여전히 뒷좌석 왼쪽에 앉아있고, 동료들과 주세페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있었다.

백새벽 또한 전처럼 아주 느릿하게 차를 몰고 있었다.

그때, 보조석의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역시 꿈이라는 걸 알면 깨어난 후에도 진정한 죽음을 피할 수 있구나. 인체는 극한의 상태에서 자기 보호 기제를 발휘하니까.”

뒤이어 그녀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추리 광대 능력, 한 번 더 발휘해줘.”

깨어났다는 개념을 갖게 된 이때, 전의 추리는 다 무효가 된 상태였다.

“네!”

성건우는 이런 작업에 매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 * *

현실 세계에서 사파이어색 지프는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나아가며 적잖은 시선과 경적음, 욕설을 이끌었다.

차 안의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 그리고 주세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들의 호흡은 매우 안정적이고도 느릿했다. 아주 깊이 잠든듯했다.

그때였다. 짙은 갈색 SUV 한 대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뻗은 거리에서 질주하다시피 달려오기 시작했다.

맹렬한 속도의 차 안에선 대전차 유탄을 장착한 바주카포 한 대가 비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바주카포의 시커먼 포구는, 구조팀의 지프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 * *

북안 불모지, 어느 마을 유적 안.

게네바는 모닥불 옆에 서서 한명호, 정도연에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당시 주위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습격자가 놓아준 이유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지능 로봇에겐 당시의 각종 환경 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대비를 통한 분석이 가능했다.

게네바는 정기적으로 대량의, 쓸모없는 데이터를 압축해 따로 보관하거나 직접 삭제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한 정보만 남겨놓았다. 저장 공간은 유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건 발생 당시로부터 24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에 모든 데이터가 완전하게 남아있었다.

정도연이 조금씩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아주 옅은 안개였어. 비는 안 내렸는데, 그 후에는 피비린내가 났고⋯⋯. 난 그런 방면의 경험이 있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변이 생물이나 무심자 사이의 전투가 발발했을 거라 생각했어. 나도 거기 여파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습격자는 그 변이 생물에 놀라 달아난 걸까?”

한명호가 추측했다.

지금 이들이 이주해온 위험한 생물들을 비교적 쉬이 처리할 수 있는 건 게네바의 역할이 컸다. 한명호, 정도연만으론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만일 습격자가 심령의 복도 급에 이르지 못한 데다가 로봇 경호원과 화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자라면 그런 변이 생물에 겁을 먹고 도망쳤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했다.

게네바는 금속 목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든 각성자 데이터베이스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성자는 대부분 여명 영역에 속하고, 꿈에 관한 모든 능력이 실제적인 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야.

아니야, 미안하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군. 너희는 어쩌면 실제적인 꿈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또 하나, 여명 여역 각성자는 특정한 냄새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사례도 있지.”

“그럼 그때의 피비린내가?”

정도연이 곧장 연결점을 찾았다. 그녀에게도 당시의 피비린내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 * *

성건우가 빠르게 새로운 추리 광대 효과를 발휘한 이후, 장목화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

“무슨 생각 하세요?”

성건우의 물음에, 장목화가 약간 느릿한 말투로 답했다.

“완전히 깨어나 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봤어. 그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 텐데.”

용여홍이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아마 없을걸요. 전에 건우도 시도해봤잖아요. 정상적인 방법으론 실제적인 꿈을 벗어날 수 없어요. 내 스스로 인지를 심화하고 이게 꿈이란 믿음을 강화해야만 어렵사리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게다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적은 당시의 가위 말보다 훨씬 강해요. 같은 수준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실제적인 꿈에서 깨어나면 뭐 하겠어요, 애쉬랜드 자체도 거대한 꿈 아니었나요?”

추리 광대 효과는 각자에게 조금씩 다르게 발휘되었다. 용여홍은 약간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을 드러낸 데 반해, 성건우는 진지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성건우는 피식 웃으며 가벼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적어도 우리는 아직 꿈을 즐기고 있잖아. 그렇게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딨어?”

그때, 얌전히 듣고 있던 장목화가 돌연 왼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는 순간 아크가 한 줄기씩 흘러나왔다.

이 은백색 빛에 운전 중이던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크들은 서로 뒤얽힌 채 번쩍이는 전광 덩어리로 빠르게 응집됐다.

“티, 팀장님, 뭘 하시려고요?”

용여홍이 약간 더듬거리며 물었다. 혹여나 장목화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까 겁이 난 것이다.

물론, 장목화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할 리 없지만, 옆에는 성건우라는 당연히 그럴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한테 전기 충격을 가해보려고.”

장목화의 포니테일 스타일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불분명한 의미의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내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전광 덩어리를 스스로에게 던졌다.

‘팀장님,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용여홍은 혼란에 휩싸였다.

백새벽과 주세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장목화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자해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성건우가 일찍이 꿈에서 스스로를 해치는 방법으로는 깨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었다.

성건우는 장목화의 왼손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날 실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시다니.”

파직!

전광 덩어리는 장목화의 몸에 떨어지자마자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나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장목화의 옷과 피부에는 또렷하게 탄 자국이 남았다. 온몸은 뻣뻣하게 마비되었고 호흡도 불규칙하게 새어 나왔다.

그녀의 머릿속엔 생각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실제적인 꿈 안에 있다면 내가 받은 이 상해랑 내 몸 상태는 외부의 꿈에, 심지어는 새로운 세계의 현실에도 충실히 반영될 거야.

조금 전 상황에 근거하면 이런 변화가 목숨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이게 꿈이란 걸 잘 알고 있다면 인간의 자기방어 기제가 활성화돼. 영향 대부분이 걸러지고, 빠른 심장 박동, 격한 호흡, 식은땀 등 비교적 약한 반응만 남지.

심각한 전기 충격을 받은 내 몸 상태는 외부의 꿈에도, 새로운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돼. 내 왼손 안의 보조 칩은 계속 몸 상태를 감시하고 있고.

조건이 만족되면, 당시 어인 신사로 인해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처럼 보조 칩은 생체 공학 의수를 움직여 진동을 방출하고 심장 박동을 돕는 전류를 방출할 거야. 외부의 꿈, 혹은 새로운 세계에 존재하는 그 자극은 날 깨우기 충분하겠지. 건우가 날 흔들어서 실제적인 꿈에서 빼내 줬을 때처럼.

만약 꿈속 보조 칩이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지금 난 외부의 꿈이나 새로운 세계의 현실에 자리해 있는 거야. 상응하는 전류는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나를 구하고, 페이카를 주사할 기회도 마련해주겠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가운데 장목화의 심장이 심상찮은 반응을 보였다.

이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뜬 장목화는 몸에 아직도 남아있는 저릿한 느낌을 감지했다.

동시에 그녀는 비스듬한 방향에서 달려들고 있는 갈색 SUV와 그 차창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시커먼 바주카포를 발견했다.

‘운이 좋았군. 조금만 더 늦었으면 지프의 장갑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겠어. 치명적인 상해라도 입지 않도록.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마주한 상황에선 정말이지 어느 정도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때도 있네.’

장목화는 오른팔을 뻗어 차창을 내리는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아이스모스 권총을 꺼냈다.

차창이 내려가는 와중, 장목화는 사수의 직감에 의지해 사격을 마쳤다.

탕!

바주카포를 쥔 채 사파이어색 지프를 노리고 있던 그 남자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창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실제적인 꿈의 주인이 꿈을 이용해 구조팀을 처리하는 데 두 번이나 실패한 이후, 장목화는 그가 외부의 꿈, 혹은 현실 세계를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했다.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면서 꿈에서 깨어나려는 모험을 시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뒤 바주카포를 목격한 순간, 장목화에게 걸려 있던 추리 광대 능력의 효과는 자연스레 해제된 상태였다.

그녀는 더 이상 외부의 꿈과 새로운 세계의 현실을 믿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현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끼익-

짙은 갈색 SUV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방향을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장목화는 더는 상대를 향해 총을 쏘지 않고 의자 레버를 당기면서 등받이를 뒤로 홱 젖혔다.

짝!

그리곤 그대로 오른손을 뻗어 성건우의 뺨을 때렸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정신을 차린 성건우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뒤쪽 전술 배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장목화가 다급하게 지시했다.

“음악!”

빠르게 휴대용 녹음기를 꺼낸 성건우는 스피커와 연결한 뒤, 전자기기를 가동해 음량을 최대치로 높였다.

매우 능숙한 성건우는 단 10초 만에 모든 걸 완벽하게 조작했다.

쾅!

잠들어 있던 백새벽은 길가 전신주에 지프를 들이받았다.

주변의 행인은 깜짝 놀랐지만, 차는 내내 느린 속도를 유지하고 있던 데다 장갑까지 장착해서 앞쪽 범퍼만 살짝 찌그러졌을 뿐 다른 곳은 멀쩡했다.

충격도 그리 심각하진 않았지만 용여홍, 백새벽, 주세페는 곧 깨어나려는지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구조팀 네 사람과 주세페 모두가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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